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화
열 번째 괴담 -
마이크래프트의 히로빈 (3)
아까부터 우리 옆에서 슬쩍 끼어들어서는 자연스레 같이 이야기를 나 누던 예쁜 여학생.
내가 누군지 묻자 경원이와 덕훈이 도 그제야 슥 뒤돌아본다.
긴 흑발에 사르르 내려앉은 속눈 썹.
투명한 피부에 약간의 기초 화장. 뺨에 살짝 보이는 솜털이 주는 소녀 같은 분위기와는 반대로, 예쁜 턱선이 그리는 브이라인과 가느다란 목선엔 여성이 주는 요염함이 섞여 있었다.
예쁜 소녀.
보는 순간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아름다운 하윤이가 그곳에 서 있었다.
“안녕, 준아.”
고개 돌린 그대로 뻣뻣하게 굳어 버린 경원이.
2D밖에 관심 없던 덕훈이마저 순 간 움찔하게 만드는 미모.
‘···존나 예쁘다.’
이 정도의 미모에 비빌 수 있는 건 지난번에 직접 만났던 아이돌 포린세스의 다섯 멤버 정도일까.
‘아, 아니다… 그런 아이돌스러운 분위기랑은 다른……
책에서 흔히 표현되는, 그야말로 ‘가문 있는 집 귀한 딸’, ‘양갓집 과 수’의 분위기.
“···하, 하윤이구나. 아, 안녕.”
당황한 내 표정을 눈치챘는지 살짝 웃으며 손가락을 흔들어 주는 그녀.
나는 심장이 멎을 뻔했다.
아무래도 안경은 하윤이의 미모 봉 인구 같은 역할이었던 모양이다.
“지금부터 그거 하려는 거지? 마이크래프트?”
“으, 응… 이, 일단은 뭐.”
“그럼 시간 충전하고 올게.”
“그, 그래.”
하윤이가 긴 흑발을 흩날리며 카운 터에 있는 기계로 우아하게 걸어갔다.
덕훈이는 잠시 있다가 음,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려 다시 게임에 집중했지만.
경원이는 놀라서 목을 뺀 그 자세 그대로 아직 굳어 있다.
“···준아.”
“어, 그래. 선아야.”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마이크래프트? 나도 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 좀 이따 덕훈이 던파 끝나면 설치해 달라고 하고 다 같이 배우자.”
“응.”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나는 놀란 심 장을 부여잡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미... 미친. 안경 벗고 화장하니깐 존나 예뻐.’
저 정도였다니. 중얼중얼.
잠시 후, 각자 일렬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은 우리 괴담 동아리.
왼쪽부터 하윤, 선아, 나, 덕훈, 경원.
부장인 내가 중심이고 왼쪽엔 여자 부원, 오른쪽엔 남자부원인 구도로 일렬로 다섯 명이다.
“이걸 이렇게 해서……
덕훈이가 컴퓨터마다 일일이 돌아 다니며 불법 버전의 링크를 공유하는 동안 나는 진희에게 전화를 걸어 봤다.
반에서 제각기 파묻힌 채 그리 존 재감을 뿜지 않는 우리에 비해, 항상 뒷자리에서 어마어마한 포스를 풍기던 진희.
동아리 활동 시간이 아닌, 밖에서 도 우리와 같이 놀아 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지만.
그래도 모이고 보니 괴담 동아리인 지금.
같이 놀기 무섭다고 혼자만 빼놓기 도 뭐하니 일단 권유는 해 볼 생각이다.
[이제 난~ 하루살이~ 하루하루♬ 내일도 잃어버린 채\애에/애에\ 어어우에
중고딩들의 영원한 대통령, 엠씨더 맥스의 컬러링이 지나가고 다소 툭 내뱉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어, 진희야. 통화 돼?”
[누구?]
“나, 준이. 동아리 부장.”
[아.]
순간 진희의 옆에서 누구냐고 묻는 어떤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친구. 잠시만…….]
친구!
진희는 나를 친구라고 생각해 주는 걸까
[어, 왜.]
“아, 그게… 우리 피시방에 전부 모여서 게임하고 있거든.”
[…….]
“혹시… 너도… 올래?”
떨리는 내 목소리.
[피시방?]
어이가 없다는 듯 툭 내뱉는 말투.
[뭐 하고 있다고?]
“어, 우리 여기서 마이크래프트 같이 할 거거든……
[뭐? 그게 뭔데.]
“막 집 짓고 노는 게임인데… 그, 레고 같은 거… 생각하면 이해가 빠른데……
[…….]
“막 탐험하고… 무기 만들어서 몬 스터 잡고, 블록 만들고……
[…….]
“날씨도 있고, 밤낮도 바뀌고……
말을 할수록 뭔가 점점 찐스러워 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짧은 치마와 패딩을 입고 매일 학교 뒷자리에서 엎드려 자고.
주말에는 오토바이 타고 돌아다니고, 담배 피고, 술 마시는 무서운 일진녀를 상대로.
동네 피시방에서 같이 마이크래프트 하자고 부르다니.
역시 에바였던 걸까.
“그... 여기 우리 다 같이 있어서, 그냥 혹시나 하고… 말해 본 건데… 생각 있으면-”
[갈 때 전화 줄게.]
“어! 어어, 그래! 고마워!”
뚜. 뚜.
용건이 끝나자 툭 하고 끊기는 전화.
“온대?”
“응. 온다는데.”
“의외네.”
경원이가 마우스를 만지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곧 설치가 완료되고 게임을 켜자 바탕화면에 창모드로 열리는 프로그 램.
“전체화면은 어떻게 해?”
“네놈은 컴퓨터에 익숙한 거 아니 냐고. 그 정도는 혼자 설정창에서 살펴봐.”
하윤이 역시 게임은 많이 안 해 봤는지 선아와 함께 가만히 손 놓고 있는 탓에, 덕훈이는 좌석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클릭해 주느라 바쁜 상태였다.
“여기 Fullscreen, 이게 전체화면이야?”
“오이, 그만 물어라. 나도 전에 인터넷 친구들과 몇 판 해 본 게 다다. 혼자 익혀 보도록.”
친구는 인터넷 친구가 있다는 걸 까.
화면을 조작하고 다시 메인으로 돌아오자 이름을 설정하라길래 ‘이준’이라고 적고 클릭했다.
[Hello, 이준.]
“좋아. 다들 접속했지? 서버 만든다.”
덕훈이가 다시 자신의 자리에 앉아 서는 유튜브의 서버 만드는 영상을 참고하며 이리저리 복잡한 커맨드를 입력해 간다.
빈칸이던 서버 목록에 곧 올라오는 로컬 서버.
[SEVER : 이준 : 빨무 초보만 - 1ST] [1/5]
“유명한 방제네.”
아는 모양인지 피식 웃는 경원이.
“아니, 왜 내 이름으로……
나는 뭐라 불평을 뱉었지만, 무슨 감성인지 이상한 제목으로 서버를 만든 덕훈이는 혼자 쿡쿡대며 만족 하는 모양이었다.
[SEVER : 이준 : 빨무 초보만] [2/5]
[SEVER : 이준 : 빨무 초보만] [3/5]
뒤에 숫자가 하나씩 늘어나는 걸 보니 옆에 있는 부원들은 벌써 접속 중인가 보다.
“좋아. 같이 해 보자고.”
나 역시 접속을 누르고.
[SEVER : 이준 : 빨무 초보만] [5/5]
[SEVER : 이준 : 빨무 초보만] [FULL]
[Loading .]
그렇게 중간고사가 끝난 주말.
동네 피시방에 모인 괴담 동아리는 컴퓨터게임을 시작했다.
[Select World]
로딩이 끝나고 서버에 접속하자 제일 처음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검은 화면.
가운데 [Select World]라는 글자만 떠 있다.
“기다려. 설정 중이야.”
호스트인 덕훈이가 이것저것 만지자, 곧 글자가 [Create New World]라고 바뀌더니, 월드네임으로 [이준-1]이 입력되었다.
[Create New World, 이준-1] “아니, 그러니깐 왜 내 이름으로……
“손나헤쯔.”
[Loading .]
곧 게임이 시작되었고, 어둡던 화면에 빛이 확 들어왔다.
육면체 큐브로 이루어진 도트로 가득한 세상.
여기저기 널린 물웅덩이와 풀숲이 펼쳐진 걸 보니 우리는 늪지에서 시작했나 보다.
“우와,라고 놀라기에는… 그래픽 이 좀 그렇네. 서든보다도 안 좋은 것 같은데.”
“일부러다, 부장. 아마 개발자들이 의도한 이 게임의 컨셉 같은데.”
직전에 즐기던 게임이 배틀그라운 드, 오버워치 같은 나름 그래픽이 좋은 게임들이다 보니, 살짝 실망은 했지만.
그래도 추억을 자극하는 컨셉이라면 나쁘지는 않았다.
“어디 보자, 움직이는 키는 W, A, S, D- 점프는 스페이스 바……
서든어택 같은 일반적인 FPS게임과 비슷한 구성.
“여기를 이렇게 클릭하면 타일이 부숴진다능. 자, 다 같이 따라해 보자고. 이렇게.”
“이렇게……
자신이 주도하는 흐름이라 그런 건 지, 왠지 모르게 열심히 하는 덕훈 이.
그런 덕훈이를 따라 선아가 심혈을 기울이는 표정으로 마우스를 클릭하며 설명을 따라 한다.
나는 이런 식의 1인칭 시점 게임에는 익숙했기 때문에 설명을 건너 뛴 채 혼자서 간단히 돌아다녀 보며 적응 중이다.
‘그래도 덕훈이를 빼면 여기서 가 장 게임을 많이 해 본 건 나일 테 니깐... 흠.’
휘이익-
쿵!
털썩.
“…어라.”
그렇게 내 캐릭터로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다가 구덩이에 뜬금없이 빠져 버렸다.
한참을 땅으로 떨어지더니, 절반 넘게 푹까지는 체력.
‘미친, 이런 곳에 구덩이가 왜 있어. 참나.’
슥 양옆을 둘러봤지만, 다들 조작 법을 배우느라 내 상황을 눈치채지 못한 분위기다.
‘그래도 내가 부장인데 뻘짓하면 위엄이 안 살지.’
재빨리 올라가서 아무 일 없었던 척해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벽을 부숴 계단을 만들려 해 보았지만.
맨손이라 그런지 벽을 부수는 속도 가 너무 느렸다.
“여기서 이렇게 마우스를 하면 되거든.”
“아하.”
결국 혼자서 한참을 헤매던 나는 바쁜 덕훈이를 불렀다.
“저기, 덕훈아…”
“나 이상한데 빠져 버렸는데….”
“오이. 부장.”
한숨을 푹 쉬고는 다가오는 덕훈 이.
“설명 안 듣고 돌아다니더니……
“… 이거 답이 없겠는데. 그냥 맵을 새로 만드는 게….”
“그, 그래…. 미안….”
[이준-2]
결국, 리방 했다.
월드를 재생성하자 자동으로 하나 올라가는 이름 옆의 숫자.
“이번에는 엄한데 빠지지 말고 가 만히 있으라고.”
다시 로딩이 끝나자 이번에는 물속에 빠져 있는 내 캐릭터가 보인다.
“좀 정상적인 곳에서 시작하면 안 되나.”
헤엄쳐 바닥 위로 올라서서 근처를 둘러봤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도트나무 숲.
내가 빠져 있던 곳은 자그마한 웅 덩이였다.
“좌표 찍어 줄 테니깐 다들 여기로 모여.”
그 말에 내 눈앞에서 다다다 뛰어 지나가는 어떤 남자 캐릭터.
‘경원이인가? 따라가자.’
좌표 보기가 귀찮아서 그 캐릭터를 따라갔고.
똑같이 생긴 남자 캐릭터가 모여서 폴짝이는 게 보였다.
덩치가 커다란 한 캐릭터를 빼고는 다 같은 생김새.
“덕훈이 것 빼고는 다 똑같은 캐릭 터네?”
“우리는 기본 스킨인가 봐.”
“누가 누구인지 구별이 안 가는 데.”
“가만히 시점을 고정하고 있으면 상대방의 이름이 뜬다능.”
곧 누군가 내 앞에 와서는 앉았다 일어섰다 계속 장난을 치는 게 보였다.
이름을 확인해 보려 했지만, 정신 사납게 폴짝대는 바람에 확인이 안 된다.
“누구야!”
퍽퍽 때려 보자 옆에 있는 선아가 킥킥거리며 웃는다.
“아파, 준아……
“선아구나. 이놈! 내 앞을 가로막 다니… 에잇, 에잇.”
“오이, 장난 그만하고. 곧 해가 지면 몬스터들이 쳐들어오니 빨리 집부터 만들어야 한다.”
집중하라는 듯 비벼 오는 덩치 큰 캐릭터.
“집부터 만든 후에 어떻게 괴담을 찾아 나설 건지 설명하겠다능.”
덕훈이의 제지에 우리는 장난을 그 만두고 녀석을 따라 집을 만들러 갔다.
“이걸 이렇게 해서, 이렇게…… 막상 집을 만드는 건 덕훈이 혼자였다.
다들 아직은 조작이 익숙하지 않은 지, 정신없이 점프하고 오도방을 떨 뿌
정신 사나운 캐릭터들 사이로 분주하게 일을 하는 건 덕훈이의 캐릭터 뿐이다.
‘… 저걸로 벽을 쌓는 건가?’
여기저기서 뭔가를 캐며 쌓아 올리는 걸 보니, 몬스터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벽을 세우는 모양이다.
“같이하자. 뭘 하면 되는지 가르쳐 줘, 덕훈아.”
“쿠움,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대… 일단 흙 파서 벽부터 다 만들자능. 밤이 되면 몬스터가 들어올 위험도 있어서, 일단 안전하게 얘기를 나눌 장소가 필요하다고.”
큐브 단위로 홁 타일이 쌓아 올라져 가는 게, 아무래도 집이라는 통 짜 아이템이 있는 게 아닌, 정말 현실에서처럼 벽을 쌓아 올려 건축을 해야 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대충 나에게 설명을 하고는 혼자서 다시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벽을 쌓아 올리는 덕훈이.
‘나라면 부원들에게 지시를 내릴 텐데.’
사람들을 이끌고 통솔해 보는 건 처음인지, 혼자서 다 하려는 모습.
하지만 현명한 리더는 혼자서 캐리 하는 게 아닌, 부하들의 능력을 끌 어내 같이 돕게 만드는 법이다.
“다들 이리 와. 우리도 도와주자.”
“ 영차.”
나는 정신없이 흙을 파는 덕훈이를 대신해 나머지 부원들을 통솔하기 시작했다.
“근처의 땅을 부수면 흙을 얻을 수 있어. 마우스 오른쪽 클릭하면 얻은 흙을 다시 쌓을 수 있거든. 지금 덕훈이가 하는 것처럼 이렇게 쌓아 올리면 돼.”
«응”
“오케이.”
드디어 여기저기로 흩어져 일하기 시작하는 부원들.
그중에 덕훈이가 애써 만든 벽을 열심히 부수고 있는 캐릭터가 있길래 누군가 해서 보니 선아였다.
“선아야, 그건 방금 우리가 만든 벽이야. 부수면 안 돼. 나 따라와.”
« 응«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