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동아리-107화 (107/130)

107화

막간 - ♠공백교 수요 저녁집회♠

“오늘날 과학 기술의 발달로 많은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 세상이 비어 있다는 사실도 말입니다. ”

문화 센터로 위장한 커다란 건물의 어두컴컴컴한 강당.

벌거벗은 선생들 수백 명이 청중으로 앉아 있는 그곳의 단상에서 낙성고의 교감은 핏대를 높여 가며 마이크에 외친다.

“물질을 이루는 요소 중 원자핵과 전자를 제외하면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의 99.999%가 텅 빈 공간이라고 합니다. 우주는 ‘공백’으로 이루어져 있고, 현실은 눈의 착각 속에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발달된 기술이 확실하게 증명하고 있는 사실이에요.”

“맞습니다……

“맞아요……

서로 다른 학교의 과학 선생 몇이 나체로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 인다.

“그러한 완전히 비어 있는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착각 속에 얽매여 살아왔습니다. 살펴보면 텅 비어 있을 뿐인 허망한 것에 집착하며 살아온 거예요.”

“옳습니다……

“옳아요……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온갖 학교의 교직원들.

그들이 올려다보는 강단 위의 현수 막이 천천히 흔들린다.

[全공백교 수요 저녁 집회4]

“여러분들도 경험했다시피, 이러한 공백의 현실을 인식하는 자세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눈에 보이는 것 중 단 0.0001% 만이 진짜라는 거예요. 나머지는 몽 땅 인간의 착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걸 깨달아야 해요.”

“맞습니다……

“맞아요……

“곧 한 차원 높은 세계가 열립니다. 비어 있는 99.999%의 공간을 채우기 위해 우리의 바라던 ‘신’이 깨어날 것이고, 그때 현실은 완전히 뒤바뀝니다. 신의 성분이 빈 공간을 채우게 되면 이 현실은 한층 높은 아스트랄 세계와 융합하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이 그대로 현실에 반영 되는 꿈의 공간이 이 땅에 내려오는 것입니다.”

목의 핏대를 세워 가며 소리 지르는 교감.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비워야 하죠! 무엇을? 마음을 말입니다. 마음을 비워야 해요. 이제 자기 속의 모든 것이 드러날 때가 오는데, 아직도 오랜 구습을 지녀서야 되겠습니까? 그때가 되면 다 드러납니다. 마음속에 품고 있던 엉뚱한 상상, 부끄러운 생각들. 다 현실로 나타나 버리니깐요. 비웁시다, 비 워야 해요. 도덕, 가치관, 옳고 그 름. 모두 비우세요. 그래서 우리가 이 자리,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벗은 채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나타나실 ‘상상의 신’을 맞이 하기 위해서요.”

열변을 토한 교감이 박수 세례와 함께 단상에서 내려가고, 말끔한 미 청년의 사회자가 나와 다음 순서를 진행한다.

물론, 그 역시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다.

“말씀 인도해 주신 장여옥 증장지 왕님께 다시 한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

“이어서 태상님으로부터 내려온 안 건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숙한 분위기로 자세를 가다듬는 수백 명의 벌거벗은 어른들.

사회자는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안 건을 마이크에 전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두 시간 전,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는 ‘괴담 동아리’의 학생들이 서울역으로 집결 했다 흩어졌다는 게 확인되었습니다.”

웅성웅성.

“사유는 밝혀지지 않았고 아직 조사 중에 있습니다만, 또다시 서울 광수대 박강운 형사와의 접촉이 있는 게 확인되었습니다. 그에 대해서 태상님께서는 낙성고 일반 교사의 비율을 줄이고, 저희 신도들로 더 채워 놓는 게 좋겠다고 말씀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놈들, 형사를 끌어들이려 하다 니……

“무슨 꿍꿍이인 건지……

안면 있는 낙성고의 몇몇 교사들이 수군댄다.

“이에 교단에서는 동아리의 학생들과 인연이 있는 교사들을 우선순위로 낙성고에 배치하고자 하오니, 관련되신 분들께서는 손을 들어 주시 기 바랍니다.”

곧 빔 프로젝터가 강단에 비춰지고, 괴담 동아리 학생들의 프로필이 적힌 PPT가 스크린에 비친다.

이준 : 서울남부초등학교 -남강중학교 - 낙성고, (09년~11년 화신태권도, 14년 뉴턴수학학원, 15년 남 영어학원)

윤선아 : 신림초등학교 - 삼성중학교 - 낙성고, (학원X)

이진희 : 운당초등학교 - 미성중학교 - 낙성고, (10년~12년 무도체육관)

안경원 : …….

번쩍 손을 드는 누군가.

“말씀하세요.”

“삼성중학교 윤선아. 제가 2학년 과학교사였습니다.”

“서로 어떤 관계입니까?”

“대화를 나눠 본 적은 없습니다.”

이어서 손을 드는 다른 누군가.

“서울남부초등학교 이준. 제가 6학년 담임이었습니다.”

“어떤 관계입니까?”

“크게 인연이 있지는 않습니다.”

이내 관심 없다는 듯 다른 신도들을 둘러보는 말쑥한 인상의 사회자.

“다른 분은 없습니까? 좀 긴밀한 관계였던 분으로-”

이어서 조용히 한 여성이 손을 든다.

“말씀하세요.”

“운당초등학교 이진희. 상담 선생님이었습니다.”

강당에 울려 퍼지는 여성의 나긋한 목소리.

“어떤 사이였습니까?”

“전학 후 졸업하기까지 3년 내내 제가 맡아서 상담했던 학생입니다.”

선이 가느다란 몸에 아무것도 걸치 지 않은 나신의 류진아 선생. 총각 선생 몇이 힐끔 그녀를 쳐다 본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회자.

“다른 분들은 더 없으신가요? 숫자가 부족하다면 학생회에서 투입될 수도 있습니다.”

이어서 몇몇 사람들이 손을 들고 자신이 아는 인맥들을 꺼내 놓는다.

* * *

[2019년 5월 1일 수요일, 23:56]

[이준 - 2회차]

[괴담 포인트 : 202]

[인과율 : 17%]

“아이고, 삭신이야……

잠옷 차림으로 내 방 침대에 앉아 허리를 두드린다.

오늘 시간까지 거슬러 가며 여기저기 정신없이 뛰어다닌 탓에 온몸이 쑤신다.

베개에 눈 감고 누우면 1초 만에 잠들 수 있을 정도의 노곤함.

부원들도 피곤해서 일찍 자는 모양 인지, 그런 어마어마한 일이 있었는 데도 카톡방이 조용하다.

카톡~〉

〈오덕훈 : 다들 자냐능〉

덕훈이 빼고.

‘귀찮으니깐 내일 답장해야겠다.’

핸드폰을 휙 침대 머리맡에 던지고는 내 상태창을 켜 본다.

‘상태창.’

파앗-

《상태창》 이름 : 이준

나이 : 17

칭호 : 주인공

성향 : [양면성]

특수 능력 :

1. 독순술 [B 급]

2. 인생설계 [C급]

3. - 없음-

기벽 : 벼락치기

오늘 진희의 일이라든가 형사님의 일이라든가 뭐 이것저것 고민해 봐야 할 몇 가지 문제들이 새롭게 생겼지만, 거기에 대해서 생각하는 건 정신이 개운할 때 해도 충분할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힘든 하루를 마친 후의 잠자리.

긴장을 풀고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백여 포인트를 쓰면서 기분을 전환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어디에 쓸지는 이미 정해 놨지.’

먼저, 당연히 새로운 능력을 얻는 데 투자할 생각이다.

총 세 가지를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특수 능력.

지금은 두 개뿐이니 그곳에 하나 투자해서 스킬을 세 개로 채워 놓으면, 이 험난한 학교생활에 조금의 보험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물론, 부원들과 상의하지 않은 내 생각이긴 한데, 그냥 이렇게 하려고 이미 마음먹었다.

뭐 이런 것까지 다 일일이 녀석들에게 보고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원래 내 건데.’

저번에는 고생한 부원들에게 미안 한 마음에 100만 원씩 떼 주기는 했었지만, 그땐 딱 나누기 좋게 600 포인트를 가지고 있었던 영향도 크다.

하지만 이번에 B급 괴담을 해결하며 얻은 포인트는 고작 136포인트.

‘이걸 6등분 해서 누구 코에 붙여.’ 물론, A급 괴담을 해결하여 또 몇 백 포인트를 뭉텅 얻게 된다면, 그 땐 나도 부원들에게 배분할 생각이 있지만.

이런 자잘한 괴담들까지 다 정산해 주려면 정작 중요한 내 성장을 못 하게 된다.

‘포인트의 사용은 100을 단위로 이 루어지니깐.’

어차피 녀석들에게는 졸업 후 40 억 원을 약속한 마당.

굳이 나누자고 말을 꺼내는 녀석들 도 이번엔 없으니, 이건 내가 꿀꺽 할 생각이다.

‘꼬우면 부장하든가~’

그렇다고 사적으로 쓰는 건 아니다.

큰 관점에서 보면 결국 여기서 내가 능력을 하나 더 얻는 게 동아리 한테도 이득 아닌가?

능력이라 해도 내 욕심만 채우려고 사사롭게 쓸 것도 아니고, 결국 사건 해결하는 데 쓸 건데.

너희한테도 이득인 거 인정?

어, 인정~

“동의?”

어, 보감~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다, 다들. 정말 너희밖에 없어. 그럼 어떤 능력이 나오는지 다 같이 확인해 보자!”

기대된다, 부장! 좋은 능력이 나와 줬으면 좋겠다!

“그래, 경원아! 개사기 능력 하나 얻어 보자!”

오이오이, 어서 버튼 안 누르고 뭐 하냐고!

“급하기는, 하하. 기다려 봐!”

준아……! 혹시 병, 신이니……?

“선아 이 녀석! 그런 못된 말은 어디서 배웠어!”

그렇게 새로운 초능력을 얻는다는 사실에 침대 위에서 혼자 바보처럼 킬킬거리다가 슬슬 마음을 다잡고 상태창을 눌렀다.

[현재 세 번째 능력은 비어 있습니다. 100포인트를 사용하여 능력을 개방하실 수 있습니다.]

[능력 개방(100) / 뒤로가기]

“마! 당연히 능력 개방 아니가!”

혼자 킬킬대며 소리치고 있으니 어

머니가 큰방에서 외치신다.

[준아! 통화 그만하고 자라!]

어흠.

클릭.

[괴담 포인트 100을 소모하여 세 번째 능력을 개방합니다.]

곧, 16비트 기계음으로 된 경쾌한 멜로디가 울려 퍼지더니 여러 단어가 휙휙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띠딩 띵 디딩 띵~♬

[...현 - 신분위장 - 백귀야행 - 동반회귀 - 빠…….]

휙-

[···장 - 백귀야행 - 동반회귀 - 빠른걸음 - 손…….]

휙-

“호오... 호오오오... 호오오......

혼자 희열에 차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며 손에 땀을 쥐고 보던 중, 드디어 룰렛이 멈춘 곳은.

》띠디딩!!!!♬

[···귀 - 클리셰발현 - 신분위장 - 백귀야행 - 동……』

[특수 능력 : 클리셰 발현을 획득 하였습니다.]

« 클리셰 발현 »

등급 : A급

조건 : 수동

능력 : 괴담을 조우했을 때 발동할 수 있으며, 상황이 마무리될 때까지 현실이 클리셰 범벅으로 흘러갑니다.

“오, 등급이 A급!”

간만에 꽤 좋은 능력이 걸린 듯하다!

이어서 떠오르는 다른 메시지들.

[특수 능력의 칸이 3개 모두 찼습니다.]

[이후부터 얻게 될 능력들은 시스템에 저장됩니다.]

[저장된 능력들은 언제든지 동아리 방에서 바꿔 장착할 수 있습니다.]

“흐음……

마치 RPG 게임에서 아이템을 장 비하고 돌아다니는 것처럼, 능력들 도 동아리방에서 바꿔 장비할 수 있는 개념이구나.

‘동아리방은 전초기지, 본부 같은 개념인가.’

상점을 이용해서 물건을 받을 수 있는 곳도 동아리방이 기준.

능력의 장비를 교체할 수 있는 곳 도 동아리방이 기점.

지금까지는 단순히 우리가 모이는 물리적 공간이었던 반면, 앞으로 진행을 더 해 나가다 보면 동아리방의 존재가 생각보다 더 중요해질 수도 있을 듯하다.

‘그건 그렇고, 클리셰 발현이라.’

클리셰가 무슨 뜻이더라.

바로 핸드폰을 켜서 단어를 검색해 본다.

클리셰 (cliche).

[명사] 진부하거나 틀에 박힌 생각 따위를 이르는 말.

“아, 이거구나.”

영화에서 자주 들어 본 단어 같다.

처음 보는 영화인데도 다른 작품에 서도 자주 나오는 진부한 장면들이 반복될 때, 클리셰 범벅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 같기도.

“···그래서 뭔 능력이야.”

단어의 뜻을 확인하고 능력 설명을 다시 읽어 봤는데도, 정확히 어떤 식으로 발동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또 종잡을 수 없는 능력이구만.’

심지어 괴담을 마주쳐야만 발동할 수 있다 보니 어떤 능력인지 미리 확인해 보는 것도 불가능.

나는 고개를 젓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다음으로 남은 100포인트의 사용 처는 당연히 괴담 수집력이지.’

당연하다기보다는 사실 딱히 쓸 곳 도 없다.

이미 가만히 있어도 괴담이 연달아 엮이는데 어째서 괴담 수집력에 투 자하느냐, 하고 나도 처음에 고민하기는 했지만.

생각을 반대로 뒤집자 금세 답이 보였다.

‘가만히 있어도 괴담이 넘쳐나는데 왜 시스템은 이런 능력을 동아리에 부여하는가?’

그러자 금방 괴담 수집력의 존재 이유가 보였다.

‘파밍.’

물론 수집해 온 괴담이라고 난이도가 딱히 더 쉬운 건 아니다.

시스템이 수집해온 히로빈 괴담과 마왕이 엮어버린 마이크래프트 괴담에서 나는 게임 속에 정신이 갇힌 채 그야말로 죽을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왕이 보내오는 괴담들보다는 나아.’

그건 사전에 준비가 돼 있냐, 안 돼 있냐의 차이다.

마왕이든 뭐든 바깥에서 오는 괴담의 경우, 정신 차리고 보면 이미 사건은 시작된 후였다.

하지만 그에 비해 동아리의 괴담 수집력으로 수집해 온 사건들의 경우는 어땠는가?

시작부터 이미 이게 무슨 괴담인지 이름을 가르쳐 주고 몇 급인지도 말 해 준다.

‘늦어도 수집해 온 시점에서 하루 안에 발생한다는 대략의 타이밍까지 도.’

이야기의 구조를 파악하는 게 핵심인 이 싸움에서 괴담의 이름을 알고 미리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건 그야 말로 어마어마한 어드밴티지.

그런 의미에서 괴담 수집력의 용도는 ‘파밍’인 것이다.

뭐 한때는 괴현상이 안 와서 편하게 보낸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걸 마왕도 파악한 지금.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괴현상은 몰려온다.

‘이미 싸움은 시작됐어.’

그럼 차라리 괴담 수집력을 올려서 빠르게 포인트 파밍을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이겠지.

근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잠이와서 그냥 자기로 했다.

‘괴담 수집력을 올리려면 동아리 레벨업을 해야 하는데, 이걸 집에서 하는 것도 감성이 안 맞고, 내일 학교 동아리방에서 하자, 그냥.’

귀찮기도 하고 잠이 온다…….

막 눈을 감으려던 찰나, 문득 단톡 방에서 혼자 ‘읽씹’당한 덕훈이가 조금 불쌍해서 핸드폰을 열어 답장을 해 줬다.

〈이준 : 난 지금 자려고. 다들 오늘 수고 많았어. 학교에서 보자.〉

그리고 눈을 감자 몰려오는 졸음.

나는 금세 잠 속으로 빠져든다.

우프 W

Zzz

카톡~

〈오덕훈 : [사진]〉

괴담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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