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화
열한 번째 괴담 -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친구 (14)
슬픈 사실은, 사이코패스는 치료로 고쳐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훈련으로 적응해 가는 수밖에 없어. 어느 정도의 공격성과 행동이 사회에서 용인되는지, 직접 새겨 줘야 해. 그리고 그런 정신 치료와 사회화 훈련은 전문가를 통해 꾸준히 받아야 하는 등, 상당히 까다로워.”
“···근데 그게 학교 선생님을 통해서 가능한 건가요?”
은정이의 경우, 일단 얘기를 들어 봤을 때는 어딘가 전문적인 기관에서 치료를 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매일 수업 마치고 학교에서 면담을 했을 뿐.
그것도 알 수 없는 세력과 한패인 수상한 상담 선생님과.
“불가능하지. 학교 선생님을 통해 서는.”
장화은 선생님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저으셨다.
지금도 생소한 개념인데, 6년 전이면 지금보다도 사회적 인식이 더 약했을 때.
나는 순간적으로 전에 치렀던 사이 코패스 테스트가 떠올랐다.
확실히 그것도 소재만 차용해 온, 흥미 위주로만 떠돌던 인터넷 괴담에 불과했다.
그런 종류의 소재가 허구한 날 매체에서 악역의 이미지로 소비되는 것과는 별개로, 진지하게 장애로 취 급되기 시작한 건 우리나라에서 얼마 안 됐다고 한다.
“병원에 가야 한다는 인식조차도 없는 부모님들이 대다수야.”
찬찬히 설명해 주시는 선생님.
“사회에 적응하는 훈련은 대부분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가족들의 의지인데.
아무래도 이런 부분에서 아직 인식이 더디다 보니 한국에서는 치료가 쉽지 않거든.”
치료의 내용으로는 병원에서 가족 들에게 ‘해야 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 같은 책자를 달달 외우게 시 키는가 하면.
집에서 동물을 키우게 하며 관찰 일지를 쓰게 하거나, 신문이나 뉴스를 보며 사회적으로 어느 선까지 행 동들이 용인되는지 정리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 걸 일일이 다 새겨 줘야 하나 보네요……
“그래야지.”
그러자 지금까지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진희가 물었다.
“하면 되는 말, 안 되는 말. 그런 목록이 있는 거예요? 어떤……
“예를 들자면, 동물을 왜 괴롭히면 안 되냐는 질문 같은 걸 들었을 때 4나쁜 짓이잖아!’, 4불쌍하잖아!’ 같은 게 제일 나쁜 답변이야.”
정확히 진희가 자신의 짝에게 건넸던 말이다.
“너무 죄책감 가지지는 마.” 나는 진희를 쳐다보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런 말 한두 마디로 삐뚤어질 가벼운 장애는 아닌 것 같으니깐.”
“너는 걔랑 알고 지낸 시간이 반년 도 채 안 됐잖아. 네가 준 영향력은 얼마 없었을 거야.”
반응이 없는 진희.
나는 다시 선생님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그런 질문에는 어떤 식으로 대답해야 하는 거예요?”
“최소한의 논리 구조는 갖춰서 대답해야지. 법을 들어서 얘기해도 좋고.”
실제 환자 가족에게 들은 얘기로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득도 없는데 동물을 그냥 죽이는 것을 싫어 한다.’ 혹은 ‘먹으려고 동물을 죽일 때는 법에 정해진 도축 방법이 있는 데, 거기서 벗어나서 죽이거나 하는 걸 싫어한다.’ 정도가 그나마 말해 줄 수 있는 답변 중 하나라고 한다.
“미묘하네요.”
“이렇게 대답해 줘야 이해하는 게 아닌 그나마 수긍하는 거고, 해서는 안 될 목록에 추가하는 거야. 어떤 느낌인지 알겠어?”
“네, 감사해요.”
나는 부원들을 바라보았다.
경원이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마치 ‘이제 부장이 모든 걸 정리해 줄 차례군.’ 하는 표정.
하지만 동아리방에 흐른 건 정답이 아닌 정적이었다.
“···부장?”
“왜.”
“왜냐니.”
어깨를 으쓱하는 경원이.
“진행해야지.”
“뭘?”
녀석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뭐긴! 이제 귀신 퇴치하고 사건 해결해야지!”
“어떻게?”
곧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안경원.
“그건 부장이 말해 줘야지.”
당연하단 듯이 말하는 녀석에게 나는 어이가 없어서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이 녀석은 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 하는 걸까.
“다 나왔잖아! 현실에서의 김은정이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또 그 상담 선생이라는 사람이 자기네 재단 쪽 특수 학교로 전학시키려 이것저것 꾸민 것도 다 밝혀졌잖아!”
“그렇지.”
“그럼 이제 부장이 해결책만 제시 해 주면 되겠네!”
몰라, 병신아.
네가 내놔 보든가.
하지만 그걸 입으로 뱉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나는 상황을 책임지고 끌고 가야 할 조직의 장이니깐.
‘후우.’
묵묵히 팔짱을 끼고 다시 머리를 굴려 본다.
뭔가 새로운 방법이 없는 건가.
녀석의 말처럼 아까보다 얻은 정보는 훨씬 많은데, 정작 그중에 지금의 사건 해결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건 아직 못 찾겠다.
“···설마 모르는 거야? 부, 부장이라면 당연히 알 줄 알았는데……
굳어 있는 내 표정을 보고 당황하는 경원이.
난색을 표하는 건 다른 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오이, 좆준. 그러지 말고 생각해 봐라. 분명 뭔가 방법이 있을 거라 고!”
“준아... 정말 생각나는 거 없어……?”
나에 대한 이 녀석들의 기대치는 도대체 어느 정도였길래.
다들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나도 이번만큼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귀신 붙잡고 심리 치료 받으러 갈 좋은 아이디어 있는 사람?” 그 말에 다들 눈치만 보는 부원들.
“무, 문자 보내면 답장 온다며? 그 걸로 설득하면 안 되냐능……
“해 봐.”
허둥지둥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서 뭐라 뭐라 중얼거리며 김은정에게 문자를 보내는 덕훈이.
“너… 그렇게 다른 사람… 친구인 척... 하면 안 돼... 사회적으로... 용 인되지 않는… 행동……
탁, 타닥-
이어서 바로 날아온 답장에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부응-
[김은정]
[010-4444-4444]
- 너야말로 기억 안 나는 척하는 거 아냐? 우리가 얼마나 친했는데… 어쨌든 종례 시간 때 얼굴 보며 말 하자.
“성공했어?”
“···아니.”
실망한 얼굴로 핸드폰을 보는 덕훈 이.
“들어 봐.” 나는 부원들에게 지금이 어떤 상황 인지 납득시켜 주기 시작했다.
“대충 뒷이야기와 흑막도 다 밝혀 낸 것 같지만, 제일 중요한 문제인 김은정을 어떻게 못 오게 하냐는 건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어.”
“···오게 해도 별로 상관없는 거 아 냐?”
진희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 상담 선생이 다 꾸며 낸 짓이고, 진짜 은정이는 뭐 나쁜 짓도 딱히 안 했다며. 그럼 오게 해도 상관 없는 거 아냐?”
살인마 사이코패스 귀신이었다면 막아야 하지만, 조금 장애가 있는 아이가 귀신이 된 것뿐인데 굳이 요란 떨 필요가 있냐는 진희의 의견.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살아 있을 때의 본인이 착했냐, 어떻냐, 같은 문제가 아냐.”
“그럼?”
“중요한 건 마왕이 보낸 괴담이라는 점이지.”
나는 다시 한번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모든 걸 설명해 줬다.
“전 시간대에서 그 선생의 반응을 보니, 6년 전의 사건에는 분명 얽혀 있었던 건 맞아. 하지만 지금의 괴담에서 다시 나타난 김은정에 대해 선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어.”
“그렇긴 한데. 그게 뭘 뜻하는 건 지……
“그 말인즉슨, 6년 전 일이야 어찌 됐든 당장의 괴담은 학교 측에서 보낸 게 아니란 거지.”
나는 과거의 사건과 지금의 사건을 별개로 놓고 봐야 한다는 점을 설명 해 주었다.
“학교의 이상한 선생들은 지금 일과 관련 없어. 지금의 괴현상은 어제 진희가 들려준, ‘어렸을 때 같이 놀았는데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친 구’의 썰이 세상에 떠돌던 괴담과 조건이 맞자, 그대로 마왕이 엮어 버린 게 분명해.”
“그러니깐 마왕이 보냈다는 게 어떤 의미인 건지 잘 모르겠어.”
지금 시간대에서는 아직 설명이 안 돼 있구나.
나는 그 부분을 다시 한번 정리시 켜 주었다.
‘괴담에 덧씌워진 존재에게 원래의 인격이 남아 있는가?’
아니.
그건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심심하면 괴담에 빙의되는 장화은 선생님만 봐도 알 수 있고, 나 역시 사이코패스 테스트 사건 때 문항을 반대로 실천해 가며 괴담과 동화된 기억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그때 나는 본인이 이준이라는 자각은 있었지만, 사고방식도 행동도 완전히 다른 존재였었다.
“그래서 반드시 막아야 해. 괴담으로 다시 불려 나온 네 친구는 살아 있을 때와 완전히 다른 존재야.”
본인이 자각하고 있든 없든, 우리 안에 스며들어서 보낸 존재의 뜻대로 내분을 일으키거나 위험한 짓을 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리고 우리는 기억이 왜곡돼서 뭐가 어떻게 잘못된 건지 알아차리지 도 못한 채 휩쓸려 갈 테고.
마음이 편하지는 않은 듯 씁쓸한 표정의 진희.
“시간이 없어. 나쁜 건 우리가 아 냐. 그리고 미안하지만 새로운 방법 같은 것도 안 떠올라. 그냥 전 시간 대에 써먹었던 방법을 다시 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아.”
“전 시간대에 썼던 방법이라면 “증거를 조작해서 학교에 올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그걸 다시 해 보는 수밖에.
“···그치만 그걸로는 하루 미룬 게 고작 아니냐능?”
기억도 못 하는 새 은정이에게 차 여서 기분이 좋지 않은 건지, 덕훈이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부, 부장. 좋은 방법이 안 떠오르면 조금 더 고민해 보는 건 어떨 까? 하루 미뤄 봤자 큰 차이는-”
“들어 봐.”
안절부절못하는 경원이에게 나는 다소 굳은 얼굴로 말했다.
“하루가 아니라 3년이야.”
“3 년 ?”
의아한 표정을 짓는 부원들.
“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조금 어리 둥절한 표정으로 부원들이 서로를 쳐다본다.
그러더니 갑자기 ‘허억!’ 하는 놀라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 서는 경원이.
“그... 그렇구나아! 이럴 수가!”
박수를 치며 소리 지른다.
“3년! 역시! 우와!”
이내 원숭이처럼 펄쩍 뛰며 함성을 지른다.
“역시! 역시~! 부장이다! 역시!”
“방법이 없는 척하기는! 우와! 우와! 역시 있을 줄 알았다아아~! 우와! 부장 대단해!”
으아아아아아!
부장 대단해!
그렇게 혼자 감탄하고 박수 치며 좋아하는 녀석.
그 정도로 놀랄 일인가?
페이크가 아니고, 진짜로 퇴치할 방법이 없는 건 맞는데.
“부장 미쳤어! 어떻게 그런 생각을! 3년! 우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머리를 아래로 마구 뒤흔들고 춤추며 괴성을 지른다.
“우와아! 정말! 크큭… 감탄할 수 밖에 없잖아! 미쳤어! 우와! 괴담 동아리에 들어오기를 잘했어! 최고야!”
허리를 뒤로 꺾었다 세웠다 마구 경련을 일으키던 경원이가 이내 박 수 치며 원숭이처럼 다시 팔짝 뛴다.
‘돌았나?’
왜 저러냐며 쳐다보는 부원들의 시선이 느껴졌고, 나는 경원이를 진정 시키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진정하고 앉아.”
그제야 히히덕거리며 자리에 앉는 녀석.
“들어봐. 덕훈이와 사귀었다가 헤어진 걸로 하루 학교에 못 오게 막을 수 있었잖아. 똑같이 이것저것 증거를 조작해서 학교에 못 오는 이 유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거야.”
“근데 왜 3년이야……?”
선아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는다.
“언젠가는 찾아오는 거잖아……
“그때 우리는 이미 졸업하고 학교에 없어서 그런 거 아니냐능?” 덕훈이가 아리송한 얼굴로 의견을 내 보지만 다들 동의할 수 없는지 고개를 젓는다.
“집으로 찾아오면 어쩌려고. 졸업 했다고 포기할 애는 아닌 것 같은 데……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낮은 웃음소리.
“크큭... 아무도 부장의 뜻을 이해 하지 못한 건가.”
경원이가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면서 안경을 치켜올린다.
“부장이 말한 3년의 의미를 이해한 사람. 여기선 나뿐인 건가?”
“아니. 나도 아는데.”
하윤이가 턱을 괸 채 무표정하게 말했다.
“마왕 때문에 그런 거잖아.”
“… 마왕?”
한층 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나머지 부원들.
나는 하윤이에게 정답이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들어 봐. 지금의 사건은 마왕이 만들어 낸 괴담. 그럼 3년 뒤, 우리가 마왕의 부활을 막아 내고 엔딩을 맞이한다면?”
과연 그 뒤에도 김은정이 찾아와서 뒷북을 치는 일이 있을 것인가?
“···나루호도.”
덕훈이가 드디어 이해했다는 듯 팔 짱을 끼며 씨익 웃는다.
“최종 보스를 물리치면 잡몹들은 알아서 사라진다는 게임의 구조에서 떠올린 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게임 초반부에서 놓친 잡몹이 엔딩 크레딧까지 주인공을 쫓아올 리 없는 것이다.
그제야 ‘아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선생님과 부원들.
“좋은 방법이 없다고 말한 이유는, 이게 퇴치법이 아니기 때문이야. 3 년 뒤로 미루는 꼼수를 써서 안 마주쳐도 되게 피하는 것뿐이지.”
“확실히, 마왕을 막고 엔딩을 봤는 데도 괴담과 또 얽힌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과연!”
탕!
책상을 치는 덕훈이.
“내가 인정한 남자다.”
순간 눈길이 진희에게로 쏠렸지만, 웬일로 진희는 경원이와 덕훈이를 팰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오히려 마음이 콩밭에가 있는 듯 다른 곳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긴 표정.
“좋은 생각인 것 같아, 준아! 그런 데……
선아가 희망찬 표정으로 동의하다 가, 이내 나를 보며 갸웃거린다.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아……?”
좋은 생각이라며 부원들이 박수 치고 떠들썩한 와중, 내 표정이 좋지 않은 이유.
그건 지금 진희가 생각이 많아진 이유와 같다.
‘덕훈이와 헤어진 걸로 하루… 거 기서 3년을 미루게 하기 위해서
느 ’
어쩌면 우리는 은정이에게 꽤 심한 짓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