소설리스트

괴담 동아리-66화 (66/130)

66 화

막간 - 장화은 선생님

우리가 문을 열기도 전에 먼저 쾅, 하고 동아리방의 출입문이 열렸다.

“준아!”

순식간에 쏟아지는 빛에 눈을 찌푸리는 진희와 나.

선아가 허겁지겁 뛰어와서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살폈다.

“괜찮아?”

“응, 괜찮아. 안 다쳤어.”

“다행이야.”

이어서 나머지 부원들도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눈꼴시렵네, 정말.”

우리를 보고 투덜거리며 동아리방의 불을 켜시는 선생님.

“부장, 괜찮아?”

“어어, 괜찮아.”

왠지 눈길이 나에게만 향하는 것 같아서 부끄러운 마음에 헛기침을 내뱉었다.

“어흠, 저기. 사실은 진희가 다했어.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나한테만 시선이 몰리네.”

그 말에 진희에게 향하는 시선.

하지만 역시 진희랑은 다들 아직 어색한지 잠시 머뭇거렸다.

“수고했어, 진희야.”

진희에게 제일 먼저 말을 건넨 것은 하윤이.

그다음은 의외로 덕훈이가 머뭇거리며 다가갔다.

“아, 안 다쳤냐고……

진희는 흥, 하고 코웃음을 한 번 치더니 야구방망이를 건넸다.

“덕훈이 많이 컸네. 누나 걱정도 하고.”

“쿠, 쿳소.”

쿨하게 뒤돌아서서 그대로 소파에 발라당 드러눕는 진희.

나는 잠시 흐르는 어색한 기류에 다시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고 경원이에게 물었다.

“그래서 밖에서 보기에는 어땠어? 우리 이 안에서 꽤 소란을 피웠는 데.”

“그게 말야……

안경을 치켜세우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경원이.

“문이... 갑자기 사라졌었어.”

역시.

잠시 후, 어질러진 동아리방 가운 데 모여 대충 경원이에게 상황 설명을 듣는 나.

“우리가 동아리방을 나서고 얼마 안 돼서 갑자기 눈 깜빡할 새에 문 이 사라져 버렸어.”

“흔적도 없이?”

“응. 전혀 흔적도 없이. 시멘트 벽 만 남았어. 사라지자마자 선아가 막 두들기고 했는데, 못 들었어?”

문이 사라진 직후면 한창 인형들이 구석놀이를 대신 해 주고 있을 때인 가.

“…아니. 안에서도 전혀 소리 같은 건 못 들었어.”

“그렇게 밖에서 하염없이 20분쯤 기다렸더니 어느 순간 갑자기 문이 다시 생겼고 선아가 뛰쳐 들어간 거야.”

“···그랬구나.”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

다 보신 거구나.

멀쩡한 상태에서 괴현상을.

‘···어쩐다.’

학생들 뒤에서 팔짱을 끼고 말없이 서 계신 장화은 선생님.

빙의 체질이라 어떤 위협으로 작용 할지 몰라, 일단 아무것도 말씀드리 지 않았지만.

‘…그래도 역시 선생님을 빼놓고 우리끼리 갈 수는 없겠네.’

이번 CA 시간을 통해 느꼈다.

좋으나 싫으나 이 사람은 매번 이렇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한다.

그렇다 보니 비밀을 공유하지 않은 채로 CA 활동을 하기에는 곤란할 것 같다.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완전히 선생님과 한편이 된다면 얻는 건 뭘까?’

사실 괴담에 빙의되는 체질인 것만 빼면 우리 동아리 부원 중 유일한 어른이자 선생님이라는 특수한 입장 이긴 하다.

내가 상대해야 할 적이 마왕과 괴담에 더해 학교 안의 수상한 세력이 란 게 밝혀진 지금, 장화은 선생님을 이렇게 그냥 방치해 두기에는 아 까운 카드가 돼 버렸다.

‘역시 필요해.’

수상한 세력의 리스트에는 분명히 없었다.

지금까지의 행동으로 봐도 확실히 그 세력과 한패는 아니다.

‘···그놈의 빙의만 좀 주의하면 되려나.’

어차피 눈앞에서 문이 사라졌다 나 타나는 괴현상을 목격하신 직후다.

나는 할 수 없이 선생님께도 나의 비밀을 가르쳐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선생님. 뭔가 말씀드릴 게 있거든요.”

“언제 그 말 하나 했어. 너희들 좀 많이 이상한 거 알지?”

“…네. 선생님이 보시기에는 어때요?”

평소의 가벼운 성격과는 달리 진지 한 표정의 장화은 선생님.

“.·.일단 나만 빼놓고 뭔가 하고 있다는 건 알겠네.”

“ 죄송해요.”

“그래서. 공유해 줄 생각이니?”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창문에 나무박스 떼고 책상이랑 다 원상 복귀해 놓읍시다. 그 다음에 설명해 드릴게요.”

곧 선아와 하윤이가 창문의 박스를 떼고, 경원이와 선생님이 화이트보드와 책상을 제자리로 옮겼다.

덕훈이가 소파를 옮기려고 누워 있는 진희에게 눈치를 줬지만, 진희는 누운 채 발만 내밀어 덕훈이의 배를 쿡쿡 찌르며 심술만 부린다.

나는 선생님께 지금까지 겪은 일의 상황을 대략적으로 말씀드렸다.

빙의에 대한 부분은 아직 받아들일 단계가 아닌 것 같아 언급하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학생의 집에 칼을 들고 밤에 찾아왔던 것.

선생님 입장에선 납득하기 어려운 일일 거다.

‘…하얀 휴지는 그래서 뭐였을까.’

“거기서 상태창이 나타나고, 괴현 상이 막 일어나서……

의외로 진지한 표정으로 내 말을 들어 주시는 선생님.

“···이렇게 된 거예요.”

믿어 주실까.

내 얘기가 끝났음에도 가만히 턱에 손을 괸 채 표정이 없으신 선생님.

‘···괜히 긴장되네.’

역시 이런 종류의 일을 평범한 사람에게 납득시키는 건 떨리는 일이었다.

물론, 이 사실을 믿어 주는 다섯 명의 부원과 함께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왠지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은 떨칠 수 없다.

마치 무신론자에게 교회에 나오라며 설득하는 기분.

이윽고 턱에 괸 손을 푸시더니 의자에 등을 기대시는 선생님.

“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등을 기댄 채 다시 팔짱을 끼시고는 한참을 또 말이 없으셨다.

자세만 이리저리 바꾸실 뿐, 침묵 뿐이신 선생님.

부원들도 긴장한 채 쭈뼛거리는 눈 치다.

“···방금 문이 사라진 거 하나로는 믿기지 않으시다면, 다른 것도 얼마 든지 보여 드릴 수 있어요.”

“어떤 거?”

“이것저것… 좀 신기한 능력들이 있거든요.”

“후, 됐어.”

약간의 피곤함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거절하시는 선생님.

“무당 집안이라 신기한 건 어릴 때부터 많이 봐 왔어. 다만, 그런 환 경에서 자라 온 나조차 도통 처음 듣는 얘기뿐이라 좀 당황스럽네.”

···하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괴현상들 은, 그 어떤 종교적 체험과도 다른 독특한 현상들이다.

게임 시스템, 귀신, 상태창, 괴담, 레벨업, 도시전설, 회귀.

그리고 마왕.

전혀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이상한 요소들이 한데 뭉쳐 돌아가고 있다.

“그럼 선생님, 일단 받아들였다는 걸로 여기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 게요.”

“뭔데?”

이 사람이 정말 우리 편이라면, 한 가지 반드시 물어봐야 할 게 있다.

“학교 안에서 저를 죽이려는 세력 들이 있어요. 알고 계셨나요?”

깜짝 놀라시는 선생님.

나는 그와 관련된 것도 모조리 말 씀드렸다.

아까까지는 심각한 표정이기는 해도 일단은 들어 준다는 느낌이었다면, 이번만큼은 선생님도 입을 벌리실 수밖에 없으셨나 보다.

“과학 선생님이 그래서 돌아가셨다 고? 너희 담임과 교감까지 한패? 아니, 그 사람들이 왜……

“그건 이제부터 알아내야죠.”

멍하니 중얼거리시는 선생님.

그리고 이내 뭔가 떠올랐다는 듯 몸을 흠칫 떠셨다.

“준이 네가 말한 그 사람들, 대부 분 교직원 족구 동호회 소속이야.”

“···족구 동호회요?”

«응

고개를 끄덕이시는 선생님.

얘기를 들어 보니, 우리 학교에는 교직원들끼리 모여서 운동을 하는 동호회가 하나 있나 보다.

내가 중간고사 때 알아낸 이름들은 대부분 그 동호회 소속의 선생님들이고.

“선생님은 족구 같이 하신 적 없으세요?”

“그게……

눈썹을 찌푸리시는 선생님.

“그러게. 오라고 안 하네?”

“엮여 본 적도 없어요?”

“응, 없어. 그냥 학교 마치고 주말에 끼리끼리 모여서 운동한다는 것 만 아는 정도야……

“그렇군요.”

나 역시 가만히 팔짱을 끼고 생각 하다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께서 그 동호회에 들어가 주시면 안 될까요?”

“···뭐?”

깜짝 놀라시는 화은 쌤.

부원들도 놀랐는지 나를 쳐다봤다.

“너무 위험한 거 아닐까, 부장?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학생을 죽이는 사람들인데……

“무리한 부탁을 하는 것 같기 도……

경원이와 덕훈이가 한마디씩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학교 안에 있으면 3년 내 내 마주칠 사람들이야. 언제 공격당 할지 간 졸이며 살기보다는 먼저 치고 들어가 반응을 살피는 것도 좋겠지.”

“저기, 근데 준아. 네가 하는 이야 기가 황당해서가 아니고, 그 동호회 가 아무나 들어가고 싶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거든……

내 제안에 당황하시는 선생님.

“이 학교에 머무른 지 좀 오래된 멤버들 위주로 돌아가는 동호회라… 선생님은 작년에 와서 좀……

“먼저 들어가고 싶다고 말해 보세요. 그럼 되잖아요.”

“그, 그게……

쩔쩔매시는 선생님.

하긴, 친구들 사이에서도 친목 모임은 자연스레 형성되는 거지.

대놓고 나랑 같이 놀아 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하물며 직장 내 이미 존재하는 유서 깊은 친목 동호회다.

초대도 없었는데 자기도 좀 끼워 달라고 말해 보는 건 사회인으로서는 민망한 일일 터.

‘치킨 두 마리를 먹어 치우는 34살 미혼의 예쁜 여선생이 족구가 하고 싶으니 끼워 달라고 애쓴다.’

흥미롭군.

“꼭 선생님이 거기 가야 하니? 그 게 좀 그렇네……

“제 얘기가 못 미더우신 거면 증거를 보여 드릴 수 있다고 말씀드렸잖

아요.”

“아니, 뭐... 선생님이 너를 못 믿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사회인으로서의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역시 어딘가 수상쩍은 구석이 있는 모임.

내 제안은 분명히 당황스럽고 무례 한 요청이 맞다.

“주, 준아……

선생님께 강하게 요구하는 내 태도에 선아도 불안한 듯 표정을 살핀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장화은 선생님.

30대 중반. 건강한 매력을 지니신 예쁜 영어 선생님.

주로 고학년 수업을 맡고 있어 우리 1학년과는 접점이 없기는 하지만.

들리는 말에 의하면 쾌활한 성격 탓에 학생들에게 꽤 인기가 많고, 몇몇 남고생에겐 고백도 받아 보셨다고 한다.

하지만 괴상한 일들이 일어나는 괴담 동아리와 함께하기엔 영어나 매력 같은 건 쓸모없는 요소.

중요한 건 이 사람이 마왕을 무찌르는 3년의 여정에서 어떤 역할을 해 줄 수 있느냐다.

나의 적들이 절대로 알아서는 안 되는 회귀 같은 요소까지도 이미 공 유한 상태.

절대로 선생님이라는 카드를 가만히 놀릴 생각은 없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한편이 되었다면 반드시 그 몫을 해내야 해. 나도 하고 싶어서 부장을 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족구 동호회에 들어가 주세요, 선생님. 그 사람들과 한편이 되어 주세요.”

“스파이, 하라는 거구나…… 어른이자 선생님이라는 특수한 입 장.

장화은 선생님밖에 할 수 없는 역할이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좀 생각할 시간이-”

“어른들이 우리를 해치려고 해요. 그런데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어요.”

나는 약간의 진심을 담아 선생님에게 간청했다.

입학식 때 얼핏 봤던 모습으로는 그래도 최소한의 선생님으로서 직업 의식 같은 건 있는 사람이었다.

“도와주세요, 선생님. 학생들을 지 켜 주세요.”

그 말에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신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교육하시는, ‘선생님’이시잖아요.”

U I 99

움찔하시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는 괴담 동아리의 담당, 장화은 선생님.

“…그래, 준아. 선생님이 잘못 생각 했네. 누군가 학생들을 해치려고 한 다면, 그게 같은 선생이 됐더라도 당연히 너희들을 감싸 주는 게 맞겠지. 미안해.”

“…아니에요. 힘든 부탁이라는 걸 저도 알아서-”

“선생님이 한번 해 볼게.”

주먹을 불끈 쥐시는 장화은 선생님.

“그 동호회에 잠입해서, 경찰에 신 고할 수 있는 증거든 정보든 한번 캐내 볼게!”

“감사해요, 선생님!”

지금껏 긴장된 채 대화를 지켜보던 부원들도 드디어 안심했다는 듯 한 숨을 내쉰다.

“···선생님, 멋져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존경스러워요!” 이어서 하윤이가 말없이 박수를 치자 다들 따라하기 시작한다.

짝짝짝짝짝짝 짝짝짝 .

심각한 얘기를 나누느라 가라앉아 있던 동아리방의 공기가 그제야 풀어진다.

“참. 쑥스럽게.”

짝짝짝짝

홍조를 띠며 고개를 돌리시는 선생님.

“얘들아, 박수!”

“휘익-!” 내가 더 크게 호응을 유도하자 경원이가 휘슬을 날린다.

“박수! 박수!”

“선생님 최고예요!”

“너무 멋있어요!!”

“반해 버릴 것 같아요!”

짝짝짝짝짝짝

선생님의 얼굴이 점점 빨개지시더 니, 이윽고 웃으시며 책상을 쿵 치셨다.

“그만해, 그만해! 됐어!”

“다 같이! 장화은! 장화은!”

“장화은! 장화은!”

와아.

짝짝짝짝짝짝 짝짝 .

휘익~ 휘익~

장화은! 장화은! 장화은! 장화은!

“분위기 뭔데! 그만하라니깐!”

“장화은! 장화은! 장화은……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자 흥이 많은 고등학생들답게 가라앉지 앉는 박 수

“춤춰라! 춤춰라! 춤춰라.”

덕훈이의 뇌절에 선생님께서 민망 한지 웃으시며 녀석의 어깨를 퍽 때 리셨다.

움푹 파여 들어서는 골절된 어깨를 붙잡고 비명을 지르는 덕훈이.

“와! 일어섰다! 박수!” 짝짝짝짝.

우리의 성화에 못 이기고 선생님이 예의 그 엉덩이춤을 추기 시작하셨다.

그 모습에 빵 터지며 뒤로 넘어가는 부원들.

하이텐션에 장난기 많은 평소의 선생님이셨다.

;푸하하하.” “ 아하하.” “하하하….”

“우효옷~나카나카 야루쟈나이카~”

“개새끼야 왜 틈만 나면 일본어 쓰는데.”

“아아악, 제발 살려 달라능.”

그렇게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꽤 괜찮은 기분으로 CA시간이 마무 리되었다.

괴담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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