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화
열 번째 괴담 -
마이크래프트의 히로빈 (10)
타닥- 타닥-
장작불 타는 소리만 들려오는 거실 안.
도끼를 쥔 채 선두에서 대기하는 나, 바로 뒤에서 석궁으로 출입문을 겨누는 하윤이.
그리고 뒤에서 각자 둔기를 꽉 쥔 채 숨죽인 부원들.
긴장 속에서 몇 분이 흐르고, 결국 경원이가 살금살금 내 뒤로 오더니 귓속말로 물었다.
“왜 안 들어오는 거지?”
“몰라. 잠시만.”
다시 몇 분을 대기하던 우리.
하지만 방금까지 떠들썩하게 들려 오던 인기척조차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들리는 건 타오르는 장작불 소리 뿌 결국, 나는 조심히 문을 향해 한 발자국 내밀었다.
“내가 나가 볼게. 엄호해 줘.”
“조심해.”
마룻바닥이 삐걱이지 않도록 극도로 주의를 기울여 살금살금 나무문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천천히 손잡이를 쥔 채 문을 밀어서 열었다.
주의를 기울인 탓에 다행히도 소리 없이 열리는 나무문.
“ 없어.”
밖에 보이는 것은 평야, 그리고 우리가 처음 이 집을 발견했던 풀이 덮인 작은 언덕뿐.
어느새 해가 지려는 건지 하늘은 조금 어두워져 있었고, 목초지는 여전히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아무도 없다고? 하지만 방금까지 인기척이……
식은땀을 흘리며 중얼거리는 경원이.
나는 나와서 봐 보라는 뜻으로 고갯짓을 했다.
곧 하윤이가 석궁을 겨냥한 채 나에게 걸어왔고.
“보자……
나 역시 침음을 흘리며 문밖으로 나서 봤다.
역시 아무도 없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뭐라 말하려던 순간.
열려 있는 나무문 바로 뒤에 몸을 찰싹 달라 붙인 채 일렬로 숨어 있던 괴담 동아리의 다섯 부원과 마주 쳤다.
눈을 부릅뜬 채 나를 보는 다섯 명.
이내 석궁을 들고 현관을 걸어 나오던 하윤이가 내 시선을 눈치채고는, 한걸음에 달려 나와 몸을 비틀고 문 뒤를 향해 시위를 겨눴다.
철컥-
“우리야우리가또오고있어”
“부장어떡하지출입문으로들이닥치기전에창문유리로목찔러서자살할까”
“아니아까말했듯이여기근처에는평야뿐이야숨을곳은없어금방들통날테고인육으로먹힐뿐이야”
“왜안들어오는거지”
“몰라잠시만내가나가볼게엄호해줘”
눈을 부릅뜬 채 억양 없이 빠르게 중얼거리는 놈들.
하윤이가 이를 꽉 깨물더니, 겨누고 있던 석궁을 발사했다.
투캉“‘!
퍼억-
눈을 부릅뜨고 있던 또 다른 인하윤의 목에 꽂히는 화살.
하지만 미동도 없다.
“부장! 무슨 일인데!”
거실 안에서 심상치 않은 낌새를 눈치챈 부원들이 큰 소리로 물으며 걸어 나온다.
“선아야내려가서애들이랑수색하라니깐왜귀찮게지랄이야하윤이는여기서 석궁으로윤선아대가리에화살좀쏴야한다니깐”
“그게하하윤아너도내려가서같이찾자여기서준이한테여우짓하지말고”
“상황분간좀해쓸데없이질투하지말고괜찮아가짜야진짜선아는거지년이라피시방낼돈도없는걸”
나 역시 서둘러 도끼를 치켜들며 자세를 취했다.
동시에 하윤이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다시 옆구리에서 화살을 꺼내려던 순간, 가짜 안경원이 턱을 쩌억 벌렸다.
“반드시생각해내부장살아서나가는방법을네가책임져우리죽을때까지이용해먹고자기좋을대로부려먹고괴담포인트로혼자사고싶은거다사고먹고싶은거다먹고개처럼부려먹고시간을되돌리면땡이라느니그런개소리하지말고”
“닥쳐! 너희 뭐야!”
나는 위협적으로 허공에 도끼를 한 번 휘둘렀다.
“정체가 뭐야! 말해!”
거실에서 우당탕 달려 나오는 우리 쪽 부원들.
동시에 벽에 붙어 있던 가짜들은 기계처럼 다 같이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더니 그대로 왼 다리를 굽혔다.
그리고 그 자세 그대로 오른발 왼 발 번갈아 가며 로봇처럼 탁탁탁 뛰며 일렬로 도망가기 시작한다.
투캉-!
이어서 발사된 하윤이의 화살이 도망가는 덕훈이의 등에 퍽, 박혔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다.
“부, 부장! 저거 다 누군데!”
“잡아! 뛰어가서 잡아!”
쫓아 나온 부원들과 서둘러 뒤따라 가 봤지만 굉장한 속도.
마치 게임 속 캐릭터들이 한꺼번에 커맨드가 입력된 것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척척 안무를 맞춰 기계 적으로 달려가는 모습이다.
“헉, 헉.”
“허억, 헉.”
이내 한참을 쫓아가던 우리는, 그 말도 안 되는 속도에 지쳐 결국 평야 한복판에 주저앉았다.
그대로 지평선 너머로 빠르게 점이 되어 멀어져 가는 가짜 괴담 동아리.
“놓쳤어, 헉, 헉.”
“다, 다시 안으로 들어가자… 하아… 하아……
* * *
“우리가 만든 것과 똑같은 집. 그리고 똑같은 모습의 우리……
다시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 앞에 선 우리들.
나는 문득 2층 선아의 시체를 체 크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들어가기 전에 먼저 2층 좀 확인해 보자.”
“왜?”
갸우뚱하는 선아.
“아까 도망간 놈들 중에 선아가 또 있었어. 하지만 가짜 선아는 이미 처음 집을 수색할 때 하윤이가 화살로 잡았었잖아.”
“···흠, 그렇군. 확인해 보자.”
긴장한 채 나무 계단을 오르는 우리.
2층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 보자, 여전히 머리에 화살이 박힌 채 쓰러져 있는 선아의 시체가 보인다.
“기분 나빠……
자기 시체를 보다 고개를 돌리는 선아.
“이게 뭘 뜻하는 걸까.”
나는 가만히 시체를 살펴보며 부원 들에게 물었다.
“이미 죽였는데 가짜가 또… 하나 더 있었던……
“하나 더가 아니라 많이 더 있을지 도.”
긴장한 표정의 경원이 뒤로 덕훈이가 턱을 쓰다듬는다.
복제’인 건가.”
중얼거리는 덕훈이.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집도, 우리 자체도. 그대로 복제되고 있는 모양인데.”
“여기서 더 나아가는 건 위험할지 도 모른다, 부장. 돌아가자.”
경원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아까처럼 쫄아서가 아냐. 현실적으로 꽤 위험한 상황이라서 말하는 거다.”
“···그래, 그런 것 같아.”
파 월드에 입장했을 때 패닉 상태로 찌질하게 굴었다는 걸 스스로도 인정하는 건가.
하지만 미안하게도, 지금 돌아가면 아무것도 밝혀낸 게 없게 된다.
“일단 1층으로 돌아가자. 시체 옆에서 계속 대화하기도 뭐 하니깐.”
« 응 ”
곧 다시 1층 거실, 장작불이 타는 공간으로 내려온 우리.
나는 부원들을 향해 숨을 한 번 들이킨 후 말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내 의견은 우리가 이곳을 좀 더 탐색해 봐야 한 다는 거야.”
«흠
이번에는 발광하는 대신 가만히 고민하는 표정의 경원이.
“이유도 말해 줄 수 있을까?”
“물론.”
나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일단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밝혀 내거나 퇴치하지 못한 상태야.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면 우리들이 한 노력이 헛수고가 돼.”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부터 부딪 쳐 가며 세계의 끝을 따라 월드를 탐험하고, 그 끝자락에 걸쳐서 열심히 집을 짓고…….
약간은 감정적으로 부딪쳐 가면서 도 결국 여기까지 나아온 우리.
이대로 그냥 돌아가면 아무런 소득 이 없다.
그곳엔 공허한 피시방 요금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
“고생한 게 아까워. 위험하다고 돌아가기엔 지금까지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없어.”
“하지만.”
나는 조금은 부담스러워하는 녀석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렇다고 무작정 너희 보고 희생
해 달라는 얘기는 아니야.”
« 우W
“3년 뒤 세계가 멸망하니깐 무조건 나를 따라와서 같이 싸워 달라, 어차피 죽어도 다 돌아가니깐? 그런 건 나도 끔찍하다고 생각해.”
여러 번 죽어본 나는 몰라도, 이 녀석들은 매 순간이 처음으로 목숨을 걸어보는 경험인 것이다.
“우리 중에 아무도 그런 의무를 받아들여야 할 사람은 없어.”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어도 내심 지금까지 하고 있던 생각인지, 말없이 동의하는 부원들.
나 역시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 덕였다.
그걸로 가장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게 처음의 나니깐.
“대신 나는 어떻게 생각하냐면, 너 희에게 좀 더 개인적인 동기가 부여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야.”
“동기? 어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의 괴담을 퇴치하고 얻게 되는 포인트. 모두 너희를 위해 쓸게.”
우 | 99
놀란 듯한 얼굴의 녀석들.
“돈으로 환산해도 인당 몇십만 원이 돌아갈 거고, 이 시스템에는 너 희의 레벨을 올릴 수 있는 기능도 있어. 그게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뭔가 얻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해.”
“호오.”
덕훈이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턱 살을 쓰다듬는다.
“부장이 가지고 있는 독순술이나 이것저것. 우리도 그런 초능력을 얻을 수 있다는 건가?”
“…그건 해 봐야 알 것 같아. 아직은 나도 너희의 레벨을 올려 보지 않아서.”
“쿠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덕훈이.
이어서 부원들의 분위기가 천천히 바뀌기 시작했다.
다들 흥미롭다는 표정.
“물론, 아까 말했듯이 레벨업 말고 돈이나 물건으로 받아 가도 되고. 1 포인트에 약 1만 원 정도의 가치가 있거든.”
“뭐, 괜찮네.”
제일 반응이 괜찮은 건 덕훈이.
하윤이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뜻밖이라는 듯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쯤에서 녀석들에게 훨씬 더 괜찮은 제안을 하기로 했다.
작은 보상을 먼저 내민 후 기대도 하지 않던 큰 보상을 갑자기 내밀면, 원래의 기대치보다 효과가 배로 커지는 게 사람의 심리니깐.
“그리고 졸업식 날 세계를 구원하고 나면, 로또든 뭐든 능력을 이용 해 10억씩 뿌린다.”
« 아배
뭐지.
뭐 잘못 들었나, 하는 분위기.
방금까지 몇십만 원 단위의 계산을 하고 있던 부원들의 표정이 천천히 굳어간다.
“물론, 해피엔딩이라는 전제하에.”
“···부장.”
경원이가 턱을 벌리며 물었다.
“농담이지?”
“진짜인데.”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안 될 게 어디 있어.”
서서히 그 의미를 납득해 가는지, 모두의 표정이 점차 바뀌었다.
“어이, 어이. 진심이냐고……!”
“준아... 정말로 할 수 있어......?”
“세상에.”
조금 흥분한 녀석들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지, 무려 시간을 돌릴 수 있는데. 로또든 비트코인이든 주식 이든 방법은 많지.”
“으아아아아아아!”
덕훈이가 갑자기 흥분해서는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쥐엔자아아아앙! 믿고 있었다고!”
덕훈이의 뇌절 치는 고함을 시작으로 점차 들뜬 분위기가 고조됐다.
“사실 나도 그 생각 자주 했는데, 너무 속 보일까 봐 말을 못 했다. 부장이 먼저 언급해 줄 줄이야.”
“준아……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선아.
“톤테모 야트자나이카! 네 녀석 제 법 하잖아!”
씩씩대는 덕훈이에게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과열되는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3년 뒤야, 3년 뒤. 지금은 로또 같은 거 할 생각 없어. 어차피 현행 법상 미성년자는 로또를 살 수도 없고 당첨금을 받을 수도 없어. 청소 년보호법에 걸리거든.”
“말하는 거 보니 역시 부장도 혼자 알아본 게 많나 보군.” 다 안다는 듯 씨익 웃는 경원이에게 나는 웃으며 손을 휘젓는다.
“형사님이나 선생님께 부탁하면 어떨까, 준아? 그럼 지금이라도 로또 살 수 있는데……
“안 돼. 이런저런 사건을 많이 겪 기는 했지만, 결국은 아직 만난 지 한 달 조금 넘은 사람들이야. 그런 큰 금액은 못 맡기지. 그리고 말했다시피 못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당 장은 할 생각이 없는 거야.”
“왜 할 생각이 없는 건데?”
“당장은 돈이 필요한 일이 없으니 깐.”
나는 녀석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얘 기를 시작했다.
이미 첫 회귀를 겪을 때부터 수도 없이 고민해 봤기에, 머릿속에 깔끔히 정리돼 있는 내용이다.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