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화
열한 번째 괴담 -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친구 (3)
아주 사소하지만 절대로 착각할 리가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③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고, 아버지를 따라 이곳 신림역 근처의 빌라로 이 사 온 진희와 언니.
전학 가게 된 초등학교에서 유독 첫날부터 친절하게 대해 주던 자신의 짝꿍에 대한 이야기였다.
다소 무신경하고 거침없던 진희의 성격에도 개의치 않고 항상 친절하게 숙제도 같이해 주고, 준비물도 대신 챙겨 주고 사근사근 말도 걸어 주었다던 자신의 짝.
“이름도 생각나. 김은정이었어.”
“···흔한 이름이네.”
하지만 친절하게 보이던 겉모습과는 다르게, 왠지 모르게 반 친구들은 짝 은정이를 슬금슬금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렇게 전학 간 지 한 달쯤 지난 후
야생말같이 거침없던 특유의 성격 답게 진희는 전학을 왔음에도 반에 서 뒷자리에 있던 학생들과 빠르게 친해졌고, 어느샌가 수업을 째고 친 구들과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게 일상이 되었다고 한다.
“막 어릴 때는 칠공주 그런 이름 붙여 가지고 몰려다니잖아. 남자애 들도 있었기는 한데 나도 거기 핵심 멤버로 금세 인정받았어.”
지금에서야 공주라는 별명은 유치 한 네이밍이지만, 내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보면 공주라는 감성은 여자애들 사이에서 꽤 흔한 종류였다.
그리고 그렇게 공주라는 칭호를 부 여받은 여자애들은 주로 고등학교의 일진 포지션인 애들이 많았고.
“근데 초딩이면 4교시밖에 없어서 남는 시간도 많을 텐데, 왜 굳이 학교를 째고……
“몰라. 그때는 그냥 그러고 싶었나 봐.”
담임도 무뚝뚝한 아저씨 타입이라 딱히 학생에게 관심 없었고.
마침 자기처럼 가정사가 안 좋아 방치당하는 아이들끼리 같은 반에 몰려 있었던 상황이라, 무리 지어서 엉뚱한 짓을 하러 다니기엔 정말 제 격이었다고 한다.
쉬는 시간에 담을 넘어 불량한 남자애들과 근처 문방구에 모여 앉아 게임을 하고 있으면, 수업 시간이 한창인데도 교실에 들어오지 않는 아이들을 찾아 거리를 헤매던 상담 선생님의 모습이 일상이었다고 하는 진희.
“담임은 별 신경 안 쓰기도 했고, 수업하느라 바빠서 주로 학교 안의 상담 선생님이 우리를 찾으러 다녔 어. 나중엔 문방구 사장이 알아서 우리 보면 학교에 전화를 걸기도 했는데.”
“거기서 볼펜, 샤프 같은 거 훔치 다가 걸린 적도 있고……
하여튼 다른 초등학교 애들이랑 시 비가 붙어서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거리를 헤매던 초딩들을 만만히 보던 중학교 양아치들이랑도 많이 싸우며 자랐다고 한다.
그렇게 마음대로 학교를 다니다가 도 어쩌다 제대로 교실에 앉아 있을 때면 항상 다음 수업 시간을 챙겨 주었다던 자신의 짝, 김은정.
“어디를 또 그렇게 다쳐서 왔냐고 걱정도 해 주고, 수업 시간 도중에 선생님한테 잡혀서 들어오면 항상 그 시간의 교과서를 미리 걔가 펼쳐 놓고 기다리고 있었어.”
“뭔가 애틋하다……
살짝 감동한 표정으로 얘기에 집중 하는 선아.
실제로 당시에는 좀 치근대며 쓸데 없이 말을 걸어 주는 귀찮은 아이라 고는 생각했지만, 진희도 짝에 대해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한 번은 학교를 마치고 진희의 자리로 공주 무리가 몰려와서.
오늘은 어디서 뭘 하며 놀지 얘기 하다가, 새로 오픈한 올리브영에 가 보기로 계획을 짰는데.
마침 자리에 앉아 있던 자신의 짝 은정이가 심심해 보이길래 막무가내로 같이 데려가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존나 무서웠겠는데… 일진 무리에 섞여 든 평범하게 착한 짝이라 니……
“조용히 해. 착한 애 아니었어, 들어 봐.”
헛기침을 하고는 본격적으로 얘기를 시작하는 진희.
“우리는 화장품 가게 같은 곳을 기웃거리다가, 아는 오빠들을 만나서 같이 공원에 가서 늘게 됐거든
“진희야, 이거 봐!”
“와, X발.”
짝이 웃으며 건네주는 네잎클로버를 진희는 감탄하며 받아 들었다.
“어떻게 찾았냐.”
대답 대신 해맑게 웃기만 하는 그 녀의 짝, 김은정.
가만히 입을 닫고 있으면 갸름하고 예쁜 얼굴일 텐데, 항상 저렇게 바보같이 팔자주름이 질 정도로 헤실 거리며 웃고 다닌다.
‘모자라지만 착한 타입이야.’ 같이 한 번 놀아 줬다고 너무 친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하며 진희는 풀숲을 뒤졌다.
“야, 여기 도마뱀 있다!”
곧 저 멀리 풀숲에서 그녀들을 부르는 다른 남자애들.
“ 진짜?”
네잎클로버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진희는 벌떡 일어선다.
그리고 머뭇거리는 짝 은정이의 손을 잡고는 서둘러 무리에게로 달려 간다.
“와, 진짜 있네. 도시라서 없을 줄 알았는데.”
번화가에서 노는 것도 돈이 필요한 일이다 보니, 진희의 친구들은 서울 아이들임에도 시골의 꼬마들처럼 밖으로 쏘다니고는 했다.
그리고 토지의 70퍼센트가 산으로 이루어진 대한민국이기에.
서울이라고 해도 구석구석 잘 살펴 보면, 은근히 아이들이 흙을 묻히며 놀 수 있는 풀숲이 생각보다 많았다.
“줘 봐. 만져 보자.”
“자.”
짓궂은 남자아이들 몇 명이 버둥거리는 도마뱀의 몸뚱이를 잡고는 감탄하는 진희에게 내밀었다.
씨익 웃으며 그걸 자연스레 잡아 드는 진희.
“너도 만져 볼래?”
이어서 자신의 짝에게로 슥 내밀자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로 쳐다보는 그녀.
입까지 벌리면서 쳐다보는 게, 영 락없이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느낌이다.
“자, 만져 봐.”
“꺅.”
진희가 막무가내로 들이밀자, 결국 못 이기고 웃으면서 꼬리를 집어 자신의 손바닥으로 옮기는 은정.
“야! 꼬리 말고 몸뚱이로-”
“앗!”
다급하게 외치는 진희의 말이 끝나 기도 전에 빠르게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도마뱀.
남겨진 꼬리가 잘린 단면에서 핏방 울이 맺힌 채 은정의 손바닥 위에서 날뛴다.
“몸뚱이를 잡았어야지, 도망갔잖아.”
“우와.”
고사리 같은 손 위에서 마음껏 춤을 추는 그것을 멍하니 쳐다보는 은정.
“놓쳤잖아, 바보!”
무리의 남자아이 중 한 명이 투덜 대지만, 은정의 호기심 가득한 눈동 자는 자신의 손바닥 위 날뛰는 꼬리에 고정된 채다.
“안 징그럽냐?”
“응 ”
.
툭 묻는 진희의 말에 홀린 듯이 대답하는 그녀.
“그만 쳐다보고 가자. 놓치겠다.”
벌써 다른 장난거리에 관심을 돌린 남자아이들을 따라, 진희는 짝의 손을 잡고 서둘러 이동한다.
다음 날 아침, 학교.
조례가 다 끝나 가는 9시가 돼서야 한산한 정문 입구를 들어서는 진희였는데.
웬일인지 자신의 짝이 입구 옆 기둥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희야!”
“네가 여기 왜 있냐.”
여전히 팔자주름이 질 정도로 바보 같이 웃으며 다가오는 짝지.
“ 있잖아!”
슥 손을 펼쳐 무언가를 내미는 은정.
그곳에는 어제 본 도마뱀의 꼬리가 말라붙은 채 엉겨 있었다.
“이런 거 더 없어?”
“어디 가면 구할 수 있어?”
그날부터 진희의 짝 은정은 자신이 가자고 붙잡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알아서 무리에 합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별 신경 쓰지 않고 끼워 주던 진희의 무신경한 친구들.
처음에는 따라와도 뭐라 하는 기색 이 없었지만, 점점 이상한 요구를 하기 시작하자 나중에는 짜증을 냈다고 한다.
“오늘은 도마뱀 잡으러 안 가?”
“어. 틴트 구경하러 갈 거야.”
“오늘은 도마뱀 잡으러 안 가?”
“중학생 오빠들이랑 놀 건데.”
“오늘은……
“얘네 집 가서 뮤방 정주행할 거야. 오지 마.”
“야, 저기 네 짝 또 따라온다.” 그날도 어김없이 종례 따위는 가뿐히 제쳐 주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막 운동장을 나서려던 찰나.
친구의 손짓에 뒤돌아보니 저 멀리 뛰어오고 있는 그녀의 짝, 은정.
“이진희 네가 친하게 대해 주니깐 저러잖아.”
“닥쳐.”
이내 은정이는 헉헉대며 숨을 몰아 쉬더니 입을 열어 물었다.
“오늘은……
“노래방 갈 건데.”
결국, 따라와서는 어울리지 못하고, 노래방 구석에서 조용히 있는 은정.
이쯤에서 슬슬 무리들이 진희의 짝에 대해서 불편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늘은……
“야, X발.”
다음 날, 쫓아온 은정이에게 무리 중 성깔 더러운 여자아이 한 명이 결국 심하게 짜증을 내며 욕을 하고 말았다.
“같이 안 놀 거면 꺼져. 와서 분위기 망치지 말고.”
“그럼 언제 갈 건데?”
“안 갈 거야. 이제 우리 그런 거 하고 안 놀아.”
“…그럼 토끼 만지러 갈래? 오늘 사육장 문 열려 있어!”
눈치도 없는지 무서운 공주님들을 상대로 해맑게 제안을 하는 은정.
“안 가.”
“그럼……
“야, 병신아.”
결국, 여학생의 남자친구가 위협적으로 쏘아 보며 다가왔다.
“너 좀 모자라냐? 같이 안 노니깐 꺼지라고. 몇 번 놀아 주니깐 친구 된 줄-”
“그만, 됐어. 야. 오늘 하루만 같이 가 준다.”
결국, 진희가 앞으로 나서서 상황을 중재하고는, 그날 하루만 무리와 어울리는 대신 은정이와 둘이서 도 마뱀을 잡으러 갔다고 한다.
“오늘만 같이 놀아 줄 테니깐 더 조르지 마.”
“응!”
이내 근처의 풀숲이 우거진 공터에 도착한 둘.
그러자 그 은정이라는 친구는 미친 듯이 네발로 기어 다니며 도마뱀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고 한다.
“야, 조심히……
“헥, 헥.”
곧 은정이는 무언가를 한가득 손에 쥐고 와서는 진희에게 보여 주었다.
그곳에 가득한 건 저마다 잘린 채 꿈틀거리는 10개도 넘는 도마뱀의 꼬리.
“진희야, 이거 봐!”
유으 ”
펄떡펄떡 손에서 몇 방울 안 되는 피를 뿌려 가며 날뛰는 그것들을 보고, 결국 진희는 짝의 팔을 세차게 뿌리쳤다고 한다.
“X발, 미친! 왜 그런 이상한 거에 집착하는데?”
“어……
바닥에 우수수 떨어지는 도마뱀의 꼬리들.
“이런 거 하려는 거면 같이 놀자고 따라오지 마!”
“이런 이상한 짓 하면 안 돼. 알겠어?”
“···왜?”
망연자실한 얼굴로 땅에 떨어진 꼬 리들을 보며 묻는 그녀의 짝, 김은정.
“왜 하면 안 되는데?”
“기분 나쁘잖아!” 지금 같았으면 때리든가 아니면 그런 건 나쁜 짓이라고 타일렀을 테지만, 그때는 초등학교 4학년.
진희도 그렇게 버럭 소리 지르고 돌아서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은정이를 남겨 놓고 간 다음 날.
점심까지 늘어지게 자고 급식을 먹 으러 학교에 간 진희는, 상담 선생님의 급한 호출로 상담실로 끌려갔다고 한다.
또 수업을 쨌다고 혼내는 건가 싶었지만, 의외로 진중하게 그녀의 손을 잡고는 짝 은정이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단아한 젊은 여자 상담 선생님.
“진희 네가 전학 와서 그 자리에 앉기 전까지 은정이를 피하는 아이 들이 많아서 걔는 쭉 혼자 앉아 있었거든. 은정이는 좀… 많이 아픈 애야. 너도 어떤 건지 알겠지?”
“·♦·조금요.”
“오늘 너 없을 때 오전에 수업하려고 은정이가 가방을 열었는데, 그 안에서 갑자기 몇십 마리의 도마뱀 이 튀어나와서 교실이 난장판이 되었어. 너랑 어제 같이 돌아다니며 잡은 거라고 하던데, 맞니?”
“걔가 멋대로 따라온 거예요.”
“ 石’ ”
m- -
한숨을 푹 쉬고는 진희의 손을 꽉 붙잡는 다정하신 상담 선생님.
“이해는 해. 하지만 혹시라도 은정이가 또 같이 놀려고 따라오면 말려 줄 수 있겠니? 원래 마치고 항상 상담받으러 여기 상담실로 오는 게 은정이의 일정이거든.”
“네, 알겠어요.”
아마도 선생님은 이전부터 은정이의 기행을 알고, 자주 면담을 하셨던 사이였나 보다.
“그리고 그 애가 또 동물을 괴롭히는 모습을 목격하면… 나한테 제일 먼저 말해 줄래? 부탁할게.”
“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진희가 선생님에게 은정이에 대한 기행을 보고하는 일은 없었다.
진희의 무리가 은정이를 놀러 가는 데 끼워 주지 않기 시작한며칠 뒤, 학교에서 키우던 토끼들이 모조리 몰살당했기 때문이다.
“요새도 토끼 키우는 학교가 있어‘?”
“정부에서 초딩들 동물들이랑 교감 시키는 프로그램 한다고 학교에 설 치해 놨었거든. 그게 하루아침에 싹 다 죽어 있었어. 그때 학교가 뒤집 어져서 경찰까지 와서 사육장 안에 막 뒤지고 그랬음.”
진희가 얘기하다 목이 마른 지 콜 록거리며 기침을 한다.
“담배피니깐 그렇지.”
“시끄러.”
곧 덕훈이가 냉장고로 가더니 생수 한 병을 꺼내 왔다.
“땡큐.”
순식간에 500ml 생수 한 병을 비 우고 입을 닦는 진희.
“근데 존나 놀랬던 게, 다음 날 내 책상에서 피범벅이 된 식칼이 나온 거야.”
“알아. 은정이가 네 책상에 넣어 놨겠지.”
아마도 토끼를 죽이는 데 썼다고 생각되는 식칼, 정확하게는 기다란 사시미칼.
젊은 상담 선생님이 진희의 손을 붙잡고는 연이어 한숨을 내쉰다.
“아무도 널 의심 안 해. 아이들도 당연히 은정이가 했을 거라고 생각 해.”
“다행이네요.”
이내 이마를 짚으시며 고개를 저으시는 선생님.
문제아들이 학교에 몰려 있어서 피 곤하신 표정이다.
“좀 더 경험 있는 선생님이 이 자리를 맡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결국 이렇게 됐구나.”
“죄송해요. 멘날 놀러 다니고 걱정 만 끼쳐 드려서.”
그러자 상담 선생님은 이마를 짚던 중에도 피식 웃으셨다고 한다.
“진희 다 컸네. 그런 말도 선생님 한테 할 줄 알고.”
씨익 웃는 진희였지만, 이내 잡은 손을 찰싹 때리시는 선생님이었다.
“말뿐인 거 다 알아, 요 녀석아. 학교나 잘 나와.”
“네.”
“은정이는……
다시 한숨을 푹 내쉬시고는 못 했던 얘기를 마저 하신다.
“은정이는 다음 주에 대안학교로 전학 갈 거야. 은정이네 부모님도 동의하셨어.”
“빠르면 월요일에 교육청 관계자들이 와서 짝인 너에게 은정이에 관해 서 이것저것 물어볼 건데, 너무 놀 라지는 말고.”
“저 그런 걸로 안 놀라요.”
그러자 다시 웃으며 진희의 손을 찰싹 때리시는 상담 선생님.
“좀 놀라야 학교도 잘 나오고 할 텐데.”
“푸핫.”
“됐어. 들어가 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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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인류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