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동아리-71화 (71/130)

71화

열 번째 괴담 -

마이크래프트의 히로빈 (4)

“좋아. 대충 된 거 같은데.”

몬스터들이 침입하지 못하게 높은 벽을 완성시키고 나니 어느덧 밤이 돼 있었다.

게임 시간으로는 벌써 하루가 지난 것이다.

“ 어두워.”

“잠시만.”

덕훈이가 소지품에서 이것저것 꺼 내서 조합하더니 횃불을 밝혔다.

그걸 조명처럼 벽 여기저기에 걸어 두자 밝아지는 집 안.

그제야 할 일을 끝낸 덕훈이는 한 숨을 돌렸다.

“수고했어, 덕훈아.”

“고생했어.”

우리의 격려에 헛기침을 하는 녀석.

“그런데 말했다시피, 나도 몇 년 전에 인터넷 친구들과 몇 판쯤 해 본 게 다라서 이 다음은 잘 몰라.”

“그래도 일단 우리 중에서는 네가 제일 잘 아니깐 계속 지휘해 줄래?”

“흠흠, 그럴까.”

곧 옹기종기 모여서 덕훈이의 커다 란 캐릭터를 보는 우리들.

“피시방에서 계속 큰 소리로 말하기도 좀 그렇고, 다들 헤드셋 끼자. 지금부터는 마이크로 설명할게.”

“그래.”

곧 더듬거리며 헤드셋을 끼고 마이크를 조절하는 부원들.

“아, 아, 들려?”

“잘 들려.”

“다들 모여 봐.”

실제로는 바로 옆 좌석에 있어서 모일 필요도 없지만.

지금은 다 같이 게임에 접속한 상태이기 때문에 덕훈이의 지시에 따라 덕훈이의 캐릭터 주변으로 모였다.

“일단 게임을 즐기는 게 목적이 아 니라 괴담을 찾는 게 목적이다 보니, 인터넷으로 치트키 쓰는 법을 알아보는 중이거든.”

“오, 좋은 생각이야.”

“그런데 아까 안경이 말한 여러 괴담들, 찾아 나설 생각이면 치트를 쓴다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 만 알아 두라고.”

응 ”

나는 성실하게 마이크로 대답해 줬지만, 부원들은 어색한지 캐릭터를 앉았다 일어서거나 폴짝폴짝 뛰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좋아. 뭐부터 하는 게 좋겠어, 부 장?”

히로빈 괴담

지옥 괴담

세상의 끝 괴담

“흠.”

확실히 다시 살펴보니 덕훈이의 말처럼 하나같이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걸리는 것들뿐이다.

우선 1번, 게임 내에 존재하는 유령 NPC 히로빈.

말 그대로 유령.

어디서 나타나는지, 어떻게 찾는지, 실체가 있는지조차 불분명하니 드넓은 월드를 샅샅이 뒤져 보는 수밖에 없다.

괴담 속에선 괴상한 건축물을 짓고 다닌다든가 흔적들을 남긴다고 하지만, 우리들은 이 게임의 초심자인 입장.

뭐가 원래 있던 거고, 뭐가 새로 생긴 이상한 흔적인지 구별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렇게 하염없이 흔적을 쫓는 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 우선 패 스

반면에 2번, ‘지옥 괴담’이나 3번 ‘세상의 끝’ 같은 경우에는 확실한 장소와 방법이 정해져 있다.

“그거, 지옥이나 세상의 끝. 치트 써서 텔레포트로 날아가는 거 가능 해?”

“어디 보자… 일단 텔레포트 치트는 가능해.”

핸드폰을 읽으며 대답해 주는 덕훈 이.

“지금 있는 곳의 좌표와 가고 싶은 곳의 좌표. 두 개를 알면 쓸 수 있어.”

“흠, 그렇다면.”

지옥은 분명 특정 장소에서 버전을 옛날 버전으로 롤백해야 된다고 했던가.

안 그래도 어렵게 찾은 불법판인데 또 다른 버전을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일 테니, 역시 세상의 끝부터 먼저 가 보기로 결심했다.

“세상의 끝에 먼저 가 볼래.”

맵의 한계 지점, 끝 너머로 보이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괴담.

“오케이. 근데 경계선 너머로는 좌표 입력이 안 돼서 못 가고, 바로 앞까지 순간 이동은 가능하다능. 근데 거기까지 간다고 해도 투명한 벽으로 막혀 있어서 또 뭔가 방법을 찾아 돌고 도는 건 마찬가지인데, 문제없나?”

“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유령 NPC의 흔적을 쫓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아아, 부장이 그렇게 말한다면.”

슥 의자를 뒤로 젖히며 무게 잡는 녀석.

“다들. 「동의』하는 건가?”

“네놈들. 분명히 말해 두지만, 이 앞은 위험하다. 생사를 거는 싸움을 끝없이 이어 온 나조차 손에 땀이 날 지경이지. 겁이 나는 녀석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빠져라.’”

오그라들어서 대답하기 싫은지 앉았다 일어서는 거로 대신 응답하는 부원들.

“동의한다는 뜻이지?”

“다른 선택지도 없고. 찬성.”

“ 나두······

“찬성이야.”

“야레야레... 어쩔 수 없나. 그럼 계획을 이렇게 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덕훈이의 커다란 캐릭터가 게임 속 흙으로 만든 집 벽에다가 사각형을 하나 그린다.

“기본적으로 월드는 이렇게 정사각 형 모양. 지금 우리가 5명이니깐 동 서남북으로 한 명씩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동서남북이면 한 명이 남는데.”

“윤선아가 아직 조작이 서투니깐 다른 사람이랑 같이 가는 걸로.”

여자에 면역 없는 남자 고등학생답 게 이름을 부를 때 성까지 붙이는 덕훈이.

그 말에 지금껏 가만히 있던 하윤이가 슥 고개를 돌리더니 태연히 말 했다.

“나랑 가자. 여자끼리.”

대답 대신 가만히 있는 선아.

갑자기 굳어 버린 표정.

왠지 이상한 기류가 흐른다.

“인하윤이랑 갈 거냐능? 어쩔래?”

덕훈이의 물음에도 뭔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가만히 입을 닫고 있는 선아.

결국, 내가 헤드셋을 벗고 조용히 물어봤다.

“선아야, 왜 그래?”

“그냥……

우물쭈물 시선을 피하는 선아.

그런 우리를 무표정하게 보는 하윤 이.

이 둘은 짝꿍인 데다 같은 부원인 데 설마 아직까지도 안 친한 건가.

‘…그러고 보니 교실에서 자리가 붙어 있는 걸 빼면 같이 다니는 걸 본 적이 없네. 같이 얘기 나누는 것 도 못 봤고.’

표정이 굳어 있는 선아를 보며 하

윤이가 다시 물어봤다.

“싫어?”

굳은 표정의 선아.

동아리의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걸 감지하고 내가 급하게 나섰다.

“뭐, 할 수 없지. 나랑 가자, 선아야. 나도 바로 옆자리잖아.”

그제야 선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 인다.

하윤이는 그런 선아를 물끄러미 쳐 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휙 돌려 다시 자신의 모니터에 집중한다.

‘뭐지. 왜.’

소심한 성격인 건 알고 있었지만, 내 앞에서는 그럭저럭 밝은 모습을 보여 주었던 선아였기에 의외였다.

‘아무리 나랑 가고 싶다고 해도 방 금의 행동은 좀 아니었는데.’

바로 옆에서 친구가 같이하자고 말 하는데 그대로 쌩까 버리다니.

‘하윤이는 괜찮나?’

하윤이의 눈치를 슬쩍 봤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 연한 얼굴.

원체 보통 멘탈이 아니다 보니 신경 안 쓰는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방금의 행동은 친구 사이에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었다.

자존감이 낮아서? 대인 관계가 서 툴러서? 아님 뭐, 얀데레라서?

···그런 이유로는 납득할 수 없는 방금의 행동.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어.’

“좋아, 커맨드 입력한다. 내 캐릭터 앞에 차례로 서.”

맵의 끝까지는 걸어가려면 무려 800시간이 넘는 거리.

덕훈이가 텔레포트 치트를 준비한다.

“여기, 여기. 덕훈이의 사등신 뚱뚱한 캐릭터 앞에 우르르 줄을 서는 우리 네 명.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누구?”

“나다.”

“좋다, 좆경. 북으로 가서 김일성의 목을 따 와라.”

파앗-

“ 다음은?”

“나야.”

“도내 최고 미소녀, 인하윤. 서쪽으로 가라.”

파앗-

“부장이랑 윤선아. 가고 싶은 곳 있어?”

“···뭐, 아무 데나.”

“오이. 방금의 그 대답은 남자다웠다. 남쪽으로 가라.”

파앗-

“···그리고 나는 윳쿠리를 찾으러 동방으로.”

파앗-

덕훈이의 캐릭터까지 마지막으로 텔레포트를 완료하고, 괴담 동아리는 세상의 끝을 찾아 동서남북으로 흩어졌다.

맴- 맴_ 맴- 맴-

‘…이번에는 여름이 배경인가.’

매미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녹음이 우거진 숲.

초록색과 갈색이 뒤섞인 정육면체 타일의 큐브들이 이곳이 정글이란 걸 나타내고 있다.

“선아야? 어디 있어?”

“여기….”

내가 부르자 뒤에서 선아의 캐릭터가 사박사박 걸어왔다.

[Admin(오덕훈) :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서버의 주인인 덕훈이가 띄운 공지 메시지가 화면 상단에 떠올랐다.

[Admin(오덕훈) : 완전히 경계선에 보내 버리면 혹시 끼거나 튕길 위험도 있어서, 지금 보낸 곳들은 조금 떨어진 위치거든. 살펴봐야 하는 방향으로 쭉 걸어가 봐.]

[Admin(오덕훈) : 뭔가 발견한 사람은 알려 주기.]

“오케이.”

나는 남쪽 끝으로 떨어졌으니, 남쪽으로 걸어가면 되겠구나.

“어디 보자, 방향이……

나는 미니맵의 남쪽(South)이라는 뜻의 ‘S’를 확인하고는 선아와 함께 그 방향으로 쭉 걸어갔다.

맴- 맴- 맴- 맴-

고개를 올려다봐야 끝이 보이는 높이 솟은 나무들.

하늘을 가로막고 있는 울창한 나뭇잎들 사이로 햇살 몇 줄기가 비친다.

“이렇게 보니깐 그래픽 은근히 좋네.”

“응, 진짜 숲에 온 것 같아……

첫인상은 온통 육면체 큐브뿐이길래 몰랐는데, 의외로 타일을 제외한 햇빛이나 물, 그림자 같은 환경요소 들은 꽤 사실적으로 구현돼 있었다.

구세대의 감성과 현세대의 기술력 이 합쳐져 만들어진 광경.

‘아트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구나. 이런 조합으로도 멋있는 배경이 나오다니.’

나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고 말았다.

사박사박, 사박사박. 선아와 말없이 나뭇잎들을 밟으며 남쪽으로 이어진 길을 걷던 중.

우뚝-

“…어라.”

갑자기 어느 지점에서 멈춰 선 캐 릭터.

눈앞에는 분명히 끝없이 펼쳐진 정글 길이 보이는데, 투명한 벽으로 막혀 있는 듯 캐릭터는 움직이지 않았다.

“안 움직여.”

“나도……

앞으로 가는 방향키를 눌러 봐도 제자리걸음만 할 뿐, 그 너머로 가

지지 않는다.

선아도 길을 향해 나아가 보려 점프해 봤지만, 역시 나처럼 투명한 벽에 가로막혀서 갸웃대고만 있다.

“아무래도 여기인 것 같은데. 세상의 끝.”

« 응 ”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세계.

아무래도 우리는 그 남쪽 끝에 도 달한 모양이다.

[Admin(오덕훈) : 다들 도착했어?]

“응. 도착했어.”

“나도.”

[Admin(오덕훈) : 안 움직여지는 지점을 경계로 해서 쭉 타고 따라가 봐. 경계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 뭐 이상한 거 발견한 사람은 귓속말.]

“오케이.”

지금 우리가 마주한 투명한 벽, 세 상의 끝을 따라서 쭉 이동해 보라는 건가.

잘하면 어느 한구석에 프로그램상의 허점이 있어서 뚫고 갈 수 있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세상의 끝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관찰하며 이상한 게 없는지 찾아보자는 계획.

‘생각보다 대책 없네. 시간 많이 걸리겠는걸.’

그렇게 선아와 나는 하염없이 함께 숲을 걸어갔다.

“뭐 없지?”

“응, 똑같아……

아직까지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다.

그저 오솔길만 끊임없이 이어져 있고 양옆에는 나무들만 가득할 뿐.

“…해 지나?”

어느새 나뭇잎들 사이로 비쳐 오는 햇살의 색깔이 살짝 붉어진 게 보인다.

숲 바깥에서는 노을이 지고 있는 모양이다.

“산에서는 해가 빨리 진다는데. 그 래서 그런가.”

“숲인데……

“그, 그래.”

[Admin(오덕훈) : 곧 밤이야. 거미 랑 좀비 같은 몬스터들이 올지도 모르니 횃불 들고 다녀.] 횃불!

“좀비라니……

무서워하는 선아.

아까 덕훈이가 마구 설치하고 다니던 횃불 중 하나를 받아 올 걸 그 랬다.

“만드는 법 알아?”

“잠시만. 레시피를 봐야 알 것 같은데.”

나는 인벤토리 창을 열어 여러 아이템들의 제작법이 적혀 있는 레시 피를 읽었다.

“보자. 일단은 나무가 필요하다네.”

“에잇!”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무를 퍽 치는 선아.

그러자 갈색 나무 타일에서 아이템 같은 게 통 튕겨져 나왔다.

[나무 목재를 획득하였습니다.]

“좋아, 우선 이걸 가공해서……

그렇게 얻은 목재를 가공해서 다시 나무 곡괭이로 만든 후, 선아와 하나씩 나눠 가졌다.

“이 곡괭이로 석탄을 캐라는데.”

“석탄?”

“응. 석탄을 캐서 나무에 비비면 횃불이 만들어진대.”

“석탄을 어디서.”

“그러게.”

슬쩍 고개를 돌려 다른 부원들은 어떻게 밤을 준비하고 있나 살펴보았다.

덕훈이는 해가 지지 않는 사막 같은 곳을 헤매고 있었고, 경원이는 뗏목을 타고 바다를 가로지르는 중이라 횃불은 필요 없는 듯했다.

하윤이는 눈이 오는 설산의 동굴 속을 이동하는 중이었는데, 자연적으로 생성된 건지 벽에 매달려 있는 횃불이 여러 개 보인다.

‘다들 알아서 하고 있네. 우리는 숲인데 석탄을 어디서……

생존 요소 자체는 현실과 꽤 비슷하게 차용한 시스템.

일반 상식으로는 숲에서 석탄을 구 하는 건 어려운 일일 것이다.

‘흠, 덕훈이한테 또 치트 써 달라고 귀찮게 조르기도 뭐하고……

이미 충분히 귀찮게 한 마당.

“할 수 없지. 선아야, 우리는 일단 그냥 쭉 가자. 두 명이니깐 몬스터가 와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응.”

괴담 동아리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