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화
열 번째 괴담 -
마이크래프트의 히로빈 (12)
“도화지에 어떤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고 치자. 그럼 그 캐릭터 바깥에는 무엇이 있을까?”
“···흰색 종이만 있겠지.”
“맞아. 이번엔 모래사장에 누군가 모래성을 쌓았다. 그럼 그 모래성 바깥에는 무엇이 있을까?”
“모래만.”
“우리는 아까 이 집을 열심히 지었지. 그럼 지금 집 밖에는 무엇이 남아 있지?”
곰곰이 생각하던 선아가 용기 내 대답해 봤다.
“공사자재랑… 도르래랑… 쓰고 남은 물건이랑 쓰레기들……
“그거야.”
경원이가 씨익 웃으며 안경을 치켜 세웠다.
“창작물의 밖에는, 그 창작물의 바탕이 되는 요소가 남는다. 이 게임의 바깥세상, 파 월드도 똑같아. 프로그래머가 만들어 놓은 영역의 밖에서는 게임의 구성 요소가 되는 본 질만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거지.”
“···그렇구나.”
“이 게임은 맵을 처음 생성할 때 컴퓨터가 랜덤으로 요소들을 섞어 버려. 하늘, 땅, 물, 아이템, NPC- 제작자가 지정해 놓은 영역인 월드 맵 안에서는 그런 섞인 요소들이 적 절히 제어돼서 게임으로써의 기능을 하지만, 밖에서는?”
어깨를 으쓱하는 녀석.
“보는 그대로야. 사람이 코딩해 놓은 영역 바깥, 파 월드에서는 그런 요소들이 리미트를 잃고 미친 듯이 랜덤으로 되풀이되는 세계만 무한하
게 펼쳐지는 거야. 아무렇게나 복사 된 채 생성되는 집, 땅, NPC……
열심히 설명하는 경원이를 보며 우리는 드디어 고개를 끄덕였다.
“장담하는데, 여기서 더 밖으로 탐 사해 봤자 똑같은 풍경만 펼쳐질 거야. 컴퓨터의 의미 없는 난수 생성에 의해 아무렇게나 복사된 채 펼쳐진 집, 나무, 언덕, 그리고 우리 “···후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 집도 뭔가 이유가 있는 게 아니고, 그냥 랜덤으로 만들어진 것뿐이었다는 소리네.”
“그렇지.”
“앞의 로그라이크 어쩌고. 그 얘기는 그럼 왜 한거야?”
“이 게임이 가지는 랜덤성의 요소에 관해서 설명시켜 주려고.”
“그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전부 그냥 무작위로 생성된 것뿐 이었구나. 뭔가 대단한 비밀이 숨어 있기를 기대했는데……
만들어진 세상의 끝 너머, 존재하지 않는 영역에 발을 들인 우리.
뭔가 거대한 음모와 비밀이 숨어 있기를 기대했는데, 그냥 무의미한 복사 붙여넣기뿐이라고.
조금 맥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게 몇 급 괴담인지는 몰라도, 컴 퓨터의 난수 생성에 의해 창조된 세 계가 상대라면 퇴치 따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알겠어, 부장? 세 가지 괴담이 이 어져 있다는 덕훈이의 설명도 그 뜻 이야. ‘히로빈’은 아마 우리처럼 게임에 빨려 들어간 어떤 게이머일 거라고 생각해. 그 상태에서 세상의 끝, ‘파 월드’로 가는 게 가능한 거고.” “···세 번째 괴담인 지옥은? 맵의 지하 끝까지 가서 버전을 바꾸면 지 옥이 나온다는-”
“그것도 ‘파 월드’랑 같은 거야. 결국 게임에서 정해 놓은 영역 밖으로 넘어가는 거니깐.”
어깨를 으쓱하는 경원이.
“이렇게 끝없이 복사된 채 펼쳐지는 요소들이 끔찍해서 지옥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아닐까 싶은데.”
“후우. 그렇구나.”
나는 조금 실망한 기색으로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세 괴담 중에 결국 우리가 퇴치할 수 있는 건 없는 거네? 상대가 게임 세상 자체여서야… 뭔가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공간일 뿐이잖아. 이걸 어떻게 없애.” “게임을 삭제하면 어떨까……?”
선아가 궁금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덕훈이가 고개를 저었다.
“사실 아까 설치하면서 몇 번 지웠 다 다시 깔기도 했었는데, 뭐 별다른 게 없는 걸로 봐서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불법 버전 게임 파일을 없애지 않는 이상은… 고작 컴퓨터 하나의 파일만 삭제해서는 인정 안 되는 거 같다능.”
“그렇겠네……
“그래도 너무 상심은 하지 말라고. 살아서만 나가도 포인트는 얻을 수 있다며.”
“뭐 그렇기는 한데.”
나는 기운 빠진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단순히 마주치고 살아남기만 했을 때 얻는 포인트는 꽤 짜거든. 한… 5분의 1 정도? 되게 적어.”
“기운 내, 부장.”
풀이 죽은 내 어조에 비해 경원이는 왠지 즐거운 얼굴로 나를 위로했다.
“그래도 우리가 3년을 고생하는 데 대한 동기를 확실히 적립하는 계기가 됐으니, 난 이번 모험 괜찮았다고 본다.”
“40억? ···그래, 뭐. 그건 잘된 것 같아. 이제 우리가 구심점을 잃을 리는 없겠네.”
그 동기라는 게 비록 돈이나 레벨 업 같은 사적인 요소기는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세상을 구원해야 할 사명을 지녔다고 해도, 내가 불행한 천국 따위는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진희는 언제 와……?”
멍하니 있던 선아의 물음에 나는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게… 사실 언제 온다고 딱히 말은 안 했던 터라.”
“그렇구나……
조금 풀이 죽은 목소리.
선아는 진희를 꽤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뭐, 그럼 일단은 돌아갈까?”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희도 슬슬 집에 돌아가야지. 현실에서도 저녁쯤 됐을 거야.”
“흠.”
그 말에 경원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 추측인데, 부장. 아마 여유는 좀 있을 거야. 게임에서의 시간 사이클과 현실에서의 시간은 다르니 깐.”
“…그래?”
그 말에 덕훈이가 앉은 채로 끄덕이며 동의했다.
“72배 빠른 걸로 알고 있어. 그러 니깐……
두꺼운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며 계산하는 녀석.
“이곳에서의 하루가 현실에서는 20분.”
“···20분? 그렇게 차。] 난다고?”
“하이. 게임상에서 반나절쯤 지났으니, 아마 현실에서는 이제 10분쯤 흘렀을 거다.”
10분.
그 말에 우리는 서로를 돌아봤다.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는데.”
“어떡하지?”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그래도 돌아가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냈다.
“좀 이르기는 하지만 역시 돌아가는 게 맞을 것 같아. 더 나아가 봤자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도 아니고, 컴퓨터가 의미 없이 ‘복붙’ 해 낸 지형들뿐이잖아.”
“…그리고 게임을 종료할 때는 반 드시 안전한 곳에서 해야 하는 것도 있지.”
“맞아.”
덕훈이의 지적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야 해, 원래의 월드맵으로.”
“하지만 이렇게 어두운데……
선아가 창문을 쳐다보며 걱정스럽 게 중얼거렸다.
“…어라. 진짜네.”
이어서 창문을 살펴보는 우리.
바깥은 이제 완전히 깜깜해져 있었다.
아까부터 좀 어둡기는 했었는데, 설명을 한다고 시간을 너무 잡아먹은 탓인가 보다.
“갈 거야?”
“음… 잠시만.”
갈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고민이 된다.
이렇게 한 치 앞도 안 보이는데 출발해도 괜찮은 걸까.
해라도 떠 있어야 방향을 잡고 갈 텐데, 나침반으로 삼을 만한 것도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남는다면, 그 냥 이 집 안에서 하룻밤 지새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 준아, 어두운데 걷다가 아까처럼 가짜들이 슥 섞여 들면……
“···구별하기 힘들겠구나.”
일리가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결정을 내렸다.
“좋아. 날이 밝을 때 출발하자. 낮에는 평야니깐 멀리서 누가 오는지 다 볼 수 있어 습격받을 위험도 줄 어들고, 해를 나침반으로 삼아서 방 향을 잡고 갈 수도 있어.”
“그러자.”
«응...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부원들.
타닥. 타닥.
벽난로의 불빛만 은은하게 흔들리며, 장작 타는 소리만 들리는 아늑 한 거실.
우리는 각자 벽에 기대 말없이 무릎을 쭈그린 채 앉아서 천천히 밤을 지샜다.
체감상 한 시간쯤 지났을까.
저마다 벽에 기댄 채 난롯불을 쬐며 반쯤 눈을 감고 있던 우리.
갑작스런 소음으로 인해 졸음에서 깼다.
얼굴을 무릎에 묻고 있던 선아도 눈을 끔뻑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조용히 명.
그리고
쿵. 쿵.
천장을 올려다보는 우리 5 다시 한번 들려오는 소음.
쿵.
“···부장.”
“들었어.”
조용히 나를 부르는 경원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위층에 있는 건 선아의 시체.
분명히 아까 죽은 걸 확인했는데 어째서 소리가 들리는 걸까.
끼익-
저벅. 저벅. 저벅.
2층의 나무문이 열리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 바깥에 있는 계단으로 내려온다.
“···일어서, 다들.”
“이쪽으로 온다.”
저벅. 저벅.
바짝 긴장한 기색으로 일어서는 부원들.
다들 각목이나 철근, 부지깽이로 무장한 상태다.
저벅, 저벅. 멈칫.
문 앞에 멈춘 누군가.
“···잠금 잠치 같은 건 없는 문이야. 열려는 순간 바로 걷어찬다.”
“그, 그래……
나를 선두로 조용히 문 앞으로 다 가가서 대기했다.
끼익.
그리고 문 너머의 누군가가 문고리를 잡아당기는 그 순간.
나는 있는 힘껏 발로 문을 찼다.
우지끈-!
나무문이 경첩까지 뜯겨 나가며 세 게 열리더니, 큰 소리를 내며 무언 가에 부딪혔다.
쾅!
“그어어어.”
그대로 밀어 젖혀진 문에 부딪혀 나뒹구는 누군가.
“흐읍!”
지끈-
어둠 속에서 뒹구는 녀석에게 바로 뛰어올라 배를 밟아서 제압했다.
“그어, 그어어어…… 누군지 확인해 보니, 역시 이마에 화살이 박혀 있는 선아.
“이, 이건……
“어떻게 살아 있지?”
“시, 시체 같은데… 움직이네.”
말라붙은 핏자국, 공허한 눈동자, 얼굴에 보이는 핏줄.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현관문 앞에서 배가 밟힌 채 꿈틀 거리는 가짜 선아를 우르르 둘러싼 우리.
이게 도대체 뭔지 살펴보려던 찰 나.
“에, 에잇……!”
진짜 선아가 각목을 힘껏 위로 치켜들더니, 양손으로 대가리를 퍽 후려 찍어 버렸다.
퍼억-
마치 튀어나온 못에 망치질하듯이, 하윤이가 박아 넣은 화살이 그대로 더 깊게 박혀 버린 채 움직임을 멈 준 시체.
“이, 일단 죽여 놓고 보자……
선아가 숨을 돌리며 땀을 닦았다.
“···잘했어, 선아야.”
나는 내심 두려움을 감추며 그런 선아를 칭찬해 주었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이 상태로 살아서 움직였다고?”
“뭐지.”
곰곰이 선아의 시체를 살펴보던 덕훈이가 몸을 흠칫 떨었다.
“소, 소카! 설마!”
“왜?”
이윽고 식은땀 한 줄기를 흘리며 덕훈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우리 지금 바로 도망가야 해! 이런 놈들이 수도 없이 몰려오는 중이 다!”
“뭐? 갑자기 왜‘?”
“마, 마이크래프트의 대표적인 몹에는 ‘좀비’라는 놈이 있는데, 지금 이 시체가 바로 그거라고! 밤이 되자 몬스터로 변해 버린 좀비!”
“밤이 되자 몬스터로!”
다급하게 옆으로 왔다 갔다 하는 덕훈이.
“이 게임에서는 밤이 되면 몬스터 들이 스폰 되는데, 기억나!? 그래서 전에 횃불을 들고 다니라고 했었는 데!”
“응, 기억나!”
선아랑 내가 남쪽을 헤맬 때 밤■이 되자 녀석이 몬스터를 주의하라고 공지를 띄웠었고, 때마침 발견한 토 끼굴 안에서 석탄으로 불을 피웠던 게 떠오른다.
“밤이 되면 생성되는 몬스터들은 원래부터 있던 놈들이 아냐. 그냥 컴퓨터가 랜덤으로 아무 곳에나 마구 뿌리는 거라고!”
“···그, 그래서?”
“잘 들어라, 부장.”
굉장히 심각한 표정이 된 덕훈이.
“이곳 파월드는 개발자의 손길이 닿지 않은, 컴퓨터의 랜덤 요소들이 리미트를 잃고 폭주하는 공간! 월드 맵 안에서 적당하게 생성되던 몹들 과는 달리, 우리를 그대로 복사한 몬스터들이 지금 수도 없이 복제되는 중일 거다!”
“미친!”
나는 급히 부원들에게 지시에 따라 달라는 손짓을 했다.
“다들 안에 놔두고 온 거 없지? 지금 바로 출발한다!”
* * *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평야.
방향을 확인할 달조차도 떠 있지 않다.
마침 빗방울마저 톡톡 떨어지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헉, 헉.”
다급한 숨소리를 내며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는 우리.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없는 멤버인 데다, 30분이나 걸리는 거리여서 뛸 수도 없었다.
가벼운 경보 수준으로 서둘러 움직이는 우리 다섯 명.
“후우, 후우.”
“제,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지?”
“젠장….”
설상가상으로 완전히 게임 안에 들어온 우리는 미니맵마저 볼 수 없는 상태.
주위는 어두운 평야가 펼쳐진 암흑의 지평선뿐이라, 방향을 잡고 갈 만한 지표조차도 없다.
“직선으로 가고 있다고 믿는 수밖 에… 후우, 후우.”
묵묵히 어둠 속에서 잔디만을 밟으며 나아가는 우리들.
[부장! 부장… 나 버리고 가지 마라… 부장……』
저 멀리서 경원이가 울부짖는 소리 가 들려온다.
“무시해. 앞으로 가는 데만 집중하자, 후우, 후우.’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던 빗방울이 어느새 보슬비가 되어 우리 옷을 적신다.
“헉, 헉.”
여전히 어두운 넓은 평야.
묵묵히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는 우리.
[준아! 어딨니, 준아……!]
[부장 이 개새끼! 찾으면 죽여 버릴 거야….]
저 멀리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
한두 군데가 아니다.
같은 목소리로 서로 다른 대사를 겹쳐 말하는 소리도 들린다.
“후우, 후우.”
그렇게 말없이 걸어 나가던 중.
폴짝-
어느새 비에 젖어 진흙탕이 돼 버린 잔디밭 사이로, 작은 물체가 풀쩍 뛰어오르더니 앞을 가로막았다.
“잠깐!”
내 신호에 멈춰 선 부원들.
“…미안, 토끼야.”
“휴, 난 또……
어두운 곳에서 무언가 튀어나오길래 놀랐지만, 다시 보니 작은 토끼일 뿐이었다.
‘전에 숲에서 선아와 나를 보고 도망친 녀석일까?’
내 앞을 가로막은 채 토실토실한 몸을 몇 번 흔들더니, 곧 나를 올려 다보는 토끼.
얼굴이 두 개 달려 있었다.
한 몸뚱이에 붙어 있는 두 개의 얼굴.
가만히 네 눈동자로 나를 보더니, 이내 폴짝 뛰어서 저 멀리 달아나 버렸다.
[준아아… 준아아.......]
[오이-! 어디로 가 버린 거냐고… 같이 애니 보자고…….]
“···다시 움직이자.”
“응.”
나는 뭔가 불길한 기운에 휩싸인 채 어두운 빗속을 뜷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쏴아아. 쏴아아아.
어느새 앞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쏟아져 내리는 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닥마저 진흙탕으로 변해 버려 걷기 힘들어졌다.
“허억, 허억. 아직인 걸까?”
“모르겠어!”
빗소리 때문에 서로의 목소리조차 잘 안 들리는 우리.
얼굴을 흠뻑 타고 흘러내리는 물들을 닦아 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순간, 저 멀리 어둠 가운데 보이는 한 줄기 빛.
“저기 봐, 불빛이야!”
“드디어!”
저 멀리 보이는 불빛.
아마도 세상의 끝에 걸쳐 지었던 벽돌집, 그 거실에서 아직도 타오르고 있을 벽난로의 불빛인 것 같다.
“빨리, 빨리!”
“후우, 후우.”
쏴아아아아-
착, 착, 착, 착, 착, 착, 착.
쏟아지는 폭풍우.
진창으로 변해 버려 발목까지 빠지는 잔디밭.
양말 안까지 진흙이 엉겨 붙어 한 걸음 한 걸음이 고비다.
그 질퍽거리는 바닥을 간신히 헤치고 나아가, 마침내 불빛 근처에 도착했다.
“여, 역시! 집이다!”
“허억, 허억… 도착했다고!”
어느새 비바람으로 한 치 앞도 분 간하기 힘들게 변해 버린 날씨.
우리는 거센 빗속을 뜷고, 평야에 우뚝 서 있는 집을 향해 용을 쓰며 나아갔다.
“빨리, 빨리!”
“허억, 헉.”
쏟아지는 비와 진흙을 견뎌내며 허겁지겁 나아가던 우리.
멈칫-
툭.
갑자기 내가 멈추자 일렬로 오던 부원들이 일제히 부딪힌다.
“뭐, 뭐야? 부장? 빨리 들어가자!”
“후우, 후우… 준아?” 그곳에는 경첩이 뜯겨 나간 채 열려 있는 현관문.
그리고 이마에 화살이 박힌 채 쓰러져 있는 선아가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뭐야······
뒤따라 그걸 보고 멍하니 중얼거리는 부원들.
나는 말 없이 성큼성큼 현관문으로 걸어갔다.
“부, 부장!”
허겁지겁 나를 따라 쫓아오는 부원 들.
이내 실내로 들어선 우리.
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게… 무슨……
부원들이 뒤늦게 확인하고는 숨을 죽였다.
거실벽에 커다랗게 피로 쓰여져 있는 글자.
지옥에 왔습니다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