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동아리-95화 (95/130)

95 화

열한 번째 괴담 -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친구 (8)

“또 뭔가 이상한 일에 휘말렸군요.”

느긋한 표정이다.

어떻게 반응해 줘야 할까.

과학 선생 사건 때 서로 신나게 문답을 주고받으며 싸우기는 했지만, 그것도 시간이 리셋되기 전의 일

지금 이 사람과 나는 어떤 관계인 걸까.

잠시 고민 후,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네.”

“홋홋.”

기다렸다는 듯 웃는 담임.

“이상한 일에 휘말렸어요.”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배를 쓰다듬으며 좋아한다.

괜찮다.

지금 시간대에서 이 사람과 나의 접점이라고는 몽중몽 사건 때 잠시 엮인 것뿐.

다소 서로에게 찜찜한 구석이 남아 있긴 해도, 아직까지는 평범한 학생과 담임의 관계로 연기해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다.

곧 웃으며 배를 두드리던 담임이 입을 열었다.

“그럼 선생님이 조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뭔데요?”

“괴담 동아리의 여러분들 말입니다.”

인자한 표정.

“너무 학생들끼리만 해결하려고 하지는 마세요.”

2”

“장화은 선생님 얘기입니다.”

연륜이 느껴지는 미소와 함께 온화 한 어조로 얘기한다.

“그분께 도움을 구하세요. 영어 선생님이기 이전에 10년의 경력을 지 닌 베테랑 학교 선생님이잖습니까.”

“준이 군은 아직 학생이라 잘 모르겠지만, 독신의 커리어우먼이란 굉 장히 유능한 사람들이에요. 남는 시간에 자기계발에 힘쓰는 게 일상이 거든요.”

독신주의로 알고 계시는 건가.

조금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지만 일단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장화은 선생님도 그래요. 안 그래도 남는 게 시간이신데, 타고난 성격 탓에 에너지도 넘치시다 보니 교직원 사이에서도 이것저것 많이 하시는 걸로 유명합니다. 연수도 자주 다니시고, 교육 관련해서 따놓은 자격증도 많으시고……

유능하신 분이셨구나.

“그분의 조언을 받아 보는 것도 괜 찮을 겁니다.”

의자에 앉아 배를 내민 채 인자한 미소로 나를 올려다보는 담임.

나는 의외의 제대로 된 조언에 멈 칫했지만, 곧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언 감사합니다, 선생님.”

“홋홋, 그래요. 어서 수업하러 가 보세요.”

곧 4교시, 국사 시간.

칠판에 오늘의 제목을 적으시는 선생님을 피해 나는 급하게 자리에 앉았다.

“왔냐능.”

‘···장화은 선생님이라.’

힐끔 뒤돌아 진희의 옆자리를 한 번 바라봤다.

여전히 사람은 앉아 있지 않았지만, 누가 올려놓았는지 교과서가 책상 위에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방금까지 사람이 앉아 있었다는 듯 적당히 자리에서 삐져나와 있는 의자.

그 옆에서 복잡한 표정으로 빈 책 상을 쳐다보는 진희.

‘···후우.’

나는 칠판으로 고개를 바로 하고는 담임의 조언에 대해 생각했다. 그가 무슨 의도로 나에게 제대로 된 조언을 해 주는지는 몰라도, 확 실히 맞는 말이었다.

진희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들어 보니, 그 은정이라는 친구는 정신적으로 좀 문제가 있는 타입.

선생님들은 분명히 그런 특수한 아 동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대학교에서 배우고 올라오셨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낙성고는 믿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선생이 몇 없는 정신 나 간 학교.

그중에서 장화은 선생님은 확실한 우리 편이신 데다, 10년 경력의 베 테랑 교사다.

사고방식도 젊으시고, 학생들의 교육 관련해서 연수도 자주 다니셨다 니.

완전히 이 사건의 적임자셨다.

‘좀 더 빨리 여쭤볼걸.’

상황이 워낙 예상치 못하게 돌아가는 탓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다.

나는 점심시간에 선생님을 포함한, 우리 괴담 동아리 7명을 한자리에 소집하기로 마음먹었다.

“같이 어울리는 애들이 나만 따돌리는 것 같아서… 그게 좀 힘들어.”

[…….]

“어제도 학교 마치고 애들끼리 뭉 쳐서 놀러가던데, 나만 안 부르더라 고……

[그러면… 네가 왕따를 당하잖아. 그렇지?]

“그치.”

[그러면 그 아이들을 네가 왕따를 한번 시켜 볼래?]

“ 엄마!”

버럭 휴대폰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화은.

“그걸 지금 조언이라고 해?”

[그럴 거 아니면 이년아, 잘 지내 봐. 그래도 네가 선생인데…….]

급식소 건물을 나서며 어머니께 전화로 투덜거리는 화은.

동시에 괴담 동아리의 부원들이 우르르 그녀에게 뛰어온다.

“선생님! 선생님!”

“어머, 엄마. 끊을게, 미안!”

화은은 급히 전화를 끊고 밝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 준이랑 친구들이네! 무슨 일이야?”

[2019년 5월 1일 수요일, 12:37]

[이준 - 2회차]

[괴담 포인트 : 67]

[인과율 : 14%]

빠르게 식사를 마친 점심시간, 5층 동아리 방.

남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우리는 장 화은 선생님께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려 드렸다.

이야기를 다 듣고는 말이 없어지신 선생님.

곧 어깨를 의자에 기대시고는 손가 락을 깍지 끼신다.

“…하지만 선생님은 분명히 기억하는걸. 은정이는 처음부터 우리 부원이었잖아. 어제도 너희랑 같이 뭉쳐서 놀러 갔고.”

자연스럽게 경원이에게로 향하는 내 시선.

“어떤 차이일까, 경원아?”

“글쎄.”

역시 곰곰이 생각에 잠긴 표정이다.

같은 괴담 동아리인데도 왜 학생들

은 은정이를 기억 못 하고, 선생님은 알고 계신 걸까.

“…아마 괴담이 실제로 발현된 시 점에 이 이야기를 알고 있냐, 모르냐의 차이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능.”

덕훈이도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미 어제 이진희를 통해서 이야기를 들었으니 착각할 수가 없는 입장인 거고, 선생님이나 부모 님은 김은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입장이니 새로운 기억이 심어져 도 위화감이 없으신 거고.”

“내, 내가 착각하고 있다는 거니?” 덕훈이의 설명에 당황하시는 선생님.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 실시간으로 현실의 조작 이 이루어지는 중이에요.”

“그게 무슨……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뭐라 하시려는 선생님을 진정시키기 위해 양손을 내밀었다.

“안 믿기시면 지금 당장 학교를 돌아다니며 김은정을 찾아보세요. 그런 학생은 존재하지 않으니깐.”

“그러니깐 그게 말이 안 되는 거라 고!”

벌떡 일어서시는 장화은 선생님.

“은정이는 지금 여기에 우리랑 같이 앉아 있잖아!”

그 외침에 순식간에 한곳으로 쏠리는 부원들의 눈길.

상석과 말석을 포함해 총 8명이 앉을 수 있는 직사각형의 책상.

그 중간에 부자연스레 튀어나와 있는 빈 의자가 있었다.

상석에는 나, 말석에는 선생님이 앉아 계시고 양옆으로 3명씩 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

옆에 앉아 있는 선아와 경원이 사이로 툭 튀어나와 있는 빈 의자.

“저기에… 어라? 어디 갔지?”

선생님이 허망하신 표정으로 빈 의자를 가리키신다.

“방금까지 여기 있었는데……

나는 신음을 삼키며 부원들을 바라 보았다.

선생님은 그렇다 쳐도, 우리는 애 초에 왜 이렇게 이상한 배열로 자리에 앉은 것인가.

선아랑 경원이가 안 친한 것도 아 니고, 저렇게 가운데 한 칸을 비워 놓고 앉았을 리가 없다.

이건 마치.

당연히 누군가 그 자리에 앉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의 행동.

‘···보기보다 심각한 상황이야.’

가장 최악의 경우는, 어느 순간 우리가 김은정을 친구로 인식해 버린 채 지금까지의 기억이 모두 조작돼 버리는 것.

4시간 뒤, 수업이 마칠 때까지 버티지도 못한 채 우리 역시 착각에 빠진다면?

우리는 진상을 밝히러 진희의 초등 학교로 가는 게 아니라. 그대로 집으로 웃으며 귀가해 버리는 거다.

정체불명의 인물을 친구라고 생각 한 채.

그대로 다음 사건으로 넘어간 후 거기서 체크 포인트가 설정돼 버린 다면,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서둘러야 해. 점점 우리까지 이 상해져 가는 것 같아.”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 하지만 지금 학교를 나갈 수 도 없고. 방과 후에 진희네 초등학교에 가서 실제 김은정 근황을 파악 하기 전까지는 일단 버텨 보기로 한 거 아냐? 당장 뭘 어떻게……

허둥대는 경원이와 부원들.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말했다.

“기다릴 거 없지. 지금 바로 그 초등학교에 전화를 걸어 보자.”

“ 지금?”

“진희야, 핸드폰 꺼내.”

나는 급히 진희를 시켜 인터넷으로 운당초등학교 행정실의 번호를 알아 낸 뒤 전화를 걸도록 했다.

“···여보세요? 네, 졸업생인데요. 류진아 상담 선생님 좀 바꿔 주세요. 아, 진짜요? 그럼 언제… 네.”

곧 안 좋은 표정으로 통화를 끊는 진희.

“가정 방문해서 안 계신다는데. 오후는 되어야 오신대.”

“바보야, 그럼 핸드폰 번호라도 물어봤어야지!”

“바보? 이게 돌았나……

책상 아래로 경원이의 쪼인트를 까는 진희.

“커 억.”

그대로 경원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움찔거렸다.

“됐어, 그만. 빨리 다시 전화 걸어서 휴대폰 번호 알아내 봐.”

“어, 잠시만……

다시 전화를 걸어 행정실 직원과 뭐라 통화를 하는 진희.

“네, 감사합니다.” 이내 끊고는 얻어 낸 연락처로 바로 통화를 시도한다.

뚜_ 뚜- 뚜-

“…안 받는데.”

“후우.”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는 부원들.

“자, 집중.”

나는 자리에서 일어선 채 화이트보드 앞으로 다가갔다.

“방금 통화가 됐으면 좋겠지만, 일단은 어쩔 수 없지. 상담 선생님과는 계속 연락시도를 해 보고, 정 안 되면 원래 계획대로 방과 후 찾아뵙는 거로 하자. 당장 급한 건 지금 어떻게 대처할지가 문제야. 그 부분을 확실히 의논해야 해.”

“하지만, 부장!”

경원이가 무릎을 만지며 다급한 표정으로 외쳤다.

“실제 김은정의 근황을 모르는데 계획 같은 거 세울 수 있는 거야?”

“근황이라고 해 봤자 별거 없잖아. 살았든지, 죽었든지 둘 중 하나겠지.”

“그, 그렇긴 하겠지만……

물론, 마침 자리에 있어서 바로 대답해 주셨다면 모르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그렇다고 그걸 안다고 해서 당장 괴담을 퇴치하는 데 큰 영향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얼마 안 남은 점심시간.

빨리 임시방편이라도 계획을 세워 놓는 게 더 급하다.

“당장의 대처가 더 급해. 집중.”

곧 내게로 모이는 눈길.

나는 화이트보드에 마카펜으로 차 근차근 수업하듯이 지금의 상황을 정리해 줬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방금 빈 의자에서 깨달은 것처럼, 우리도 서서히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어지는 5교시와 6교시를 어떻게 버틸 것인가 하는 문제.

“이 다음 순간에 우리의 인식이 뒤 바뀌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 이렇게 말하다가도 바로 다음 순간에 어라, 우리 여기서 뭐하고 있지? 자, 은정이 데리고 교실로 돌아가자.”

그대로 마카펜을 내려놓고는 뚜벅 뚜벅 걸어 동아리방을 나서는 나.

부원들을 지나쳐 복도로 나가서 계 단을 내려간다.

3층쯤 지날 때가 돼서야 헐레벌떡 기겁해서는 뒤쫓아오는 부원들.

“부, 부장이 김은정한테 홀렸다!!”

“때려! 때려!”

나한테 달려들어 마구 두들겨 패기 시작한다.

퍽- 퍽- 퍼억-

“아악, X발, 잠시만!”

필사적으로 항변하는 나.

“이렇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 주려 한 거야! 아으t……

“봐, 봤다시피 바로 다음 순간에 어라, 하고 인식이 뒤바뀔 수도 있다는 거야. 알겠지?”

다시 부원들을 앉혀 놓고 설명을 하는 나.

“그걸 보여 주려고 일부러 한 거였어. 바로 한순간에 인식이 뒤바뀔 수 있다는 점. 근데 내 뒤통수 후린 사람 누구?”

“···준아, 미안……

떨면서 손을 드는 선아.

나는 선아라면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손을 내리라고 했다.

“그러니깐 부장, 그렇게 위험하니깐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건 알겠는 데. 실체가 없는데 이걸 무슨 수로 대처를……

“실체가 없다고 해서 퇴치 못 하는 건 아냐. 오히려 지금껏 마주친 괴담 중에는 물질적인 형태가 없는 놈 들이 더 많았어.”

심지어 때로는 어떤 관념이나 현상 그 자체가 괴담인 경우도 있었다.

“그, 그렇긴 하지.”

괴현상만 벌어지면 허둥대는 안경원.

“오이, 부장이 다 생각해 놓은 게 있겠지. 좀 들어 봐라.”

“미, 미안……

곧 나에게로 시선이 다시 몰리고, 하윤이가 깨끗한 음성으로 묻는다.

“생각나는 좋은 방법 있는 거야?”

“좋은 방법이라.”

나는 약간의 부담감과 함께 소매를 고친다.

“그런 게 있으면 좋겠지만, 당장 새롭게 떠오르는 건 없어. 하지만 옛날에 써먹었던 아이디어가 하나 있는데, 그걸 다시 해 볼 수 있을지 도 몰라.”

“어떤 거?”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에게 묻는 하윤이.

“전에 엄마를 흉내 내는 귀신을 퇴 치한 얘기, 혹시 다들 기억해?”

부원들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기억해.”

“당연하지.”

물론 학교가 아닌 우리 집 안에서 일어났던 일이지만, 이 녀석들한테는 중간고사가 끝난 후 모든 것을 공유한 상황.

당연히 엄마 귀신에 대한 내용도 알고 있다.

“그때 내가 어떻게 퇴치했는지 얘 기해 준 것도 다들 기억나?”

“기억나.”

선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시어머니 흉내 냈었잖아……

“···그랬지.”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내가 시어머니 흉내를-”

^□X

설명을 이어가려던 찰나, 하윤이가 작게 웃음을 터트려서 잠시 멈췄다.

“미안.”

고개를 돌린 하윤이.

“크흠!”

나는 집중하라는 듯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그때 내가 시어머니를 따라 한 이 유를-”

설명하면서 하윤이를 슬쩍 쳐다보니, 우리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 입을 막고 있었다.

머리카락에 가려 표정이 안 보이지만, 웃고 있는 것 같다.

괴담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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