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열 번째 괴담 -
마이크래프트의 히로빈 (5)
다시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어둑해진 저녁의 숲속.
“벌써 어두워졌네. 앞도 잘 안 보이고.”
이래서야 우리의 탐사 목적인 투명 한 벽, 경계선 너머가 보이지 않는다.
“영화에서 보면 나무랑 나무끼리 비벼서 불 피우던데.” 잠시 선아가 들고 있는 나뭇조각을 향해서 내 막대기를 열심히 비벼 봤지만, 별다른 상호작용은 없었다.
가만히 보고 있다가 문득 입을 여는 선아.
“준아, 저기 동굴 있어……
“어라.”
선아가 가르치는 방향을 보니, 저 멀리 나무 사이로 어깨높이까지 오는 언덕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무릎을 굽혀야 들어 갈 수 있을 법한 작은 동굴 하나.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보았던 작은 호빗 굴 같은 느낌이다.
“동물들이 사는 굴인가? 한번 들어 가 보자.”
쓸 만한 아이템이 있을지도.
“토끼다!”
우리가 다가오자 놀랐는지 동굴에 서 도트 모양의 토끼 한 마리가 튀 어나와 도망친다.
“와, 귀엽다……
선아가 만지려고 허리를 굽혀 봤지만, 놀란 토끼는 다리 사이를 홱 지 나쳐서 도망가 버린다.
그대로 투명한 벽 너머로 깡총깡총 뛰어가는 토끼.
“뭐야, 몹들은 지나다닐 수 있나 보네.”
그러고 보니 경계선에 걸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도 있었다.
저 세상 끝의 벽은 우리 플레이어 들한테만 막혀 있는 걸까.
나는 이내 허리를 숙이고 토끼가 도망 나온 굴 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뭐 보여, 준아?”
“좁아서 잘 안 보이는데. 숙여서 들어가 봐야겠어. 망 좀 봐 줄래?”
우으 ”
“응.”
말이 끝나자마자 커다란 거미 한 마리가 슬금슬금 다가왔고, 선아가 휙 던진 돌멩이에 움찔하며 뒷걸음 질 쳤다.
“ 영차.”
굴 내부는 좁고 별다른 건 없었지만, 벽이 돌로 돼 있는 느낌.
혹시나 싶어 쳐 봤더니 갑자기 석 탄 아이템이 통 튀어나왔다.
[석탄을 획득하였습니다.]
‘여기서 드랍된다고?’
역시 게임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불을 지피는 재료다 보니, 현실과 적당히 타협해 놓은 걸까. 다른 요소들은 극단적이다 싶을 정도로 현실 지향적이지만 석탄만큼은 대충 돌을 캐면 얻을 수 있는 식으로 타협을 했나 보다.
“좋아. 불!”
화르륵-
석탄을 나무막대기에 결합시키고 대충 비비자 확 피어오르는 불.
저 멀리서 다시 슬금슬금 오던 거 미가 불을 보더니 사사삭 도망쳤다.
“자, 여기. 하나씩 가지자.”
“응!”
횃불을 만들어서 선아에게 하나, 나에게 하나 장착한 뒤 다시 숲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시간이 꽤 된 것 같은데.”
“할머니가 걱정하시겠어……
보름달이 떠 있는 그야말로 한밤 중.
이렇게 늦게까지 밖을 돌아다니는 건 학생인 나에게는 꽤 낯선 일이었다.
그래도 목적을 가지고 나선 거니, 일단 최대한 갈 수 있는 데까지는 가 볼 생각이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아, 해 뜬다.” 다행히 조금 뒤 숲의 분위기가 다시 푸르스름해지는 게, 새벽이 온 것 같았다.
역시 현실보다 훨씬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모양.
[Admin(오덕훈) : 뭐 발견한 사람?]
“아직 없어.”
보이는 건 여전히 끝없는 나무와 이어지는 흙길뿐이다.
‘대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 거야.’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가득한 숲 속
나는 이 나무 위로 올라가 숲이 어디까지 이어진 건지 한번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아야, 올라갈 수 있는 계단 같은 거 설치해서 대충 얼마나 걸어야 하는 건지 한번 둘러보기라도 하자.”
“준아, 여기. 이 나무에 계단 두르자……
곧 열심히 흙을 캐며 계단을 쌓아 올리는 우리.
“ 영차.”
완성된 계단을 하나씩 타고 올라 다음 계단을 공중에서 짓는, 그야말로 게임에서만 할 수 있는 계단 쌓기 방식을 통해 나무의 끝까지 타고 올랐다.
그리고 무성한 나뭇잎과 가지를 쳐 내고 그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흐읍~ 후우.”
그제야 마셔 보는 숲 바깥의 신선 한 공기.
도시에서만 지내다 보니 오랜만에 맡아 보는 숲 내음도 좋기는 했지만, 그것도 너무 오래되자 머리가 띵해져 오던 차다.
“어디 보자. 얼마쯤 남았나.” 아침 노을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나무숲.
다행히 얼마 안 가 숲이 끝나고 잔디가 가득한 평야가 펼쳐지는 게 보인다.
“우와, 경치 좋다.”
“나도 볼래……
뒤에서 따라 계단을 올라온 선아가 고개를 기웃거리길래, 옆에 발 디딜 판자를 하나 설치해서 같이 나뭇잎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황금빛 숲과 저 멀리 끝없이 펼쳐진 초원의 지평선.
국토의 70퍼센트가 산, 그중에서도 건물 숲에서 살아온 우리 서울 아이 들에게 지평선이란 건 난생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우와.”
“진짜 좋다. 그치?”
“응 ”
그렇게 멍하니 경치를 구경하던 우리.
나는 지평선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아까 하윤이한테 왜 그랬어?”
순간 움찔하더니, 약간 피곤한 표정을 짓는 선아.
“부담스러워서……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잣집 귀한 아가씨 하윤이와 흙수 저 동네 불쌍한 여학생 윤선아.
나는 어떤 말로 그녀를 위로해 줘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지평선을 바라 보며 함께 바람을 쐬다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조금만 더 힘내자, 선아야.”
그 말에 볼을 부풀리며 힘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선아.
“응…… 조금만 더 속도를 내면 이 정글
숲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곧 계단에서 내려온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고, 빽빽이 차 있던 나무 들이 어느새 듬성듬성 떨어져 있는 곳에 돌입했다.
하늘을 가리던 나무숲이 곧 끝나는 지, 저 멀리 길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찬란한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달려, 선아야! 곧 끝나!”
“헥, 헥!”
괜히 우다다 달려가 보는 우리.
양옆으로 나무들의 배경이 휙휙 지 나쳐 간다.
“헉, 헉.”
“헥, 헥.”
“흐읍-!”
타닥-
드디어 보이는 탁 트인 평야.
끝없이 펼쳐진 목초지가 보인다.
“후아!”
뒤이어 따라 나온 선아도 이마의 땀방울을 닦는다.
“어디 보자, 경계선이 어디였더라.”
탁 트인 초원으로 나온 우리.
목적을 잃지 않기 위해 다시 남쪽으로 몇 걸음 걸어 봤다.
곧 나타나는 투명한 벽, 나는 그 경계선의 잔디 위에 걸쳐앉았다.
“후우, 여기서 좀 쉬었다 가자. 힘 들다.”
“응.”
선아도 숲에서의 행군이 힘들었는 지 이내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배고프다.”
“그러게.”
숲을 지나던 도중 습득 가능한 버섯을 발견해서 챙겨 왔었는데, 혹시 몰라 한번 꺼내 보았다.
“이거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버섯을 멍하니 보는 선아.
나는 손에 든 버섯 몇 개를 땅에 놔두고 횃불을 이용해 구워 봤다.
“어어, X발.”
잔디에 붙은 불.
불이 퍼져 가려던 찰나, 급하게 발로 꺼서 제지한 뒤 다시 버섯을 굽기 시작했다.
곧 솔솔 올라오는 맛있는 냄새.
“맛있겠다……
나 역시 침을 삼킬 정도로 군침이 돌았지만, 선아에게 먼저 하나를 건 네줬다.
“먹어 봐, 선아야.”
“응”
·
냠냠, 쩝쩝.
[선불 시간 5분 남았습니다.]
어라.
버섯을 허겁지겁 먹고 있는 선아를 보다가 잠시 갸우뚱하는 기분을 느꼈다.
[선불 시간 5분 남았습니다.]
다시 한번 들려오는 여성의 안내 음성.
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허기는 게임 속 수치.
버섯을 먹고 있는 건 게임 속 선아의 캐릭터.
문득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
나는 헤드셋을 벗었다.
그러자 눈앞에 들어오는 모니터 속 게임 화면.
사등신 단발머리 여자 캐릭터 선아가 우물우물 버섯을 먹는 시늉을 하고 있다.
서서히 귓가에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피시방의 소음.
“아~ 병신이냐고~”
[엔타로 아둔. 마이 라잎 포 아이어.]
“신라면 시키신 분?”
“여기 저희요!”
[하프. 하프. 하프. 콜. 콜. 다이.]
컵라면을 나르는 알바생. 보이스 채팅을 하는 삼촌들.
무심하게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아 저씨들.
슥 옆을 쳐다봤다.
버섯을 먹고 있는 게임 속 자신의 캐릭터를 멍하니 보고 있는 선아.
“선아야?”
“선아야, 선아야.”
어깨를 툭툭 치니 그제야 눈에 초점이 돌아오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준아...?”
“응. 괜찮아?”
멍하니 있더니, 곧 정신을 차린 듯 머리를 터는 선아.
“응… 너무 집중하고 있었나 봐… 왜?”
“선불 시간이 다 됐다고 떠서. 충 전 좀 하고 오려고.”
“응, 다녀와……
자리에 일어서서 다른 부원들도 한 번 살펴봤다.
각자 세상의 끝을 따라서 여행하는 데 열중하는 모습.
나 역시 머리를 털고 의자를 집어 넣었다.
“가는 김에 선아 네 자리도 충전해 올게. 잠시 기다려 줄래?”
“응, 그래……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배고프면 현실에서 음식을 먹어야 지, 게임에서 먹으면 해결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니.
카운터로 향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런 타입의 괴담이구나. 골치 아프겠는데.’
진희를 뒤늦게 부른 건 옳은 선택 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내린 땀을 닦던 선아의 모습.
도트 그래픽의 사등신 캐릭터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제스처였지만.
나는 멀쩡한 현실 속 선아의 모습 이 땀을 닦는 걸로 인식했다.
시간이 늦었으니 할머니가 걱정하실 거라는 말도 게임 속 시간이 기준이었다.
숲속에서만 다니다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 신선한 공기를 마셨다는 착각.
배가 고파지자 게임 속 음식을 먹으면 되겠다는 혼란.
그때 맡았던 맛있는 냄새.
느껴지던 횃불의 온기.
“후우.”
선불로 시간을 다시 충전하면서 깊은 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게임과 현실 이 중첩된 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어디 보자... 이걸 이렇게 하면, 가능할지도……
좋은 생각이 떠오른 나는 부원들을 불러모으기 위해 자리로 돌아갔다.
“얘들아, 얘들아.”
게임에 푹 빠져 불러도 반응이 없는 녀석들.
나를 기다리고 있던 선아만 내 쪽으로 돌아봤다.
“덕훈아, 일어나. 어서.”
“쿠움?”
멍하니 헤드셋을 쓴 채 캐릭터를 조작하던 덕훈이.
옆구리를 퍽퍽 치자 거북목 자세를 하고 있다가 그제야 허리를 핀다.
“경원아, 경원아.”
한참 뗏목으로 바다에서 낚시를 하던 경원이.
내가 흔들자 마구 짜증을 낸다.
“나도 비교해 보고 여기서 고기 잡고 있는 거다! 단위가 틀려서 이게 졸업 후 취업하는 것보다 더 돈 많 이 벌 수 있다니깐!”
“개소리 말고 일어나.”
직업은 게임 직업이 있다는 걸까.
“하윤아? 인하윤.”
하윤이는 눈 오는 산속을 멍하니 헤집고 다니다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추워·…”
“하윤아, 정신 차려.”
“···응?”
가녀린 어깨를 흔들자 그제야 고개를 들더니, 잠시 가만히 있는 그녀.
“가서 세수 한번 하고 오자. 다들 일어서.”
우리는 털레털레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잠시 후.
세수를 하고 나오는 부원들도 있고, 아직 정신이 멍한지 고개를 흔 드는 부원들도 있다.
“어떻게 된 거지? 너무 몰입하고 있었나……
경원이가 팔을 스트레칭하며 중얼 거렸다.
“뗏목을 너무 저어서 팔이 아플 지 경이야.”
착각이다.
키보드의 버튼을 누르고 있었을 뿐 이니깐.
“어, 시원하다!”
사막에서 헤맨 탓인지 생수를 사서 벌컥벌컥 마시며 오는 덕훈이.
마침내 우리 5명은 화장실 앞에서 둥글게 모여 섰다.
“부장, 뭔가 짚이는 거라도 있는 거야?”
물론 짚이는 게 있지만 지금 말해 줘서는 안 된다.
아직 눈치채지 못한 부원들에게 몰입을 방해할 수도 있으니깐.
“일단 몇 가지 시도해 볼 게 있는 데, 따라와 줄래?”
“뭔데?”
“집을 지을 생각이거든.”
“집?”
갸웃거리는 부원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세상의 끝 너머로 가는 방법. 찾아냈어.”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