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동아리-81화 (81/130)

81 화

열 번째 괴담 -

마이크래프트의 히로빈 (14)

쾅-!

[준아나돈없는데 치킨좀사줘]

현관문을 박차고 가짜 선아가 힘차 게 달려온다.

“크윽!”

일단 도끼를 붕 휘둘러 보았지만, 살짝 방향을 틀어 피하고는 그대로 점프해서 달려드는 선아.

[돈달라니까아악]

“에잇!”

순간, 옆에서 진짜 선아가 힘껏 풀 스윙으로 각목을 휘둘렀다.

후웅-

거리 간격이 좁았던 탓에 파공음을 내며 내 머리카락을 스치고 날아간 각목은, 그대로 가짜 선아의 얼굴을 후려쳤다.

퍼억-

쿠당탕

“하아, 하아, 선아야, 고마워!”

“온다! 또 온다!”

이내 진흙탕을 헤치고 바깥에서부터 걸어오는 또 다른 덕훈이.

[와타치의 행복은 어디 있는 데샤 아앗!]

투캉-!

하윤이가 발사한 화살에 머리를 맞고, 그대로 다시 뒤로 넘어가 진흙탕에 뒤통수를 박고 쓰러졌다.

철퍽-

[너희드으을! 공부도 못하는 게 왜 설치는데에에!]

“내가 언제 그런 말 했냐고!”

이어서 막 창문을 넘어오려던 경원이를 우리 쪽 경원이가 철근으로 찔러 밖으로 넘어트렸고.

타타타탁-

정신없는 틈을 타 현관문으로 들어 오는 또 다른 하윤이. 그리고 뒤에 서 달려와 2층으로 올라가는 누군 가.

투캉“!

가짜 하윤이는 우리 쪽 하윤이가 발사한 화살을 가볍게 머리를 비틀어 피하더니, 다시 휙 고개를 돌려 비릿하게 웃는다.

철컥-

하윤이가 다시 화살을 장전하는 사이, 흑발을 휘날리며 거실 중심으로 뛰어드는 분신.

“쿠소쿠라에!”

부웅-

그대로 덕훈이가 휘두르는 부지깽 이를 고개 숙여 피하더니, 창문에서 자기 분신과 씨름을 하고 있는 경원이에게로 달려들었다.

다다다- 철퍽!

“아아악! 이거 뭐야!”

가짜 자신과 씨름 중에 뒤에서 누 군가 달라붙자 비명을 지르는 경원이.

“떼 내 줘! 떼 내 달라고!”

곧 선아가 각목을 휘둘러 달라붙은 하윤이의 등을 후려쳤고, 나 역시 달려가서 도왔다.

둘은 엉킨 채로 몸부림치는 중이었는데, 섣불리 도끼를 휘두르면 경원이가 다칠 것 같았기에 나는 대신 하윤이의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떨어 트리려 애썼다.

“떨어져!”

“아아아악! 아아아악!”

하지만 경원이의 허리를 강하게 뒤에서부터 다리로 움켜잡고는, 요지 부동으로 목덜미를 할켜 대는 그녀.

사악! 사악! 사악!

“아아아악! 아아악-”

“비켜!”

우리 쪽 하윤이의 외침 소리에 급히 뒤로 물러서자, 이내 경쾌한 금 속음과 함께 화살이 날아와서 가짜의 옆 통수에 박혔다.

퍼벅-

털썩.

그대로 힘을 잃고 쓰러지는 그녀. 그리고 혼란스러운 틈을 타 다시 창 문을 타고 넘는 가짜 안경원.

[나보다 공부 못하는 놈들은 전부 뒤져야 해.]

“X발 꺼져 좀!!”

나는 넘어오던 놈의 팔을 내리쳤고, 가짜는 비명을 내지르며 진흙으로 넘어졌다.

[괴담 동아리 개같은 거 X발!]

이어서 현관에서 내 분신이 달려와 서는 나를 뛰어들어 덮쳤고, 우리는 마룻바닥을 뒹굴었다.

“이런 X발 새끼가!”

[이 개새끼!]

우당탕탕-

그대로 뒹굴다 멈춘 나는 다행히 놈의 위에서 우위를 점했고, 바로 가짜 이준의 얼굴을 팼다.

“꺼져! 사라져!”

퍽- 퍼억-

[잠시, 잠시만!]

코피를 흘리며 외치는 가짜 이준.

[경원아! 도와줘!]

“지금 간다, 부장!”

“속지 마! 내가 진짜야!”

각목을 들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경원이.

“알아! 부장이 진짜인 거! 왜냐 면!”

그대로 나를 향해 각목을 휘두른다.

“나도 가짜거든!”

퍽 _

다행히 빠르게 팔을 들어 막았지만, 각목에 맞은 팔에서 어마어마한 통증이 느껴진다.

“에잇!”

다행히 곧바로 가짜 안경원의 뒤통 수에 스윙을 날려 버리는 선아.

가짜는 코에서 피를 뿜어내며 그대로 고꾸라졌다.

창문을 보니 진짜 경원이는 창문을 넘으려는 다른 부원들에게 철근을 휘두르며 위협하느라 이쪽은 안중에 도 없었다.

“허억, 허억… 준아. 괜찮아……?”

[어, 괜찮아.]

“어, 괜찮… 이 새끼!!”

내 옆에서 당연하단 듯 대신 대답 하는 가짜 이준.

진짜와 가짜를 가리는 치열한 심리 싸움이 시작되려던 찰나, 나는 재빠르게 바닥에서 도끼를 집어 들어 놈의 목을 먼저 찍어 버렸다.

“이 X발 새끼!”

푸욱-

[쿨럭-]

그대로 목에서 피를 내뿜으며 쓰러

져 버리는 가짜 이준.

“주, 준아……?”

“선빵필승이다, 개새꺄. 어딜 내 앞에서 잔머리를 굴려.”

손도끼를 들고 숨을 몰아쉬며 땀을 닦았다.

치사하면서도 행동력 있는 한결같은 나의 모습.

선아는 틀림없이 진짜라고 안심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다른 부원들을 도우러 달려갔다.

[오이오이- 내가 부장이다-]

덕훈이의 거대한 몸집에 내 얼굴이 달린 괴물이 뒤뚱거리며 들어오자 경원이와 선아가 둔기를 휘둘러 기절시켰고.

[준아나보증좀서 줴

퍼벅-

[민폐는안끼칠테니보증좀]

이어서 여섯 발로 기어 오는 윤선아의 머리에 하윤이의 화살이 연속으로 박혔다.

“허억, 허억, 인하윤은 백발백중이 네……

“경원아, 아까 목덜미는 괜찮아?”

“괜찮다, 부장… 손톱으로 할퀸 것 뿐이야.”

피부가 새빨개져서는 핏방울이 맺혀 있는 녀석의 앙상한 목덜미.

확실히 깊은 상처는 아닌 듯 보이지만, 많이 아파 보였다.

“또 온다! 또!”

“준아, 내 뒤에 붙어!”

다시 밀려오는 웨이브에 다급하게 자세를 갖추는 부원들과 내 앞을 가 로막아 서는 선아.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다급하게 지시를 내렸다.

“2층! 2층으로 가자! 여기는 놈들이 오는 입구가 두 개라 힘들어! 2 층에 가면 출입문 하나만 막으면 돼!”

“크윽! 하지만 2층은 놈들이 이미 점령했을 텐데!”

아까부터 혼잡스런 틈을 타 한둘씩 2층으로 뛰어 올라가던 놈들.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2층으로 간 후 아직 아무런 낌새가 없다.

“젠장, 어쩔 수 없어! 늦었지만 제 압해서라도 2층을 확보하자!”

“알겠다!”

이어서 우르르 현관문으로 나서는 우리 부원들.

철퍽, 철퍽.

“꺄아악!”

진흙탕을 헤치며 계단을 오르려던 순간, 선아가 비명을 지르길래 쳐다 보니 엎어져 있던 덕훈이가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어어어억.]

“이야아아아악!”

내가 있는 힘껏 장작 패듯 놈의 머리에 도끼를 박아 넣자, 그제야 손을 놓는 오덕훈.

“허억, 허억, 뭐, 뭐지… 죽은 줄 알았는데.”

“좀비다, 부장! 죽으면 좀비로 다시 변하는 거야!”

“이런 x발.”

이 밤이 끝날 때까지, 무한으로 생성될 우리를 복제한 몬스터들.

심지어 게임 시스템상 시체는 좀비로 변하기에 두 번 죽여야 한다.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올라가! 일단 올라가자!”

“허억, 허억.”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다급히 계단을 오르는 우리.

[부자아앙 부자아앙]

밑에서부터 또 가짜가 철퍽철퍽 진흙을 흩날리며 우리에게 뛰어온다.

“크윽!”

투캉-!

우리를 따라잡으려 계단을 오르는 녀석에게, 다시 한번 날아가는 하윤 이의 화살.

퍼벅-

하지만 어두운 빗속에서 시야가 제 한된 상태로 쏘다 보니, 이번에는 어깨에 꽂혀 버렸다.

[아아악... 경찰, 경찰 불러.]

“닥쳐!”

비틀거리며 계단을 오르는 자신의 분신을 철근으로 힘껏 찔러 밀어트리는 안경원.

[아아악... 고소해 버릴 거야.......] 가짜 안경원은 계단을 뒹굴며 내려 가다가 목이 꺾였는지, 그대로 진흙 탕에 얼굴을 박고 늘어졌다.

“빨리, 빨리!”

“헉, 헉.”

쏴아아아아아아-

쿠궁, 쿵.

내려치는 폭풍우, 번쩍이는 번개.

단숨에 계단을 올라가서는 2층의 나무문을 열어젖히는 우리.

끼이익- 탕!

“들어가! 들어가!”

“허억, 허억.”

벽난로가 없어서 어두운 2층.

우린 재빠르게 들어가서 문을 닫아 버렸다.

“헉, 헉.”

“후우, 후우.”

숨을 돌리며 진정하는 우리.

[오이! 다들 어디 가 버린 거냐고! 빵 사 왔다니깐!]

[준아… 나 버리지 마… 준아

……

우리를 애타게 찾는 소리가 아래에 서 들려온다.

“허억, 허억… 근데 여기 조용하네? 아까 2층으로 몇 놈 올라가지 않았어?”

“모, 모르겠는데… 어두워서 아무 것도 안 보여서……

쿠궁- 쿠구궁-

순간 밖에서 번개가 쳤고, 번쩍이는 섬광으로 인해 방 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쿠궁- 쿠구궁-

방의 구석에는 우리 다섯 명의 몸 이 이리저리 뒤섞인, 괴상한 생물체 가 숨죽여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번쩍-

우리는 가만히 소리 죽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괴물을 바라봤다.

질퍽. 질퍽.

여러 개의 살덩이가 서로 뒤섞인 괴물은 육중한 몸을 끌며 이쪽으로 기어 왔다.

쿠릉- 쿠르릉-

다시 섬광을 뿜으며 번쩍이는 천둥 소리.

다섯 개의 얼굴 중 내 모습을 한 얼굴의 입이 쩌억 열리는 게 보인다.

[안녕, 얘들아.]

[이 공간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어?]

질퍽. 질퍽.

어느새 어둠에 적응된 눈.

이제 번개가 비추는 섬광 없이도 그 끔찍한 괴물의 실루엣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아아, 그건 내가 설명해도 될까. 내 역할이니깐.]

뭉쳐 있는 살덩이 중 경원이의 안 경이 반짝인다.

[좋아, 경원아. 설명 부탁해.]

[이 공간은 말야, 부장. 말할 것도 없이 세상의 끝 너머, ‘파 월드’지.]

[오이오이, 그 정도는 알고 있다고.]

질퍽거리며 자기들끼리 만담을 주고받는 다섯 개의 얼굴.

[개발자의 통제를 벗어난, 절차적 레벨 생성으로 만들어진 랜덤 변수 들만이 날뛰는 공간. 모든 것을 복 제해 버리는 지옥 아니냐능.]

[후후. 그것뿐만이 아냐, 들어 봐.]

경원이가 씨익 웃으며 안경을 치켜 올린다.

[이 게임은 단순히 사람들에게 팔 아먹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야. 그 뒤에는 클로버기업의 사회 실험에 대한 음모가 숨어 있지.]

[정말? 농담이지?]

[후후, 부장… 국가를 초월한 다국 적 기업의 거대한 음모? 그런 건 이미 클리셰라고. 놀랄 것도 없이 진부한 내용이야.]

[그, 그렇구나…….]

경원이의 말에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내 얼굴.

[몇 년 전, 한국의 유명 바둑기사 가 클로버기업의 인공지능과 대결해 서 패배했다는 건 다들 알고 있지?] [그야 당연하지. 엄청 유명한 사실 이잖아. 뉴스도 난리났었고.]

[밑바닥의 밑바닥까지 원천을 숨겨야 하는 대기업에서 그렇게 공개적으로 기술을 공개한다는 건 뭘 의미 하는 걸까, 부장? 그런 선진기술. 누군가 훔쳐 갈 수도 있는 거잖아. 실제로 그 후에 인공지능 붐이 불기 도 했고.]

[으음, 글쎄? 대기업의 사고방식 같은 건 고민해 본 적 없어서……』

[사실은 말야, 그런 기술 같은 건 이미 10년 전부터 완성돼 있었다는 거야.]

[10년 전……?]

깜짝 놀라는 점액 속의 내 얼굴.

[그래. 10년 전.]

살덩이에 달려 있는 안경원의 얼굴 이 씨익 웃는다.

[외계인을 고문해서 기술을 개발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심하게 독보적으로 앞서가던 클로버 기업. 당연히 세상에 공개해 놓는 신제품들은 이미 오랜 시간 전부터 완성해 놓은 기술들이야.]

[하지만 그런 기술이 완성돼 있으면 빨리 팔아먹어서 돈 벌면 되는 거잖아! 왜 그런 짓을?]

[급하게 안 팔아먹어도 부족할 거 없으니깐. 이미 2인자가 없을 정도의 독보적인 1등 기업이잖아. 세계 가 너무 갑자기 발전하는 것도 혼란 이 오기 때문에 천천히 기술을 풀고 있는 거야.]

세, 세상에.]

놀랐다는 표정을 짓는 내 얼굴과 어리둥절한 표정의 선아 얼굴.

[준아... 너무 어려워.......]

[경원아, 선아가 이해 못 하는 것 같아서. 조금 쉽게 설명해 줄래?]

[아, 미안미안. 하지만 방금 전 내 용은 이해 못 했으면 그냥 넘어가도 좋아. 중요한 건 지금부터니깐.] 안경을 만지며 씨익 웃는 경원이.

[이 게임은 그 발달된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가상의 우주를 재현하는 시뮬레이션 세계야. 하지만 현대의 컴퓨터 사양으로는 감당할 수 없으 니 육면체 큐브를 최소 단위로 잡아 사양을 타협한 거고.]

[가상의 우주라니.]

[전 세계 몇 억의 플레이어는 클로버 기업을 대신해서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연구 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지.]

[아, 아무리 그래도 그런 게 일반 컴퓨터로 돌아가?]

[고도로 발전된 AI가 대신 연산을 처리해 주기 때문에 가능해. 그래픽 이 썩은 건 덤이고.]

[···하긴. 2019년 그래픽으로 볼 수는 없지.]

[하지만 문제가 있었어. 이 가상의 우주에는 만들어진 그 자체로 인력 이 작용하는 건지, 플레이하는 사람들의 정신을 게임 속으로 끌어들여 버리고 만 거야.]

질퍽거리는 생물체는 방의 중앙에 서서는 자기들끼리 대화를 계속했다.

[10년 전, 한창 개발 단계에서 처음으로 끌려간 연구원. 그 사람의 이름이 바로 히로빈이야.]

[그렇구나… 처음으로 끌려간 사람…….]

[개발자들은 급히 문제가 무엇인지 연구하는 데 착수했고, 곧 사람의 정신을 끌어들이는 인력은 게임 속 세계의 끝 너머로부터 온다는 것을 발견했어. 물질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중력을 발생하고, 이 세계 또한 존재하는 것만으로 인력이 발생한 거지.]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이네.]

[프로그래머들은 코딩을 새로 해서 게임 안의 통제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월드맵으로 규정짓고, 그 너 머로는 절대 나갈 수 없도록 투명한 벽을 설치해 놨어. 그 후로는 정신 이 빨려들어 가는 그런 문제가 사라 졌고, 지금은 괴담으로나마 세상에 소문처럼 떠도는 게 다야.]

그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덕훈이의 얼굴이 표정을 찡그리더니 불평을 했다.

[오이오/)], 문제가 사라진 게 아니 잖나! 우리는 지금 이렇게 게임 속에 갇혀 있지 않냐능!]

[그게 바로 내가 전에 말했던 거야. 해커들이 게임의 보안을 뜯어고 치며 ‘해제시켜서는 안 되는 것’까지 해제시켜 버렸다는 내용의 실체.]

여유롭게 안경을 치켜세우고는 설 명을 계속하는 점액 속 안경원.

[외계인이라고 불리는 일류 프로그 래머들이 간신히 막아 놓은 세상 너 머의 벽. 삼류 해커들이 어줍잖게 보안을 푼답시고 코딩을 뜯어고치다 가 그만 손대지 말아야 할 부분까지 손대고 만 거지.]

[우리가 하고 있는 불법 버전이구 나…….]

[맞아. 뭔가 잘못 건드렸다는 걸 눈치챈 해커들은 급히 투명한 벽을 다시 코딩해서 세계의 끝을 막아 놓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삼류들이 노하우 없이 세워 놓은 벽. 세상의 끝 너머로부터 흘러나오는 인력은 전혀 막히지 않았던 거야.]

[그 상태로 인터넷에 무작정 파일을 풀어놓은 거고…….]

[그렇지.]

[완전히 트롤새끼들이네.]

자신이 한 설명을 부원들이 잘 따라오는 것 같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경원이.

[그럼 여기서 문제. 처음에 게임 안에 갇혔던 히로빈. 그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요?]

[으음, 글쎄?]

고민하는 부원들의 얼굴.

[설마 탈출 못 한 거야?]

[정답.]

살덩어리가 씰룩대며 박수 같은 걸 치려 한다.

[물론, 정상적인 곳에서 게임을 종료하면 정신은 금방 원래의 주인에 게로 돌아가. 딱히 부작용도 없지. 문제는 접속을 종료하는 장소와 게임 안에서 있었던 시간.]

[장소와 시간.]

[말했다시피 히로빈, 그는 한창 개발 단계에서의 연구원. 그 시점에서는 아직 세계의 끝에 벽이 세워지지 않았었거든. 헤매다 보니 잘못된 장 소로 흘러들어가고 만 거야.]

[우리처럼 비정상적인 장소에 있었다는 말이구나. 그럼 시간은?]

내 의문에 가만히 있던 하윤이의 얼굴이 대신 대답했다.

[현실과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말하는 거 아닐까?]

[맞아, 정확해. 게임에서의 하루는 현실에서의 20분. 히로빈이 끌려들어 간 후, 과학자들이 총동원돼서 달라붙었지만 아쉽게도 몇 달은 걸려서 문제를 해결하고 말았던 거 지.] [몇 달이면……』

[이곳에서의 시간으로 약 20년.]

[세, 세상에……』

끔찍하다는 듯 살덩이에 붙은 부원 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는 이미 게임 속에서 몬스터들에게 당해 죽은 지 오래였고, 그의 정신과 인격은 프로그램 안에서 끊 임없이 복제되고 분열되다 못해, 마음의 가장 작은 조각 하나까지도 나누어져 이곳에 흡수돼 버린 거야.]

[끔찍하다……』

[그 결과가 이거야.]

지금껏 움츠리고 있던 살덩어리가 쭈욱 몸을 폈다.

그러자 거의 두 배 크기로 확장되더니 안경원의 얼굴이 천장까지 닿으려 했다.

다섯 얼굴이 입술을 맞춰 소리를 낸다.

[더 이상 이성 같은 건 없어. 분열 되고 복제된 후 다시 합쳐지고, 그걸 무한히 반복한 후에는 뒤죽박죽 돼 버린 인격, 이해 불가한 괴물만이 남아 있을 뿐이야.]

[무한히 반복한 후에는 뒤죽박죽돼 버린 인격, 이해 불가한 괴물만이 남아 있을 뿐이야.]

[무한 반복 뒤죽박죽 인격]

[뒤죽박죽 이해 불가]

[뒤죽박죽 뒤죽박죽 뒤죽박죽 뒤죽박죽.]

[준아…….]

지금껏 자기들만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던 얼굴들이 드디어 우리를 바라봤다.

[준아... 이리 와서 우리 하나가 되자…….]

조용히 나를 보며 속삭이는 선아의 얼굴.

[아무도 우리를 뺏어가지 못하게…….] 그리고 천천히 우리를 향해 기어

온다.

* * *

달달달달달.

‘X발, 왜 전화 안 받아.’

중고로 산 진희의 낡은 오토바이가 힘없는 공회전 소리를 내며 피시방 앞에 멈췄다.

까맣게 썬팅된 오토바이 헬멧의 앞 유리를 들어 올리고, 이준에게 걸던 전화를 짜증스레 종료하는 진희.

‘담배 한 대만 피고 들어가야겠다.’

그대로 입구 쪽에 대충 주차를 하고, 라이더 자켓의 앞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인다.

“후우.”

어느새 저녁이 된 동네 골목의 피 시방 건물 앞.

진희가 내뱉은 담배 연기가 네온사 인과 어우러져 갖가지 빛을 투과하며 흩어진다.

괴담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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