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열한 번째 괴담 -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친구 (5)
“어때? 그렇게 답답하면 한번 선생님 찾아가서 물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은근히 괴담을 찾아 퇴치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 진희에게 슬쩍 떠보는 나.
“흠. 뭐 굳이 그렇게 할 것까지야 있겠냐…… “그 학교에 아직 계시는 건 맞아?” “어. 계시긴 계셔. 같이 놀던 애 중 한 명이 자주 찾아갔대.”
“그럼 걔한테 번호 물어보면 되겠네.”
“못 해. 소년원에 있거든.”
진희는 일을 벌이려는 생각은 없는 지 고민하는 눈치다.
그러자 덕훈이가 나서서 한 번 더 부추겼다.
“괴담에 엮인 걸 수도 있지 않냐고. 찾아서 해결하면 포인트도 얻고 답답한 것도 해결하고 일석이조인 데.”
“그게... 학교 다닐 때 쌤한테 너무 신경 쓰이게 해서. 다시 찾아뵙기가 좀 그럼.”
민망한 표정을 보니 그래도 양심은 있나 보다.
“지금은 학교도 잘 다니고 돈도 벌고 있잖아. 근황 들으시면 오히려 좋아하실 것 같은데.”
“···그럴까?”
“그럼. 가르친 학생들이 찾아와 주는 거 선생님들한테는 엄청 보람찬 일이라고.”
내 설득에 결국 진희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내일 바로 가 보지, 뭐.”
“좋아. 같이 가자!”
그렇게 우리는 내일 학교를 마치고 진희가 졸업한 초등학교를 함께 찾아가기로 약속한 후 집을 나섰다.
“잘 가.”
“진희야, 알바 열심히 해~”
“어~”
터덜터덜 슬리퍼를 신고 마중 나온 진희와 다들 인사를 나눈 후.
걸어갈 사람은 걸어가고 버스를 탈 사람은 버스를 타기 위해 각자 찢어 졌다.
이곳에서는 방향이 같은 건지 경원이는 나와 함께 관악 05번 마을버 스를 탔다.
부우우웅-
퇴근 시간대라 북적이는 승객들 틈에서 중심을 잡는 우리.
경원이는 버스 안에서도 한 손으로 핸드폰을 들고는 열심히 뭔가를 검 색하는 중이었다.
“아까부터 뭘 찾는 거야?”
“그냥… 아무리 생각해도 괴담 같아서. 이것저것 알아보는 중이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도 스마트폰에 고정된 경원이의 시선.
“폰은정? 이건 또 뭐야… 어어-”
“조심해.”
버스가 급정거하는 탓에 비틀거리는 녀석을 넘어지지 않도록 가방을 잡아 세워 준다.
그러고 보니 나도 궁금한 게 하나 생겨서 핸드폰에 집중하는 경원이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해?”
“ 뭘?”
“괴현상 말야.”
버스 안의 승객들에게 너무 들리지는 않도록 작게 얘기하는 나.
“묘하게 우리한테 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것 같지 않아?”
“···그러게.”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경원이.
“부장도 신경 쓰였나 보구나. 빈도가 좀 잦기는 해.”
“어떻게 생각해? 역시 마왕이 보내는 걸까?”
“흠 ”
흔들리는 버스 안, 석양이 저무는 창밖을 내다보며 곰곰이 생각하는 녀석.
나는 그런 경원이를 보며 내가 생각한 이상한 점을 몇 가지 말해 보았다.
“지난번 구석놀이, 강령술 사건. 솔 직히 어이없을 정도로 한 번에 귀신을 세 마리나 불러내는 데 성공해 버렸잖아. 주말의 마이크래프트 같은 경우도 원래 그런 소문이 돌기는 했지만, 그래도 작위적일 정도로 단 번에 다들 엮여 버렸고……
생각에 잠겨 있는 표정인 경원이.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인다.
부우웅- 덜컹.
“내립시다~”
아줌마 한 분이 우리를 밀치고 지 나간다.
다시 출발하는 버스.
창문 밖으로 경사를 타고 지나치는 골목을 보며 우리는 서 있다.
“내 생각에는 말이다, 부장.”
천천히 입을 여는 녀석.
“학교 안의 이상한 세력이나, 학교 밖의 클로버 기업이나… 괴담과 연관된 조직들은 원래부터 있어 왔지만, 아무래도 그걸 엮이게 하는 건 마왕이 부리는 수작이 아닌가 싶다.”
“···흐음.”
창문 밖으로 들어오는 석양이 경원이의 안경알을 반짝인다.
“운동장 아래에 엎드려서는 호시탐 탐 우리를 노리고 있어. 일거수일투 족을 살피며. 그러다가 괴담과 엮일 만한 상황에 놓이면, 그대로 놈이 엮어 버려서 우리를 죽이려고 수를 쓰는 거지.”
“마왕이……
나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내가 마왕이었어도, 타깃인 꼬맹이들이 알아서 강령술을 해 주고 있다면.
바로 개입해서 놈들을 죽일 만한 귀신을 보냈을 것이다.
‘…그거라면, 우리가 찾아 나서는 족족 괴담과 엮이는 것도 이해가 가는군.’
“하지만 부장, 조심해야 해.”
안경을 치켜세우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 녀석.
“마왕이 보낸 게 확실한 괴담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것도 몇 개 있었어.”
“···그랬지.”
“부장이 입학식을 하고 첫 주에 연이어 몰아쳤던 괴담들. 그리고 포린 세스, 구석놀이의 경우에는 명백하게 마왕이 보내거나 엮을 상황이 오자 엮어 버린 게 맞아. 연결점이 없고 선생들도 함께 당해 버렸거든. 하지만……
곧 내가 정차해야 할 정거장이 가까워져 오고, 나는 천천히 내릴 준 비를 하며 녀석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과학 선생이 걸었다가 역으로 당 했던 저주. 그건 마왕과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인 선생들이 알아서 주도한 거 니.”
“···나도 그렇게 생각해.”
“게임 속으로 들어갔던 사건도 그 래.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게임을 알 아서 플레이해 주니 마왕이 약간의 수를 써서 그 괴담이 실현되도록 했을지는 몰라도, 정작 그 괴담덩어리인 게임 자체는 이미 10년 전부터 만들어져 있었던 거야. 알겠어?”
나는 이해했다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시스템이 수집해 왔다고는 하더라도, 그 괴담들은 원래부터 이 세상에 존재했었던 것들이다.
“마왕, 학교, 기업. 이 세 가지 별 개의 적이 서로 맞물려서 돌아가고 있는 거야.”
그리고 마왕이 선생들을 죽이는 데 거리낌 없는 걸로 보아, 아이러니하게도 다 같은 한편은 아니다.
이제부터 이 셋은 서로 어떻게 얽 히고설키게 되는 걸까.
그리고 그 가운데서 우리 작은 괴담 동아리는 스스로를 지켜 낼 수 있을까.
* * *
집으로 돌아오자 어느덧 저녁.
어머니가 고등어를 구우시는지 현관 입구에서부터 고소한 생선구이 냄새가 가득하다.
“다녀왔습니다~”
“친구랑 놀다 왔니?”
주방에서 목소리로만 인사하시는 어머니.
“네, 하하. 동아리 애들이랑 같이 있다 왔어요.”
“그래~ 어서 손 씻고 밥 먹어, 아 들.”
“네~”
가방을 내려놓고 교복 대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고 나오자 생선을 굽고 계시는 어머니와 그릇들을 내려놓고 계시는 아버지가 보였다.
“엄마랑 아빠가 밥 차렸으니깐, 설 거지는 준이가 해라.”
“네, 알겠어요.”
곧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우리 가족.
아버지가 생선을 뜯으시다가 가만히 내 눈치를 보시더니, 조심스레 말을 꺼내신다.
“그래서, 준아.”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시는 아버 지.
“중간고사 성적은… 좀 어떻게 됐 니?”
“아, 맞다!”
발표 자체는 어제 월요일에 났었는 데, 부원들에게 포인트 정산해 주느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낸 탓에 말씀 드리는 걸 깜빡하고 있었다. 나는 웃으며 자신만만하게 말씀드렸다.
“저 전교 15둥 했어요.”
“뭐! 15등!!”
아버지가 젓가락을 탁 내려놓으시며 놀란 표정을 지으신다.
“치킨 시켜!”
치킨
“여보! 벌써 밥 먹고 있잖아요, 호 호.”
“그래? 그럼 밥 다 먹고 다 같이 드라이빙이나 하러 가자! 아빠가 운전할 테니!”
“당신도 참! 호호.”
갑자기 흥분하신 부모님.
왜 그런가 전생의 기억을 곰곰이 떠올려 보니, 알 것 같았다.
내 성적은 고등학생 때는 입시 때 문에 열심히 해서 40~50등이었지만, 중학생 때는 인문계만 가면 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100 등 언저리를 헤맸던 것이다.
두 번째 고등학생 생활을 하는 내 입장에서는 잘 쳤긴 해도 어마어마하게 놀랄 수치는 아니지만.
중학생인 내 모습만 기억하시는 부 모님의 입장에서는 100등이던 자식 이 갑자기 15등을 한 거니 많이 늘 라신 것이다.
결국, 저녁을 먹고 급하게 외투를 챙겨 입고 다 함께 집을 나서는 우리 가족.
“이런 좋은 날에 평범하게 보낼 수가 있겠냐, 준아! 밥은 벌써 먹었으 니 할 수 없고, 같이 영화나 보러 갈까? 아니면 대교 따라 드라이브하다가 디저트나 먹으러 갈까?”
기분이 정말 좋으신지 운전대를 붙 잡고도 연신 껄껄거리시는 아버지.
“호호. 웬일이니, 준아. 사실 노닥 거리길래 별 기대 안 하고 있었는데 뒤에서는 열심히 공부했나 보네.”
눈에 띄게 좋아하시는 어머니.
정말 화목한 분위기다.
결국, 근처 클로버 백화점에 나를 끌고 들어가셔서는 뭔가 사 주시겠다는 걸 간신히 말리고는 용돈을 올리는 걸로 합의를 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앞으로의 동아리 활동에는 아무래도 이것저것 경비가 많이 들 것 같은 생각에서다.
“그나저나 정말로 웬일이니, 이게. 너 공부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건 초등학생 때 은정이랑 성적으로 경쟁 하던 때 말고는 없었는데.”
“누구요?”
“은정이. 네 짝꿍 김은정. 기억 안 나?”
“···기억 안 나요.”
“그때 같이 공부방 다니던 친구였는데, 반에서도 같이 앉게 돼서 둘이 라이벌이라며 열심히 경쟁했잖아. 몰라?”
“요 녀석, 그렇게 친하던 짝도 잊 어버리고. 아무리 전학 갔다지만 멀 리서 섭섭해하겠다, 얘.”
“허허. 그럴 수도 있지, 여보. 나도 초등학교 때 앨범 보면 이제는 잘 생각 안 나는 얼굴 천지인걸.”
“당신은 40대잖아요! 준이는 이제 17살인데……
집으로 돌아온 나는 서둘러 방에 들어가 단톡방을 열어 보았다.
안 그래도 난리가 나 있는 카톡창.
[윤선아 : 할머니가 나 없는 사이에 은정이라는 친구가 집에 들려서 음료수 주고 갔대…….]
[안경원 : 나도 갑자기 부모님이 어릴 때 영재원에 같이 다녔던 은정이라는 친구 기억하냐면서 말 꺼냈음.]
[오덕훈 : 오이오이, 농담하냐고
[안경원 : 덕훈이 너는?]
[오덕훈 : 나는 별일 없는데…….]
나 역시 서둘러 카톡창에 메시지를 입력했다.
[이준 : 나도 방금 갑자기 어렸을 때 짝이었던 은정이라는 여자애 기억하냐고 부모님이 물어보셨어. 같이 공부방 다니던 사이고, 졸업 전에 전학갔었대.]
[운선아 : 헐]
[오덕훈 : 소름]
[안경원 : ;;;;]
[이준 : 하윤이랑 진희, 너희는 어때? 뭐 이상한 일 없었어?]
하지만 하윤이는 핸드폰을 안 보고 있는지 읽지 않았고, 진희도 알바 중인지 답이 없었다.
[안경원 : 부장, 어떻게 하지?]
[윤선아 : 무서웨
[오덕훈 : 진심이냐고]
곧 나는 서둘러 녀석들에게 해야 할 것들을 지시하기 시작했다.
[이준 : 다들 어렸을 때 있었다던 그 은정이라는 친구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봐. 어떻게 생겼고, 어떤 성격인지. 졸업 앨범 같은 것도 뒤져서 사진 있는지도 찾아보고.]
[안경원 : ㅇㅋ]
[윤선아 : 알게써ㅇ]
[오덕훈 : 아아, 시작된 건가]
[이준 : 덕훈이 너도 놀지 말고 한 번 찾아봐. 우리 중에 예외가 있는 것도 이상하니깐]
[오덕훈 : 알겠다능.]
나 역시 서둘러 큰방으로 들어가 막 옷을 갈아입고 계시는 부모님께 은정이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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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2022년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