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화
열한 번째 괴담 -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친구 (4)
그렇게 선생님과의 상담을 마치고, 기다리던 무리와 합류해 하굣길을 나서던 진희.
그날조차도 짝 은정이는 어김없이 뒤를 쫓아왔다고 한다.
“야, 뒤에 또 네 짝 온다.”
“신경 꺼.”
“대놓고 쫓아오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쓰냐.”
돌아보며 투덜대는 아이들.
진희는 무시하고 녀석들에게 물었다.
“그래서 오늘은 어디 갈 건데?”
“내 남친 집 가자. 걔가 재밌는 영상 구해 놨대.”
“지루하게 무슨 영화야……
“영화 아니고, 엄청 재밌는 동영상이라는데.”
발랑 까진 초등학생들답게 벌써 연애도 하고 다니는 아이들.
그중 한 아이의 남자친구가 집이 비어 있다며 재밌는 걸 보자고 꼬셨고.
운당초등학교의 문제아들은 우르르 그곳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의 멘탈로는 감당하기 힘든 아주 잔인한 동영상을 보게 된다.
“야, 이진희. 저기 네 짝.”
빌라 입구를 들어서기 전, 같이 어울리는 남학생의 고갯짓에 뒤를 돌아보니 진희의 짝 은정이가 그곳까지 따라와 있었다.
“어떡할 거야?”
“후우.”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진희.
괜히 같이 놀아 줬나, 하고 후회하는 마음도 든다.
하지만 그래도 곧 있으면 특수학교로 전학 간다는 걸 생각하자 왠지 불쌍하게 여겨졌는지, 마음을 고쳐 먹었다고 한다.
“걍 오늘 하루만 끼워 주자. 쟤 다음 주에 대안학교로 전학간대.”
“대안학교? 뭐 문제 일으켰냐.”
“이 새끼들 학교도 안 나오니 뉴스에 어둡네.”
진희는 웃으며 말했지만, 역시 다들 꺼리는 기색이다.
“거기 정신병자들만 가는 학교잖아.”
“나 무서운데. 갑자기 우리 집에서 칼 들고 설치면 어떡해.”
“맞아, 맞아.”
여자들은 화장을 떡칠했고.
남자들은 커다란 덩치에 중학생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삭은 얼굴을 하고서는.
진희의 갸날픈 짝을 두려워하는 상황.
“병신들, 폼 안 나게.”
결국, 진희는 멀리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은정이에게로 다가 가서는 같이 가자고 말했다고 한다.
“쓸데없는 짓 하면 안 돼. 물건 훔 치거나 해도 안 되고.”
“응!”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힘차게 따라오는 은정이.
“근데 너 왜 내 책상에 식칼 넣어 놨냐.”
“헤헤… 모르겠어……
“이거다.”
“야, 미친……
남자애가 공수해 왔다던 재밌는 동 영상은 당시 유행하던 엽기 트렌드의 영상들.
웬 아저씨가 갑자기 토를 하는 영 상부터 해서 화장실 개그까지 더러운 주제 투성이였다.
“X발, 이런 거 보여 주려고 불렀 냐……
인상을 찌푸리는 진희였지만, 다른 아이들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박 장대소하며 자기들끼리 손뼉을 치며 웃었다고 한다.
곧 귀신이 깜짝 튀어나오는 ‘깜놀’ 영상들을 틀고는 서로의 표정을 보며 ‘쫄았네, 쫄았네.’ 하며 놀리기도 하고.
심드렁하게 그것을 보던 진희는 혹 시나 싶어 슬쩍 은정이의 표정을 살 폈지만, 다행히 즐기는 기색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자기처럼 똑같이 역겨웠는 지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을 뿐.
“야, 이게 진짜야. 이제부터 제대로다.”
컴퓨터의 주인인 남학생은 곧 비장의 카드라도 꺼내는 양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더니, 어딘가 숨겨진 폴더로 마우스를 클릭해 나갔다.
“가족한테 안 걸리도록 꽁꽁 숨겨 둔 건데, 비위 약한 사람은 알아서 빠져.”
“쫄아서 나가는 사람 없제?”
서로 돌아보며 겁먹었는지 확인하고 다시 킬킬대는 일진들.
남녀 할 것 없이 단순무식한 녀석 들만 모였기에, 자극적인 게 있다면 거침없이 시도하는 모습이다.
‘비위······?’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드는 진희였지만, 단순히 지금까지처럼 징그러운 영상인 줄로만 생각하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띡_
〈레바논 다이빙 사고〉
영상의 시작은 한 남자가 번지점프 대에서 준비 운동을 하는 게 시작이었다.
외국 영상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여러 말들이 오가고, 곧 남자는 번 지점프대에서 힘차게 점프를 한다.
그 순간, 지금껏 사람들 사이에 숨 어있던 삐에로 한 명이 톱을 들고 달려와서는, 킬킬대며 과장된 포즈로 로프의 줄을 끊어 버린다. 망연자실한 남성은 비명을 지르며 콘크리트 바닥으로 추락하고, 카메 라맨과 사람들은 서둘러 땅으로 내려간다.
끔찍한 상처를 입었지만 아직 숨을 쉬는 남자의 모습을 카메라맨이 근접 촬영하고, 저 멀리 화면 구석에 서 삐에로가 미친 듯이 웃으면서 영 상은 끝난다.
“우욱, 씹……
영상이 끝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 가 구토를 하는 한 여자아이.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두개골의 드러난 속까지 다 보여 주는 고어 영 상.
언제 웃고 떠들었냐는 듯 삽시간에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야, 이건 아니지.”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하던 초등학생들은 그 끔찍한 모습에 충격을 받았는지 다들 말을 잇지 못한다.
“X발… 역겹네.”
결국, 무리 중에 가장 험악한 남자 아이 한 명이 욕을 내뱉는다.
점점 수위가 세져 가는 영상들에 센 척하며 허세를 부렸던 다른 아이 들도 이윽고 하나둘 컴퓨터의 주인을 탓한다.
“좀 너무하잖아……
“아, 썅. 먹은 거 올라올 것 같아.”
순식간에 싸늘해진 분위기.
하지만 당황한 건 틀어 준 본인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미, 미안… 나도 소문만 듣고 너 희랑 보려고 저장해 놨던 거야.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아, 진짜… 잠만. 나 재 괜찮은지 좀 보고 온다.”
변기에서 토를 하던 여자아이가 괜 찮은지 다들 나갔고, 나머지도 자리
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물을 마시는 사이.
지금껏 가만히 있던 은정이가 한산 한 틈을 타 잽싸게 키보드를 차지하더니, 그 영상의 주요 부분을 돌려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야, 뭐 하는… 우욱.”
남자의 갈라진 두개골을 모니터 전 체화면으로 띄우고는, 유심히 그걸 살펴보는 은정이.
말리려고 다가가던 진희는 그 잔인 한 화면들의 향연에 그냥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은정이는 서툰 조작으로 영상 이곳 저곳을 돌려 보더니, 삐에로가 남자의 로프를 자르는 장면을 몇 번이고 들여다본다.
쓱싹쓱싹.
쓱싹쓱싹.
과장된 포즈로 로프를 자르는, 사람이 아닌 악마 같은 광기를 내뿜는 삐에 로.
그 장면을 눈을 있는 대로 크게 떠 마치 동공이 튀어나올 듯 집중하는 은정의 모습.
진희는 순간 짝꿍에게서 느껴지는 이상한 분위기에 섣불리 손을 델 수 없었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이 곧 뭐라 분위기를 정리하며 돌아오자, 언제 키보드를 차지했냐는 듯 순식간에 뒤로 빠져서 진희 옆에 얌전히 앉는 은정.
그리고 그날,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아 함께 말 없이 걷던 둘, 갈림길에서 헤어지기 전 은정이는 갑자기 진희를 불러 세 웠다.
“진희야, 이거 봐.”
다다다 달려가 저만치 골목 앞으로 가는 은정.
“쓱싹쓱싹. 쓱싹쓱싹.” 동네 골목길, 석양을 등진 채 은정은 영상 속 삐에로의 동작을 흉내 낸다.
“쓱싹쓱싹. 쓱싹쓱싹.” 연극을 하듯이 크게 과장된 동작으로 무언가를 자르는 시늉을 하는 은정.
“쓱싹쓱싹. 쓱싹쓱싹.” 등 뒤에 저물어 가는 석양이 역광을 만들어 내 은정의 기묘한 행동에 길게 그림자를 덧붙인다.
“쓱싹쓱싹. 쓱싹쓱싹.” “…나 간다.”
그런 짝을 버려두고 갈 길을 가려는 진희.
하지만 지나치나 싶으면 은정은 다시 저만큼 앞으로 다다다 뛰어가서는 길을 막고 크게 동작을 반복한다.
“진희야, 쓱싹쓱싹. 쓱싹쓱싹.”
“하지 마.”
툭 어깨를 부딪치고 다시 갈 길을 가는 진희.
은정은 다시 다다다 달려가서는 앞을 막아선다.
“헥헥. 쓱싹쓱싹. 쓱싹쓱싹.”
개처럼 혀까지 내밀어 가며 그 동 작을 하는 데 완전히 몰입한 표정.
“쓱싹쓱싹. 쓱싹쓱싹.”
“이렇게, 진희야. 쓱싹쓱싹.”
한참을 그러던 은정은 순간 멈칫하더니, 슥 눈동자를 들어 진희를 가만히 쳐다본다.
“···진희야.”
“나 이상하지?”
“어.”
툭, 하고 무심하게 대답하는 진희.
“전학 간다며. 거기 가서는 사고 치지 말고 잘 지내.”
은정이 석양을 등진 채 커다란 눈 망울로 진희를 빤히 쳐다보더니, 곧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응.”
“그래, 간다.”
가려는 진희.
다시 다다다 쫓아온 은정은 진희의 어깨너머로 고개만 빼꼼히 내민 채 말한다.
“너도 학교 잘 다녀. 수업 그만 빼 먹고.”
“참나.”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진희는 피식 웃고는 갈 길을 간다.
그렇게 동네 골목길에서 석양을 등 진 채 헤어진 둘.
다음 날, 근처 아파트에서 외벽 도 색 작업을 위해 고층에 매달려 있던 인부들의 로프를 누군가 몽땅 끊어 서 3명이 추락사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 * *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야. 주말을 보내고 학교에 가니 은정이가 무표정으로 짐을 정리하고 있었고, 교육 청 사람들이 들이닥쳐서는 짝인 나를 상담실로 데리고 가 은정이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어. 정말로 대안학교에 보내야 할 수준인지, 어느 정도로 심각한 건지…… “교실로 돌아오니 짐을 다 챙겨 떠 났는지 옆자리에는 아무도 없었고. 곧 교육청 관계자들과 함께 운동장을 나서는 은정이의 모습을 멀리서 본 게 마지막이야.”
“···후우.”
곰곰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내가 물었다.
“그 추락했다는 인부. 네 짝꿍이 죽였다고 생각해?”
“어.”
“···실제로는? 경찰 조사 결과는 어땠어?”
“범인 못 잡았대. 아무 증거가 없어서.”
“시, 신고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능 ”
·
덕훈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묻는다.
“네 짝이 죽였다고……
“무슨 증거로?”
어깨를 으쓱하는 진희.
“어제 내 친구가 잔인한 동영상 봤으니깐 살인 사건 범인이라고?”
“···설명하기 애매하긴 하네.”
“그래도 면담 때 내가 열심히 걔의 증상을 교육청 관계자들에게 설명해 서 대안학교로 무사히 보내 버렸으 니, 그걸로 된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근데 진짜 이상한 건 말야.”
진희가 다시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꺼낸다.
“걔가 그렇게 전학 간 후에도 그때 같이 놀았던 무리들끼리는 계속 놀았거든? 근데 얼마 전에 모였을 때 갑자기 생각나서 물어봤더니, 아무 도 걔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어.”
«... 정말?”
“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진희.
“두 달 전에 고등학교 입학식을 앞 두고 멤버들끼리 모였었거든. 그때 옛날에 전학 왔을 때 처음 같이 앉았던 짝꿍 얘기를 꺼내니깐 다들 갸 우뚱하는 거야. 같이 놀았던 얘기 들려줘도 모르겠다며 어깨를 으쓱할 뿐이고.”
“교실에서 도마뱀 몇십 마리가 튀 어나온 얘기를 말하니 그런 적 없었대.”
“···흐음.”
어떻게 된 걸까.
학창시절 이상한 친구의 얘기에서 갑자기 흐름이 괴상해진다.
“사육장에 토끼 몰살당한 것도 물으니 다행히 그건 기억난다는데, 그 것도 칼에 찔려 죽은 게 아니라 근처 고양이가 기어들어 와서 다 물어 죽인 걸로 기억하더라고.”
“같이 집에 놀러 가서 영상 본 건?”
“그것도 기억난다는데 당연히 은정이 얘기는 쏙 빠져 있었고.”
“흐음.”
물론, 어렸을 때기도 하고 오래되기도 했으니 잘못 기억할 수도 있지만.
한두 명도 아니고, 무리 전원이.
그런 이상한 사건의 중심이었던 아이를 기억 못 할 수가 있을까.
“알고 보니 진희 너가 막 귀신이랑 놀았다거나 하는 결말은 아닐지 내 추측에 진희가 웃기다는 듯 피 식 웃는다.
“리얼 있기는 있었어. 근데 왜 없었다고 말도 안 되는 착각을 다들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돼서 그래.”
“그 시점에 전학 갔으면 졸업 앨범에도 없을 거고… 흠……
진희 본인은 확신하는 것 같지만 증명할 수단은 없어 보인다.
‘좀 이상하긴 하네.’
곰곰이 생각하던 우리의 시선은 어느덧 경원이를 향해 있었다.
“어때? 뭔가 떠오르는 거 있어?”
“글쎄.”
경원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일단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어린 시절 친구 류의 괴담들은 상당히 많 거든. 예를 들자면……
슥 팔짱을 끼는 녀석.
“분명히 A라는 친구와 자주 놀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A는 전혀 우리 멤버가 아니었고, 그건 B라는 친구였다던가. 혹은 동네에서 유명했던 미친 여자가 어른이 돼서 물어보니 자기 외에는 기억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던가 “흠.”
“반대인 경우도 많아. 서먹서먹한 사이인 줄 알았는데 사진 앨범을 돌아보니 절친이었다던가. 틀림없이 죽은 걸로 알았던 초등학생 때의 친 구가 멀쩡히 동창회에 나타나서 놀랐고, 자기 외에는 아무도 부고 소식을 기억하지 못한다던가.”
“ 소름······
“정확히는 만델라 효과라고 불리는 사회현상이야.”
안경을 고치는 경원이.
이름까지 붙어져 있는 현상이구나.
“주로 주변 인물들의 기억과 내 기억이 명확하게 다른데,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부분의 디테일마저 뚜렷하게 살아 있는 점. 아무리 기억을 대조해 봐도 누가 착각하는 거라고 볼 수 없는 데서 오는 혼란스러움이 포인트인 괴담들이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부원들.
본인이 당하는 입장이라면 굉장히 답답할 법한 괴담이었다.
“괴담 아니고 경험담이라니깐.”
볼멘소리를 하는 진희.
“진짜로 있었던 애라고. 다 기억나, 엠창.”
“알아, 알아. 그냥 괴담으로 친다면 어떤 부류인지 얘기해 본 거야.”
흥분하려는 진희를 서둘러 진정시 켰다.
“그래서? 그 선생님은 어때? 그분 도 기억 못 하셔?”
그러자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을 짓는 진희.
“초등학교 졸업하고는 아직 안 만 나 봤는데……
“그분한테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를 것 같은데.”
경원이가 소파에 앉은 진희를 내려 다본다.
“본인이 면담한 학생이었잖아. 치매 걸린 게 아니고서야 기억하시겠지.”
“···뭐, 그렇겠지.”
“번호 같은 거 가지고 있어?”
“아니.”
그 말에 경원이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는다.
“은사님 번호도 없냐.”
“은사가 뭔데.”
“몰라. 사전 보든가.”
곧 내 옆으로 선아가 슬쩍 다가온다.
“준아… 은사가 뭐야......?”
은색 뱀이라고 설명해 버릴까.
“···은인이 되는 선생님이라는 뜻이야.”
“ 아하······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둘.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