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화
열 번째 괴담 -
마이크래프트의 히로빈 (6)
잠시 후, 다시 각자의 피시방 컴퓨터 좌석에 모여 앉은 우리.
나는 혹시나 우리가 핸드폰을 못 볼 경우를 대비하여 진희에게 피시 방 장소와 내 좌석의 위치를 미리 카톡으로 보내 놨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부원들에게 지켜야 할 규칙에 대해 점검하는 나.
“헤드셋 벗는 거 금지. 무조건 마이크나 채팅으로만 말해야 해. 화장실 가는 것도 한 시간 정도만 참아 줘. 앞으로 한 시간 정도 완전히 집 중해야만 성공하는 방법이거든.”
“흠… 뭐, 알겠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일단 따라 오는 부원들.
“좋아, 덕훈아. 치트키로 내가 있는 동쪽으로 부원들 다 이동시켜 줘.”
“오케이. 다들 좌표 부르고 그 위 치에서 움직이지 말고 서 있어. 타 일을 맞바꾸는 개념이니깐.”
[Admin(오덕훈) : /tp 12550820 140 0]
곧 덕훈이가 부원들에게서 받은 좌 표와 이동할 장소가 적힌 복잡한 숫 자들을 입력한다.
파밧- 파밧-
눈앞의 잔디 타일들이 녀석들이 있던 공간과 뒤바뀐 건지, 차례대로 모래, 눈, 바닷물이 뒤엉켜 허공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나와 선아가 있는 동쪽으로 텔레포트 된 부원들.
“하나, 둘, 셋, 넷. 나까지 다섯. 좋아, 다 모였네.”
끝없이 펼쳐져 있는 남쪽의 끝, 초원의 지평선.
그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부원 들.
덕훈이가 주위를 둘러보다가, 우리 앞의 잔디가 탄 흔적을 보더니 말했다.
“버섯 구워 먹고 있었네? 숲에서 열매를 따 먹지.”
“열매도 먹을 수 있구나.”
정말 별의별 게 다 가능하네.
나는 천천히 녀석들을 둘러보며 말 했다.
“지금부터는 내가 지휘해도 될까?”
“마음대로. 원래 부장이잖냐능.”
“고마워.”
아직 미숙하기는 해도 슬슬 조작법이라든가 게임 방식은 다 익혀 가는 상태.
나는 잠시 덕훈이에게 맡겨 놓았던 지휘권을 다시 되찾았다.
“그래서? 그 방법이란 게 뭐야?”
투명한 벽을 만지며 묻는 경원이.
역시 못 가게 막혀 있다.
“경계선에 집을 만드는 거야. 다 같이.”
“집?”
의아한 표정을 짓는 부원들.
“응, 집. 대신 제일 처음 덕훈이가 만든 벽으로 울타리만 친 그런 집 말고, 제대로 꾸며 놓은 2층 벽돌 집.”
“흠 ”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부원들.
“대신 출입문이 월드맵의 경계선에 딱 붙어 있어야 해. 그러니깐, 집 안에서 문을 열면 바로 투명한 벽 너머로 열릴 수 있게.” “···그런 걸로 된다고?”
경원이가 의문스러운 말투로 물어 보며 게임에 대해 제일 잘 알고 있는 덕훈이를 쳐다봤다.
하지만 녀석 역시 어깨를 으쓱하며 모르겠다는 표정.
“미리 해 본 나도 모르는 걸 오늘 처음 플레이한 부장이 발견한 건가. 방심할 수 없는 남자군.”
“확실한 거야? 그 방법?”
갸우뚱하며 묻는 녀석들에게 일단 해 보기나 하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분명히 될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 깐 빨리 작업 준비 시작하자.”
“알겠어. 그런데 이유는 둘째치고, 출입문을 거기다 만들면 완성된 집 안에는 어떻게 들어가?”
“창문으로 들어가든가 해야지. 아 니면 안에서부터 벽돌을 쌓아 올리 든가.”
“뭐, 그러면 문제없긴 하지만……
궁금함이 가득한 얼굴들이다.
하지만 이 이상 설명하는 건 몰입에 독이 될 터.
“일단은 같이 만들어 보자. 설명은 집이 완성되고 나서 해 줄게.”
“좋아.”
결국 어깨를 으쓱하는 경원이.
“부장이 하는 거니깐 생각이 다 있는 거라고 여길게. 시작하자.”
이윽고, 우리는 천천히 경계선을 둘러보며 설계도를 짰다.
“아까 말했듯이, 대충 흙으로 울타 리를 쳐서 영역 표시만 해 놓는 그런 집은 안 돼. 좋은 재료를 써서 여기저기 가꾸어 놓은 정성 들인 집 이어야 해.”
내 요청에 덕훈이가 유튜브에서 BJ들의 건축물들을 검색하며 집의 견 적을 잡는다.
“부장이 원하는 그런 집이면 시간 좀 걸리겠는걸. 다섯 명이라 해도 벽돌도 구워야 되고, 재료 공수도 해야 하고 꽤 일이 많거든. 시간은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어?”
“ 으음
지금 현실의 시간은 오후 4시를 조금 넘었다.
그래도 저녁 먹을 때쯤에는 애들을 돌려보내야 하니깐.
5시까지 집을 만들어서 세상의 끝을 넘으면, 저녁까지 두 시간 정도는 탐사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한 시간 정도 투자할 수 있되, 무식하게 넓은 게 아니고 좀 오밀조밀하게 세련된 집. 울타리도 있고, 2 층도 있고, 가구도 좀 집어넣어서 인테리어도 한 상태로.”
“흐음, 한 시간에 오밀조밀……
창모드로 인터넷의 여러 청사진을 살펴보던 덕훈이가 캐릭터를 움직여 땅 몇 군데에 말뚝을 박아 표시를 했다.
“한 시간 투자면 여기부터 저기까지. 딱 이 정도 크기의 집이 좋을 듯 ”
“좋아. 바로 준비해 보자. 벽돌부터 잔뜩 만들어 놔야겠네.”
“흠, 벽돌 같은 경우에는……
덕훈이와 인벤토리 창의 제작법을 함께 살펴보니, 벽돌은 점토를 구워야 나오는 아이템이었다.
“점토를 구워야 나온다고. 그럼 점토는 어디서 구해?”
“물가로 가야 하는데.”
“물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지금 우리가 있는 위치는 거대한 목초지가 펼쳐져 있는 평야.
근처에 물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치트로 만들면 안 되냐능?”
“이제부터 치트는 안 돼.”
강하게 못 박는 나.
“철저하게 원래 게임의 방식대로
집을 건축해 보자.”
“훔, 알겠어.”
다 같이 모여서 앉았다 일어서는 걸로 ‘데덴띠’를 하다 보니 점토를 구하러 나서는 건 덕훈이와 하윤이가 당첨되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으러 가는 기분인데.”
“사막은 아니잖아. 조금 둘러보면 금방 나올 거야.”
“쳇. 올 때까지 확실히 준비해 놓으라고.”
아까 혼자 사막 쪽을 여행하며 이 것저것 모아 놓은 게 있었는지, 광석들을 갈아서 무기를 뚝딱 만드는 덕훈이.
하윤이에게 석궁을 건네주고 자기는 도끼 하나를 옆구리에 찼다.
“조심해서 갔다 와. 치트 안 쓰기로 약속.”
“알겠다고.”
궁시렁대며 떠나는 덕훈이와 가만히 석궁을 든 채 뒤따라가는 하윤 이.
“좋아. 녀석들이 점토를 가득 모아 서 돌아올 때까지 우리도 준비해야 할 게 많아. 서두르자.”
깡_ 깡_ 깡_
선아가 열심히 곡괭이로 땅을 파고, 그 근처에서 경원이가 암석을 내려친다.
집을 만들려면 이것저것 재료들이 많이 필요한데, 이 근처에는 풀만 있다 보니 일부러 땅을 파헤쳐 가며 여러 광물을 획득하는 중이다.
“영차, 영차.”
“좋아. 이게 화로를 만드는 데 쓰이는 조약돌이구나.”
내가 원하는 건 벽돌로 꾸며진 예 쁜 집.
물론, 예쁘게 짓든지 대충 짓든지 기능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지만, 이렇게까지 공들이는 이유는 부원들이 좀 더 집중하게 하기 위해서다.
“준아!”
부르는 소리가 들려 구덩이를 내려 다보니, 저 밑에서 선아가 폴짝대며 점프하고 있었다.
“여기서는 더 못 파! 진흙 늪이 계 속 나와.”
“수고했어. 올라와, 이제.”
“꺼내 줘……
암석을 파느라 너무 깊게 구덩이를 만들어 내려갔나 보다.
“경원아, 선아 올라오게 계단 좀 만들어 줘.”
“맡겨 둬.”
근처에서 암석을 캐던 경원이가 홁을 모아들고는 선아가 있는 구덩이로 점프해서 내려간다.
철퍽-
“윽, 진흙.”
“조심해.”
아무래도 이 밑의 지반은 상당히 습도가 높은지 진흙으로 이루어져 있는 모양.
곧 경원이가 실시간으로 흙을 쌓아 올라 계단을 타고 올랐다.
“헥, 헥.”
아직도 게임에 익숙하지 않아 보이는 선아와는 다르게, 기본 머리가 있어서인지 경원이는 벌써 적응한 모습이다.
그동안 나는 게임 내에서 제작법을 펼쳐 열심히 청사진을 짜는 중.
“부장, 여기 땅 파서 모은 조약돌.”
“좋아. 이제부터 그걸로 점토를 구 울 화로를 만들자.”
덕훈이랑 하윤이가 물가에서 구해 올 점토.
제작법을 보니 그 점토를 화로에 넣고 구우면 벽돌이 나온다고 한다.
“여기에 이렇게 조약돌을 두고 합 치면……
인벤토리를 열어 레시피대로 재료 들을 놓아두자 캐릭터가 뭔가를 뚝 딱거리더니, 곧 펑, 하고 화로가 하나 나타났다.
생긴 건 판타지 게임의 대장간에서 보던 화덕 같은 느낌.
손에 들고 있던 횃불을 하나 붙여 보자 화르르 타오른다.
“오이이- 부자앙-”
그렇게 집터를 닦으며 열심히 준비 하고 있자 저 멀리서 덕훈이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레 같은 걸 만들어서는 하윤이와 함께 낑낑대며 점토를 한가득 싣고 오는 녀석.
우리는 도구를 내팽개치고 우르르 마중 나갔다.
“영차, 영차.”
다 같이 협력해서 수레를 밀어 집 터까지 가져온 우리.
순간.
띠리리리~ ♬
“어라, 전화 왔다.” 게임에 몰입해 있던 경원이가 흠칫 하더니 주머니를 뒤져서 핸드폰을 꺼냈다.
“네, 엄마. 조금 늦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네… 그냥 친구랑 좀··…
역시 집이 엄한 듯 움츠러든 상태로 전화를 받는 녀석.
나도 슬쩍 폰을 열어 카톡을 확인 해 보니, 진희에게서 ‘ㅇㅇ’하고 단답이 와 있었다.
그리고 경원이가 전화를 끊는 것과 동시에 나는 부원들에게 주의를 줬다.
“지금부터는 다들 휴대폰도 무음으로 해 줄래? 중요한 일 아니면 게임에 집중하자. 곧 뭔가 일어날 것 같으니깐.”
“그래.”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휴대폰 전원을 끄는 부원들.
게임에 몰입이 방해되는 요소들은 최대한 배제해 놔야 한다.
“후욱, 후욱.” 다시 게임 속. 덕훈이가 화로에서 구운 벽돌큐브 한 아름을 손에 들고 옮긴다.
어느새 생김새도 사등신 캐릭터의 모습이 아닌, 완전히 현실 속 자기 모습으로 변해 버린 부원들.
“좋아. 여기 내려놓으면 돼.”
“흐읍!”
기합 소리를 내며 덕훈이가 땅에 벽돌을 쏟아붓는다.
“수고했어. 물 마셔 가면서 하자.”
“땡큐. 후우.”
양동이에 담아 놓은 게임 속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덕훈이.
이내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고는 좀 쉴 모양인지, 간단히 기초공 사만 해 놓은 집 벽에 풀썩 기대앉았다.
“부장, 근데 말야. 예전에 말한 그 인디 게임 말인데.”
“인디 게임?”
“어. 전에 나한테 포인트 어디 쓸 지 모르겠다고 조언 구한 거.”
“아아, 그거.”
한 달 전쯤, A급 괴담 원한 씌인 노래를 해결하고 왕창 포인트를 벌었을 때.
그걸 다 어디 쓸지 고민이 돼서 요새 하는 게임이 있는 척, 이 녀석
한테 상담을 받았던 게 기억난다.
“그거 역시 지금 처해 있는 그 괴담 시스템을 돌려 말한 거 맞지?”
“맞아. 그때 그건 돌려 말했던 거야. 상황을 다 얘기할 수 없었으니 깐.”
“흠, 역시.”
땀을 식히며 뭔가를 생각하는 덕훈 이.
시원한 바람이 지평선 너머에서 불 어온다.
“왜? 뭐 걸리는 거라도 있어?”
“조금.”
“뭔데?”
“보자… 내 기억으로는 그때 부장 이 처한 상황을 RPG 게임에 대입 해서 설명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맞는지……
“응. 그랬었어.”
그때 막 몬스터니, 경험치니, 하는 단어를 이 녀석이 사용했었다.
“그런데 지금 전후 사정을 알고 나 니, RPG라고 하기에는 부장이 강해 지는 방식이 좀 마음에 걸려서.”
“내가 강해지는 방식?”
“음, 이걸 뭐 어떻게 말해 줘 야…… 가만히 턱살을 괴는 녀석. “RPG에서 중요한 건 결국 성장 요소. 그런데 부장은 강해진다고 해 봤자 특수 능력 세 개 얻는 게 다 잖아.”
“···뭐, 그렇긴 하지.”
“주인공의 성장 요소가 너무 제한 적이라는 점. 그게 마음에 걸린다고.”
흠, 그러고 보니 그렇다.
사실 마왕이라는 이름에서 일반적인 판타지 게임을 대입하려다 보니 대척점에 서 있는 나를 용사, 주인 공이라고 봐 왔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들어맞지 않는 부분도 꽤 많았다.
실제로 내 성향이 그런 영웅적인 부류가 아닌 건 둘째치고.
나 자신에 대한 레벨업이라든가 스탯이라든가 성장시킬 수 있는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포인트를 써서 강해진 거라고 해 봤자 독순술과 이상한 행운 능력 하나를 지닌 게 전부.
이걸 최종 보스 마왕을 무찌르기 위해 모험을 나선 용사의 성장기라고 볼 수 있을까?
“RPG로 보기에는 한계치가 너무 명확한데. 뭔가 다른 게…… 어느새 땀은 다 식었지만 여전히 생각에 잠겨 있는 녀석.
“체력, 마나, 힘, 지능, 민첩… 그런 요소들도 없고, 능력들 마저도 이상한 기믹들뿐. 물리적인 공격이라고는 전무하고……
“흠.”
확실히 그렇다.
RPG로 보기에는 나 스스로에 대한 성장의 한계치가 너무 명확하다.
입학식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시스템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살펴보면, 특수 능력 독순술과 인생설계를 얻은 게 다다.
“특수 능력 칸은 총 세 개인데 지금은 두 개 차 있어. 확실히 이것 말고는 나 개인에 대한 시스템적 성장은 전혀 없었던 것 같아.”
“소데스네……
저 멀리서 선아가 부지깽이를 쑤시며 벽돌을 굽다 말고, 화덕의 열기에 땀을 훔친다.
그대로 눌러앉은 우리 둘 쪽을 슬 쩍 흘겨보지만, 개의치 않고 탐구를 계속하는 덕훈이와 나.
“벌써 두 개가 차 있다… 그 말인 즉슨, 앞으로 스킬 하나를 더 얻으면 거기가 부장의 성장 한계치 끝이 란 소리……
“그렇겠네.”
아마 능력을 더 얻더라도 칸이 3 개인 걸로 보/과, 장비 개념으로 바꿔서 들고 다닐 수 있을 뿐.
능력 3개를 지닐 수 있는 게 내 성장의 한계다.
아이템도, 능력치도, 업적도 나 개 인에게 적용될 수 있는 건 뭣도 없다.
능력 3개.
그게 이준이라는 용사 개인이 강해 질 수 있는 한계다.
“어째서… 흐음.”
시선을 바닥에 두며 곰곰이 생각하는 녀석.
마음에 걸리는 게 많은지 턱살을 씰룩이며 집중하는 모습이다.
나 역시 대답을 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나머지 부원들이 열심히 집을 짓는 동안 가만히 덕훈 이를 기다려본다.
“···어쩌면 말야, 부장.”
한참 후, 갸우뚱하면서도 나름의 정리가 되었는지 천천히 입을 여는 덕훈이.
“장르를 완전히 착각하고 있었을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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