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동아리-104화 (104/130)

104화

열한 번째 괴담 -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친구 (17)

“빨리, 빨리!”

“하아, 하아, 하아.”

다급히 학교를 뛰쳐나가 장화은 선생님의 차에 타는 우리.

“출발해요, 바로!”

“야! 자리 없어! 다 못 들어가!”

“한 명 내 오토바이로 타!” 다급히 두 팀으로 나뉘어져 시동을 걸고 출발한다.

‘젠장, 젠장, 젠장….’

처음부터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김은정은 누군가를 흉내 낸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자기 자신이라 부를 만한 정체성이 없었던 것이었다.

* * *

“누구~ 게.” 기차들이 오고 가는 서울역의 기다 란 정거장.

열차를 기다리며 선로를 쳐다보던 중년 남성의 눈을 누군가 뒤에서 가린다.

두 눈을 가리는 차가운 손바닥의 감촉.

당황한 듯 고개를 드는 남성.

“저기····♦·

“맞혀 봐요.”

하이톤 젊은 여성의 목소리다.

끽해야 학생 정도의 나이일까.

“···글쎄요.”

정말로 누구지.

아는 목소리인가 가만히 생각해 봤지만, 갸우뚱하는 남성.

이내 가렸던 손이 천천히 풀린다.

“확인해 봐요.”

뒤돌아보는 중년의 남성.

그곳에는 교복을 입은 채 커다란 눈망울로 웃고 있는 해맑은 여성이 서 있었다.

«

확인했지만 잘 모르는 얼굴에 아리 송해하는 남성.

‘누구지.’

‘친척 중 한 명이던가.’

‘딸 친구 중 한 명이던가.’

“… 저기, 죄송한데. 누구시죠?”

“저 몰라요?”

여성을 살펴보려고 고개를 들이미는 남자.

순간, 여성이 쏜살같이 휘두른 칼 날에 그만 목젖이 베였다.

촤악-

“욱! 우욱……

목을 움켜잡고 눈을 부릅뜨는 남성.

“나도 몰라서 물어본 건데.”

여자는 다시 한번 칼을 치켜들어 남자의 배를 찔렀다.

* #: *

“형사님? 형사님?”

[그래. 말해라.]

선생님의 차에 타서 도로를 달리고 있는 우리.

나는 급하게 형사님과 통화를 했다.

“당장 서울역으로 오셔야 돼요. 곧 살인이 일어날 거예요.”

[···지금 가마. 20분쯤 걸릴 거다. 무슨 상황인지 말해 봐.]

선생님의 차에 다 들어가기 비좁았던 탓에 옆 차선에서는 진희가 오토 바이에 하윤이를 태운 채 달리고 있고.

장화은 선생님은 운전하면서도 학생이 오토바이를 타는 게 걱정되시는지 힐끔힐끔 쳐다보신다.

“여자예요. 나이는 17살이고, 흉기는 칼이고……

[피해자?]

“…아뇨. 여자애가 살인마예요. 서울역에서 칼 들고 지나가는 사람 아 무나 찔러 죽일 거래요.”

[또 묻지 마 살인이구만.]

씁쓸하게 중얼거리시는 형사님.

[더 설명할 건?]

“괴담이 엮인 거긴 한데-”

[그건 됐어. 뒷배경은 나중에 상황 끝나면 들을 테니, 당장 필요한 것 만 말해.]

“···역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 대피 하라고 안내 방송 좀 요청해 주세요. 그리고 경찰도 불러 주시구요.”

몇 명 정도.]

“안에 시민들 대피시킬 정도만요. 살인마 자체는 사람이 아니라 괴담이라 못 막아요. 저희가 들어가서 해결할 거예요.”

[그래, 출발했다. 핸드폰 잘 붙잡고 있다가 내가 연락하면 받아라. 상황 끝나면 뭐가 어찌 된 건지 다 들을 테니 어디 사라지지 말고.]

“네, 감사합니다……!”

곧 우리가 탄 차가 한강대교에 들어서서 서울역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달린다.

부우우우웅-

속도를 높이시는 장화은 선생님.

양옆으로 펼쳐진 평화로운 한강과는 반대로 자동차 안은 긴장으로 가득 차 있다.

‘막아야 한다.’

도덕적으로도 막아야 하는 건 물론이고.

현재 김은정의 신분이 괴담 동아리의 소속으로 돼 있다는 점에서는 더 욱

‘여기서 막지 못하면……

연쇄살인마 여학생이 소속돼 있던 괴담 동아리.

컨셉도 수상하고 부원도 얼마 없겠다, 사회적 물의가 일어나는 즉시 학교 측에서 동아리의 해산을 명령 할지도 모른다.

물론, 사람이 죽어 나가는 판국에 동아리의 사회적 입지를 걱정하는 건 나답지 않지만.

이건 순전히 부장의 자리에 있다 보니 자연스레 드는 생각이었다.

“부장, 여기 봐!”

핸드폰으로 열심히 무언가를 검색 하던 경원이가 식은땀을 흘리며 나에게 SNS화면을 내민다.

[전자강시©zombithej : 방금 서울 역에서 흉기 난동 목격&] [남아당자강©emanon3 : 실시간으로 칼부림 보는 건 처음 더 나님도 모르게 어, 어, 어 이랬엄거기] [사용자누렁이©givethe : 엇 살인 저지르는 거 실시간으로 목격해 버림 서울역 미쳤음]

#: * *

피칠갑이 된 남성의 머리채를 붙잡고 플랫폼을 느긋하게 걸어가는 여고생.

“꺄아아아악!”

“여보, 저기! 저기……

사람들은 그녀를 중심으로 멀찍이 떨어진 채로 무슨 일인가 하고 웅성 거린다.

“이쪽으로 걸어오잖아, 바보야 “옆으로 비켜서……

교복을 입은 여성에게 끌려가는 중 년 남성의 핏자국이 대리석 바닥에 길게 이어졌고, 사람들은 홍해가 갈 라지듯 그녀를 피해 길을 비켜 준다.

곧이어 울려 퍼지는 안내 방송.

[안내 방송 드립니다. 역 내에서 흉기를 든 17세 여성. 흉기를 든

17세 여성을 목격하신 분께서는 즉 시 신고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이쪽이에요, 이쪽!”

이어서 경비 몇 명이 인파를 뚫고 허겁지겁 달려온다.

“여기!”

“저 사람입니다!”

간신히 사람을 헤치고 달려온 경비 들이 호신용 삼단봉을 들고 여학생을 향해 다가간다.

“학생, 진정하세요. 남자분 내려놓으시고요.”

“가만히 계세요. 천천히.”

경계하며 다가가는 경비들.

동시에 저 멀리서부터 KTX 기차가 크게 소리를 내며 들어오는 게 보인다.

덜컹- 덜컹-

어깨에 장착한 무전기에서 울리는 연락을 받는 경비.

[아아- 선로 진입 중인데, 괴한은 문제 없습니까-]

“네, 학생이고 확보했습니다. 들어 오세요.”

그리고 긴장한 표정으로 천천히 교복을 입은 여성에게 다시 다가선다.

“남자분 내려놓으시고 가만히 계세요. 가만히.”

그러거나 말거나 다가오는 경비를 무표정하게 쳐다보는 여학생.

“구급차 오고 있습니다. 가만히-”

덜컹- 덜컹- 덜컹-

동시에 선로로 진입하는 열차.

순간.

다다닥-!

여학생이 순식간에 자세를 숙인 채 파고들어 경비들을 뚫고 지나치더 니, 구경하던 인파 속으로 달려간다.

“어어, 어어……!”

“꺄아아악!”

그대로 인파 속을 비집고 들어간 여고생은 품에서 칼을 꺼내서 자기 와 부대끼는 모든 사람의 허리를 향 해 쑤시기 시작한다.

“커어어억!! 커억.”

“여보! 여보!”

“아아아아아악-!!”

서로 얽히고설키며 쓰러지는 사람 들.

난동에 밀려 선로로 뛰어드는 여러 명의 사람을 발견하고 열차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 보지만 역부족이다.

끼 이 이 이 이이이익 - !

그대로 피바람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우습게 치고 지나가는 천 톤이 넘는 무게의 열차.

“잡아! 잡아!”

“이런, x발!”

뒤이어 경비들이 급하게 달려오지만, 엉켜 쓰러진 사람들의 도가니 속에서 허우적대고만 있다.

“어어, 저기 저기!”

KTX 기차 안에서 창밖의 살육을 바라보던 승객들이 공포에 질려 외친다.

“밖에서 살인 났다! 흉기 휘두르는 데!”

“문 열지 마! 문 열지 마!”

물론, 운전석의 기장은 이 난리 통에 문을 열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었으나.

열차가 선로에 도착했으니 자동으로 문이 열린다고 생각한 공포에 질린 승객 한 명의 인식이 눈앞의 괴담에 휩싸인 소녀에게 전해진다.

휙-

인파 사이에 다가온 경비들마저 살 육을 한 후 기차를 쳐다보는 은정.

위잉-

그 즉시 승객들의 불길한 상상대로 현실이 조작되어 열차의 문이 스르르 자동문처럼 열려 버렸고.

여고생 살인마가 순식간에 그 안으로 뛰어들어 간다.

“꺄악……I”

“들어왔다……!”

좁은 통로를 다다다 달려가며 양옆으로 앉아 있는 승객들의 얼굴을 칼로 찌르는 은정.

“아악, 아아악……!”

“X발, 잡아! 잡아……!”

휴가를 나온 군인 몇몇이 재빠르게 좌석에서 일어서서는, 열차의 다음 칸으로 달려가는 은정을 뒤쫓는다.

“잡아! 잡아!!”

“으아아악... 커억......

달려가던 여고생 살인마는 순간 열 차 안 화장실에서 문을 열고 나온 사람과 쿵, 부딪치고 만다.

그대로 쓰러지는 은정의 위로 마구 가방을 들이밀며 포개지는 군인들.

“제압해! 제압해!!”

웅성웅성

막 기차에서 내리려고 가방을 들고 서 있던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서서히 모여든다.

“칼 뺏어! 칼 뺏으라고!!”

“헉, 헉.”

열차 안 바닥에 뒤엉켜 몸싸움을 벌이는 군인들과 여고생 살인마.

깔린 채 이리저리 마구 몸을 뒤틀던 은정이 등 뒤로 기계처럼 칼을 쑤시자, 그녀를 제압하던 남성이 피를 토하며 신음을 흘린다.

“커어어억.”

이어서 앞에서 자신을 깔아뭉개던 군인의 옆구리에도 칼을 쑤셔 넣고, 뒤이어 제압하러 깔아뭉개는 남성 몇 명의 몸뚱이를 동물 같은 움직임으로 위아래로 쑤셔 버린다.

“욱! 우욱….”

고통에 신음하며 포개져 있는 사람

들을 밀어서 치워 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선 은정.

이어서 코앞에서 주춤거리는 승객 들에게 칼을 내밀며 위협하자, 그들은 곧 허둥지둥 도망치기 시작한다.

“꺄아. 꺄아아악……!”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다다닥-

다시 객석을 종횡무진 달리며 피의 학살이 시작되었고, 기차의 창문은 혈흔이 튀어 빨간색으로 물든다.

푹- 푹-

“커억……

우 Q

우당탕-

마지막으로 도망치던 승객 한 명의 허리를 찔렀다 뺀 후, 그대로 사람 들을 따라 다시 기차에서 내리는 은정.

플랫폼에 선 채 주위를 휙휙 둘러 본다.

“저기다! 저기!”

“잡아!!”

도망치는 인파를 헤치고 은정을 제 압하러 달려드는 경비들.

하지만 군중에게 물든 공포와 패닉으로 인해, 은정은 이미 사람을 해 치는 재앙과도 같은 존재로 확립된 후였다.

“잡아! 잡아아... 우욱……

사람의 힘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근력으로 달려오는 경비들을 두부 가르듯 모조리 절단내버리고.

아우성치며 위층으로 향하는 에스 컬레이터 속 인파를 비집고 올라가는 그녀.

마주치는 사람마다 묵묵히 칼로 찌르면서 도망치는 행렬에 자연스레 합류한 뒤 은정은 외쳤다.

“살려 주세요! 살인마예요! 살려 주세요!”

도망치다가 그 소리에 놀라 돌아보는 군중들.

“왔어요! 살인마가 왔어요! 꺄아아 악!”

은정도 똑같이 놀라는 척하며 비명을 질렀고, 시야 아래의 허리춤에서는 들키지 않게 근처의 사람들에게 칼질을 한다.

“아아악! 아악.”

“꺄아아악!”

날카로운 통증을 느끼고는 마구 이 리저리 몸을 기대며 에스컬레이터 바닥을 뒹구며 피를 뿌려 대는 사람 패닉에 휩싸인 군중들 틈에서 은정은 이리저리 공격하며 나아가고, 피를 흘리며 비틀대는 사람들과 도망 가는 사람들이 서로 걸려 넘어져서 울역은 점차 엉망이 되어 간다.

세상과 사회에 대한 원망, 광기.

모두가 열심히 노력해 준 덕분이었다.

* * 半

[다옹©ekdhd : 서울역 근처에 있는 분들 오지 마세요 미친 여자가 칼 휘둘러요.]

[[email protected] : 야〉〈발 농담 아니고 서울역에 있는 새끼들 당 장 도망가 묻지마 살인 일어나는 중]

“도착했어, 내려!!”

서울역 앞 도로 중간에 차를 세우고 우리를 내려 주신 선생님.

뒤의 차가 급정거한 우리를 향해 마구 경적을 울린다.

빵- 빠앙-

곧 뒤따라온 진희의 오토바이도 우리 옆에 서더니 하윤이와 함께 내린다.

“여기서는 차를 못 세워 놔서, 선생님은 주차할 곳 좀 알아보고 금방 갈게!”

“네, 감사해요!!”

후다닥 도로를 건너는 우리.

“서울역!! 서울역으로 뛰어!!”

허겁지겁 몰려나오는 인파를 헤치고 신호를 무시한 채 횡단보도를 뛰어서 건넜다.

이미 안에서부터 칼부림이 시작됐는지, 서울역 입구의 큰 계단에서는 사람들이 다급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밖에서 지나가던 행인들은 그런 서울역의 풍경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무슨 일 있나?”

“뭐지.”

“꺄아악! 꺄악.”

동시에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

우리도 급히 계단을 뛰어올라 서울 역 앞에 선다.

현대식 건축 공법으로 만들어진, 유리로 도배된 서울역 건물.

그 정문 앞에 도착한 우리.

“드... 들어가는 입구가 너무 많은 데! 어디부터 찾아봐야……

“준아, 저쪽……!”

선아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저 멀 리 건물 끝.

아울렛과 붙어 있는 입구에서 사람 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 게 보인다.

“꺄아아악! 꺄아악.”

“으윽… 윽……

“달려가! 저쪽이야!”

허겁지겁 다시 그쪽으로 뛰어가는 우리.

묻지마 살인을 피해 도망 나온 인파들이 우리의 어깨를 치고 지나간다.

“허억, 헉, 헉.” 누군가는 다쳤는지 절뚝거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피투성이가 된 채 힘없이 떨고 있고.

어딘가를 부여잡고 피를 흘리며 도망치는 사람들도 보인다.

“들어가, 들어가!”

“헉, 헉.”

안으로 들어선 우리.

학교 운동장 몇 개가 들어갈 법한 서울역 커다란 플랫폼이 보인다.

그곳에는 이미 곳곳에 시체가 즐비 했고 대리석 바닥은 피투성이가 되어 번들거리고 있었다.

벽에 붙어 있는 매표소 유리 너머에는, 직원들이 당황한 채 다급히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고.

“꺄악!! 꺄아악.”

다시 어디선가 들려오는 비명 소리.

아웅다웅 도망치는 사람들과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2층의 음식점에서 이쪽을 내려다보는 사람들.

우리는 그 아수라장 속에서 허겁지 겁 비명이 들려오는 곳으로 달려간다.

곧 도착한 곳은 의자가 늘어서 있고, 클로버 기업의 홍보용 QLED 티브이들이 광고를 내보내고 있는 만남의 광장.

“어, 어디지…!”

“둘러봐! 빨리!”

피투성이 시체가 얹힌 가게 쇼윈도의 유리창들은 산산이 부서져 널려 있었고, 은행 ATM 기기도 반파된 채 깜빡거리고 있었다.

[열차를 이용하실 고객께서는…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Please…….]

“으아! 으아아악-”

“준아……! 저기 음식점 안……!” 서울역 안의 음식점들이 일자로 쭉 늘어서 있는 상가.

그중 맥도리아 매장에서 다투는 소란과 함께 다시 몇 사람이 피를 뒤 집어쓴 채 허겁지겁 도망쳐 나온다.

“가자!”

우리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린 캐 리어 가방들을 뛰어넘으며, 피투성 이로 얼룩진 매장의 유리문을 향해 달려갔다.

“하아, 하아!”

끼이익-

매장 안은 이미 정리된 후였다.

살아남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바닥 곳곳에는 널부러진 햄버거와 감자튀김, 쏟아진 트레이들.

“커억! 커억! 커어억.”

“저, 저기. 주방 쪽에서 비명 들린다.”

우리는 유리문을 닫고 주방이 보이는 카운터로 걸어갔다.

밖에서는 아련하게 비명 소리가 들려오지만, 매장 안은 조용하다.

문득 신음 소리와 함께 누군가 엉 금엉금 카운터 옆으로 기어 나온다.

“… 안에. 저기 안에….”

다친 배를 부여잡고 스태프 룸을 가리키는 알바생.

쿵! 쿵! 와르르르

알바생이 가리킨 스태프 룸 안에서 뭔가 소란이 들려온다.

“… 가자.”

조용한 긴장감으로 가득한 매장.

우리는 카운터를 넘어 주방으로 들어섰다.

“경찰... 경... 찰......

유니폼을 입은 매니저 한 명이 타일 위에 쓰러진 채 우리를 보며 중 얼거린다.

옆에서는 아직도 감자를 튀기며 끓고 있는 기름통, 만들다 만 햄버거 와 양상추, 토마토.

[STAFF ROOM]

“윽… 으윽… 윽……

반쯤 열려 있는 스태프 룸 문 안에서부터 끔찍한 칼질 소리와 사람들의 신음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뒤를 돌아보았다.

긴장한 표정의 부원들.

순간, 진희가 앞으로 성큼 나섰다.

“내가 들어갈 테니깐 너희는 여기서 기다려.”

“진희야!”

걱정하며 말리려는 부원들.

나는 손을 내밀었다.

“···진희한테 맡겨 보자. 혼자 들어 가게 놔둬.”

“뭐? 왜?”

당황하는 경원이와 선아.

하지만 내 나름대로 거는 게 있었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친구들에겐 왕따, 선생에겐 배신당 하고.

사회로부터 정체성을 부정 받고 먼 곳으로 내몰리기만 하다가 모두에게 잊혀진 채 죽어 버린 김은정. 미디어가 흥미 위주로 꾸며 낸 사이코패스라는 프레임에 덮여 씌워졌지만, 실상은 장애를 가진 여자아이 일 뿐인 그녀.

그런 은정이가 마왕에 의해 괴담으로 이 땅에 다시 불려 나와, 우리에게 섞여들면서까지도 계속해서 유지 하고 있던 자신에 대한 유일한 정체성 세 가지.

이름 석 자, 어린 시절 누군가의 단짝이었다는 것, 중간에 전학을 갔다는 것.

“···진희에게 맡기자, 얘들아.”

“주, 준아……!” 걱정하는 표정의 부원들.

하지만 그 세 가지 코드가 김은정이 마지막까지 기억했던 정체성이라면, 여기서는 진희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곧 성큼성큼 핏자국을 밟으며 살인 이 일어나고 있는 문 안으로 들어가는 진희.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문 열지 마.”

진희는 그 말과 함께 문을 닫고는 아예 걸어 잠가 버렸다.

철컥-

“···조심해, 진희야.”

우리는 발을 동동 구르며 밖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 * *

“헉, 헉, 헉.”

남자 알바생 한 명이 어떻게든 스태프 룸 안의 탈의실로 들어가 문을 잠궈 보지만, 이내 문틈을 뜷고 들어오는 사시미에 팔을 베인다.

“아웃!

아으으 아으으으

칼날이 들어오지 않는 범위까지 서둘러 벽에 몸을 찰싹 붙이는 알바 생.

하지만 이내 탈의실의 칸막이 위를 타고 오르는 여자를 보고는 기겁을 한다.

다다닥-

“사... 살려 주세요……!”

“풉. 싫어.”

칸막이와 천장 사이의 좁은 틈으로 몸을 비집어 넣고 차갑게 웃는 은정.

“너희도 내가 불렀을 때 안 왔잖아.”

그대로 펄쩍 뛰어내려 잔인하게 남자를 죽인다.

“아악... 아아악

닫혀 있는 탈의실 칸.

부실한 나무 칸막이가 신나게 남자를 죽이는 은정의 움직임에 따라 이 리저리 들썩인다.

끼익-

철컥.

순간, 스태프 룸 안으로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

은정은 피 칠갑이 된 남자를 놓고는, 빠르게 고개를 아래로 숙여 문 틈으로 누가 들어온 건지 확인한다.

좁은 문틈으로 보이는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은 누군가의 발목.

곧 그게 천천히 걸어와 탈의실 앞에 서더니, 나지막이 누군가를 부른다.

“김은정‘?”

* 거: :k

[2019년 5월 1일 수요일, 17:21]

[이준 - 2회차]

[괴담 포인트 : 66]

[인과율 : 14%]

[너희 어디 있냐!]

전화가 오길래 받아 보니 형사님의 목소리였다.

나는 급히 우리가 있는 위치를 알려 드렸다.

“서울역 표 사는 곳 근처 음식점 늘어서 있는 데요. 맥도리아로 오시면 돼요.”

[그래! 사람 필요하냐! 아니면 혼자 갈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외쳤다.

“···형사님만 으·시면 될 것 같아요.”

[나로 괜찮겠냐!]

“아마도요.”

[알겠다! 5분 안에 도착한다!] 전화를 끊자, 불안해하는 부원들의 눈길이 보인다.

“어이… 경찰이 안 와도 되는 거냐 고……

“아무리 칼을 들었다지만, 그래도 여학생이야. 이 많은 인파와 보안 직원이 칼 든 여학생 하나를 못 막았을 리가 없어.”

경원이가 이해한다는 듯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가 붙여 준 컨셉에 맞게, 말 그대로 사이코 빌런이 돼버렸다. 사람이 몇 명 오든 막을 도리가 없지.”

“그래.”

나는 닫혀 있는 스태프 룸 문 너 머를 바라보았다.

부디 진희가 제 역할을 잘하고 있기를 바라면서.

괴담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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