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화
열 번째 괴담 -
마이크래프트의 히로빈 (2)
‘… 괴담.’
[당신의 부원이 괴담을 수집하는 중입니다.]
[B급 괴담 수집 중.]
끼이익-
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진 내 카트라 이더 캐릭터가 벽에 쿵 들이받는다.
“준이 못해……
키득거리며 열심히 앞서가는 선아.
‘···괴담 수집이라.’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메시지였다.
싸이코패스 테스트 이후로 약한 달 정도인가.
‘쿨타임 너무 긴데.’
이내 수집이 끝났는지 무언가 떠올랐고.
이번에 마주칠 괴담의 이름은.
파앗-
[부원 안경원이 ‘B급 괴담 - 히로 빈 괴담’을 수집 완료하였습니다.]
‘···히로빈? 안경원?’
“와~ 이겼다……
선아가 열심히 달려서 골인한 자신의 캐릭터를 보며 웃는다.
“···으음, 졌다. 윤선아 대단해.”
“헤헤.”
딸랑~ ♬
동시에 피시방의 문이 열리더니, 경원이가 잠바를 입은 채 두리번거리며 들어왔다.
“경원이다! 여기야, 여기……
손을 들며 부르는 선아를 발견했는 지 경원이가 이쪽으로 왔고.
우릴 보더니 피식 웃는다.
“덕훈이랑 부장, 선아까지 모여 있었네. 몇 시간 했어?”
“이제 두 시간쯤. 얼마 안 됐어. 너도 게임하러 온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이리저리 둘러보는 경원이.
“가족끼리 놀러 갔다 집에 가는 길 이었는데, 단톡방에 너희 여기 있다 길래. 한번 들려 봤어.”
“그렇구나. 바로 가야 하는 거 아 니면 같이 놀자.”
“구경만 할게. 할 줄 아는 게임이 없어서.”
“정말? 아예 안 해?”
“옛날에는 했는데, 요새는 별로 흥 미를 못 느껴서.”
“그렇구나.”
게임을 안 하다니. 이럴 수가.
경원이는 희귀종이었다.
“게임 관련해서는 가끔 유튜브 방 송 클립들 훑어보는 게 다야. 그것도 게임 자체에 관심이 있기보다는, 그냥 인터넷 밈 같은 거나 대충 알아보려는 목적이고.”
나는 새삼 감탄했다.
‘이 녀석, 그런 분야에서까지 지식 욕을 추구하는구나.’
그런데 남자 고등학생이 집에서 게임을 안 하면, 도대체 남는 시간에 뭘 하면서 재미를 찾는 걸까?
다른 취미가 없는 나로서는 꽤 궁 금한 사실이었다.
정말로 집에서 책과 인터넷만 파고 드는 게 재밌다는 건가.
“그것보다 부장, 오는 길에 재미난 걸 발견했는데 말야.”
씨익 웃더니 선 채로 안경을 고치는 녀석.
“너희 혹시 마이크래프트라는 게임 알아?”
마이크래프트 (MyCraft).
약, 10년 전부터 꾸준히 전 세계에 서 사랑받아 온, 클로버 기업 산하 스튜디오가 만든 인기 게임이다.
내 것이라는 뜻의 마이 (My)와 공 예라는 뜻의 크래프트(Craft)가 합 쳐진 단어로, 게임 내의 모든 요소 가 육면체 큐브로 이루어져 있어 큐 브를 부수거나 지어서 나만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샌드박스류 게임.
굉장히 유명한 게임이긴 하지만 일단은 돈을 주고 사야 하는 패키지 게임이고, 혼자보다는 지인들끼리 함께 시작하는 게 더 재밌는 게임이 다 보니 나는 아직 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해 본 적은 없는데. 막 도트로 돼 있고 자원 모아서 집 짓고 하는 게임 아냐?”
“맞아.”
씨익 웃으며 안경을 추켜올리는 경원이.
“최근에 그 게임의 해적판에 좀 이 상한 괴담이 몇 개 도는데.”
“해적판?”
“불법 버전이란 뜻이야.”
비어 있는 좌석에서 의자 하나를 끌어와 앉는 녀석.
한산한 동네 피시방이다 보니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해커들이 게임의 정식 버전을 해 킹해서 보안 장치를 해금시킨 후 인터넷에 뿌린 버전이지. 다운만 받으면 CD를 넣거나 정품키를 입력할 필요 없이 아무나 즐길 수 있어.”
‘해적판.’
도둑이나 강도 같은 의미로 쓰인 걸까.
“혹시 히로빈 괴담… 말하려는 거야?”
나도 방금 시스템 때문에 알게 된 단어지만.
괴담을 수집해 온 당사자가 말하는 이름과 시스템의 내용이 일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슬쩍 떠봤다.
“맞아. 부장도 들어 봤나 보네.”
아니나 다를까, 안경을 치켜들며 씨익 웃는 녀석.
“아무래도 해커들은 이 게임의 보안을 뚫으며, 뭔가 ‘해제시켜서는 안 되는 것’까지 해제시켜 버린 모양이야.”
‘해제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라 “클로버 기업의 개발자들이 은밀하게 숨겨 놓은, 위험한 비밀들. 해커 들은 아무렇게나 코딩을 뜯어고치다 가 그것마저 풀어놓은 채 세상에 내 놔 버린 거지.”
“비밀 ”
나는 흥미가 생겼다.
“뭐 어떤 거길래.”
“무슨 비밀인지는 사실 나도 모르고. 일단 이상한 현상이 생기는 건 확실해. 후기로는 이 불법 버전을 플레이한 후에 미쳐 버리거나 실종 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래.”
“무섭네. 그런데도 인터넷에 파일 이 돌아다녀? 괴담은 둘째치고, 불 법인데 단속 안 해?”
“하지. 그런데 몇몇 괴짜들이 전문 적으로 IP를 바꿔 가며 커뮤니티에 일부러 뿌리고 다닌다나 봐.”
“어디서 구할 수 있는 거야?”
“주기적으로 삭제되기는 하는데, 네이버 블로그부터 디씨까지 다양 해. 검색만 잘하면 바로 나올걸.”
“사양은? 여기 피시방 컴퓨터로 돌리는 데 문제없을까? 똥컴이잖아.”
순간 말이 없는 경원이.
“… 하려고?”
“···응?”
“이거 괴담. 할 생각이었어?”
“…해 보라고 나한테 들려주고 있는 거 아냐?”
“딱히 그런 건 아니었는데.”
떨떠름한 표정의 경원이.
시스템상에서 이 녀석이 수집해 왔다고 하길래, 당연히 하는 흐름으로 가는 건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본인은 그냥 재밌는 얘기 하나 발견해서 들고 온 기분이었나 보다.
“내가 좀 앞서갔네. 하긴, 위험한 일인데.”
“아니, 뭐… 부장이 도전해 보고 싶으면 도전해 봐도 상관없고……
하면 따라오겠다는 표정이지만, 조금은 굳은 얼굴.
문득 나는 고개를 돌려 덕훈이와 선아의 눈치를 슬쩍 봤다.
무심하게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키보드를 두드리는 덕훈이.
조금 맹한 표정으로 얘기를 듣고 있는 선아.
‘흠. 별로 의욕에 차 있는 표정들은 아니네.’
나는 나도 모르게 당연히 이 녀석 들이 같이 괴담을 잡으러 함께 가 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함께 열심히 해 보자고 약속 한 게 바로 어제 일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아무 때나 괴담을 퇴치하려 드는 건 일상이 곧 괴현상의 연속인 내 관점일 뿐.
우리는 오늘 괴담을 해결하러 모인 게 아니라 피시방에서 놀려고 모인 입장이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괴담으로 들어간다는 것.
녀석들에겐 아직 부담스러운 일일 게 분명하다.
‘…하긴.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라지만 이거 한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다들 고1일 뿐인데. 너무 잘 따라와 주는 것도 이상한 일이겠지.’
더구나 이번 주는 중간고사에, 과학 선생에, 머리 귀신까지, 힘겨운 한 주를 보낸 터.
나는 뭔가 마음에 걸려 서둘러 분 위기를 수습했다.
“급발진해서 미안. 힘든 한 주였는 데 말이야.”
“아냐, 뭐……
빠른 태세 전환에 머뭇거리는 경원이.
“사실 부장 생각이 맞지. 3년 뒤에 세상이 개판 된다는데 편하게 있을 수느
“아냐. 쉴 때는 또 쉬어 줘야지.”
나는 손을 내밀어 괜찮다는 태도를 취했다.
“오늘은 편하게 게임이나 하면서 놀자. 어차피 매주 금요일 고정적으로 CA시간에 우리 활동하잖아. 이 제 제대로 마음먹은 지며칠 됐다고 무리할 필요는 없지.”
«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경원이가 어물쩍 팔짱을 풀었다.
“부장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뭐……
“일단 얘기는 계속해 볼래?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제 한번 해 보게.”
“알겠어.”
이어서 경원이가 들려준, 인터넷에 서 화제 중인 마이크래프트의 괴담 들은 아래와 같았다.
〈마이크래프트 괴담〉
겉보기에는 육면체 큐브 그래픽이 다 보니 애들이나 하는 게임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파고들어 보면 꽤 깊이 있게 현실적인 요소들이 잘 구현돼 있는 게임, 마이크래프트.
‘낮/밤’의 요소와 날씨의 변화, 수 백 가지가 넘는 제작법, 캐릭터의 허기와 음식의 구현, 그 외에도 마을을 만들고 도시까지 지을 수 있는 등 무한한 자유도를 지닌 게 특징인 게임이다.
그렇게 기본적으로 탐험과 생존 요소가 중시되는 게임이다 보니 미지의 영역에 대한 유저들의 상상이 불 러온 괴담이 꽤 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래의 세 가지 정도라고 한다.
① 히로빈
서버 내에 존재하는 플레이어와 똑 같이 생긴 NPC에 대한 괴담.
유저들이 로컬서버를 만들어 게임을 플레이하면, 이상하게도 자신들이 짓지 않은 괴상한 건축물들이 월드 곳곳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자연 발생으로는 도저히 생길 수 없는, 반드시 사람이 지어야만 나타 나는 구조물들.
이른바 ‘플레이어가 아닌 다른 뭔가’의 흔적이었다.
그런 괴담이 한창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던 중, BJ 한 명이 콘텐츠로 쓰고자 각 잡고는 한참 흔적을 추적 하며 따라간 일이 있었다.
흔적들을 추적한 BJ는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돌다가 결국 제자리로 오게 되었는데, 돌아온 그 원위치에 커다랗게
‘지옥에 왔습니다’
라는 글자가 피로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후 추적 과정의 녹화본을 유튜브에 올리려 편집해 보니 길을 따라가는 중간중간마다 저 멀리서 플레이 어를 관찰하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수수께끼의 캐릭터, 일명 ‘히로빈’을 발견했다는 이야기.
② 지옥
최신 버전에서 추가된 지하세계 맵.
아이템을 이용해 지하로 가는 차원 문을 열면 이 지하세계로 드나들 수 있는데, 이렇게 지하세계로 이동 후 게임을 끄고 버전을 다시 옛날로 되돌리면 괴현상이 발생한다고 한다.
최신 버전에는 있지만 옛날 버전에는 없는 지하세계 맵. 하지만 강제로 실행시키면 옛날 버전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지하세계가 멀쩡히 구현된 채 나타난다고 하는데.
다만, 어딘가 그래픽이 깨져 있고 알 수 없는 울부짖음이 들리는 등 비슷해 보이지만 좀 더 음산한 분위 기를 풍기는 옛날 버전의 존재하지 않는 지하세계.
이 상태에서 계속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진정한 의미에서 ‘지옥’이 나 타난다고 한다.
③ 세상의 끝
유저들이 자유롭게 월드를 탐험하며 건축을 할 수 있는 마이크래프 트
하지만 그렇다고 세계의 크기가 무한한 것은 아니다.
어마어마하게 커서 끝이 없는 것처 럼 보일 뿐, 시스템의 성능상 분명히 존재하는 맵의 한계.
그 끝에 도달한 유저의 말로는 투 명한 벽으로 가로막혀서 더 이상 갈 수 없었다고 한다.
알 수 없는 점은 그 한계가 되는 월드맵의 끝 너머로 보이는 정체불 명의 건축물과 기괴한 생태계.
유저들은 그렇게 맵의 한계 지점 너머로도 계속해서 이어진 채 보이는 갈 수 없는 세상을 파 월드(Far World)라고 부른다.
“대충 이렇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더 자세한 건 나도 몰라. 직접 해 본 게 아니라 유튜브로 훑어본 것뿐이니깐.”
설명을 마치고는 안경알을 닦는 경원이.
‘오는 길에 유튜브를 보다 발견했다라……
괴담 수집력 메시지가 뜬 것도 아마 그때쯤일 것이다.
“재밌겠네.”
“그렇지?”
옆에 서 있던 예쁜 여자애가 말하자 경원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다 같이해 보는 거지?”
“ 지금?”
여자애의 물음에 살짝 당황하는 경원이였지만, 덕훈이는 찬성하는 모양인지 뭐라 뭐라 중얼거렸다.
“나는 찬성. 게임 안 하는 너희 구 경만 시켜 놓기도 뻘쭘했는데, 마이크래프트면 취향 안 타면서 조작법도 쉬운 편이니 다들 빨리 적응 가 능할 테고… 이렇게 여럿이 같이 즐 기기도 괜찮고.”
던파를 하면서도 귀는 열어 두고 있었는지 맞는 말만 한다.
“게임은 안 사도 되는 거야?”
예쁜 여자애가 묻자 덕훈이가 여전히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끄덕였다.
“오이, 중간에 와서 못 들었나. 줄 곧 해적판 얘기를 한 거 아니냐능. 불법 다운할 거라고.”
“정말?”
“안경이 아무 데나 가서 받으면 된 다는데.”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미소녀.
나는 문득 불법 버전이면 온라인이 안 될 텐데 같이할 수 있나 의문이 들었다.
“근데 불법이면 서버에 연결 안 되는 거 아냐? 같이해야 의미가 있는 데.”
“로컬은 괜찮아. 그러니깐, 이렇게 같은 피시방 안에서 묶여 있는 컴퓨 터의 경우에는 함께 플레이 가능 해.”
로컬서버.
본격 온라인게임밖에 안 해 본 나 로서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일단 모두 한 서버에 접속해서 같이 즐기는 데는 문제 없는 모양이다.
“근데 나 완전 처음해 보는데.”
“설치부터 서버 만드는 것까지 누 가 다 하는 거야?”
“아아, 걱정 마라. 내가 몇 번 해 봤으니깐.”
덕훈이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호언장담했다.
“몇 년 전쯤이기는 하지만… 뭐, 문제는 없을 것 같다능.”
“그렇구나.”
예쁜 목소리로 대답하는 흑발의 소녀.
“저기, 그런데… 누구세요?”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