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화
열 번째 괴담 -
마이크래프트의 히로빈 (15)
쿠궁- 쿠구구궁-
폭풍우 치는 밤하늘 너머로 다시 번개가 번쩍인다.
구불구불 춤을 추며 다가오는 거대 한 인간 지네의 첨탑.
“하… 한두 놈이 아니야……!”
뒤에도, 그 뒤에도.
마치 바다로부터 여러 개의 용오름 토네이도가 휘몰아치듯이, 인간 지 네의 첨탑이 진흙 속에서 몇십 개나 솟아올라 구불거리며 이쪽으로 다가 온다.
“진희는 뭐 하는 거야!”
“시간이 흘러가는 기준이 다르니깐 기다려 보자, 부장!”
“젠장할!”
더 이상 우리 다섯 명이 옹기종기 모여 있기도 힘들 만큼 가라앉은 지 붕.
서로 몸을 밀착시킨 채, 좁은 판자 위에서 중심을 어렵게 잡고 있다.
“온다! 온다아아아아!”
“뭐!”
경원이의 다급한 외침에 위를 쳐다 보니, 하늘까지 솟아오른 인간 지네 중 하나가 이쪽으로 기우뚱 쓰러지고 있었다.
[구오오오오오-]
“피해!”
“크윽!”
일자로 무너져 내리는 인간 첨탑, 정확히 우리가 있는 지붕을 겨냥한 채다.
“뛰어! 양옆으로!”
“으아아!”
콰콰쾅-
가볍게 산산조각 나 버리는 지붕.
직전에 점프해서 양쪽으로 피한 우리.
[구오- 구오오-]
인간 지네로 인해 양분된 우리 괴담 동아리는 진흙 속에서 어푸어푸 헤엄쳤다.
“허억, 허억!”
“준아! 이거 잡아!”
선아가 바둥바둥 헤엄쳐서는 지붕의 커다란 판자 하나를 이쪽으로 밀었다.
“고, 고마워!”
“몸을 위로 얹어……!”
“그래!”
진흙 속으로 가라앉지 않게 판자 위로 상반신을 내밀어 버텼다.
[구에엑- 구에에엑-]
끝도 없이 이어진 인간 지네가 우리 앞에서 천천히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 너머로 폭풍우 속에서 경원이와 덕훈이, 하윤이의 모습이 언뜻 보인다.
“다들 괜찮아?”
“괜찮다! 문제없어!”
“후우, 후우.”
진희야, 제발 빨리…….
“야, 너네 일로 와 봐.”
“저, 저희요……?”
막 기분 좋게 게임을 끝내고 피시 방을 나서려던 초등학생 두 명.
무서운 누나가 불러세우자 놀란 표정을 지으며 멈칫한다.
“왜요?”
“X발, 빨리 와 보라고.”
“네, 네……
머뭇거리는 초등학생들은 피시방 사장의 눈치를 보며 진희에게로 향 했다.
그곳에는 바닥에 누워 있는 거구의 남성, 오덕훈과 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진희가 있었다.
“너네 마이크래프트 알지.”
“마, 마크요?”
“어.”
이내 모니터 화면에 떠 있는 마이크래프트를 보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초등학생들.
저렇게 무섭게 생겨서 ‘마크’를 하고 있다니, 무슨 상황인 걸까.
“…네, 알아요. 방금까지도 그거 하
다가 나가는 참이에요.”
“그럼 여기 와서 누나 좀 도와줘.”
서로를 슥 쳐다보는 두 학생.
어쨌든 돈을 뺏으려는 건 아닌 것 같아, 조금 경계를 풀고는 진희에게 다가갔다.
“어떤 거 해 드릴까요?”
“치트키로 핵폭탄이랑 글라이더 좀 뿌려 줘.”
“네, 잠시만요……
차가운 바닥에 배를 내밀고 누워 있는 덕훈을 지나 화면 앞으로 오더 니, 이내 능숙하게 키보드를 타닥거
리며 아이템을 소환하는 초딩들.
“…헐. 여기 어디지?”
“좌표도 안 뜨는데……
이내 화면 속으로 아이템 몇 개가 떨어지는 게 보인다.
“여기요. 내구도 무한인 걸로 뿌려 드렸어요. 더 필요한 건 없으세요?”
가죽자켓 차림의 무서워 보이는 누 나이긴 하지만, 그래도 다시 보니 예쁜 얼굴.
심지어 자신들과 같은 게임을 하는 연상을 보니 흥미가 도는 듯한 표정이다.
‘‘흠 ”
다리를 꼬고 앉아 가만히 모니터를 쳐다보는 진희.
“그럼 뭐 도움될 만한 아이템 있으면 다 해 줘. 사기적인 걸로.”
“네, 잠시만요……
타닥- 타다닥-
* * *
“떴다! 떴어!”
저 멀리서 경원이가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른다.
“아이템이다! 아이템!”
“빨리 잡아I”
이내 허공에서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갖가지 아이템들.
무기, 방어구, 신발, 다이아몬드, 통나무…….
“준아! 보트야!”
“큭! 좋아!”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나 진흙탕에 철퍽 쏟아지는 나무보트.
그대로 비에 휩쓸려 떠내려가려는 걸 선아가 급하게 헤엄쳐 가서 잡았다.
“허억, 허억.”
질퍽질퍽.
나 역시 진흙탕을 헤치며 나아가 간신히 보트 위로 팔을 내밀어 붙잡았지만, 점토 더미에 하반신이 파묻 힌 탓에 허둥대고만 있다.
“준아, 어서……
곧 옆에서 헤엄쳐 다가온 선아가 뒤에서 내 엉덩이를 밀어주어 간신히 보트 위로 올라섰다.
“고마워, 선아야. 자, 내 손 잡고 올라와!”
“응……!” 보트 위에 올라선 나는 손을 내밀어 선아를 끌어 올려 줬고, 근처에 떠다니는 목재 하나를 집어 들어 노로 삼았다.
“저쪽으로!”
“응……!”
허공에서 쏟아져 내리는 아이템의 방향으로 열심히 노를 젓는 우리.
철퍽- 철퍽-
원래 내 체력이라면 이렇게 진흙 속에서 노를 젓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무적 치트가 작용한 덕분인 지 근육의 피로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라, 놀랍도록 끈질긴 체력을 이용해 우리는 금세 원하는 위 치에 도착했다.
“됐어! 잡았어!”
빗줄기와 함께 우수수 쏟아져 내리는 아이템 중 하나를 캐치하는 내 손.
“근데 뭐지 이건!”
손잡이만 있는 무언가.
가운데 버튼을 눌러 보자, 갑자기 번쩍이는 섬광이 튀어나온다.
지이이잉-
광선검이었다.
“으악! 으아아아악!!”
우리 사이를 가로지르며 흙탕물 위에 떠 있는 인간 지네.
그 너머, 나머지 부원들이 있는 장 소에서 경원이의 비명 소리가 들려 왔다.
[너희 집이 잘사는 것 같지? 우리 가문에 비하면 거지소굴이야.]
“저리 가! 저리 가라고!”
가짜 하윤이가 경원이의 몸을 붙잡 고는 진흙 속으로 잡아당기고 있지만, 다들 판자더미를 붙잡으려 애쓰는 중이라 도울 여유가 없어 보였다.
“선아야! 빨리 도우러 가자!”
“응!”
다이아몬드 삽자루 하나를 잡아 들고는 노처럼 휘젓는 선아.
피로를 모르는 근육 탓인지 금세 보트의 속력이 높아졌다.
“간다아아아!”
[구오오오오-]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인간 지네가 다가오는 보트를 느꼈는지 구불거리며 춤을 춘다.
“흐아아압!”
지잉-
그대로 보트의 선수에 선 나는 광선검을 휘둘러, 끊임없이 이어진 인간지네의 허리를 드디어 끊어 버렸다.
[구우우-]
철푸덕-
[준아준아.]
[부장부장.]
이어서 달려오는 잔챙이 몇 놈을 두부 베듯이 갈라 버리고는 목적지로 향하는 우리.
“돌격해!”
“응!”
그대로 양분된 인간 지네의 허리를 툭 치고 나아가 나머지 부원들에게 도달했다.
지잉-
[꺄아아악…….]
경원이의 등에 달라붙어 있던 하윤 이마저 광선검을 내리꽂아 무력화시 킨 후, 드디어 다시 합류하는 우리.
“이쪽이야! 빨리 올라타!”
“허억, 허억……
이내 허겁지겁 보트에 올라타는 경원이와 덕훈이 그리고 하윤이.
“하아, 하아.”
항상 침착하던 표정의 하윤이마저 도 계속된 빗속의 진흙탕 사투로 인해 지친 표정이다.
긴 흑발은 진흙이 엉겨 붙어 엉망 진창이 되었지만, 투명한 피부는 오히려 머드팩을 한 듯 대비돼서 오싹 한 매력이 더 돋보인다.
“핵폭탄은? 아까 누가 붙잡는 것 같던데!”
“여… 여기……!”
덕훈이가 농구공 정도 되는 크기의 로켓 하나를 내게 건네줬다.
“어떻게 쏴?”
“몰라, 그냥 던져!!”
“X 발……
펑-
“또 아이템이다!”
이어서 하늘에서 나타나 떨어져 내리는 거대한 글라이더.
“어, 엄청 크다……
“한 번에 다 타야 하는 모양인데!” 보트 위에 툭 떨어진 글라이더가 이내 기우뚱 진흙 속으로 기울어지려는 걸 부원 몇이 간신히 손을 뻗어 잡았다.
[돈돈돈돈.]
[괴담괴담괴담.]
그사이에 달라붙은 몇 놈을 빠르게 광선검을 휘둘러 갈라 버렸고.
보트 위에서 글라이더를 세우는 우리.
[구오오오오… 오오오…….]
쿠릉- 쿠르릉-
이어서 저 멀리,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생물체가 폭풍우 속에서 번개 빛을 받으며 울부짖는다.
“허억, 허억.”
거대한… 정말로 거대한.
마치 산 하나가 통째로 움직이는 모양.
[부자아아아앙.]
거대하게 낮은 저음으로 울부짖는, 사람들이 뭉치고 뭉친 움직이는 산.
동시에 보트 주위로 헤엄쳐 달라붙는 잔챙이들.
[부장부장부장부장.]
[준아준아준아준아.]
“이 저글링 같은 새끼들! 끝도 없어, X발!”
“무시해! 빨리 폭탄 던져, 부장!”
나는 달라붙는 녀석들을 무시한 채 핵폭탄을 두 손으로 잡고는, 올림픽 선수가 포환던지기를 하듯이 세게 한 바퀴 돌고는 있는 힘껏 저 멀리 던져 버렸다.
“으아아아아아!!!
개미친정신병자애미뒤진씹새끼들이 진짜존나게 지 랄하네 뒤져 좀씨 X놈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⑴⑴ urn”
콰콰쾃-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제트 엔진이 공중에서 불꽃을 내뿜더니, 자기 혼자 시동이 걸리며 로켓이 날 아갔다.
어둠의 폭풍우 속 거대한 산을 향 해 빨간 불꽃을 그리는 로켓.
[부장부장부장부장.]
[준아준아준아준아.]
번 순간, 산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거대 한 섬광.
동시에 구름이 그 중심에서부터 저 멀리 원형으로 퍼져 나가며 빠르게 증발해버린다.
“부장! 꽉 잡아!”
“으으으!”
날개와 몇 가지 뼈대로만 이루어 진, 간단한 구조지만 3m 길이의 상당히 큰 글라이더.
보트 위에 선 우리 다섯 명은 일렬로 서서 그 거대한 손잡이의 철봉을 붙잡고 자세를 잡았다.
“온다! 온다……
“꽉 잡아!”
저 멀리서부터 피어오르는 눈부신 광채의 버섯구름.
[부장부장부… 그아아아악-]
[준아준아준아... 그아아악-]
이내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재가 되어 날아가는 복사본들.
사람으로 이루어진 검은 산도 핵폭 탄의 불꽃 속에서 천천히 무너져 내린다.
“꽉 잡고 있어!”
“응!”
뜨거운 열기가 이내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보트마저 불붙게 하였고.
“온다!!”
“아아아아아아악!!”
충격파가 진흙탕을 모조리 쓸어 엎으며 이곳으로 타고 넘어왔다.
부우우웅-
콰아아아앙-
몰아치는 바람.
그 순간부터는 우리 모두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뜨거운 바람이 우리를 타고 넘고, 글라이더는 바람을 타는 건지 그냥 충격에 고꾸라지는 건지, 공중에서 아무렇게 춤추기 시작했다.
파박-파바박-파바바박-
정신없이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지만 어떻게든 허공으로 떠오르긴 한 우리.
이쪽저쪽으로 아무렇게나 방향을 뒤틀며 충격 속에서 헤맸지만, 다행히 손잡이를 놓치는 사람은 없었다.
이를 꽉 문 채 붙잡고 있는 글라 이더에 의지하며 공중에서 휘청이는 우리.
후웅- 후우우웅-
이윽고 충격파가 지나가고, 멀리서부터 뜨거운 온풍만이 연신 귀를 휩 쓰는 가운데.
글라이더는 드디어 궤도를 잡고 하늘을 비행하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후우, 후우.”
그제야 한숨을 내쉬는 우리.
하아, 하아.
일렬로 주르륵 붙어서 손잡이를 붙 잡고, 글라이더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하늘을 난다.
현실에서라면 불가능한 풍경, 하지만 치트 덕분인지 비정상적인 힘으로 결코 손잡이를 놓치지 않은 채 끝까지 매달려 날아가고 있다.
“준아, 저기 봐……
선아의 눈짓에 뒤돌아보니, 어느새 버섯구름은 광채 대신 연기만을 피어 올리며 잠잠해가는 중이고.
저 멀리 초원에서부터는 해가 떠오르며 새벽을 밝히고 있었다.
“새벽이야… 다 끝났어......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던 폭풍우가 순식간에 증발한 탓일까.
끝도 없이 펼쳐진 진흙색의 갯벌.
그 위로 무지캐가 찬란하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