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동아리-96화 (96/130)

96 화

열한 번째 괴담 -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친구 (9)

“그래서 그때 엄마를 흉내 내던 귀 신. 나는 놈이 더 이상 어쭙잖게 흉 내를 내지 못할 극한의 상황까지 연기를 몰아붙여서 퇴치했어.”

“···그랬지.”

경원이가 감탄하는 듯 고개를 끄덕 인다.

“다시 생각해도 기발한 아이디어였다고 생각된다.”

“그래. 상황은 좀 다르지만, 지금이 랑 뭔가 비슷하다고 여겨지지 않아?”

나는 양손을 펼쳤다.

“지금의 괴담도 어떻게 보면 우리의 친구인 척 계속 흉내를 내고 있는 입장이잖아. 그럼 같은 방식을 한번 써 볼 수 있지 않겠냐는 거 지.”

물론, 과정은 좀 다르긴 하다.

엄마 귀신은 실체를 가지고 나타나 직접 연기하고 다녔었지만.

이번 괴담은 여기저기 현실을 조작 해서 흔적을 남겨 두는 방식.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자기가 아닌 남을 흉내 내고 있는 건 같다.

그 귀신이 우리 엄마가 아니었듯 이, 김은정도 내 친구가 아니다.

그럼 같은 해결책을 써 볼 수 있지 않냐는 게 내 결론이다.

“너희한테는 흉내겠지만, 나한테는 진짜로 친구였던 거 맞는데.”

“‘네’ 친구.”

나는 정정해 주었다.

“내 친구는 아니잖아.”

“흠!”

경원이가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 인다.

“뭔가 쓰레기 같은 표현이었지만, 정확하다고 본다. 우리 친구는 확실히 아니지.”

“···그래서? 어떻게 할 거라고?”

“몰아붙일 거야. 우리의 친구를 자처하는 게 고통이 되는 지경까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부원들.

“정확히 어떤 걸 말하는 거야 궁금하다는 듯 묻는 선아에게 나는 당당하게 대답해 주었다.

“예를 들자면, 내가 지금 당장 옷 벗고 운동장을 뛰어다니면 어떨까.” 김은정은 과연 그때도 내 친구를 자처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 부분을 마카펜으로 알몸의 졸라맨을 그려 가며 차근차근 설명 해 줬다.

“이렇게 팬티를 뒤집어쓰고……

“물론, 부장이 하려고 지금 설명하고 있는 거겠지?”

“아니. 덕훈이가 한다.”

“쿠소쿠라에⑴⑴⑴”

벌떡 일어서서 화를 내는 덕훈이.

“누가 그런 걸 하고 싶어 하겠냐 능!”

나는 척 검지를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지적이야.”

“준아……

안타깝다는 듯 나를 보는 선아.

나는 잠시 멈칫한 후, 빠르게 그림을 지웠다.

“다른 좋은 방법들도 많겠지. 같이 고민해 보자.”

“응.”

“어쨌든 뭘 말하고 싶은 건지는 다들 이해했지?”

경원이가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 인다.

“확실하게 이해했다.”

“친구가 되고 싶지 않도록 상황을 몰아가거나, 혹은 될 수 없도록 하는 게 핵심이야.”

“야, 근데.”

갑자기 진희가 팔짱을 끼고 퉁명스레 묻는다.

“만약에 은정이가 멀쩡히 살아 있으면 어떡하냐? 막 이상한 방법 써 보다가 멀리 있는 은정이한테 영향 이 가면……

“괜찮아. 엄마를 흉내 내는 귀신을 퇴치했다고 진짜 우리 엄마가 사라진 게 아니듯이, 실제 김은정한테는 아무 영향 없을 거야.”

“그럼 안 살아 있으면? 정말로 본 인이 죽어서 나타난 귀신이라면?”

“…그럼 더 위험하지. 사람 죽이고 다니는 싸이코패스였다며.”

할 말이 없어졌는지 진희가 입을 삐쭉 내민다.

“…그냥 그랬다고 의심 가는 것뿐 이야. 말했다시피 증거도 없고. 그 동물 관련된 이상한 부분만 빼면 나 한테는 친절하고 착한 애였다고.”

“어제는 완전 대놓고 걔가 사람 죽였다고 단정 짓는 분위기였는데.”

“그래그래. 아파트 로프 끊어서 사람들 떨어트렸다고 하지 않았냐능.”

“인마, 그건 그냥……

덕훈이의 지적에 진희가 후, 하고 한숨을 내쉰다.

“그냥 무서운 이야기 하려고 그런 거야. 초등학생 여자애가 작업용 밧 줄 세 개를 어떻게 동시에 끊어.”

“···그래도 전부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는 맞지?”

불편한 표정을 짓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진희.

도마뱀이 죽고 토끼가 몰살당하고 사람 세 명이 추락한 것도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뭐, 그건 그렇다 쳐도. 우리도 아까 교실에서 여기저기 정보를 캐 물어 가며 조사해 봤잖아. 진희 네가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김은정과 여기서 활개 치는 김은정은 성장 배경도 성격도 완전히 달라. 나는 같은 사람이라고는 생각 안 들어.”

“그렇긴 한데……

“그러니깐 친구에 대한 걱정은 접어 두고, 일단 퇴치해 보는 걸로. 오케이?”

곧 진희가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일단 오케이.”

“좋아. 그럼 나도 방금 생각난 건 데.”

곧 나에게로 모이는 눈초리.

“굳이 우리 스스로의 격을 낮춰 가며 친구가 되기 싫게 만드는 건 리 스크가 큰 것 같고. 꽤 안전한 방법 이 하나 떠올랐어.”

그러자 장화은 선생님께서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으신다.

“괴롭히려는 건 아니지? 막 등교 거부하게……

“그런 너무한 짓은 하지 않을 거예요.”

나는 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죽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뿐 이에요.”

* * *

[2019년 5월 1일 수요일, 13:07]

[이준 - 2회차]

[괴담 포인트 : 66]

[인과율 : 14%]

“…누가 죽었니?”

수업을 하러 들어온 5교시의 아줌마 한자 선생님.

제일 뒷자리, 꽃병이 올려져 있는 책상을 보시더니 깜짝 놀라서 물어 보신다.

“누구 자리야, 저거?”

“은정이요.”

대신 대답하는 부반장.

“죽었어?”

“아뇨.”

“그럼?”

“그냥 아파서 일찍 조퇴했는데 누가 장난쳐 놨나 봐요.”

똑 부러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고양이 눈매의 부반장 채린이.

“.··그렇구나. 깜짝 놀랐잖니.”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자 선생님이 교과서를 펼치신다.

“자. 숙제 검사부터 하고 시작하자.”

‘···역시 이런 걸로는 무리인 걸까.’

사람이 죽었을 때 책상 위에 올려 놓는 꽃병.

여기저기 흔적을 남겨 놓아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괴담에 대항하여, 이 번에는 역으로 우리 쪽에서 흔적을 만들어 보았는데, 아무래도 조퇴로 퉁쳐진 모양이다.

‘상점에서 괜히 1포인트 버렸네.’

“이준! 팔 똑바로 펴!”

한자 숙제를 안 한 벌로 교실 뒤에서 무릎 꿇고 손 들고 있는 나.

나는 슬쩍 고개를 기울여 옆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선아에게 속삭였다.

“다음 쉬는 시간에는 책상에 보고 싶다는 낙서도 해 놓자. 정말로 누가 죽은 것처럼.”

“ 으응······

선아가 벌을 서느라 힘든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윽고 다음 쉬는 시간.

우리 부원들은 싸인펜과 형광펜을 들고 김은정의 책상에다가 낙서를 하고 있다.

[은정아, 보고 싶어.]

[그곳에서도 꼭 행복하길.]

[김은정. 내가 너 좋아했던 거 알 지?]

[은정아…….]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열심히 낙서를 하는 선아.

부히잇 하며 신이 나서는 마음껏 하고 싶은 말을 써 내려가는 덕훈 이.

죽었다고 오해할 수 있는 단어들을 신중히 선택해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 적고 있는 경원이…….

[은정아 행복해야 해.]

[벌써 너 보고 싶은데 어떡하냐, 은정아.]

[너 그렇게 가면 남겨진 우리는 어쩌라고… 진짜 너무하다. 미워할 거야…….]

[…….]

그렇게 한창 써 내려가던 우리. 갑자기 쉬는 시간이 끝나기 직전, 담임이 문을 열고 헐레벌떡 들어와 서는 무언가를 알렸다.

“해외로 유학 간다던 우리 반의 은정이 기억하나요?”

순간 담임에게로 쏠리는 교실의 시선.

“모종의 사정으로 유학이 취소돼서 다시 귀국했고, 학교로 오는 중이랍니다. 종례 시간쯤에 도착할 것 같다니깐 다들 환영해 줍시다!”

그러자 와, 하고 기쁜 듯이 박수를 치는 반 아이들.

“와아아~!”

담임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다 가, 은정이의 책상에 몰려 있는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와서 슥 훑어보신다.

“녀석들. 친구가 멀리 간다고 이런 것도 써 주고……

눈시울을 붉히는 담임.

“은정이가 와서 보면 감동하겠는데요.”

그러고 보니 우리가 쓴 글들은 기본적으로 죽었다는 가정하에 적기는 했지만, 멀리 떠나 버린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메시지다.

문장 그 자체로만 본다면 충분히 해외로 유학을 떠난 사람에게 썼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었다.

“기특하네요. 은정이가 오면 꼭 보여 주세요.”

흡족한 듯 웃으며 돌아서는 담임.

‘오지마, X발.’

“조, 종례 시간….”

긴장한 얼굴로 나를 보는 부원들.

“···온다고? 그 때?”

이 ‘온다’는 의미가 지금까지처럼 흔적만 남기는 게 아닌, 정말로 온 다는 걸 의미하는 거라면 큰일이다.

흔적만을 남기고 있을 때도 우리 정신이 휘말렸는데, 실물을 봐 버린 다면.

우리는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의논을 시작했다.

“···어떡하지? 그렇다고 책상에 추모글을 쓴답시고 사지가 찢겨서 무덤에 묻혔다는 내용을 적을 수는 없잖아.”

“그랬다가는 우리가 쓰레기가 될 거야.”

6교시를 알리는 종이 치고, 나는 할 수 없이 부원들에게 긴급 지령을 내렸다.

“역시 안 되겠다. 조금은 나쁜 짓을 하는 수밖에.”

“…어떤?”

나는 덕훈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화은 선생님의 의견에서 떠올린 거다. 김은정에게 등교 거부를 일으 켜 주자.”

이어서 6교시, 자습 시간.

[오덕훈아김은정 D-10이

“그거 알아? 은정이 유학 갔다가 지금 다시 돌아오는 이유. 덕훈이랑 사귀다가 멀리 떨어져 보니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래.”

“오늘이 마침 딱 100일이라던데?”

아이들은 처음에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고개를 저었지만, 나의 현란한 말빨과 부원들의 물량 공 세에 차츰차츰 넘어가기 시작했다.

“에이~ 말도 안 돼……

“진짜라니깐. 같은 동아리 부원이라서 아는 거야. 은정이도 괴담 동아리잖아.”

“그건 그런데……

진희도 앞자리에 앉은 남학생의 엉 덩이를 발로 툭툭 차서는 허위 뉴스를 퍼트리기 시작한다.

“그거 아냐? 오덕훈이랑 김은정이 랑 사귀는 거.”

“…에이, 거짓말.”

“거짓말?”

앞자리 남학생의 엉덩이를 발로 후 벼 파는 진희.

“X발, 거짓말이라고 했냐?”

“미, 미안… 아흣. 믿을게……

처음에는 웬 되지도 않는 가십거리를 갑자기 퍼트리냐며 불평한 우리 반 학생들이었지만.

계속해서 밀어붙이자 곧 괴담에 동 화되어서는 자연스레 덕훈이와 김은정이 사귀는 사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선아랑 하윤이가 칠판에 분 필로 글자를 커다랗게 적어 나갔다.

[오덕훈이김은정 D-100]

[반 일동 : 100일 축하해]

“알겠지? 종례 시간에 은정이 들어 오면 덕훈이가 꽃다발 건넬 건데, 다 같이 박수 쳐 주는 거다.”

“그래~”

“로맨틱하다.”

한두 녀석이 믿기 시작하더니, 이 제는 둘은 원래부터 사귀던 사이라고 의심 없이 믿는 반 학생들.

원래부터 핸드폰을 하며 놀기 바쁜 자습 시간이다 보니, 남의 연애 이야기에 키득거리며 들떠 가는 분위 기다.

‘고등학생들이란, 참.’

부우웅-

그 순간, 진동이 울리는 덕훈이의 핸드폰.

“···김은정한테 문자 왔다.”

“뭐? 어디, 어디!”

우리는 후다닥 덕훈이에게 모여들어서 내용을 확인했다.

[김은정]

[010-4444-4444]

- 덕훈아. 미안한데 우리 이제 헤어지자. 반에 들어가도 나한테 아는 체하지 마.

“… 차였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덕훈이.

나도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헤어지자고 통보하면 끝나는 일이었네……

“···어떡하지, 부장?” 경원이가 안경을 치켜세우며 시간을 확인했다.

“곧 있으면 6교시가 끝나. 종례까지 30분도 안 남았어……

온다.

김은정이 온다…….

“근데, 저기……

선아가 머뭇거리며 의견을 말했다.

“딱히 와도 상관없지 않아? 아직 뭔가 피해를 끼친 것도 아니고 “아직까지는 아니겠지. 하지만.”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왜 우리가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하는 건지 설명 해 주었다.

“어느 순간 우리도 완전히 잠식돼 버려서, 지금의 반 친구들처럼 김은정을 자연스레 우리 부원으로 인식 하고 지낸다면? 앞으로의 학교생활 이 어떻게 될까?”

“글쎄……?”

그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상상 이 잘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선아.

나는 강조하며 설명해 주었다.

“잊지 마. 김은정은 사람이 아니라 괴담이야. 그것도 마왕이 보낸.”

“···응.”

“우리의 정신을 조작해서 자연스레 섞여든다? 스파이가 하나 들어오는 꼴이라고.”

“그, 그렇구나……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이는 선아.

“친구인 척 들어와서 우리 안에서 내분을 일으키고, 동아리가 와해되도록 분탕질을 하더라도 우리는 알 아낼 도리가 없어. 왜냐하면 김은정은 두 달 전부터 우리와 함께해 온 절친한 멤버로 인식돼 있을 테니 깐.” “크, 큰일이다 커터칼을 꺼내 들고 허둥지둥하는 선아.

“곧 종례 시간인데… 어떡해……?”

우리의 적, 마왕은 단순히 육체를 죽이려는 것만이 아닌.

동아리 안팎으로 갖은 수를 다 써 가며 우리를 무너트리려고 하는 것이다.

“덕훈아, 일단은 김은정한테 내일 오면 안 되겠냐고 문자 보내 봐. 헤 어졌더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그, 그게 통할까?”

“안 통하면 우리가 마음대로 교실에 통보해 버리면 되지. 오늘 안 오게 됐다고.”

“이, 일단 알겠다능……

곧 내 두 배는 될 법한 손가락을 투둑투둑 움직여 키패드를 두드리는 덕훈이.

[조... 조또마테 쿠다사이!! 은정 상! 정말 미안한데 내일 오면 안 될 까나? 오늘 헤어졌다는 얘기를 들으 니 가슴이 너무 아파서 숨을 쉴 수가 없다… 모든 날이 내게 「슬픔」으로 물들어 버렸어. 세상은 내게 블루다.]

그러자 마치 기계가 입력한 듯이 곧바로 오는 답장.

띠링-

[김은정]

[010-4444-4444]

- 이상한 말투만 안 썼으면 계속 사귀었을 텐데. 정말 변함없구나. 알겠어. 나도 수업 다 끝났는데 환영 만 받으러 가는 것도 뭐하니깐 그냥 내일 정상 등교하는 걸로 할게.

괴담 동아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