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동아리-84화 (84/130)

84화

열 번째 괴담 -

마이크래프트의 히로빈 (16)

“저기! 저기다!”

글라이더를 타고 새벽하늘을 비행 하고 있는 우리.

여기저기에 복제된 집이 널려 있었지만, 그래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원래의 지형과 비교해서 쉽게 세 상의 경계선을 찾을 수 있었다.

“저기 보이는 숲. 처음에 부장이랑 선아가 텔레포트 된 뒤 헤매던 곳 아냐?”

“저 멀리 호수는 나랑 인하윤이 점토를 얻으러 갔던 곳 같은데……

“그럼 저기 서 있는 집이 우리가 원래 지은 집이겠네. 착륙하자!”

곧 다 같이 글라이더를 아래로 기울여, 이제는 말라붙은 진흙 위로 부드럽게 착지하는 우리.

“다 말랐어. 괜찮아.”

땅을 뒤덮은 갈색 진흙.

그 위에 솟아나 있는 초록색 잔디.

펼쳐진 푸른 하늘.

그리고 서 있는 동화 속 2층 빨간 벽돌집.

새벽의 차가운 빛이 내리쬐는 목초 지.

갈색, 초록, 파란, 빨간, 여러 원색 이 어우러진 잔디밭 위에서 우리는 잠시 한숨을 내쉰다.

“후우우……

“도착했다… 다 끝났어.”

마치 수련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 가는 기분이다.

여행이 시작될 때의 들뜬 분위기와는 다르게 피곤함에 쩔어, 말없이 친구들과 버스에서 터덜터덜 내려 걷는 그 기분.

우린 더 할 말이 없다는 표정으로, 현관 나무문 앞에 멈춰서 서로를 보았다.

그렇게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피식 웃고 말았다.

“다들 고생했어.”

“준이 너도……

“들어가자.”

응 ”

세상의 경계선에 걸쳐 지어진 현관 나무문을 가만히 바라봤다.

경첩이 뜯겨진 나무문도, 이마에 화살이 박혀 쓰러져 있는 선아도, 지겹도록 달라붙던 복제품들도 이곳에는 없다.

그저 처음 지은 그대로 평화롭게 서 있는 벽돌집뿐.

낯선 곳에서 정신없이 헤매다 다시 원위치로 돌아온 느낌이다.

“돌아가자.”

천천히 걸어가 나무문의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끼익-

그대로 현관을 향해 한 발자국을 내디뎌 본다.

저벅.

“···끝.”

이 한 걸음으로 세상의 끝에서 월 드맵 안으로, 드디어 들어왔다.

“들어와, 다들.”

“으흠 . ”

피곤한 표정으로 문지방을 밟는 선아.

보이지 않는 문턱이라도 있는 양 과하게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넘는 경원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들어오는 덕훈 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 뒤로 손을 깍지 낀 채 입장하는 하윤이.

“후우… 좀 앉자.” 이내 거실 카펫에 주저앉아, 차갑 게 식어 버린 벽난로를 마주 보는 우리.

곧 덕훈이 머리 위로 말풍선이 떠 올랐다.

[Admin(오덕훈) : 다 끝났냐?]

“응, 다 끝났어. 메뉴 열어서 접속 종료 해 주면 돼.”

[Admin(오덕훈) : ㅇㅇ] 곧이어 덕훈이의 몸이 파랗게 빛나더니.

파앗-

몇 가지 에너지의 파동만 남기고는 눈앞에서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부우웅-

이어서 빛나는 내 몸.

나는 부원들을 쳐다보았다.

“먼저 갈게, 좀 이따 봐.”

빙그레 웃는 선아.

경원이와 하윤이도 눈짓으로 인사 한다.

부우우웅-

파앗-

“으... 으음

굉장히 깊은 잠을 잔 느낌.

머리가 잠에 취해 어질거리는 게 완전히 혼수상태다.

피시방 좌석에 불편하게 어깨를 기댄 자세, 목이 뻐근해져 있는 게 느껴진다.

눈을 떠 보니 하얗게 빛나는 모니터 바탕화면이 보인다.

‘… 몇 시야.’

바탕화면 구석에 표시된 시계가 지금이 저녁 6시가 조금 넘었음을 알려 준다.

문득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 보니, 웬 초등학생 남자애 두 명이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 순간.

[특수 능력 ‘인생설계’가 발동합니다.]

[지금 당장 고개를 숙이세요.]

안 그래도 잠에 취해 막 떨어지려

는 내 고개.

그대로 얼굴을 푹 숙이자.

“오니쨩 하야쿠 오키나이또 지코쿠 시쨔우요옷!!!!!!!!!!!!!!!!!!!!”

피시방 대리석 바닥에 누워 있던 덕훈이가 벌떡 일어서더니, 몸부림 치며 팔을 휘둘렀다.

퍼억-

그대로 고개 숙인 내 머리칼 위를 스치고 날아가 의자 시트에 꽂히는 두터운 주먹.

초등학생들은 놀라서 그대로 도망 가 버렸다.

“허억, 허억, 여… 여긴……?”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어리둥절 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덕훈 이.

“낯익은 천장이다……

“ 일어났냐.”

하윤이의 옆에 서서 캐릭터 접속을 종료해 주던 진희가 슥 쳐다보고는 무심하게 한마디 했다.

공주처럼 눈을 감고 있는 하윤이의 뺨이 거칠게 마우스를 조작하는 진희의 팔꿈치에 눌려 꾹꾹 모양이 변 하는 게 보인다.

“···준아.”

마침, 내 옆에서 천천히 눈을 뜨는 선아.

“선아야.”

“고생했어.”

살며시 웃는 선아.

그리고 한꺼번에 떠오르는 메시지

[B급 괴담 - 히로빈 괴담과 마주 쳐서 살아남았습니다.]

[괴담 포인트를 15 획득하였습니다.]

[함께한 부원들 한 명당 10%의 보너스 포인트를 얻습니다.]

[참여한 부원 (5명) : 안경원, 오덕훈, 윤선아, 이진희, 인하윤.]

[총 획득한 포인트 15에 대해서 50%의 보너스 포인트 8을 추가 획 득합니다.]

[현재 괴담 포인트 : 264 +15 +8]

[현재 괴담 포인트 : 287]

[A급 괴담 - 파 월드 괴담과 마주 쳐서 살아남았습니다.]

[괴담 포인트를 40 획득하였습니다.]

[당신은 놀라운 기지를 발휘하여 게임 속 세상의 끝 너머를 탐사하고, 그 기원을 밝혀내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괴담 포인트를 200 획득하였습니다.]

[함께한 부원들 한 명당 10%의 보너스 포인트를 얻습니다.]

[참여한 부원 (5명) : 안경원, 오덕훈, 윤선아, 이진희, 인하윤.]

[총 획득한 포인트 240에 대해서 50%의 보너스 포인트 120을 추가 획득합니다.]

[현재 괴담 포인트 : 287 +240 + 120]

뾰로롱~》

[현재 괴담 포인트 : 647]

[인물 윤선아에 대한 이해도가 10 상승했습니다.]

[인물 안경원에 대한 이해도가 20 상승했습니다.]

[인물 오덕훈에 대한 이해도가 20 상승했습니다.]

[인물 인하윤에 대한 이해도가 5 상승했습니다.]

‘···히로빈을 물리쳤다는 말은 역시 없네.’

하긴, 그 사람의 의식은 이미 게임 속에서 녹아버린 지 오래.

전 세계의 모든 파일을 삭제하지 않는 이상 그걸 퇴치하는 건 불가능 할 것이다.

“우으... 뻐근해라......

그렇게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멍하니 보고 있자, 곧 모두 정신을 차렸는지 저마다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우으... 우으으으응”

“이, 일어나자. 자.”

뼈 소리를 뚜두둑 내며 관절을 푸는 모두를 보채서 일으켜 세운다.

잠시 후, 피시방 건물에서 나와 정문 앞에 뭉쳐 선 우리.

경원이가 어깨를 쭉 치켜올리며 괴상한 소리를 냈다.

“우으으으으… 온몸이 뻐근하다, 부장.”

“기지개 켜면서까지 나 찾지 마.”

무슨 입만 열면 부장이야.

오늘 하루 ‘부장’과 ‘준아’라는 단 어를 너무 많이 들어서 귀에 딱지가 생길 지경이다.

“그나저나, 처음에 치트를 입력한 건 진희 네가 아니었다고?”

“어. 모르는 사람이었어.” 벽에 기대 담배 연기를 뱉으며 대답하는 진희.

너무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아무도 지적하는 사람이 없다.

“여자야, 남자야?”

“···남자.”

손끝으로 담뱃재를 툭툭 터는 그 녀.

“자세히는 못 봤는데. 다크서클이 엄청 짙었어.”

“…흐음 ”

“누구지……?”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짚이는 건 없었다.

“어쨌든 오늘 다들 너무 수고했어. 정산은 피곤할 텐데 나중에 하고, 일단 각자 집으로 돌아가자.”

“그래……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부원들.

“ 정산?”

진희가 담배를 밟으며 물었다.

“어. 괴담 포인트. 이번에 얻은 분까지는 너희들을 위해 써 보기로 결정했거든.”

“···그래?”

“600포인트 정도 있으니, 인당 레벨업 한 번, 또는 100만 원 정도로 분배할 수 있을 것 같아.”

“오, 100만 원.”

주머니에 손을 넣은 진희가 씨익 웃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래… 레벨 아니면 돈으로 받아 도 괜찮고. 그건 주말 동안 각자 알 아서 결정해 오는 걸로 하고, 월요 일에 학교에서 다시 얘기 나누자. 오늘은 여기서 해산.”

“ 해산······

선아가 졸린 눈을 비비며 동의했다.

부릉- 부우웅-

“남자들은 알아서 걸어가.”

“아하하… 준아, 미안 ! 학교에

서 봐!”

“간다!”

“꺄아아악……

진희의 오토바이가 거칠게 배기음을 뱉으며 출발하고, 뒤에서 허리를 붙잡고 있는 선아와 하윤이가 눈을 질끈 감는다.

그리고 낙동강 오리알처럼 추레한 행색으로 남겨진 남자들.

“난 바로 앞 아파트가 집이라 걸어 가면 되는데. 너희는?”

덕훈이와 경원이를 보며 묻자 녀석 들이 으음, 하며 고민한다.

“글쎄. 뭐 늦은 시간도 아닌데 버스 타고 가야겠다능.”

“됐어, 내가 택시 태워 줄게. 가자.”

“아리가또.”

경원이가 지갑을 꺼내며 대로로 나가 택시를 붙잡았고, 나 역시 녀석 들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아차, 바밤바.’

아파트 유리문 앞에서 급히 방향을 돌려 상가 편의점으로 향했다.

‘···흠. ‘2+1’이네. 그럼 세 개 사서 부모님이랑 같이 나눠 먹어야겠다.’

바밤바 세 개를 집어서 계산대로 향하니 주말 알바생 누나가 무심한 표정으로 바코드를 찍는다.

“2,000원이요. 봉투 필요하세요?”

“아뇨, 괜찮아요.”

“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아이스크림 세 개를 집어 들고는 아파트로 들어서서 엘리베이 터를 타는 나.

현관문 앞에 서자 익숙한 티브이 소리가 들려왔고, 문을 열고 들어서 자, 아니나 다를까.

아직도 거실 소파에 누워 계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인다.

“왔냐.”

“네, 하하… 바밤바 사 왔어요. 같이 먹으려고 세 개.”

“잘했다. 잔돈은 너 해라.”

“아빠, 최고.”

마침 주방에서 밥을 준비하시던 어머니가 고개를 내미신다.

“아들 왔니? 전화해도 안 받고.”

“헤드셋 끼고 있었어서… 죄송해요.”

“그래도 이 정도면 빨리 왔네. 시 험 끝난 주말이라 밤새 놀다 와도 봐주려고 했는데.”

“하하… 그냥 피곤해서……

“밥 먹자. 빨리 와.”

신나서 식탁으로 달려갔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밥그릇이랑 좀 세팅해. 네 아빠는 소파에 본드를 붙여 놨는지, 엉덩이가 떨어지지를 않네.”

그러자 저 멀리 거실에서 궁시렁대는 아버지의 목소리.

“장도 내가 다 봐 왔구만……

“농담이에요, 호호. 와서 밥 먹어요.”

“읏차.”

그 말에 드디어 일어서서 이쪽으로 오시는 아버지.

빈 식탁을 보시고는 갸우뚱하셨다.

“밥 어딨어?”

“접시 세팅해요.”

“속았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아버지는 바밤바 하나를 벌써 입에 문 상태셨다.

“아니, 당신! 밥 먹기 전에 아이스 크림부터 먹으면 어떡해요!”

“내가 애야? 어른은 뭘 먹던 순서는 상관없는 거라고.”

“준이가 보고 배우잖아요!”

뭐라 하는 어머니의 지적에 나는 접시를 내려놓으며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엄마는 아직도 내가 초등학생인 줄 아시는 걸까.

“준이가 몇 살인데 그런 걸 보고 따라 배운다고. 그치, 준아~?”

아이스크림은 다 먹고 막대기만 입에 문 채 어머니를 약올리시는 아 버지.

나는 평소보다 더 크게 웃고 말았다.

생사가 오가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있다가 와서 그런지, 이런 평범한 부모님의 모습이 왠지 즐겁 게 느껴진다.

“참나, 알아서 해요. 난 몰라.”

“삐졌어요? 응? 네 엄마 삐졌다, 준아.”

“푸하하.”

* * *

[2026년 ?월 뚯씤일 목?11일, 03:

+ 이

[이?준 - 1회차]

[괴담컺인긮 : 2슦□]

[인??율 : 83%]

철컹-

지상에서부터 이어지는 엘리베이터가 낮은 저음을 내며 내가 있는 지하로 내려온다.

나는 팔짱을 낀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대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철컹.

차라라락-

곧 지하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이중 삼중으로 되어 있는 철장을 밀어젖히고, 진희가 대원들과 함께 검은 상자를 들고 내린다.

“무사히 수거해 왔어, 대장.”

“고마워.”

이윽고 함께 통로를 따라 이동하려는 대원들을 내가 손을 올려 제지했다.

“여기서부터는 수색팀장과 저만 가겠습니다. 상당히 위험한 물건이라서요.”

“네! 알겠습니다!”

경례하고는 보호구를 벗으러 장비 실로 이동하는 대원들.

“가자.”

“응.”

곧 통로를 꺾어 도착한 연구실.

갖가지 전선들과 배선들이 어지럽게 얽혀 있는 공학도의 공간이다.

연구원 몇과 함께 키보드를 두드리며 이것저것 세팅하고 있던 경원이가 우리를 돌아보며 인사한다.

“그거구나.”

“어.”

곧 공수해 온 검은 박스를 옆에 내려놓더니, 잠금장치를 풀고 뚜껑을 여는 진희.

박스 안에는 컴퓨터의 본체가 들어 있었다.

“정확히는 이 본체의 하드디스크 안에 들어 있는 거지.”

“그래. 누가 들어갈 거야?”

“내가 간다.”

나는 담담하게 컴퓨터 앞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알겠어. 금방 연결해 줄게.”

이어서 공수해 온 본체를 모니터에 연결하고는 전원을 키더니, 무언가를 검색하는 경원이.

“찾았다.”

파앗-

곧 내 앞 모니터에는 클로버 소프 트웨어에서 만든 대 히트작, 마이크 래프트의 가장 초창기 버전이 켜졌

다.

[My Craft - Pre alpha]

(WARNING 乂 WORK IN PROGRESS-DOES NOT

REPRESENT THE FINAL LOOK OF THE GAME.)

마왕이 부활하고 세계가 한창 아수 라장이 된 어느 시점, 클로버기업은 자신들이 생산해 낸 모든 전자제품에 숨겨 놓았던 바이러스 코드를 발동했다.

덕분에 가전제품부터 자동차, 소프 트웨어에 심지어 장난감조차도 클로버 기업에서 만든 물건이라면 종류 불문, 모두 작동을 멈춘 탓에 세계의 멸망은 빠르게 가속화되었다.

마이프래프트 또한 스스로 삭제돼 버리며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상황.

우리는 그 파일을 찾기 위해 관련 된 개발자들의 사택과 본사의 건물을 이 잡듯 헤집어 다닐 수밖에 없었고, 다행히도 어떤 연구원의 백업 본체에서 마지막 게임 파일 하나를 구할 수 있었다.

지금 내 앞에 떠 있는 버전은 가장 초창기의 개발 버전.

폐허가 된 도시에서 클로버 소속 프로그래머들의 집 주소를 진희와 대원들이 이 잡듯이 뒤져서 겨우 찾아낸 물건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SEVER : 괴담 동아리] [1/1]

[SEVER : 괴담 동아리] [FULL]

“서버 만들었어. 접속한다.”

“그래.”

[Loading “위험할지도 모르니 다들 불 끄고 나가 있어.”

벽이 세워져 있지 않은 버전이다.

가상으로 만들어진 세계 너머에서 어떤 영향력이 흘러나올지 모른다.

“10분 있다 돌아올게. 조심해, 대장.”

“자, 다들 나갑시다.”

탁-

곧 실험실의 모든 불이 꺼지고.

진희와 경원이는 연구원들과 함께 문을 열고 밖에서 대기한다.

암흑천지가 돼 버린 실험실.

모니터의 불빛만이 눈부시게 반짝 인다.

“후우.”

문득 어릴 적 불 꺼진 방 안에서 몰래 컴퓨터를 하던 추억이 생각난다.

그때의 모니터도 이런 식으로 눈이 아프게 빛났다.

“시작해 볼까.”

나는 어깨를 풀고 눈앞의 VR 기계를 집어 들었다.

게임에 오래 접속해 있는 건 위험 하기에, 필요한 것만 확인하고 빠르게 빠져나올 계획.

아마도 이게 몰입을 도와줄 것이다.

지잉-

곧 VR 기계에서 눈의 시야에 빈 틈없이 게임 속 화면을 비춰 준다.

[Select World]

[Create New World, 이준-1]

[Loading .]

파앗-

곧 눈앞에 떠오르는 육면체의 큐브로 된 숲.

나는 빠르게 치트키를 사용해 남쪽 끝으로 텔레포트했고, 투명한 벽을 찾아 잠시 걸었다.

“ 이쯤인가.”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초록색 목초 지.

그리고 파란 하늘.

괴현상이 잠식해 버린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가던 나에게는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그렇게 투명한 벽 근처에서 몇 번 캐릭터를 조작하다 보니, VR 덕분 인지 금세 게임 안으로 들어와 버린 나의 정신.

‘여기서 직선으로 쭉 걸어갔었지.’

경계선을 사뿐히 넘어 지평선을 향 해 걸어간다.

저벅, 저벅.

그렇게 세상의 끝을 넘어 펼쳐진 초원 사이로 한참을 걸어가는 나.

30분쯤을 걸어 작은 언덕을 넘은 후, 마침내 나타난 산이 몇 개는 들어갈법한 커다란 구덩이 앞에서 멈 췄다.

“···역시.”

나는 팔짱을 끼고 움푹 파여 버린 지형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곳에는 핵폭발의 흔적인 아주 커 다란 크레이터가 있었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탓인지 풀들이 자라나 있었고, 동물들이 그 속에서 경사를 타고 돌아다니며 잡 초를 뜯어 먹는 이끼 낀 거대한 구 덩이.

자연으로 생성될 리 없는 어마어마 한 깊이, 틀림없이 먼 옛날 이곳에 서 거대한 폭발이 있었다는 증거다.

‘ 어째서지.’

다시 고개를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곰곰이 생각했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일어난 사

건, 하지만 똑같이 생긴 거대한 핵 폭발의 크레이터.

그건 굉장히 많은 것을 의미했다.

“후우.”

“괜찮아?”

응 ”

곧 접속이 종료되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경원이와 진희.

나는 문제없다는 손짓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 확인했어. 삭제해.”

“···뭐? 괜찮겠어?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파일인데.”

“괜찮아. 알아낼 건 다 알아냈어. 그리고……

나는 모니터를 한 번 쳐다보았다.

“이제 그만 쉬게 해 주자고.”

“···알겠어.”

곧 키보드를 타닥거리며 게임을 삭 제하는 경원이.

그리고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파앗-

[魔□은 놀끗X릃? 기 3W 꾩?휘굙? 빏 § 솏? 4A!?뺤꽦 넗?昆vfi]

[괴??담컽kF관를 5에 획잙하?□□ 솕? 다-]

아마도 ‘B급 괴담 - 히로빈 괴담’을 물리쳤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지구상에서 작동하는 그의 의식은 없다.

우리는 조용히 실험실의 불을 끄고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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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각자의역할

괴담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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