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열한 번째 괴담 -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친구 (15)
“어이,「샌』. 준비됐어?” [아아, 물론이지. 『근』』 5교시를 앞둔 교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덕훈이.
“ 소.”
[죠.]
[젠!]
“다 모인 건가.”
코를 슥 훑은 덕훈이가 이내 씨익 웃는다.
“그럼 흔들어 보자고. 인터넷 세상 으 ”
탁. 타닥. 타다닥.
곧 이어 5교시 한자 시간.
선아와 진희랑 나는 저번 시간대처 럼 숙제를 안 해 온 벌로 교실 뒤에서 손을 들고 있는 중이다.
‘잘하고 있나?’
비어 있는 내 자리 옆에 홀로 앉아 있는 짝꿍 덕훈이.
열심히 책상 밑으로 휴대폰을 두드리는 게 보인다.
때때로 선생님의 주의가 쏠릴 때면 멀쩡히 칠판을 쳐다보다가도 책상 밑에서는 보이지 않게 키패드를 두 드리는 오덕훈.
‘ 굉장하군.’
지금 덕훈이는 인터넷 친구들과 함 께 우리 학교 학생들이 애용하는 SNS에 김은정에 대한 루머들을 퍼트리는 중이다.
제목 : 내 친구 사고 나서 병원에 있어 ㅠㅠ
내용 : 나 낙성고 신입생인디 7T 오늘 신림동에서 4중 추돌사고 일어 난 거 다들 알지? 거기서 3월에 전학 온 내 친구 다쳐서 입원했는데, 다리 불구래 ㅠㅠ
제목 : 1학년 3반에 여자애 크게 다침 CC
내용 : 울 학교 1학년 3반 전학 온 신입생 교통사고로 다리 짤렸대 덕훈이가 한창 핸드폰을 두드리던 중, 갑자기 운동장 저 멀리에서 자동차들이 요란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끼이익- 쾅!
수업을 하다 말고 일제히 창문 너 머로 쏠리는 학생들의 눈길.
성실히 숙제를 했기에 자리에 앉아 있던 경원이와 하윤이도 고개를 돌린다.
우리가 퍼트린 루머가 김은정의 배 경을 조작할 만큼의 인과율에 도달 한 것이다.
우당탕-
동시에 복도에서부터 누군가 급하게 뛰어오더니, 앞문을 헐레벌떡 열 어젖힌다.
“으, 은정이 본 사람? 교실에 없나요‘?”
담임이었다.
동시에 제일 뒷자리로 쏠리는 눈길.
“수업 안 들어온 것 같은데요.”
반장이 대답하자 담임이 땀을 닦는다.
“큰일났네, 이거……
“무슨 일이길래 그러시는지……
수업 중이던 한자 선생님께서 책을 덮고 담임에게 물었다.
“그게 말입니다. 방금 여기 앞에서 4중 추돌 교통사고가 났는데, 잠시 점심시간 이용해 외출 중이던 우리 학생이 휩쓸린 것 같다고… 자리에 없는 다른 학생은 없죠?”
곧 출석을 다시 확인한 담임은 수 업을 방해해서 미안하다는 인사와 함께 급히 복도를 다시 달려갔다.
“무슨 일이래니?”
가십거리를 좋아하시는 아줌마 선생님답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른 학생들에게 물으시는 한자 쌤.
“여기요, 뉴스…… 어떤 남학생이 급히 핸드폰으로 검 색하더니, 방금 올라온 뉴스 하나를 보여 드린다.
“세상에… 학교 바로 앞이네. 4중 추돌… 웬일이니, 정말……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시는 한자 선생님.
하지만 걱정을 가장한, 뭔가 쑥덕 거릴 뉴스거리를 찾아냈다는 얼굴이다.
“… 너희는 무단횡단 같은 거 절대 하지 마렴. 어쨌든 일단 수업하자. 별일 아니면 좋겠네.”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다시 책을 펴시는 선생님.
하지만 본인부터 마음이 콩밭에가 있는 표정이시다.
“트럭치면 GH意治面) 이계전생(異 界轉生) 떨어지면(學漁地面) 차원이 동(次元移動)……
‘···끝난 건가?’
다리가 불구가 됐으면 솔직히 학교에는 못 오겠지.
다소 씁쓸한 결말이었지만, 생각나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 정도면 됐나?”] 고개를 돌아보며 나에게 입 모양으로 묻는 덕훈이.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곧 종이 치고, 쉬는 시간.
손을 내리고 자리로 돌아가려던 찰 나, 담임이 다시 복도에서부터 달려 와서 문을 열어젖힌다.
“다, 다행히도 은정이는 별일 없다 네요!”
“다친 건 다른 아이라고 합니다! 지금 학교로 돌아오는 중이라네요. 놀란 학생들 있으면 선생님이 사과 할게요, 미안합니다. 홋홋.” 가슴을 쓸어내리는 우리 반 학생 들.
하지만 우리 괴담 동아리 부원들의 안색은 좋지 않았고, 덕훈이의 자리로 모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자, 잠시만……
급히 휴대폰을 열어서 SNS를 살피는 덕훈이.
우 | 99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흠칫 놀란다.
“···여기 봐. 누군가 분탕을 쳐 놨어.”
제목 : 내 친구 사고 나서 병원에 있어 ㅠㅠ
댓글⑴
ㄴ KEJ4444 : 그거 다른 학생이 래. 목격자가 착각한 거래 三
제목 : 1학년 3반에 여자애 크게 다침 cc
댓글⑴
ㄴ KEJ4444 : 비슷하게 생긴 애가 다친 건데 옆에 있던 사람이 착각한 거라네 더
KEJ. 김은정의 약자다.
“어떡하지, 부장?”
“준아……
당황한 채 묻는 부원들에게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더 밀어붙여.”
기다렸다는 듯 끄덕이는 덕훈이.
“해외로 집이 야반도주했든, 병원에 입원했든 간에 학교에 못 오는 상황으로 루머를 퍼트려.”
헛소문을 퍼트려서 다른 곳으로 보내 버리자.
위험한 애잖아.
우리가 졸업할 때까지 마주치는 일이 없게 하자.
마치, 6년 전 대안학교로 보내 버렸을 때처럼.
“아아, 기다리고 있었다고.”
죄책감으로 무거운 내 표정과는 달 리, 역시 이런 쪽으로는 상당히 우직한 녀석답게 씨익 웃으며 자기네 멤버들 단톡방을 켠다.
“우리 오타쿠들의 화력을 이런 급 식들 몰려다니는 카스에만 쓰기에는 너무 아깝지.”
곧 무언가를 타다닥 입력하는 덕훈 이.
[근첩덕훈 : 어이, 『샌』. 아직 거 기 있나.]
[와샌즈 : 아아, 『근』. 언제든 있어.]
[아시나 겐이치로 : 무슨 일이지?]
[반시연 : 기다렸어요.]
덕훈이와 그의 인터넷 친구들.
일명 ‘Anonymous’를 자칭하는 게임 폐인들의 모임이다.
곧이어 빠르게 무언가를 주고받는 녀석들.
[근첩덕훈 : 오이, 일거리가 하나 더 있는데. 아무래도 방금 우리들이 한 걸로는 ‘마스터’가 만족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와샌즈 : 이런이런. 귀찮은 일이 하나 더 늘어나는 건가요.]
[근첩덕훈 : 아아, 그래. 하지만 결국 ‘네놈’들 밖에 해줄 수 없는 일이다. 어때. 받아들이겠나.]
[아시나 겐이치로 : 혀가 길군. 용 건만 말해라.]
[반시연 : 사령관의 명에 따르겠어요.]
[근첩덕훈 : 좋다. 너희들이 해줄 일은….]
밥 먹고 하는 게 컨셉질이라 그런 지, 이런 종류의 대화에는 익숙해 보이는 사람들이다.
‘친구는 인터넷 친구가 있어요!’
덕훈이의 중2병 인터넷 친구들, Anonymous.
그들이 작업을 시작한다.
탁- 타닥- 탁- 타닥-
디스코드로 음성채팅을 하면서 순 식간에 스마트폰에 여러 창을 켜놓고 오가는 덕훈이.
곧 경원이가 궁금하다는 듯 묻는다.
“근데 다들 뭐 하는 사람들이야? 평일 낮에도 인터넷을 붙잡고 있을 수 있다니.”
마침 나 역시 이 멤버들의 정체가 궁금하던 찰나.
덕훈이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해 줬다.
“공익. 백수. 오수생. 사회의 그림자 밑에 몸을 숨긴, 익명의 사냥꾼 들이다.”
“···굉장하구만.”
남는 게 시간뿐인 사람들이구나.
혀를 내둘렀다.
“목표는 인터넷 10대 커뮤니티의 김은정 루머 확산. 다들 계정 체크 들어가라능.”
[와샌즈 : 오케이.]
“리젠에 묻히면 주작기 돌려서 추천글로 보내. 베스트 간 거는 톡방에 링크 걸어 주고. 댓글 작업 들어 가게.”
[반시연 : 네. 지금 하나 베스트로 올려 보냈어요.]
“거기 들어가서 다들 낙성고 학생인 척 댓글 달아. 명심해.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곧 6교시 자습 시간이 시작되고.
덕훈이와 인터넷 친구들의 현란한 작업을 보던 부원들도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도배에는 걸리지 말라능. 주기적으로 돌아가며 문장 바꾸고……
이어폰을 끼고는 정신없이 인터넷 친구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내 옆의 덕훈이.
“···아아, 그렇다능. 거기에…”
몇몇 학생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혼자 중얼거리는 덕훈이를 쳐다봤지만, 학기 초부터 꾸준하게 오타쿠 컨셉을 밀던 덕훈이.
저 녀석은 원래 그런 놈이라고 다들 고개 저으며, 하던 일에 다시 집중할 뿐이다.
“야반도주하려다가 비행기 회항으로 돌아온 게 그때 일이라고? 쳇, 엮기도 잘 엮는군. 좋아. 물건 훔치 다 소년원에 들어간 걸로 밀어.”
넷상에서 정신없이 전쟁 중인 덕훈이.
물끄러미 지켜만 보던 나도 슬쩍 녀석을 툭툭 치고 작게 속삭였다.
“나도 단톡방에 초대해 줄래? 상황 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보게.”
“잠시만.”
너무 여러 커뮤니티에서 작업 중이 다 보니, 내가 인터넷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어디까지 어떻게 작업 된 건지 확인하는 데 무리가 있었다.
결국, 오타쿠들의 단톡방에 초대받은 나.
카톡-
[근첩덕훈님이 이준 님을 초대했습니다.]
[근첩덕훈 : 오이, 신입이다.]
[이준 : 반갑습니다. 덕훈이 친구 예요.]
[와샌즈 : 저놈은 누구지? 한 번 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아시나 겐이치로 : 아… 제가 말 하지 않았군요… 저분은 바로 우리 ‘Anonymous’의 새로운 ‘옵저버’가 되실 적격자입니다.]
[반시연 : 오호? 그 말로만 듣 던?‘?]
“뭔 얘기야?”
당황한 나에게 덕훈이가 휴대폰을 두드리며 무심히 말했다.
“신경 꺼도 돼. 그냥 자기끼리 하고 싶은 대사 치는 거라능.”
카톡-
[이준 : 저기…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귀한 시간 내셔서 저희 일을 도와주시는데 정말 감사 드립니다.]
[와샌즈 : ···너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건가?]
[이준 : 뭘요?]
[와샌즈 : 후우. 아직은 그 ‘힘’。] 발현되지 않은 건가.]
[반시연 : 뭐야? 제대로 데리고 온 것 맞아?]
[아시나 겐이치로 : 진정해, 다들. 아직 그는 준비가 되지 않은 것뿐이야.] [와샌즈 : 그렇다면 가르쳐 줘야겠군. 우리의 진정한 목적은 클로버 기업의 절멸.]
[반시연 : 우리는 군단이다.]
[아시나 겐이치로 : 우리는 용서하지 않는다.]
[와샌즈 : 우리는 잊지 않는다.]
[반시연 : 우리는 어나니머스 (Anonymous)다.]
덕훈이의 인터넷 친구들, 일명 ‘어 나니 머스 (Anonymous)’.
“굉장하네.”
핸드폰을 던져 버리려다 참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만히 살 펴봤다.
“···왜 묻히냐능? 이 시간에 묻힐 이유가 있냐고?”
[와샌즈 : 갑자기 연예인 음주운전 터져서….]
“그럼 일단은 남초 사이트에 전력을 집중하자고.”
[반시연 : 그럼 여기서 이렇게 .]
곧 나에 대한 관심은 꺼졌고, 이내 여러 커뮤니티의 상황을 업데이트하는 그들.
멤버들의 공략 대상 1순위는 실시간으로 루머를 퍼나르기 가장 좋은 SNS였다.
그다음 2순위가 10대들이 자주 드나드는 커뮤니티, 그중에서도 여초 성향이 강한 사이트들.
“이런 종류의 일반인 개인사에 대한 가십거리는 10대 커뮤니티, 그중에서도 여초 성향 커뮤가 가장 파급력이 쎄다능. 남초 사이트는 게임이 나 스포츠 얘기 아니면 둔감해서 추천 글로 빠르게 띄우는 거 아니면 금방 묻힌다고.”
카페, 유머사이트, 게임사이트, 자동차 커뮤니티, 정치 사이트까지.
다중 계정으로 주작기까지 돌려 가며 순식간에 김은정의 루머로 인터 넷을 도배해 버리는 녀석들.
[너희 학교에서 물건 훔치다가 정학당한 싸패 no久 알아? 나 걔랑 같은 학교인데 다시 올까 봐 무섭다. 자기보다 예쁘다고 짝 실내화에 압정 박아 넣었다는데.]
[내 동생 친구가 기 o 즈이라는데 걔 썰 하나 기억난다… -ㅠ-ㅠ 근데 지금은 소년원에 있어서 못 온대. 걱정 마.]
[걔 근데 불치병 걸려서 이제 학교 못 온다고 안 했어? 아직도 그러고
다녀?]
이리저리 온갖 가짜 정보를 흩뿌리던 중, 갑자기 멤버들의 단톡방 분 위기가 이상해진다.
[와샌즈 : 어이, 『근』. 아까부터 한 놈이 계속 따라다니며 분탕 댓글 단다.]
[아시나 겐이치로 : 화력이 우리랑 비슷한데? 존나 빨라.]
[반시연 : ...만만치 않네.]
빠르게 인터넷 커뮤니티를 다시 체 크하는 덕훈이.
안경알의 한쪽을 반사시키며, 이어 폰을 벗고는 나를 돌아본다.
“놈이다, 부장.”
나는 예상했다는 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밀어붙여.”
이어서 복도에서 우당탕탕 담임이 뛰어오더니, 교실의 문을 벌컥 열고 외친다.
“자… 자습 중에 미안합니다! 혹시 올해 초에 전학 왔다가 물건 훔쳐서 소년원 들어갔다가 다시 학교에 와서 일진들이랑 칼부림 부리다가 십 자인대 끊어져서 17바늘 꿰맨 후 집으로 퇴원하는 길에 4중 추돌 교통사고 당해서 다시 입원했다가 원인불명의 호흡기 질환에 시달린 후 급격하게 상태가 좋아져서 얼마 전에 퇴원해서는 다시 복학하려다 집 이 부도나서 가족끼리 공항으로 야반도주하다가 회항 문제로 비행기가 못 떠서 다시 돌아온 은정이 기억합니까? 종례 때 다시 온다고 했는데, 확실하지 않아서 안 올지도 모를 것 같았거든요, 근데 그게 또 올지도 모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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