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동아리-89화 (89/130)

89 화

열한 번째 괴담 -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친구 (2)

“신림로 48가길 대승타운 3층. 알 아서 찾아와.”

그 말만 남기고 선아와 하윤이를 태운 채 저 멀리 사라져 가는 진희의 오토바이.

“아하하.”

“진희야 너무……

자기들끼리 뭐라 뭐라 웃으며 주고 받는 여고생의 대화가 저 멀리 엔진 소리와 함께 사라져 간다.

다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남자 부원들.

“···출발하자.”

“그래.”

안경 낀 재미없는 범생이, 덩치 큰 오타쿠와 함께 나는 터덜터덜 골목을 뒤따라 걸어갔다.

“그래서, 경원이 너는? 어제 레벨 업 하자마자 동시에 휴대폰이 울렸잖아. 무슨 전화였어?”

“아, 그거.”

왜소한 어깨에 흘러내린 가방을 들쳐올리며 경원이가 대답했다.

“부모님 전화. 과외 선생님을 새로 구했는데, 이미 다니던 학원 때문에 시간이 안 나서 학원을 끊고 과외를 받아 보자는 전화였어.”

“과외?”

“응. 나 같은 경우에는 학원에 붙 들어 놓지 않아도 혼자 알아서 잘하는 타입이고, 실제로 고등학교 첫 시험에서 전교 4등으로 증명했다 보니, 여럿이 묶어 놓는 학원보다는 나 한 명만을 케어해 주는 과외가 더 낫다고 생각하셨나 봐.”

덤덤하게 설명하는 경원이.

“···의외네. 영화에 나오는 부잣집 범생이들처럼 여러 학원에 시달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참나.”

녀석이 피식 웃는다.

“스파르타식 학습법 그런 거? 다 모르고 하는 소리야. 쉴 때는 쉬어 줘야 오래 공부할 수 있다고.”

“그렇지.”

전에 마트에서 마주쳤을 때 본 경원이의 부모님.

첫인상이 굉장히 깐깐하고 고지식 한 느낌인 데다, 저녁에 연락하면 항상 학원에 있다는 경원이의 말에 무조건 몰아붙이는 타입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제대로 된 교육관을 지니신 분들이셨나 보다.

“그 새로 오시는 과외 선생님. 그 사람이 시스템이 말해 준 멘토라는 사람일까?”

“글쎄.”

고개를 갸웃하는 경원이.

“나도 아직 만나 본 적은 없어서. 그런데 작년 수능 만점자래.”

“수능 만점?”

“어. 이번에 19학번으로 서울대 사회과학계열에 입학했고, 아버지가 인맥을 통해서 연락해 보셨는데. 마침 기숙사에 살다 보니 가깝기도 해 서 하겠다고 했대.”

“그렇구나……

여기 신림역은 서울대입구역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

보통의 고액 과외생들이 사교육 1 번지라는 강남, 특히 대치동으로 자주 불려가는 걸 생각해 본다면 여기 신림역 정도면 굉장히 가까운 편이다.

‘선아의 멘토는 장화은 선생님… 경원이의 멘토는 수능 만점 고액 과외생인가……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그게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 건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레벨업으로 능력을 얻는 것과 그 사람들이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그동안 당신의 역할 : 부원들이 고생하는 걸 느긋하게 지켜보세요!]

“··후우.”

머리를 털었다.

고민해 봤지만 역시 잘 모르겠다. 시스템의 조언대로 일단 느긋하게 기다려 보기로 마음먹었다.

“대승타운... 여기 같은데.”

덕훈이가 먼저 안으로 들어서고, 우리도 밖에서 빌라 이름을 다시 확인해 봤다.

“맞네. 여기 진희 오토바이도 있고.”

“들어가자, 부장.”

여기저기 불법 주차된 차량이 널려 있는 탓에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 다닐 수 있을 법한 좁은 골목.

버스도 다니지 않는 구불구불한 빌 라들이 들어선 골목이라 우리는 한 참을 걸어야 했다.

이윽고 계단을 걸어 올라 3층으로 가자, 들어오라는 듯 활짝 열려 있는 문 하나가 보여서 그리로 걸어갔다.

“어~ 왔냐. 미안한 데 없네.”

시발.

“분명히 여기 모아놨었거든? 근데 지금 보니 다 100원짜리네.”

덤덤하게 책상을 뒤적이며 말하는 진희.

“일단 좀 더 찾아볼게. 쉬고 있어.”

“···그래.”

나는 돌아서서 거실로 들어갔다.

진희의 집은 완전히 쓰레기통이었다.

방이 하나 딸려 있는 투룸이었는 데, 싱크대 가득 담겨 있는 더러운 접시들.

세탁기 앞에서부터 아무렇게나 널려져 있는 아디다스 바지, 티셔츠, 속옷…….

선아가 빨개진 얼굴로 바닥에 널려 있는 브라를 슥 발로 밀어 한쪽으로 치운다.

“전쟁 났냐고……

덕훈이도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거 실에 서서 주위를 둘러본다.

책상 가득한 화장품, 영양제, 텀블

러.

구석에 쌓여 있는 알 수 없는 쇼 핑백, 그리고 무수한 배달 음식의 흔적들.

하윤이가 코를 막고는 진희에게 물었다.

“혼자 사니?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 없어?”

“언니랑 둘이 살아.”

방에서 뒤적거리던 진희가 큰 소리로 대답해 줬다.

‘보통 여자 방이 더 더럽다더니… 정말 상상 초월이네.’

하지만 선아 방은 좀 낡기는 했어 도 깨끗했는데.

아무래도 진희의 무심한 성격 탓이 큰 걸까.

“미안, 없어.”

진희가 숨을 몰아쉬며 방에서 나왔다.

“···있다며?”

“그러게. 휴.”

성큼성큼 쓰레기더미를 헤치고 걸 어와서는 거실 소파에 발라당 드러 눕는 진희.

“분명히 있었는데. 이상하네.”

“···언제 모아 놓은 건데?”

“초등학생 때니깐……

손가락을 세는 진희.

곧 경원이가 고개를 저으며 대신 대답해 줬다.

“6년도 훨씬 넘었겠네.”

“주여.”

나는 신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바로 저번 달에 확인한 것도 아니고, 6년 전에 모아 놓은 걸 보여 주려고 데리고 왔다니.

그 정도 세월이면 얼마든지 중간에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이다.

심지어 이렇게 정리도 안 하고 개 판 쳐 놓고 사는 집에서는.

“이럴 수가 있냐능! 20분을 걸어왔는데!”

씩씩대며 화를 내는 덕훈이.

“아, 미안~ 미안~ 미안하다고~”

진희가 누운 채 소파에 발을 구른다.

상당히 대책 없는 무신경한 성격에 굉장한 기분파, 일진녀 이진희.

[인물 이진희에 대한 이해도가 5 올랐습니다.]

“후… 됐어. 없으면 어쩔 수 없지. 뭐 다른 건 없어? 보여 줄 만한 신기한 거.”

“신기한 거?”

나는 전쟁터 같은 거실을 슥 둘러 보았다.

“뭐 유물 하나 숨어 있을 법도 한 데.”

“ 흐음······

곰곰이 생각하던 진희가 누운 채로 스타킹 신은 다리를 꼬았다.

“중학생 때 앞자리 친구가 쓰던 일기장 보여 줄까.”

그걸 네가 왜 가지고 있는데.

“아니면 뒷자리 친구한테 빌린 만 화책.”

그러자 덕훈이가 씩씩대며 화를 낸다.

“빌린 게 아니라 뺏은 게 분명하다능 ” “

우리는 서로를 쳐다본 뒤,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주제를 바꿔서 다시 물어봤다.

“그럼 뭐 무서운 이야기라도 해 봐.”

“무서운 이야기?”

“좋은 의견이다, 부장. 진희는 왠지 사고 많이 치고 다녔을 것 같은데.”

그러자 발을 잔망스럽게 까딱거리며 곰곰이 생각하는 진희.

“흐음... 무서운 이야기… 사고

“···흐음?”

그러다 갑자기 ‘아’, 하더니 벌떡 일어나 앉는다.

“X발, 네가 말해 주니깐 기억났다.”

“뭔데?”

급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진희.

“어릴 때 같이 놀던 친구가 있었는 데, 엄청 나쁜 애였거든. 사고도 존 나 많이 치고.”

“너보다?”

“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존나 싸이코 같은 새끼였어. 막 웃으면서 동물 괴롭히고.”

“···그렇구나.”

진희가 나쁜 애라고 하길래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왔는데, 학교마다 한 명씩 있는 정신이 이상한 타입의 아이인 걸까.

“자폐 같은 건가?”

“아니. 평소에는 멀쩡해. 존나 착한 척 해, 평소에는.”

“흠 ”

확실히 진희도 막 나가는 무서운 스타일이긴 하지만, 그건 학교 폭력적인 무서움일 뿐.

동물을 괴롭힌다든가 하는 싸이코 같은 방향은 절대 아니다.

“근데 이상한 건 말야.”

소파 위에서 양반다리를 하며 자세를 바로잡는 진희.

“그때 같이 놀던 무리가 있었거든? 다섯 명 정도. 맨날 학교 째고 같이 기찻길로 놀러 다니고 그랬는데, 이 상하게도 지금은 아무도 걔를 기억 하는 사람이 없어.”

“···호오.”

경원이가 안경을 치켜세운다.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어린 시절

친구인 건가……

“재밌겠는데.”

다들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가까이 모여든다.

나 역시 재밌겠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이야기에 집중하려 자리에 앉으려던 찰나.

“···나, 난 일어서 있을래. 바퀴벌레 나올 것 같아.”

“어, 그럼 나도.”

“나, 나도……

무심코 나를 따라 앉을 뻔한 부원 들.

다시 일어서서 이야기를 듣기 시작 했다.

“어디 보자… 초등학교 4학년, 그 니깐 11살 때 일인데……

소파에 앉은 채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시작하는 진희.

잘 떠오르지 않는 옛날의 기억들을 생각해 내려는 듯, 시선은 허공을 향한 채다.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고, 아버지를 따라 이곳 신림역 근처의 빌라로 이 사 온 진희와 언니.

전학 가게 된 초등학교에서 유독 첫날부터 친절하게 대해 주던 자신의 짝꿍에 대한 이야기였-

“-잠깐. 무슨 초등학교?”

“···운당초등학교.”

막 얘기를 시작하려던 진희의 말을 끊고 내가 물었다.

“봉천로 쪽에 있는 운당초?”

“어. 왜‘?”

“아니, 그냥. 이야기의 배경이 어디 인가 궁금해서. 다 같이 신림에 사니깐.”

“너는 어디 나왔는데.”

“서울남부 초등학교.” 갑자기 얘기가 다른 데로 새는 우리.

“서울남부? 몰라, 그런 곳.”

“바로 근처인데… 몰라?”

“어.”

“알았어… 말 끊어서 미안해. 얘기 계속해.”

“크흠.”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고, 아버지를 따라 이곳 신림역 근처의 빌라로…

“···근데 여기 우리 학교 출신 없냐? 전부 신림에 살고 있고, 사람이 6명인데.”

집중력이 약한지, 얘기가 한번 샌 탓인지, 말을 하다 말고 진희가 슥 둘러보며 물었다.

하지만 고개 젓는 부원들.

“아무도 없다고? 그럼 다들 어딘데?”

“나는 중학교 때 여기 이사 와서 잘 모른다.”

“ 나도라능.”

중간에 이사 왔다는 경원이와 덕훈 이.

“나는 신림초……

선아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하윤이, 너는?”

갑자기 자신에게 향한 내 질문에 팔짱을 끼고 서 있던 하윤이가 잠시 침묵을 유지하더니, 곧 입을 열어 대답했다.

“나는 사립초등학교에 다녔어. 좀 멀어서 들어도 모를걸.”

“이사 온 건 아니고?”

“살기는 어릴 때부터 여기서 쭉 살았어.”

“그렇구나.”

[인물 인하윤에 대한 이해도가 5 올랐습니다.]

아싸, 이해도 올랐다.

“슬슬 얘기 좀 듣자.”

“좋아, X발 아무도 말 끊지 마. 시작한다.”

크흠, 하고 헛기침을 내뱉는 진희.

“근데 목마르다.”

“아, 제발……

“알겠어, 알겠어.”

부원들의 아우성에 큭큭대며 웃던 진희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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