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화
열한 번째 괴담 -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친구 (6)
“은정이? 정말 기억 안 난다고?”
“네……
어머니가 동그란 눈을 하고 물으셨고, 아버지가 허허 웃으시면서 옆을 지나치신다.
“그렇게 둘이 어울려 다니더니, 참 별일이네.”
“사진 같은 거 있어요?”
“그럼! 둘이 얼마나 많이 놀러 다 녔는데.”
당연하단 듯이 대답하신 어머니는 이내 장롱에서 사진 앨범 하나를 꺼 내 오셨다.
돌잔치 때라던가, 가족끼리 놀러 갔을 때 등등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나에 대한 중요한 순간을 찍은 사진을 담아 둔 앨범.
부모님께서 스마트폰을 사신 뒤부 터는 필름카메라를 쓰지 않은 탓에, 딱 초등학교 졸업식 때까지만 기록 되어 있는 오래된 앨범이다.
“여기! 여기 있네.” 초등학교 시절의 근처를 뒤지시더니 곧 사진 몇 장을 꺼내 드시는 어머니.
나도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살펴보니, 그곳에는 정말로 내가 모르는 여자아이가 함께 찍혀 있었다.
운동회에서 함께 체육복을 입고 찍은 사진.
생일파티에 와서는 함께 케이크 앞에 앉아 찍은 사진.
가족끼리 놀러 갔을 때 같이 따라 왔는지 계곡에서 찍은 사진.
‘ ···예쁘네.’
가냘프게 생겼지만 눈망울이 크고, 사진마다 해맑게 웃고 있는 게 순수 해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어때? 기억나?”
“…네.”
나는 더 부정하기도 뭐해서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얘는 어느 학교로 전학 간 거예요?”
“그건 엄마도 잘 모르겠는데… 가족끼리 다 같이 이사 간 것만 기억 나네. 핸드폰 번호 없어?”
“네, 번호 같은 건 없는데……
라고 말하면서도 혹시나 싶어 슬쩍 핸드폰을 꺼내 전화번호부를 열어 봤다.
그리고 몇 개 없는 초라한 내 번 호부의 목록 중에서, 당당히 ‘기’ 배 열의 제일 위를 차지하고 있는.
[豊김은정 010-4444-4444]
미친.
있다.
“아, 저 이제 슬슬 씻고 잘 준비하러 갈게요.”
“네 아빠가 씻고 있는데?”
“그럼… 어쨌든 방에 좀 먼저 들어 갈게요. 피곤해서.”
“그래라.”
오랜만에 앨범을 살피며 추억에 빠져드시려던 찰나, 내가 쏙 빠지는 게 섭섭하신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사진을 정리하시는 어머니.
하지만 지금 나에겐 더 중요한 문 제가 쌓여 있었다.
급히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단 톡방을 확인해 보니, 마침 하윤이와 진희, 덕훈이도 그새 내용을 확인했는지 한창 대화 중이었다.
[오덕훈 : 발견했다三三 인터넷 친 구들과 같이 게임할 때 쓰는 채팅어 플에 ‘킂’이라는 모르는 아이디가 친추돼 있길래 물어보니, 몇 년 동 안 같이 놀던 게임 멤버 중 하나였는데 해외로 전학 가서 요 몇 년간 접속 못 하고 있다고 三三三]
[안경원 : 킂???]
[오덕훈 : 아마도 ‘KEJ’를 바로 발음했을 때 나는 소리? 김은정의 이 니셜 i=i=]
[이진희 : 엠창? 너희장난치는거 아니지?]
[인하윤 : 나도 방금 물어봤는데, 우리 집에 어릴 때 자주 놀러와서는 물건 훔쳐 가던 친구 중 하나였대. 걔만 왔다 가면 PMP랑 볼펜이랑
이것저것 사라졌었다는데.]
“다들 하는 말이 다르네.”
나는 어머니가 보여 준 앨범 속 사진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서 녀석들에게 보내 주었고.
띄어쓰기 다 틀리는 진희에게 그 얼굴이 맞다는 확답을 받았다.
[이진희 : 존나 신기하네 너희랑 있으면이상한일 투성이]
[안경원 : 010-4444-4444? 내 전화번호부에도 있어. 어떡하지?]
[이준 : 4만 적혀 있는 거 보니 제 대로 된 번호일리는 없으니 일단 연락하지 말고 있어 보자.] 그렇게 늦게까지 우리는 단톡방에서 이것저것 모은 정보를 취합했다.
은정이는 누군가에게는 말수가 적은 조용한 친구였고, 누군가에게는 성실한 모범생.
또 누군가에게는 장난기 많은 얄미운 친구였는가 하면, 누군가에게는 도벽이 있는 꺼림칙한 아이기도 했다.
각자 하는 말은 달랐지만 공통된 점은 단짝이었다는 말과 졸업 전에 전학을 갔다는 점.
[이준 : 후우;; 됐어, 벌써 12시야. 이제 그만하고 나머지는 내일 만나서 얘기 나누자.]
[안경원 : 그래. 톡보다는 모여서 얘기 나누는 게 훨씬 빠르겠지』
[이진희 : 벌써자냐부럽다]
[윤선아 : 내일 보자~]
[인하윤 : 잘자.]
[오덕훈 : お休み~ (잘자라는 일본식 인삿말임 ㅎ)]
[윤선아 : 덕훈이 기분 나빠…….]
[이진희 : 덕훈이X발새끼 너는 자지말고 누나가 톡하면 답장해 밤에 심심하니깐]
[이진희 : 자면뒤진다]
[오덕훈 : 너무한 거 아니냐고~]
* * *
[2019년 5월 1일 수요일, 07:45]
[이준 - 2회차]
[괴담 포인트 : 67]
[인과율 : 14%]
다음 날, 5월의 첫 아침.
학교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경원이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부, 부장… 학교에 빨리 와 봐야 할 것 같은데…….]
“왜?”
[우리 반에 김은정 있어…….]
헐레벌떡 운동장을 뛰어가 교실에 도착하니.
모범생들답게 일찍 와 있던 경원이 와 하윤이가 나에게 손을 들어 교탁으로 안내했다.
“여기, 출석부.”
녀석이 내민 우리 반 출석부.
그곳에는 ‘김은정’이라는 이름이 출석 번호 4번에 적혀 있었다.
“일찍 도착해서 할 것도 없고 혹시나 해서 열어 봤는데, 적혀 있어 서……
두렵다는 듯 목소리를 떠는 경원이.
곧 교탁 옆에 선 하윤이가 슥 나를 보며 묻는다.
“어떻게 생각해, 준아?”
“…뭘
빙긋 웃는 그녀.
“지금의 상황.”
뭘 어떻게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게 있나.
괴담에 휘말린 거지.
“괴담에 엮인 것 같은데.”
“응.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야?”
궁금하다는 듯 나에게 묻는 하윤 이.
반에 앉아 있던 몇몇 남학생들이, 안경을 벗은 뒤부터 엄청난 존재감을 내뿜는 하윤이를 힐끔 쳐다본다.
“···글쎄. 뭐, 방법을 찾아내서 퇴치 해야겠지?”
그러자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다시 묻는 하윤이.
“어떻게?”
나는 얼굴이 홍당무가 된 채 반사 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들이대는 거야.
“뭐, 방법은 차차… 다 같이 생각 해 봐야지……
“지금 떠오르는 건 없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는 그녀.
흘러내리는 흑발 몇 가닥, 깨끗한 턱선.
살짝 올라간 입꼬리.
“···그, 그러게. 당장은 뭐 없는데.”
“흐음.”
“일단은 뭐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 한번 기다려 봐야지… 아는 게 없으니깐……
“그럼 알아내면 꼭 공유해 줘.”
그러더니 살며시 얼굴을 들이밀고는 속삭인다.
“기대할게.”
이내 쿡쿡 웃고는 조용히 자리로 돌아가는 그녀.
뭐지.
왜 저래.
‘근데 예쁘다.’
나는 쿵쾅대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경원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무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녀석.
‘뭘 봐, 인마.’
잠시 후, 덕훈이가 느긋하게 교실로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는다.
“안녕, 덕훈아.”
“반갑다능.”
이어서 중년의 배 나온 탈모남, 담임이 앞문으로 들어왔고.
동시에 선아와 진희가 허겁지겁 뒷 문으로 들어오며 간신히 지각을 면 했다.
“선아는 또 급하게 들어오나요. 슬 슬 선생님도 적응했습니다.”
진희는 건드리기 무서운지 말씀을 안 꺼내는 담임.
이내 교탁으로 가서는 슥 교실을 둘러보신다.
“어느덧 5월 가정의 달이 시작되었군요. 그·럼 여러분들이 이 학교에 입학한 지도 벌써 2달이 되었다는 뜻이겠네요. 세월이란 게 참 빠른 것 같습니다. 오늘이 근로자의 날이라던데 나는 왜 일하고 있지.”
하고 싶은 말을 대충하고는 교탁의 출석부를 펼치는 그.
나는 서둘러 교실을 살폈지만, 김 은정으로 생각되는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과연 담임은 출석 번호 4번을 차 지하고 있는 김은정에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이내 출석부를 펼친 채 흐뭇한 얼굴로 교실을 돌아보는 담임.
“15일이 스승의 날이라던데, 다들 기억에 남는 선생님들께 한번 찾아 가기도 해 보고 연락도 해 보는 날 이 됐으면 해요. 저도 교직을 맡은 지 30년이 다 돼 가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습니다. 매일 교실 뒷자리에서 대마초를 피우는 게 취미인 학생이었는데……
출석 빨리 부르라고.
“…그랬더니 교무실에서 덤블링을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홋홋, 그 녀석 참…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특이한 친구였어요. 그 직후 갑자기 트럭에 치여 즉사해 버리긴 했어 도……
어쩌고저쩌고….
“자, 그럼 출석을 불러 볼까요. 강 정호.”
“네.”
드디어.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구윤정.”
“네.”
“김보배.”
“네.”
“김은정.”
아무도 대답이 없다.
이내 고개를 드는 담임.
“김은정?”
직전에 도착한 탓에 상황을 잘 모르는 덕훈이와 선아, 진희가 그 이 름에 깜짝 놀라서는 주위를 둘러본다.
“김은정 안 왔나요?”
“네.”
누군가 대답하자 창가로 걸어가서 운동장을 내다보는 담임.
“지각했나 보군요. 저기서 뺑뺑이 돌고 있네.”
일제히 창문 밖 운동장으로 쏠리는 우리 괴담 동아리 여섯 명의 눈길.
마침 내 자리는 창가 쪽.
얼굴을 붙이다시피 유리에 대고는 빠르게 운동장을 훑어봤지만, 여러 명이 뒤엉킨 채 오리걸음을 하고 있어 누가 누군지 분간할 방법이 없다.
있다고?
저 중에?
“부장, 찾았냐능?”
심각한 얼굴로 나를 툭툭 치며 묻는 덕훈이.
나는 잠시 더 살펴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모르겠어.”
“ 나도······
“어린이날이 일요일인 탓에 다음 주 월요일은 대체 휴일이 되었지요? 그런 부분은 마음에 든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오늘 하루도 파이팅.”
담임이 대충 멘트를 치고 교실을 나가자마자 우리 괴담 동아리의 여섯 부원은 허겁지겁 복도로 향했다.
“지각하고 오는 거면 여기서 기다
리면 바로 마주칠 수 있을 거야.”
“후우,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긴장한 채 복도에 서 있는 괴담 동아리.
하지만 시간이 흘러 1교시가 시작 할 때가 다 돼도 반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 수업을 하러 들어오시는 수학 선생님의 눈에 띈 우리.
“너희 복도에 서서 뭐 하는데.”
“교실로 들어가자, 수업하게.”
수학 담당의 젊은 총각 선생님, 오 정호.
학교의 알 수 없는 세력과 한패다.
“네.”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확인하지 못 한 채 다시 반으로 들어갔다.
“기울기가 주어진 원의 접선 방정 식
수업이 시작됐지만 칠판에 전혀 집 중 못 한 채, 어느 자리가 비어 있나 두리번대는 우리.
곧 내 짝 덕훈이가 쿡쿡 나를 찌르길래 돌아보니, 녀석이 교과서의 귀퉁이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이진희 옆자리]
그 말에 서둘러 뒤를 돌아보니, 턱을 괸 채 입을 내밀고 있는 진희와 그 옆 비어 있는 책상이 보인다.
‘ 어라.’
순간 머리가 갸웃거려진다.
진희의 옆자리.
원래 누구였더라?
교탁 바로 앞자리에는 안경원이랑 우리 반의 엄친아 반장훈이 같이 앉아 있고.
창가 쪽에는 나랑 덕훈이.
벽 쪽에는 하윤이랑 선아가 서로 짝이고.
‘제일 뒷자리의 진희는?’
진희의 짝은 누구였더라?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서둘러 덕훈이의 교과서에다 낙서를 했다.
[이진희 짝. 누군지 기억나?] 그러자 곰곰이 생각하던 덕훈이도 이내 고개를 저으며 글자를 써 내려 간다.
[ㄴㄴ 기억 안 남 나도 걍 빈 자리 보이길래 말해 본 게
곧이어 쉬는 시간이 된 우리는 우르르 진희의 자리로 모였다.
“뭐, 뭔데.”
갑자기 자기를 향해 몰려오는 부원들의 모습에 당황한 진희.
“진희야, 네 짝 누구야?”
“···뭐?”
그제야 비어 있는 옆자리를 보더니 흠칫하는 그녀.
이내 입을 쩍 벌리며 우리를 본다.
‘···모르는가 보네.’
나는 진희 옆으로 이동해 가만히 책상을 살펴보았다.
가방도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은 빈자리.
하지만 서랍에는 무언가 가득 차 있었다.
“안에 책 들어 있다.”
“꺼내 보자, 부장.”
책상 서랍에서 교과서를 한가득 꺼 내는 우리.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하나같이 [1 학년 3반 김은정]이라고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이게 언제 이곳에.”
식은땀을 흘리며 교과서를 뒤적이는 경원이.
마침 지나가던 반장이 남의 책상을 뒤지는 우리의 모습을 보더니 한마 디 한다.
“너희 뭐 하냐?”
“은정이 거랑 내 교과서랑 서로 바뀐 것 같아서. 살펴보는 중이야.”
“아, 그래?”
나의 빠른 임기응변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 의심 없이 가버리는 반 장.
경원이가 감탄하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잠시만, 반장!”
막 뒷문을 나서려는 반장을 갑자기 불러 세우는 나.
“그런데… 은정이 있잖아.”
“어.”
“지금 어디 갔는지 혹시 알아?”
“화장실 갔잖아.”
당연하단 듯이 대답하는 녀석.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물었다.
“네가 직접 본 거야?”
« 2”
“화장실 가는 거. 네가 직접 본 거 냐고.”
우리는 못 봤다.
이내 왜 그런 걸 묻냐는 듯 살짝 고개를 들며 대답해 주는 훈남 반 장.
“당연하지. 너희가 자리로 가자마자 지나쳐서 뒷문으로 나가던데.”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