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화
열한 번째 괴담 -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친구 (1)
아주 사소하지만 절대로 착각할 리가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① 덕훈이에게는 오랫동안 같이 게임을 해 온 인터넷 친구들이 있다고 한다.
원래는 한 온라인게임(아마도 던전 앤파이터로 생각된다.)에서 길드로 맺어진 인연인데, 약 4명 정도의 인원으로 오래된 멤버들.
시작은 던파였지만 서로 단톡방도 만들고 뭉쳐 지내다 보니, 같이 다른 게임으로 넘어가서 마이크래프트 같은 걸 즐기기도 하고, 넷상에서 완전히 절친이 되었다는 덕훈이의 인터넷 친구들.
어느 날, 평소처럼 보이스채팅으로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유독 한 멤버가 말이 없었다고 한다.
뭔가 기분이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걸까 생각했지만, 그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말이 없는 그 멤버.
결국, 왜 요즘 조용하냐고 조심스레 물어보자 다른 멤버들이 무슨 소리 하냐며 타박을 주었다고 한다.
그 멤버는 선천적인 질병으로 인해 발성 장애가 있어서 원래부터 마이크를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놀란 덕훈이는 너희들이야말로 무슨 소리를 하냐며,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이 레이드를 뛰며 대화를 나누지 않았냐고 따졌지만,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소리만 돌아올 뿐.
그 멤버와 일대일로 통화를 했던 기억까지 있는 덕훈이는 서둘러 전화 목록을 열어 보았지만, 그곳에는 통화 기록 대신 무수한 문자 메시지만 있었을 뿐이었다.
서로 목소리를 통해 나누었다고 생각되는 대화들은 글자로 적힌 채 화면에 가득할 뿐, 녀석은 정말로 그 멤버의 목소리를 들었던 적이 없는 것이다.
알 수 없는 건 게임에서 본인 인증할 때 날라오는 코드를 받는 걸 빼고는 문자 같은 건 전혀 사용하지 않고, 대화는 당연히 카톡을 사용한 다는 덕훈이.
몇 년이나 함께했는데 어째서 그동안 목소리를 들어 왔다고 착각한 건지, 그것도 글자로 나눈 대화를 어째서 통화를 했다고 잘못 기억하고 있는지.
그리고 착각이라 하더라도 자신은 어째서 카톡 대신 문자를 사용했던 건지.
미심쩍은 구석 투성이지만 아직도 모임은 그대로 운영된다고 한다.
덕훈이의 게임 멤버들은 여전히 문 제없이 서로 넷상에서 아직도 어울리는 중이고.
그 발성 장애 멤버는 여전히 마이크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②
“200원짜리 동전이라고 혹시 알아?”
“200원 동전?”
점심시간 동아리방.
경원이의 물음에 선아가 어리둥절 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 동전이 있어……?”
“ 있어.”
단호하게 말하는 경원이.
“내 기억 속에는.”
들어 보니 녀석은 어릴 때 200원 짜리 동전을 사용했던 기억이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와 함께 학교 준비물을 사러 문방구를 갔는데, 그 곳의 뽑기 기계를 보고 해 보고 싶다고 말하니 어머니가 200원짜리 동전을 주셨다는 기억.
500원 동전보다는 크기가 좀 작고, 100원 동전보다는 조금 큰 크기의 200원 동전.
뽑기 기계는 100원짜리 두 개를 넣고 돌리게 돼 있는데, 200원짜리 하나를 넣으니 바로 돌아갔던 나름의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기억난다고 한다.
그 후로도 집에서 동전을 세다가 200원짜리를 발견하면 따로 분류해 서 모아 놓던 기억.
티브이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특정 한 연도가 적힌 주화는 비싸다는 설 명을 하던 M아 200원짜리 동전 중에서도 1984년이 적힌 동전은 가치가 특별하다는 언급 등…….
“어린이 은행 같은 걸 착각한 거 아냐? 장난감 동전 같은 거 있잖아.”
“아니라니깐.”
답답한 듯 가슴을 두드리는 경원이.
“장난감이라면 슈퍼에서 물건을 계 산한 기억이 있을 리가 없잖아. 부 모님이 경제 관념 교육을 시키신다고 200원짜리 동전 여러 개를 들고 심부름을 갔다 온 기억도 있다고.”
“조금 희귀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주 없었던 동전은 아냐. 어느 정도냐면 옛날 10원짜리 동전 정도? 지금은 대부분 작은 크기로 바꼈지만 그래도 간간이 동전 쓰다 보면 옛날 10원짜리도 은근히 발견되잖아. 그 정도의 희귀함이었어. 다 기억나.”
“···그래서? 정말로 있는 거야?”
“그야 없지, 당연히……
풀이 죽은 채 고개를 숙이는 녀석.
“초등학교 고학년에 들어서면서 영 재원 다니고 하느라 한창 공부에 집 중해서 바쁠 때가 있었거든? 밖에서 동전 쓸 일도 없어서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떠오른 거야. ‘그러고 보니 요새 못 본 것 같네?’ 하고.”
“흠.”
“그래서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너 무슨 소리 하냐고, 그런 동전 같은 건 이 세상에 없다고…… 나도 같은 말을 해 주고 싶은 심 정이다.
200원짜리 동전이 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예전에 뽑기 때나 심부름 기억을 얘기해 봐도 꽤 오래됐다 보니 아예 그 일 자체를 기억 못 하시더라고.”
그러더니 휴대폰을 슥 꺼내 들어 나한테 보여 주는 녀석.
“그런데, 이거 봐. 나 혼자뿐만이 아냐.”
경원이가 내민 건 인터넷의 200원 동전 검색 결과였다.
[200원짜리 동전 있었어요. 확실히 기억납니다. 200원이라고 써져 있고... 이걸로 과자도 사 먹고 했었어요.]
[옛날에 인기 과자 치토스가 200 원이었는데 그걸 사 먹을 때 편하게 사용했던 걸로 기억… ==; 근데 언젠가부터 없어짐… 사실… 저도 궁 금하네요.. +-+]
[정말 200원 동전 없었습니까? 생생하게 200원을 오랫동안 쓴 기억 이 나는데… 어릴 적 꿈이었나???]
그 외에도 어릴 적에 200원 동전을 썼다는 네티즌들의 글이 설왕설래 했다.
“생각보다 봤다는 사람들이 많네?” 갑자기 나도 헷갈린다.
있었다고?
근데 없지 않나?
그런 동전은 살면서 한 번도 못 봤는데.
아리송한 내 표정을 보고는 푸욱 한숨을 내쉬는 경원이.
“부장이 맞아. 그런 동전은 없어.”
[2019년 4월 30일 화요일, 12:32]
[이준 - 2회차]
[괴담 포인트 : 67]
[인과율 : 14%]
“기념주화로는 발행된 적 있어도, 실생활에서는 아예 없었던 동전이야. 원래 추리/미스테리만 파던 내가 괴담으로도 취미를 넓히게 된 게 아마 그게 계기였을 거야.”
“···그렇구나.”
빠르게 점심을 먹고 동아리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우리.
어린 시절 있었던, 사소하지만 절대 착각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착 각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없긴 왜 없어, 병신아. 있잖아.”
순간 소파에 누워 있던 진희가 우리 얘기를 듣고 있었는지 누운 채 대답했다.
“···뭐?”
책상에 앉은 채로 돌아보는 우리 들.
“200원 동전. 어릴 때 동네 오빠들이랑 그걸로 판치기 존나 했는데.”
“팡치기?”
나를 돌아보며 그게 뭐냐고 묻는 선아.
“그... 동전으로 하는 도박인데. 나 쁜 거야. 하여튼 그런 게 있어.”
대충 대답하고는 다시 진희를 향해 물었다.
“뭔가 착각한 거 아냐? 없다는 걸로 결론 내리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려던 참인데.”
“···없을 리가 있냐. 지금도 집에 쌓여 있는데.”
“뭐?”
그 말에 우리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한창 애니를 보던 덕훈이도 놀라서 이어폰을 벗고는 두리번댔다.
“뭔데? 왜?”
“···진희네 집에 200원짜리 동전 있대.”
“음‘?”
눈썹을 치켜뜨며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덕훈이.
그러더니 피식, 웃고는 다시 이어 폰을 낀다.
“우소 3 주다.”
퍼억-
대번에 멀리서부터 날아와서는 덕훈이의 머리를 맞고 튕겨 나가는 쿠 션.
“뭔 뜻인데.”
“아아... 모르는 건가?” 개의치 않은 표정으로 기분 나쁜 미소를 짓는 덕훈이.
“이곳저곳 전부 되다 만 인간들뿐 이군. ‘거짓말’이라는 뜻이다.”
“아아아아아악!”
대번에 소파에서부터 비명을 지르며 달려와서는, 뒤에서 녀석의 목을 감고 조르는 진희.
“진짜 이 새끼 좀 누가 죽여 줘!”
“부익… 부이이익… 미… 미안 뒤로 넘어가 버둥거리는 덕훈이.
그러자 하윤이가 장난스레 웃으며
녀석의 뱃살을 툭툭 치면서 말투를 따라 한다.
“오이오이, 덕훈 쿤. 방금의 패기는 어디 간 거냐고.”
“뀌익... 뀌이익.”
진희에게 헤드락이 걸려서 얼굴이 새빨개져, 혈관이 두드러지는 덕훈 이의 얼굴.
‘···하윤이가 장난치는 거 처음 봐.’
아니,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은근히 나한테는 많이 쳤던 것도 같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대체 저런 말투를 처음 개발한 것은 누구일까.
‘정말로 X같군.’
“그런데 정말로 200원짜리 동전 집에 있는 거야?”
“ 있다고.”
0.15 톤의 덕훈이를 제압하면서도 전혀 힘들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해 주는 진희.
“그럼 나중에 집에 가면 사진 좀 찍어서 보내 줄래? 궁금해.”
“귀찮으니깐 그냥 너희들이 와.”
슬쩍 서로의 눈치를 보는 우리들.
보통 집에 놀러 가는 게 더 귀찮은 거 아닌가.
“괜찮겠어? 알바 간다고……
“잠시 보고 가는 정도면 괜찮아.”
“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 부원들에게 눈짓으로 의견을 물어보니 다들 문제없다는 표정.
“고마워! 그럼 오늘 마치고 다 같이 진희 집에 놀러 가는 거다!”
“재밌겠다……
살짝 웃는 선아.
안 그래도 이해도를 올리기 위해서 부원들의 집에 한 번씩은 가정 방문을 실시할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진희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그날 오후, 종례 시간.
“나이가 들다 보니깐 오줌도 잘 안 나오고……
“푸하하.”
담임이 하고 싶은 말을 대충하고, 몇몇 리액션 좋은 학생들이 웃어 주는 시간이 끝난 후.
우리는 가방과 신주머니를 챙겨서 교실을 나섰다.
“가자~”
“다 모였지?”
복도를 우르르 나서는 우리 6명.
마침 계단을 내려오시던 화은 쌤이 우리를 보시고는 깜짝 놀라셨다.
“어디 가는데!”
“학교 마쳤으니 집에 가는 거죠.”
“딱 선생님만 빼놓고 놀러 가는 분 위긴데!”
속상한 듯 씩씩대신다.
“진희 집에 200원짜리 동전이 있다고 해서 확인하러 잠시 들르는 거 예요.”
“200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시는 장화은 선생님.
“선생님도 같이 가실래요?”
“아니, 선생님은 일이 있어서.”
푹 한숨을 쉬신다.
“그럼 다음에 봐. 안녕~”
“안녕히 가세요~”
선아를 향해 눈을 찡긋거리시고는 활기차게 복도를 걸어가시는 선생님.
곧 우리도 본관 입구에 나란히 서 서 신발을 꺼내 신었다.
“그런데 선아야, 어제 선생님이랑 무슨 얘기한 거야?”
“응? 으응……
눈에 띄게 당황하는 표정을 짓는 선아.
분홍색 낡은 운동화에 작은 발을 밀어 넣고는, 천천히 일어서며 대답 했다.
“나중에 말해 줄게……
“그래, 알겠어.”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