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화
열한 번째 괴담 -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친구 (11)
“과자 좀 내올까? 앉아 있어 볼 래?”
“네, 감사합니다……
곧 상담실 한쪽 커튼이 쳐진 주방으로 가시는 선생님.
상담이 필요한 학생의 경우 학부모 도 함께 대동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상담실에는 이렇게 손님을 맞이 할 수 있도록 한쪽에 냉장고와 싱크 대, 여러 찻잔들과 과자들을 모아 놓은 주방 같은 공간이 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커튼이 쳐진 주방 너머에서 들리는 친절한 음성.
“졸업하고 연락도 없더니, 친구들이랑 우르르 몰려와서는?”
소파에 앉아 있는 진희가 우리 눈 치를 한번 보더니 쭈뼛거리며 대답 했다.
“은정이… 때문에 왔거든요.”
“은정이?”
“…네. 김은정요.”
딸그락딸그락.
접시에 과자와 찻잔, 음료수를 담으신 채 들고 오시는 선생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소파의 상석에 앉으신다.
“은정이… 6년이나 됐구나. 오랜만에 들어 보는 이름이네.”
순간 우리는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진희의 친구들처럼 잊어버린 게 아닌, 분명히 제대로 기억하고 계시는 모습.
“은정이는 갑자기 왜?”
“그게……
머뭇거리는 진희.
“은정이… 기억하고 계시는 거예요?”
“당연하지. 어떻게 잊어버리겠니.”
아무렇지도 않으신 표정.
역시 제대로 찾아온 거다.
“그게요. 그러니깐……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난감해하는 듯한 진희.
‘바보. 괴현상은 빼놓고 그냥 옛날 친구 근황 알고 싶어서 왔다고 말하면 되는데.’
우리는 한숨을 쉬고 차를 마셨다.
“뭐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계속해서 더듬거리는 진희를 보더니 선생님께서 웃으신다.
“진희 왜 이렇게 숫기가 없어졌어? 어릴 때는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지내더니.”
요새도 그렇게 지내요, 선생님.
곧 보다 못한 경원이가 귓속말로 진희에게 뭐라 쑥덕거렸다.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 고는 드디어 운을 떼는 진희.
“은정이… 잘 지내는지 알아보고 싶어서 왔어요.”
“···?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리시는 단아한 미모의 상담 선생님.
“너희 핸드폰 번호 서로 안 주고받았어?”
“···저 그때 핸드폰 없었어요.”
“아참, 그랬지.”
손뼉을 탁 치시며 웃으시는 선생님.
“나도 예전 일이라 깜빡했네. 그래서 항상 연락 안 돼서 잡으러 동네 뛰어다니고 그랬잖아.”
“···네.”
머쓱한 표정을 짓는 진희.
영화에서 자주 봤던 구도다.
평소에는 무섭지만, 은사님 앞에서는 얌전해지는 불량 학생의 모습.
그런 진희의 손목을 선생님께서 찰 싹 장난스레 때리시고는 곧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향해 물으셨다.
“진희 요새 어떻니? 학교는 잘 나 와?”
“그럼요.”
어른이랑 대화를 나누는 게 익숙한 듯 경원이가 나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낮에는 학교 다니고, 밤에는 알바 해서 돈도 벌며 열심히 살아요.”
“어머, 정말?”
놀라시며 활짝 웃는 선생님.
“공부는? 얼마 전에 너희 중간고사 쳤지? 어땠어?”
“···공부는 됐어요.”
진희가 퉁명스레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20살 되면 바로 매니저 하기로 약속해 놔서… 졸업만 하면 돼요.”
“매니저? 어떤 매니저?”
“지금 알바하는 매장 매니저요.”
“어디서 일하고 있는 거야?”
상냥하게 웃으시며 좋아하시는 선생님.
굉장히 즐거워 보이시는 표정이다.
“···저기, 그냥 어디 있는 햄버거 가게인데.”
“어디 있는 햄버거 가게?”
사람을 무장 해제시키는 상냥한 미소 앞에서 계속해서 머리만 긁적이는 진희.
“신림역 앞에 맥도리아요……
“괜찮네~ 왜 몰랐지? 선생님도 거 기 자주 가는데.”
“글쎄요……
야간에 불법으로 일하니깐 그렇겠지.
학생이 공부를 안 한다는데 말릴 생각은 없으신지, 단발을 찰랑거리며 웃기만 하시는 선생님.
“괜찮네, 어떤 일을 할지 빨리 정하고. 요즘엔 대학 졸업하고도 전공 못 살린 채 패스트푸드점 기웃거리는 애들도 많잖아.”
“그렇죠
나는 ‘그런가?’ 싶은 내용이었는데.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진희는 알고 있었던 사실인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매니저면 정규직이고, 짤릴 위험 도 딱히 없고, 오래 일하면 점장도 볼 수 있는 거고… 근데 3교대라 많이 힘들 건데 괜찮아?”
“괜찮아요.”
걱정하는 표정으로 얼굴을 기울여 주시는 선생님께 진희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지금도 야간이거든요. 적응됐어요.”
“뭐?”
깜짝 놀라시는 선생님.
“청소년한테 불법이잖아!”
“언니가 일하는 걸로 돼 있어서 괜 찮아요.”
명의도용이었던 건가.
어쩐지, 어떻게 17살이 야간을 뛰나 했네.
“언니는? 소득이랑 잡힐 텐데 괜찮 아?”
“괜찮아요. 프리랜서라 겸업하는 걸로 신고돼 있어요.”
“··.내가 못 살아.”
고개를 저으시는 선생님.
6년 전의 그 날로 돌아간 듯, 말썽을 부리는 제자를 본 스승의 얼굴이다.
“벌써 천만 원 모았어요.”
“요 녀석!”
씨익 웃는 진희의 손목을 찰싹 때 리시는 선생님.
“몸 상해 가며 불법으로 모으면 뭐 해! 야간이 얼마나 힘든데……
“어른 되면 합법인데요, 뭐.”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는 진희.
“그리고 체력은 자신 있어서……
“그래. 장하다, 장해.”
결국 제자 앞에서 못 당하겠다는 듯 웃으신다.
진희 역시 어색한 게 좀 풀렸는지 씨익 웃고 있는 모습.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푸는 사제지 간의 모습이 보기 흐뭇했지만,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야 할 타이밍이다.
나는 내 옆에 맹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선아의 뒤로 손을 넘겨 진희의 어깨를 쿡쿡 찔렀다.
‘음.’ 하는 얼굴로 고개를 든 진희가 알겠다는 듯 끄덕이고는 입을 연다.
“···은정이 말이에요.”
“그래, 은정이. 왜?”
찻잔을 다 비운 몇몇에게 다시 음료수를 따라 주시는 선생님.
“지금 잘 지내요?”
“그때 대안학교로 전학 갔었잖아요.” 말없이 찻잔을 채우시던 선생님이 이윽고 음료수통을 내려놓으시고는 한숨을 쉬신다.
“은정이……
“은정이는……
어두운 표정으로 어렵게 말을 꺼내시는 선생님.
어딘가 속상해 보이시는 얼굴이다.
“은정이는 좀… 전학 간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어.”
“···안 좋은 일요?”
선생님을 쳐다보는 진희.
« 응 ”
우리의 표정이 긴장으로 물들었다.
잠시 상담실에 정적이 흐르고.
뭔가 심상찮은 걸 느끼고 다시 물어보는 진희.
“어떤 안 좋은 일요?”
“···휴우.”
선생님께서 한숨을 내쉬고는 우리를 쳐다보셨다.
“그런데 너희들은 은정이랑 어떤 사이니? 남들이 듣기에 좋은 내용은 아니라서.”
“그게, 저희는……
뭐라 더듬거리는 경원이를 대신해 내가 앞으로 나섰다.
“저희도 다 여기 근처에서 초등학교 다녔거든요. 어릴 때 진희 통해서 몇 번 같이 놀았어요.”
“···그렇니?”
눈썹을 치켜뜨시는 선생님.
하지만 딱히 딴지 걸 내용도 아니고, 그냥 넘어가시려는 듯 한숨을 푹 쉬시고 얘기를 계속하셨다.
“은정이가 전학 간 대안학교는 산에 위치한, 기숙사가 있는 곳이었어.”
“…네.”
“은정이는 거기서 머물며 생활을 했는데, 한 달도 안 돼서 사고가 있었단다.”
“···어떤 사고요?”
“한밤중에 숙소에서 몰래 빠져나온 은정이가 산을 타고 내려오다가, 그 만 발을 헛디뎌서……
침을 꿀꺽 삼키는 우리들.
‘그래서 죽었나요?’라고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적절한 단 어를 찾던 도중 선생님께서 먼저 표현을 둘러 말씀해 주셨다.
“우리 학교에서는 선생님만 장례식에 갔다 왔단다.”
“너한테는… 숨겨서 미안해. 어린 나이에 죄책감 느낄까 봐……
조금 충격을 받았는지 멍한 표정을 짓는 진희.
설마설마했더니 전학 가자마자 죽었을 줄이야.
“그때 도마뱀이라든가, 토끼라든 가… 그런 일들이 많았기도 하고. 교육청 관계자가 감찰하러 내려왔을 때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던 게 진희 너의 면담이었기도 하고……
“그래서 혹시나 은정이가 대안학교에 가서 그렇게 된 거에 네가 죄책 감을 가질까 봐, 굳이 얘기 안 했었어. 미안해.”
따뜻하게 진희의 손을 잡아 주시는 선생님.
진희는 감정이 복잡한 듯 몇 번 고개를 젓더니 소파에 기대 누웠다.
“···그런데 선생님. 왜 다른 아이들은 은정이에 대해 기억 못 하는 걸 까요?”
가만히 눈을 감고는 중얼거리는 진희.
“마치 그런 애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아무도 기억을 못 해 요……
“···학교 잘 안 나왔던 네 친구들 얘기니?”
선생님께서 손을 잡은 채로 차분하게 대답해 주신다.
“혹시나 걔들 이야기면 은정이만 기억 못 하는 게 아니고 반에서 기억하는 다른 친구들 자체가 아예 없을 것 같은데… 너희는 항상 너희끼 리 몰려다녔잖아. 수업도 많이 빼먹어서 일반 학생들과는 어울리지도 못했고……
“그건 그렇네요……
눈을 찌푸리며 소파에 기대는 진희의 손을 선생님이 천천히 놓으신다.
“잠시 전화 좀 하고 올게. 여기서 얘기 나누고 있으렴.”
“네……
조금 착잡한 분위기의 상담실.
선생님께서는 우리끼리 감정을 나 눌 수 있게 배려해 주실 모양인지 잠시 밖으로 나가신다.
“골치 아프네……
소파에 등을 기대고 눕는 경원이.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눈을 감고는 한숨을 쉰다.
‘후우.’
나도 동감이다.
‘골치 아프네, 이걸 어떻게 풀어나 가야 되는 거지.’
나 역시 한걸음에 여기까지 달려오 느라 진이 빠진 상태.
조금은 허무한 결말을 맞이한 채 상황을 가만히 머릿속으로 정리해 봤다.
‘…이미 한참 전에 죽은 아이라니.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진짜 김은정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전학 간 직후, 바로 실족사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6년 뒤, 착각인지 우연인지 진희의 친구들은 아무도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고.
동시에 진희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우리 부원들의 주위에, 누군가 김은정을 자처하며 서서히 일상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한다.
1. 그 존재가 사람이 죽어서 된 김 은정 본인의 귀신이라면, 어째서 실제 살아 있을 때의 김은정과는 성격 도 성장 배경도 완전히 다른가?
2. 반대로 그 존재가 괴담에서 탄 생한, 실제 고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흉내꾼일 뿐이라면. 어째서 굳이 김 은정이라는 이름과 짝이었다가 전학 갔다는 특성에 집착하는 것인가?
‘모르겠어. 머리가 잘 안 돌아가.’ 복잡한 머리를 붙잡고 있던 찰나. 갑작스레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특수 능력 인생설계가 발동합니다.]
파앗-
[지금 당장 자살하세요.]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