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열두 번째 괴담 -
공포 영화 클리셰 (3)
[2019년 5월 2일 목요일, 18:42]
[이준 - 2회차]
[괴담 포인트 : 102]
[인과율 : 17%]
‘방광 터지겠네……
방 안에서 안절부절못하던 나는 결국 요의를 참지 못하고 조용히 문고 리를 돌렸다.
그리고 살짝 열린 문틈으로 고개를 붙여 불이 꺼진 거실을 둘러봤다.
‘…진짜 왜 꺼져 있지.’
문득 머릿속에서 귀신이 이상한 발걸음으로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집 안의 불을 다 끄고 돌아다니는 장면 이 그려진다.
‘X발.’
더 이상 불길한 상상이 떠오르지 않도록 고개를 한 번 세차게 흔든다.
‘그냥 전기가 내려간 거라고 생각 하자.’
내 방 문틈에서 새어 나가는 불빛 이 어두운 거실 바닥에 기다란 빛의 선을 만들어 낸다.
‘···뭐 없지?’
문틈으로 눈동자를 굴려 살펴본다.
딱히 신경 쓰이는 건 없다.
‘아까 그 요란한 소리는 뭐였지.’
뭐가 막 무너지고 깨지는 느낌이었는데.
일단 거실은 멀쩡한 걸로 보아 아 무래도 부모님 방 쪽인 듯싶은 데…….
문득 점심 때 보았던 귀신의 위치가 부모님 방 안의 화장실이었던 게
떠오른다.
‘그만 생각하고 빨리 갔다 오자.’
후다닥 방문을 열고는 아무것에도 눈길을 주지 않은 채, 가장 짧은 동 선으로 거실 화장실까지 빠르게 걸 어갔다.
사사삭-
그대로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켠 후 빠르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뭐가 갑자기 확 튀어나올까 봐 긴 장했는데 아무것도 없다.
‘문은 열어놓고 싸자.’
무서울 때는 한 번 닫힌 문을 여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하니깐. 그대로 변기 뚜껑을 열고는 서둘러 볼일을 봤고, 열린 문틈으로는 계속 거실을 주시했다.
쪼르르.
뭐 없지?
어두운 거실에서는 내 방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만이 은은하게 비출 뿐.
조용하다.
“후우.”
그대로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다시 거실로 나와 본다.
뭐 없구나.
별거 아니네.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거실의 스위치로 다가가 다시 불을 킨다.
탁-
확 밝아져 오는 집 안.
‘…커튼을 칠까?’
아까 해가 아직 떠 있을 때는 바깥에 사람 돌아다니는 것도 보이고 풍경도 보이니 괜찮았는데, 이렇게 해가 지고 나니 거실의 불빛이 유리 창에 반사돼서 바깥이 안 보인다.
오히려 검은색 전신 거울이 베란다 창문을 뒤덮고 있는 느낌.
잔뜩 움츠러든 채 여기저기 살피는 내 모습이 그대로 반사돼서 비춰지는 걸 보니 은근히 무섭다.
이대로 놔둘까, 아니면 커튼을 칠 까.
어느 쪽이 더 무서울지 잠시 고민 하다가, 커튼을 치러 베란다 쪽으로 가는 게 더 무섭다는 결론을 내렸다.
‘저쪽 세탁기에는 안 좋은 추억이 있으니깐.’
주방을 비롯해 집 안 곳곳 죄다 불을 켠 나는 다시 후다닥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대로 문을 걸어 잠그고, 다시 침대에 풀썩 엎드려 핸드폰을 확인해 봤다.
[S부재중 전화 : 엄마 2통]
“···엄마?”
뭐지.
매너 모드로 해 놨어서 못 들었다.
일단 전화를 다시 걸어 본다.
잠시 신호음이 가고, 들려오는 엄 마의 목소리.
[준아.]
“네, 엄마. 전화했었네요.”
[그래. 밥은 먹었어?]
“아직요. 오시면 같이 먹으려고 했죠.”
[그게, 지금 친척 중에 한 분이 상을 당하셔서 급하게 아빠랑 같이 지방에 내려가고 있거든.]
“…지방요? 어디 지방에……
[부산까지 내려가는 중이야. 먼저 밥 먹고 있을래?]
“···먼저 밥 먹는 정도가 아니고, 부산이면 내일은 돼야 오시겠네요?”
[빨리 가면 새벽에 도착할 수도 있고. 일단 엄마 아빠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고 있어.]
“네에······
[엄마 서랍에 보면 만 원 몇 장 있을 건데 밥 먹기 귀찮으면 치킨 시 켜 먹고.]
치킨!
평소라면 날뛰었을 단어지만, 지금은 치킨조차도 내 불안감을 가라앉혀 주지 못한다.
“네, 알겠어요. 조심히 갔다 오세요……
[그래, 아들. 사랑해~]
“저두요~”
띡.
전화가 끊기고, 다시 조용한 방 안.
※공포 영화 클리셰 : 사건 당일 날 무슨 이유로든 집에 혼자 남겨 짐.※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슥 방안을 둘러본다.
여기는 안전해 보이지만, 이 방문 너머 우리 집은 왠지 알 수 없는 불길함으로 가득 차 있다.
오늘 밤을 이 불길한 집 안에서 혼자 보내야 한다고?
심지어 시스템을 통해 괴담에 엮인 걸 확인한 상태인데?
‘그럴 순 없지.’ 나는 삼류 공포 영화의 주인공처럼 멍청한 짓은 안 해.
손에 든 핸드폰을 바로 켜서는 선아에게 카톡을 보낸다.
〈이준 : 선아야, 나 괴담한테 엮인 것 같은데 혹시 우리 집에 와 줄 수 있어?〉
〈윤선아 : 지금 갈게.〉
* * *
선아에게 우리 집 주소를 카톡으로 보내 준 뒤, 나도 잽싸게 옷을 갈아 입고 방문을 나선다.
여기서 혼자 있어 봤자 불안하기만 할 뿐이니, 아파트 단지 입구로 가서 선아 마중이나 할 생각이다.
‘역시 이런 상황에서 발벗고 나를 도우러 달려와 줄 수 있는 건 선아 뿐이야.’
다른 부원들은 학원이라든가 알바 라든가 자기 생활에 얽매여 있기도 하고, 부모님의 눈치도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대로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돌리는 순간.
철컥-
웬일인지 문이 열리지 않는다.
“뭐야?”
밖에서는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와야 하지만, 안에서는 손잡이만 돌리면 자동으로 열리는 구조의 우리 집 도어 락.
그런데 웬일인지 지금은 열리지 않는다.
«
몇 번 철컥거려 보다가, 할 수 없이 잠금 버튼을 직접 누르고 나가려 손을 뻗다가 문득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도어락이 없다.
뚜껑 있고, 건전지 있고, 잠금 버튼이 달려 있는 네모난 도어락 기 계.
그게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다.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 위치에 있는 건 현관문의 차가운 금 속뿐.
그리고 내가 철컥거리며 잡아당기는 손잡이에 보이는 열쇠 구멍.
뭐지, 악몽인가.
재빨리 중지를 뒤로 넘겨 RC체크를 해 보지만 현실이다.
내가 지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건 가? 싶은 기분에 다시 들여다보지만 확실하다.
도어락이 없고, 대신 손잡이에 열 쇠 구멍이 달려 있었다.
‘…열쇠?’
어라, 나 치매 걸렸나.
우리 집이 열쇠 문이었다고?
혹시나 싶은 기분에 주머니에 손을 넣어 봤더니 잡히는 차가운 금속 물체.
‘···열쇠다.’
파악-
동시에 집의 불이 갑자기 몽땅 꺼 진다.
그리고 등 뒤에 있는 부모님 방의 문이 천천히 열린다.
끼이이이이익.
사사삭. 사사삭.
슷. 스슷. 삿사삿.
뭔가가 굉장히 좁은 보폭으로 바닥을 스치며 걸어오는 소리.
나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열쇠를 구멍에 꽂아 넣었다.
※공포 영화 클리셰 : 꼭 도망갈 때 열쇠 한 번에 안 꽂힘.※
틱 _
하지만 마치 자석의 같은 극을 마주 보게 하려 할 때 손에 느껴지는 기묘한 저항감처럼.
열쇠는 허무하게도 입구에 꽂히지 못하고 쑥 옆으로 밀려나 엉뚱한 곳을 찔러 버렸고.
순간 당황한 나는 손에서 열쇠를 놓치고 말았다.
짤·그락-
신발장 바닥의 타일에 금속음을 내며 뒹구는 열쇠.
동시에 뒤에서부터 누군가 기묘한 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꺽… 꺼적… 꺽… 꺼걱
사사. 사사삿. 사삭.
이런, 미친.
여기서 열쇠를 놓친다고? 돌았나?
나는 온갖 욕을 속으로 다하며 번 개처럼 허리를 숙여 열쇠를 집는다.
짤그락-
하지만 열쇠는 어느덧 ‘열쇠 뭉치’가 돼 있었다.
대략 다섯 개 정도의 열쇠가 정신 없이 한 고리에 걸려 있는 열쇠 뭉 치.
짤그락- 짤그락- 부들대며 손을 떨자 열쇠들이 서로 부딪치며 금속음을 낸다.
무슨 상황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첫 번째 열쇠를 꽂아 넣는다.
틱 _
맞지 않는다.
바로 두 번째 열쇠를 꽂아 넣는다.
틱 _
X발, 다르다.
바로 세 번째 열쇠를 손에 쥐고 꽂아 넣는다.
틱 _
“꺼어억… 꺽… 끅… 끄으으윽 무언가 숨넘어갈 듯한 소리를 뱉으며 나에게 다가온다.
보면 기절할까 봐 돌아보지 않는다.
이미 거실 중간쯤까지 온 듯한 그 것.
틱 _
나는 바로 네 번째 열쇠를 쑤셔 넣지만 이빨이 하나도 맞지 않는다.
이어서 다섯 번째 열쇠를 꽂아 넣지만 크기가 달라 들어가지도 않는다.
애미. 뭐지. 다 꽂아 봤는데. 아니라고?
바로 내 등 뒤까지 다가온 무언가.
등 뒤 척추에서부터 뻣뻣하게 타오르는 긴장감을 무시한 채, 나는 바로 다시 첫 번째 열쇠를 꽂아 넣어 봤다.
찰칵-
그제야 돌아가는 손잡이.
바로 뒤통수까지 다가온 누군가의 무시무시한 숨결을 뒤로하고 나는 문을 열고 달려나가 계단으로 정신 없이 뛰어 내려갔다.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헉, 헉, 헉….
애미야, 애미야….
이제 그만하자, 이런 건, 제발…….
* * *
아파트 입구까지 정신없이 달려 도착한 후에야 나는 숨을 고른다.
허억, 허억, 허억.
“후우우우우……
뭐였지. 아까의 그 불합리한 상황은?
그 상황에서 뭐 그런.
하아, 하아.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나는 고개를 들고 혼자 천천히 중얼거렸다.
‘ ···클리셰구나.’
공포 영화에서 보면 항상 도망칠 때 주인공은 열쇠를 떨어트린다.
그걸 주워서 돌려 넣어도 아귀가 한 번에 맞아 돌아가는 법은 절대 없다.
항상 이 열쇠, 저 열쇠 꽂아서 돌리다, 가장 긴박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간신히 탈출에 성공하는 것이다.
절대 한 번에 걸리지 않는 자동차 시동처럼, 긴박한 상황에서 공식처 럼 쓰이는 클리셰.
“후우우.”
A급 특수 능력 클리셰 발현.
대충 이런 방식인 건가.
‘나한테 좋은 게 뭐야……?’
단지 입구 근처의 벤치에 앉아 기 다리고 있으니, 저 멀리서 분홍색 잠바 하나를 걸친 선아가 아장아장 걸어오는 게 보인다.
“선아야.”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나를 보고는 앗, 하는 표정과 함께 달려오는 선아.
“준아!”
“안녕.”
가까이 온 선아가 살며시 웃으며, 힘없이 앉아서 인사하는 나를 내려 다본다.
“여기까지 와 줘서 고마워. 밥은 먹었어?”
“아니, 아직……
“그럼 같이 뭐 좀 사서 들어갈까?”
선아가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된 거야.”
“세상에……
집 근처의 마트.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우리는 장을 보고 있다.
“그런데 다시 집에 들어가도 괜찮은 거야……? 밥 같은 거, 밖에서 먹어도 되는데……
“괜찮아.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뭐 만들어 줄게.”
나는 야채 코너를 향해 가면서 설 명해 주었다.
“집에 다시 들어가는 건 일단 괜찮을 거라 생각해. 공포 영화에서 이런 흐름으로 한 번 놀래킨 뒤, 다른 사람이랑 다시 찾아가 보면 아무 일도 없는 게 국룰이니깐.”
“국룰?”
“국제 룰이란 의미야.”
“아, 응……
선아가 조금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걱정스럽게 나를 쳐다본다.
“귀신… 뭐 짐작 가는 건 있어
“아니, 아직 나는 대파 하나를 집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점심때 덕훈이가 보내 준 귀신 보는 방법. 그거 너랑 같이 한 거 말 고는 따로 짐작 가는 게 없어.”
“그럼 그거 때문에 귀신이 나타난 거 아닐까……?”
선아가 시식 코너에 슬쩍 눈길을 주고는 머뭇거리며 의견을 얘기한다.
“그거 하다가 무서운 거 봤었다며. 그래서……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 데.”
나는 햇반 두 개를 바구니에 집어 넣으며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 보니 그건 단순히 집에 귀 신이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일 뿐이었잖아.”
“···응. 그랬지.”
선아가 장을 보는 다른 아주머니를 피해 한 걸음 물러서며 고개를 끄덕 인다.
“우리가 저번에 한 구석놀이처럼 귀신을 불러내는 그런 것도 딱히 아 냐. 정말로 있는지 없는지만 보는 것뿐. 그런데 그게 있는 걸로 나왔다면……
“···오늘 이전부터 귀신은 원래 있어 왔다는 얘기구나.”
“맞아. 그래서 더 문제야.”
나는 시식 코너의 삼겹살 하나를 녹말 이쑤시개로 낼름 집어 먹었다.
나를 따라 콕, 하나 집어 먹는 선아.
“우리 가족은 아파트가 완공되자마자 바로 이사 와서 지냈거든. 집에 얽힌 비화 같은 건 없어.”
“근데 귀신이 왜 나오는 거지 “직접 부딪쳐 보며 알아내는 수밖 에. 과자 몇 개 골라 갈까?”
“빵은 어때……?”
선아가 과자 대신 빵 코너를 가리 켰다.
“마트 빵 맛있어? 생긴 것만 그럴 싸하고 맛은 별로던데.”
“난 괜찮던데……
“그럼 몇 개 가져가자. 내가 계산 할게.”
“땡큐땡큐……
빵이 쌓인 선반으로 다다다 달려가는 선아의 작은 뒷모습.
‘땡큐땡큐라고?’
피식 웃고 말았다.
“내가 들게, 영차……
“오, 감사.”
계산을 하고 있으니 선아가 마트 비닐봉지에 물건들을 집어넣는다.
“가자, 이쪽이야.”
« 응 ”
봉투를 들고 좁은 보폭으로 쫓아오는 선아.
키가 작아서 그렇다.
“근데 이걸로 너희 집 귀신 두 번 째네……?”
“그러니깐.”
터가 안 좋나.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느긋하게 저녁부터 먹고, 차근차근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 도 우러 와 줘서 정말 고마워, 진짜. 이번 포인트 우리 둘이서만 나누 자.”
“응……!”
선아가 비닐봉지를 들고 힘차게 걸으며 앞장선다.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