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열한 번째 괴담 -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친구 (7)
우리는 긴장한 채 복도에 서서 화장실에 갔다는 은정이를 기다려 봤지만.
시간이 흘러 2교시가 시작할 때가 다 돼도 반으로 들어오는 낯선 얼굴은 없었다.
결국, 자기 교과목인 국어 수업을 하러 온 담임 선생님의 눈에 띈 우리.
“괴담 동아리 친구들. 모임 그만하고 들어갑시다.”
“아니면 나를 마중 나온 건가요? 홋홋... 기뻐라.”
결국, 우리는 김은정을 만나지 못 한 채 2교시를 맞이했다.
“아침에 보고 또 보니 반갑군요. 가족보다 더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만.”
홋홋 웃으며 수업을 시작하려는 담임.
나는 뒷자리를 둘러봤지만, 역시 진희의 옆자리는 아직 비어 있는 상태다.
“선생님?”
“응? 누가 나를 찾습니까?”
나는 반응을 테스트해 볼 요령으로 조심히 손을 들고 말했다.
“은정이 교실에 없는데요.”
그러자 눈을 가늘게 떠 제일 뒷자 리를 확인하시더니, 이내 어리둥절 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담임.
“정말이네요. 은정이 어디 갔는지 아는 사람?”
“아파서 보건실 갔어요.”
중간쯤 자리에 앉은 여자 부반장, 채린이가 대신 대답하자 담임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렇게 좋은 계절인 봄에도 아픈 청춘이 있다는 말입니까. 제가 어렸을 때는 말이죠……
떠벌떠벌.
곧 2교시가 끝났고, 우리 6명은 서둘러 복도를 나서서 보건실로 뛰어 갔다.
“빨리, 빨리!!”
“헥, 헥.”
1층 제일 오른편, 동쪽 출입문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보건실.
서둘러 그곳을 향해 달려간 우리.
드르륵-
“…아무도 없어.”
보건 선생님 특징 : 갈 때마다 없음.
나는 빠르게 안으로 들어가 침대를 살피며 칸막이를 가리는 커튼을 하나씩 들춰 봤다.
“여기. 방금까지 누가 여기 누워 있었던 것 같은데.”
칸막이가 쳐진 침대 중 하나의 이 불이 흐트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 우리.
이어서 진희가 보건 선생님 책상에서 학생들의 출입 기록부를 찾아내 펼쳐 들었다.
“여기 김은정 이름 적혀 있다.”
“어디, 어디.”
익숙한 듯 기록부의 한 곳을 가리 키는 진희.
“어디 보자, 김은정. 몸살 기운으로 1, 2교시를 와서 누워 있다 갔다 고……
그곳에는 또박또박 정자로 ‘김은정’이라는 이름과 왔던 시간, 사유가 적혀 있었다.
“그럼 다시 교실로 돌아가면 있겠다……!”
“아니.”
헥헥대며 보건실을 나서려는 선아를 말리며 나는 고개 저었다.
“교실로 돌아가도 아마 없을 거야.”
“.··왜‘?”
막 달려나가려다 궁금한 표정으로 돌아보는 선아.
나는 한숨을 쉬며 출입 기록부를 툭툭 쳤다.
“우리는 김은정을 놓친 게 아냐. 그건 말도 안 돼. 빠져나갈 구석이 없었잖아.”
“그렇지. 말도 안 되지.”
경원이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 덕인다.
“우리 모두 빈틈없이 자리를 지키며 감시했잖아. 아무리 생각해 봐도 놓쳤다는 건 이상해.”
“그럼?”
“글쎄.”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해하는 부원들에게, 나는 대담 한 가설 하나를 제시했다.
“현실이 조작되고 있는 것 같은 데.”
“뭐‘?”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 부원들.
“···짓, 그런가. 현실의 조작인 건 가.”
그 단어가 중2병 감성과 맞는 건 지, 덕훈이가 대사처럼 다시 중얼거린다.
“···현실의 조작?”
“응. 우리가 김은정에 대해 인식하고 그 흔적을 따라 쫓아갈 때마다 적당한 변명거리가 생기도록 현실이 조작되고 있다… 이게 내 생각이야.”
“미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 진희.
하지만 놀랄 것도 없는 일이다.
“놀랄 것도 없어. 다들 어제 이미 겪은 부분이잖아. 앨범에 생겨난 김 은정과의 추억 사진이라든가, 부모 님들의 조작된 기억이라든가……
“그, 그렇긴 하지……
왠지는 몰라도 지금 당장은 김은정을 잡을 수 없다.
나는 그걸 부원들에게 천천히 설명 해 주기 시작했다.
“아까 경원이의 말이 맞아. 우리는 모두 빈틈없이 자리를 지키며 교실을 감시했었어. 놓쳤다는 건 말도 안 돼. 차라리 반 학생들의 기억이 시시각각 조작되고 있는 쪽이 맞겠지.”
“가능성 있다고 본다, 부장.”
“아마 지금 교실로 돌아가더라도 김은정은 적당한 이유와 함께 자리에 없을 거야.”
“···그럼 어떻게 잡아?”
긴장한 듯 묻는 선아.
나 역시 고민된다.
이대로 가만히 활개 치게 놔뒀다가는 일이 어떻게 꼬일지 모른다.
뭔가 이상한 일이 생기기 전에 일단은 잡고 봐야 되는 건 맞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하지.
“경원아, 뭐 떠오르는 거 있어?”
“글쎄.”
경원이 역시 아리송한 표정.
“생각나는 괴담이라던가, 그런 거.”
“일단 괴담에 한해서는 내가 어제 말한 게 전부다만……
녀석이 어제 진희의 이야기를 들은 후 정리해 준, 아무도 기억하지 못 하는 어린 시절 친구에 대한 괴담 들.
하지만 지금의 경우에는…….
‘나만’ 기억 못 하는 친구의 괴담이라고 이름을 바꿔야 하려나. 나는 전혀 기억도 안 나는 수상한 여자애가, 어릴 때부터 친구였다며 다가온다면.
그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걸까.
심지어 놈은 나사가 하나 빠져 있는 듯한 동물을 죽이는 싸이코.
그런 존재가 친분을 과시하며 일상 속으로 스며들려 한다면?
심지어 모든 증거가 우리가 친구였다는 쪽을 가리킨다면?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부원들에게 말해 주었다.
“일단은 정보가 너무 부족해. 먼저 괴담 이전에 현실의 김은정이라는 아이. 진짜로 실존하는 인물이었는 지 알아보는 게 첫 번째야.”
그렇다.
진희의 초등학교 시절 짝이었다던 김은정.
그녀는 정말로 실존하는 인물인가?
혹시 어딘가에서 멀쩡히 살아 있다면, 우리에게 나타나는 괴담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 건가?
“그건 역시 그 초등학교에 찾아가서 물어보지 않는 한 알기 힘들 것 같은데……
말끝을 흐리는 경원이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어차피 오늘 학교를 마치고 찾아가 기로 한 일.
그때까지만 잘 버티면 된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깐, 그동안 우리 반 학생들이 알고 있는 김은정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하나라도 아는 게 많으면 좋은 거니깐.”
“근데 부장……
덕훈이가 멍청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차라리 여섯이서 학교 곳곳에 퍼져 있으면 어떻겠냐능? 교무실, 양 호실, 화장실 등등… 갈 만한 곳에 다 잠복시켜 놓고 찾으러 돌아다니면 변명 못 하지 않을까 싶은데 “부장이 하는 얘기 제대로 듣고 있었던 거 맞냐? 그래도 못 잡는다니 깐, 바보야. 실체가 없잖아, 실체 가.”
“그, 그렇냐능.”
다행히 팔짱을 끼며 대신 혼내 주는 경원이.
“온 학교를 뒤져서 변명할 여지가 없게 만들어 놔도, 조퇴해서 집에 갔다는 등 자리에 없는 새로운 이유가 또 생길 거야.”
“와, 존나 답답하네, X발… 바로 코앞에 있는 것 같은데.”
성격 급한 진희답게 바로 주먹을 흔들거리지만, 기억에서 잊혀진 친 구란 건 원래 그런 법이다.
여기저기 뜬 소문만 있을 뿐 아무 도 지금의 모습을 모르는 것이다.
이어서 3교시 사회 수업이 끝나고, 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은정이에 대해 묻고 다니는 괴담 동아리의 부원들.
“조금 곱슬기가 있다고? 막 아줌마 파마 같은 거 아니고, 그냥 약간 곱 슬거리는 거? 응… 겨드랑이쯤까지 머리카락이 내려오고… 왜 묻냐고? 아, 캐리커쳐 그려 주려는데 자리에 없어서.”
“착해? 정말? 공부는? 중간 정도……
별의별 이상한 이유를 다 대가며 반 학생들에게 묻던 중.
우리 반의 부반장, 고양이 눈매를 가진 채린이가 돌아다니는 부원들을 지켜보다 팔짱을 끼고 쏘아붙였다.
“너네 오늘따라 은정이한테 되게 관심 많다.”
그러자 우리 반의 훈남 반장, 장훈이가 지나치며 웃으면서 얘기한다.
“같은 동아리라 그러잖아.”
“···뭐?”
전립선염이라도 있는 건지 또 화장 실에 가려 뒷문을 나서는 장훈이.
[인물 반장훈에 대한 이해도가 5 올랐습니다.]
“잠시만!”
내가 다시 급하게 불러 세우자, 되레 이쪽을 보며 의아해한다.
“또 뭐?”
“···아무것도 아냐.”
나는 돌아서서 가만히 상태창을 열었다.
‘상태창.’
파앗-
[2019년 5월 1일 수요일, 10:53]
[이준 - 2회차]
[괴담 포인트 : 67]
[인과율 : 14%]
① 상태창
② 동아리 관리
③ 통계
④ 설정
‘동아리 관리.’
파앗-
[괴담 동아리 LV.5]
① 동아리 상태창
② 부원 관리
③ 상점
④ 동아리 설정
‘부원 관리.’
파앗- 설마.
설마.
내 기대를 충족시켜 주려는 듯 제일 첫 번째로 떠오르는 이름.
김은정 LV.1 [0/100] 오덕훈 LV.1 [0/100] 윤선아 LV.2 [0/200] 안경원 LV.2 [0/200] 이진희 LV.1 [0/100] 인하윤 LV.2 [0/200] 장화은 LV.1 [0/100]
미친.
우리 부원이라고?
‘X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김은정의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김은정 상태창.’
파앗-
《상태창》
이름 : 김은정 LV.1 [0/100]
나이 : ??
칭호 : 꾩?휘굙
성향 : 끗X릃?
특수 능력 : 컽咸꾄;
기벽 : □□솕
이해도 : 3.141592-/100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부원들에게 말했다.
“얘, 얘들아. 나 잠시 교무실 좀 다녀올게. 확인할 게 있어서.”
“어, 그래.”
덕훈이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탐문 수사를 계속한다.
“어떻게 생겼다고? 다시 말해 달라능 ”
“눈 크고, 맨날 웃고 다니고… 머리는... 일단은 곱슬이라 해야 되나? 살짝 웨이브져 있고… 근데 바로 아침에 봐 놓고 왜 묻는-”
다른 부원들이 반 친구들에게 열심히 김은정에 대해 묻고 다니는 동 안, 나는 급히 교무실로 뛰어갔다.
나 역시 그녀에 대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은정이 말인가요?”
1층 학년교무실, 귀를 씰룩이며 고개를 돌리는 우리 반의 담임.
“네. 처음에 동아리 신청서 낼 때부터 있었는지, 나중에 들어온 건지 기억이 안 나서요.”
“그게 중요합니까?”
“좀 필요해 가지고……
배 나온 중년, 우리 반의 담당이신 박담임 선생님.
괴담 동아리의 신청서를 받아 주고, 인원까지 구해 줬던 장본인이다.
‘이 사람한테 물어보는 게 가장 확 실해.’
“···그게 갑자기 궁금하다니.”
“좀 부탁드립니다.”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담임에게 나는 한 번 더 간청했다.
물론, 이 사람은 나를 죽이려 했던 학교 세력의 소속이긴 하다.
하지만 일단 겉으로는 멀쩡히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며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 중 하나.
어쩌다 김은정이 우리 동아리의 부원이 되었는가?
그건 학생으로서 딱히 물어보지 못 할 것도 아니었고, 악의 세력이라 해서 딱히 못 해 줄 답변도 아니었다.
“부탁드립니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나는 걸 말씀해 주셨으면 해요.”
“뭐, 알겠습니다. 어디 보자……
가만히 달력을 쳐다보는 담임.
약, 두 달 전인 3월에 있었던 일이 다 보니 좀 된 일이긴 하다.
“흐으음
기억을 떠올리려는 듯 달력을 쳐다 보던 담임이 이내 튀어나온 뱃살 위로 손을 깍지 끼고는 의자를 뒤로 젖혔다.
“그러니깐 입학식을 한 첫 주였던 가요? 준이 군이 부원의 이름 한 명이 모자란 채로 나한테 신청서를 제출했었죠.”
“네, 기억나요. 그다음은요?”
“거기서 제가 남는 인원인 진희를 몰래 빼돌려 줬었고……
여기까지는 내 기억과 똑같다.
“그리고 금요일 첫 CA시간 직전에 다른 동아리의 면접에서 탈락한 하윤이와 덕훈이를 자기 동아리에 집어 넣었었죠?”
“네, 맞아요.”
도서부에서 탈락한 하윤이, 애니부에서 탈락한 덕훈이.
몽중몽 괴담과 엮인 후 둘을 우리 동아리에 집어넣었었다.
거기까지가 장화은 선생님을 포함 해서 원래 내가 기억하는 7명의 부원.
“그래서 은정이는요? 언제 들어온 거죠?”
“으음? 은정이? 그러네요……? 보자. 언제더라……
I”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크게 몸을 떨며 놀라는 담임.
“이, 이럴 수가! 어, 어떻게 그런… 으, 은정이는 그러고 보니……
그러더니 곧 다시 표정을 가라앉힌다.
“생각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은정이는 직후에 전학 왔잖아요.”
“···전학요?”
평온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담임.
“저도 학기 초의 일이라 잊어버리고 있었네요. 은정이는 전학 온 학생이에요. 도중에 왔다 보니 동아리를 넣는다는 게 마침 같은 반 인원으로 구성되있는 괴담 동아리로 가게 된 거구요.”
“…그렇군요.”
그렇다는 말인가.
어린 시절 전학 간 초등학교 시절의 단짝, 김은정.
이제는 우리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왔고, 모두의 기억 속에 심어져 간다고.
“···일단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홋홋.”
마침 쉬는 시간 종이 쳤다.
물어볼 것도 다 물어봤고, 다음 수 업을 준비하려 막 인사하고 나서려는 찰나.
“준이 군.”
“···네?”
갑자기 나를 불러 세우는 담임.
“또 뭔가 이상한 일에 휘말렸군요.”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