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화
열두 번째 괴담 -
공포 영화 클리셰 (4)
삐리 릭~
“들어와.”
“실례하겠습니다……
선아가 수줍은 미소와 함께 현관을 들어서며 인사한다.
“아무도 없는데.”
“귀신 있으니깐……
키득거리며 웃는 우리 둘.
역시 예상대로 누군가와 함께라서 그런지 귀신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집에서 허겁지겁 달려 나온 그대로의 상황.
밝혀진 현관 센서 등이 어두운 거 실을 비춘다.
“선아야, 이거 봐, 여기. 현관문.”
“응……?”
막 신발을 벗고 장을 본 비닐봉지를 거실에 내려놓는 선아를 나는 잠시 붙잡는다.
“밖에서는 비밀번호 치고 들어오는 도어락이었지? 근데 안에서는 열쇠 꽂아 넣는 방식으로 바뀌어 있어.”
“···어라.”
문 안팎을 살펴보는 선아.
“···정말이네?”
안쪽의 손잡이와 바깥쪽의 손잡이를 동시에 당겨 보며 갸웃거린다.
철컥. 철컥.
“봐. 심지어 안쪽은 열고 나가는 입장인데도 열쇠 구멍이 있잖아.”
“으음”
현관문 손잡이를 고개 숙여 들여다 보는 우리 둘.
“이렇게 돼 있는데 작동해……?”
“응. 밖에서는 도어락으로, 안에서는 열고 나가는 열쇠로.”
몇 번 살펴보던 선아가 이내 아리 송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든다.
“왜 이렇지……?”
“클리셰 능력이 발현하면서 좀 영 향을 받은 것 같은데.”
“ 으응······
잠시 생각하던 선아가 이내 물음표를 띄우며 돌아선다.
“경원이한테 물어보면 어떨까
?”
“그래. 역시 그게 낫겠지.”
“읏차······
선아가 다시 장을 본 봉지를 주방에 갖다 놓는 동안, 나는 문을 사진으로 찍어 단톡방에 상황 설명과 함 께 올려놓았다.
그리고 현관문을 닫은 후 주방으로 가 식탁에 식재료를 꺼내 놓는 선아를 다시 불렀다.
“선아야, 이쪽으로.”
“응?”
부모님 방인 큰방 문 앞에서 손짓 하는 나.
선아가 대파 몇 개를 풀다 말고 다시 나에게 온다.
“아까 여기서 커다란 소리가 났었어. 긴장 풀기 전에 한 번 확인해보 자.”
선아의 표정이 곧 심각해졌다.
“무기 같은 게 없어도 괜찮아 “···그렇겠지? 잠시만. 뭔가 있을 거 같은데.”
나는 거실에서 진공청소기 하나를 끌고 왔다.
“준아, 그건 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선아.
“이것도 휘두르려면 휘두를 수는 있을 것 같아서.”
“그렇긴 한데……
선아가 낑낑대며 청소기의 손잡이를 잡고 창처럼 들어 올려 본다.
“이거 아니면 우산이나 식칼 같은 거밖에 없어서… 우리 집에 운동하는 사람이 없거든.”
야구 방망이나 골프채 같은 적당히 리치가 있으면서 휘두를 수 있는 둔 기가 좋을 텐데.
지금은 이것뿐이다.
“알겠어……
선아가 청소기를 들고 고개를 끄덕 인다.
“그럼 연다.”
“응……!”
곧 손잡이를 돌린 직후 부모님 방의 문을 발로 차서 열어젖히는 나.
탕-!
나는 문이 열리는 즉시 선아 뒤로 숨었다.
질질질.
청소기를 끌고 부모님 방으로 들어 가는 선아.
몇 번 그걸 들고 허공에 휘적거리더니 이내 나를 돌아보며 끄덕인다.
“안전해, 준아.”
“좋아.”
잽싸게 선아 옆으로 합류하는 나.
그대로 부모님 방을 돌아보았지만 정말로 멀쩡했다.
더블 사이즈 침대, 벽 한편을 다 차지하는 옷장, 그리고 화장대.
“저기, 부모님 방 화장실. 저기만 마지막으로 확인하자.”
« 응 ”
점심에 했던 귀신 보는 방법에서도 여기서 뭔가 확- 튀어나왔던 기억 이 있었다.
문의 손잡이를 돌리고 조심스레 밀어 보는 나.
하지만 조금 열리다 무언가에 막혀 걸리고 만다.
순간 문 뒤에서 무서운 귀신이 서서 미친 듯이 깔깔거리며 똑같은 힘으로 문이 안 열리게 막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무서운 상상이 들었지만.
몇 번 툭툭 밀어젖혀 보니 무언가 쓸리는 소리가 들리는 게, 문 뒤편에 물건이 쓰러져서 막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흡! 흡……
그대로 몇 번 어깨로 힘을 주어 밀자 와르르 물건이 쓸리는 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
불을 켜고 들여다보자 완전히 박살 이 나 있는 화장실이 보였다.
“세상에, 뭐야 이게.”
“유리 조심해……
밖에 서서 구석구석 살펴보니 아무 래도 화장실의 찬장이라고 해야 하나, 수건과 이것저것 비품들을 넣어 놓는 변기 위에 달려 있는 수납함.
그게 접착력이 다한 건지 통째로 굴러떨어져 박살 난 채 문 뒤를 막고 있었다.
“와, 이건… 치우려면 고생 좀 하겠는데.”
아까의 그 요란한 소리는 이게 떨어지는 소리였구나.
※공포 영화 클리셰 : 처음의 놀래 키는 장면은 알고 보니 별거 아님. 으
나는 부모님이 오시면 어떻게 할지 의논하기로 하고 일단 화장실 문을 닫았다.
“저녁 먹으러 가자. 내가 맛있는 거 해 줄게.”
“응!”
주방으로 가는 내 뒤로 선아가 청 소기를 끌고 따라온다.
* * *
“북종원 파기름 볶음밥이야.”
“풉, 잘 좀 해 봐……
계란 스크램블을 마구 못생기게 휘 젓는 내 옆에서 키득거리며 웃는 선아.
다른 가스 불에서는 선아가 식용유를 두른 팬 위에 대파를 넣어서 파기름을 만들고 있다.
“좋아. 햇반 투척.”
“투척~”
선아가 내 말을 따라 하며 전자레 인지에 데운 햇반을 팬에 넣는다.
그대로 파기름 위에 대파와 함께 계란 스크램블을 마구 섞어 가며 볶 음밥을 만드는 우리.
중간중간 굴 소스도 적당히 투척해서 감칠맛을 잡아 준다.
곧 익은 듯 보이자 밥그릇에 하나 씩 퍼 담아서는 그 위에 참깨를 솔 솔 뿌려서 요리를 완성.
“맛있겠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파기름 볶음밥.
내가 바로 한 입 퍼먹자 선아도 웃으며 숫가락을 든다.
“잘 먹을게, 준아……
“많이 먹어. 나중에 치킨도 또 시 켜 먹자. 엄마가 서랍에 비상금 숨 겨 놓고 가셨대.”
“그랭……
우물거리며 대답하는 선아.
나는 사실 그냥 퇴치 때까지 선아가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가 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지금이야 같이 있으니 괜찮아 보이지만, 또 혼자 집에 남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부모님, 이제 서울에서 출발해 부산 가서 상 치르고 다시 올라오시려면… 진짜 아침까지는 걸리시겠네.’
내일은 금요일, 평일인데 엄마 아 빠 두 분 다 출근 괜찮으시려나.
‘선아도... 내일 학교 가야 되는데 여기 하루 있어 줘도 괜찮으려나.’
나는 슬쩍 물어보기로 했다.
“선아야, 집에 할머니는 괜찮으셔? 혼자 계실 텐데……
“오늘은 병원에 계녕.”
선아가 볼에 가득 밥을 우물거리며 대답한다.
‘그럼 은근슬쩍 여기서 하루 보내는 흐름으로 가도 괜찮겠군.’ 나는 다행이라는 듯 가슴을 쓸어내린다.
공포 영화에서 혼자 있는 건 곧 죽음을 뜻한다.
‘근데 뭐 어디서부터 살펴봐야 하려나 진짜 짚이는 게 없네.’ 나도 일단은 밥 좀 먹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물우물
[클로버 총수 천승재 회장이 오랜 만에 한국에 입국했고, 이에 대통령 이 웃음과 덕담으로 인사를 나누는 자리를 가졌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저녁 9시쯤, 나는 거실 소파에 누워 티브이를 보는 나.
선아는 내 앞에서 상을 펴 놓고 쩝쩝거리며 치킨을 먹고 있다.
카톡~〉
“오, 왔다.”
드디어 학원을 마쳤는지 경원이에 게서 온 답장.
나는 현재 상황에 대한 실마리가 있기를 기대하며 서둘러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뭐래?”
“잠만.”
배달 어플 리뷰 이벤트로 온 치즈 볼을 한입 문 채로 고개를 기울이는 선아.
경원이에게는 장문의 카톡이 와 있었다.
〈안경원 : 일단 부장의 생각대로 그건 단지 귀신을 확인하는 방법이었을 뿐, 없는 귀신을 만들어 내는 건 아니었으니 그쪽 괴담으로 파고 들어도 뭐 나오는 건 없을 것 같아. 그나마 한 가지 떠오르는 건 지금 부장에게 일어나는 괴현상의 시작점 이 됐을지도 모른다는 거?〉
“시작점? 흠. 무슨 소리지.”
“그러게……
선아가 치즈 시즈닝을 입에 묻힌 채 우물거리며 물끄러미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기다리고 있으니 하나 더 오는 녀석의 카톡.
〈안경원 : 귀신들은 주로 자기를 인식하는 사람들에게 달라붙는다고 하잖아. 그래서 보고도 못 본 체하라는 조언들이 많은 거고. 근데 부 장은 덕훈이가 보내 준 그 방법대로 해서 귀신을 인식해 버린 거잖아. 그러니깐 ‘너, 봤구나.’ 하고 달라붙 기 시작한 걸지도 모른다는 거지.〉
“그런 얘기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라면 오늘 갑자기 괴현상이 벌어진 이유도 납득이 갔다.
하지만 문제는 이 귀신이 도대체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이냐는 거다.
이야기의 구조를 알아내야 어떻게 파고들 틈이 있을 텐데, 나는 이게 무슨 괴담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이준 : 그래서 귀신 자체에 대해 서는 뭐 짐작 가는 거 있어? 일단 내가 본 이미지는 목이 길고 무섭게 생긴 여자의 이미지였는데.〉
〈안경원 : 글쎄…….〉
핸드폰 너머지만 안경을 매만지는 녀석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안경원 : 뭐 단순히 무섭게 생긴 거로만 따지자면 너무 바리에이션이 많아서. 그래도 목이 긴 걸로 봐서는 생전에 목매달고 자살했을 가능 성도 있겠고…….〉
〈이준 : 목매달고 자살… 근데 우리 집은 둘째치고 우리 아파트 안에 서도 그런 일은 없었는데.〉
〈안경원 : 확신해?〉
〈이준 : 웅. 7년 살았고 엄마가 동 대표도 했었어. 웬만한 이웃 주민들 끼리는 다 알고 지내.〉
〈안경원 : 그럼 애매하네. 부장이 그런 거랑 엮일 만한 짐작 가는 일이 정말 없었다면, 어쩌면 진짜 그 냥 지나가던 귀신1 같은 걸지도 모르는 거지.〉
〈이준 : 그러니깐 지나가던 귀신이 왜 7층인 우리 집에… 모기도 잘 안 들어오는 높이인데…….〉
〈안경원 : 나도 몰라.〉
어깨를 으쓱하는 머릿속의 경윈이.
〈안경원 : 귀신이 엮이는 일은 정말 많아. 길에서 떨어져 있는 물건을 주워 온 적 있다든가, 요새 기가 허하다든가. 조상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든가, 근처에 상을 당한 사람이 있다든가... 이유는 수백 가지니깐 열심히 찾아봐야지.〉
“근처에 상을 당한 사람……?”
선아의 눈과 내 눈이 순간 마주친다.
우리 둘 다 같은 것을 떠올린 것이다.
“준아, 너희 부모님이……
“맞아. 나도 그 생각했어.”
부모님께서 말했던 상을 당했다는 어떤 친척분.
혹시 그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 걸 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도 좀 이상하다.
부모님께서 나에게 그 죽었다는 사람이 누구인지 언급도 안 하시는 걸로 보아 아마 나랑은 인연이 없을 법한 먼 친척.
심지어 부산이면 여기 서울과는 대한민국 끝에서 끝.
절대 근처라고는 할 수 없는 거리다.
〈안경원 : 그래도 다행인 건, 진짜 그냥 지나가던 귀신1 같은 잡귀 포지션이라면 퇴치 자체는 쉬울 거야. 인터넷 썰들 찾아보니 집에 귀신 나 와서 놀라서 욕하거나 물건 집어 던졌더니 도망가서는 다시 안 보였다
는 글들도 많아.〉
“웃긴 귀신들이네.”
피식, 웃고 말았다.
하긴 지금까지의 경험을 되살펴 보면 진짜 괴담이 만들어 낸 악마 같은 존재들을 빼고는, 원래는 사람이었다는 느낌이 있던 놈들은 은근히 쉽게 퇴치됐던 것 같기도 하다.
〈안경원 : 혹시 모르니깐 요새 주워 온 물건 없나 잘 살펴봐. 너가 아무 짐작 가는 거 없으면 아마 부 모님 쪽이겠지.〉
〈이준 : 그래, 고마워. 뭔가 찾아 내면 연락 줄게.〉
〈안경원 : 나도 부장이 사용했다는 그 클리셰 능력? 인터넷에서 이것저 것 찾아볼 테니 기다려.〉
“항상 고맙다, 경원아.”
선아도 티슈로 입가를 닦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갠톡으로만 얘기를 나누고 있어서 나머지 부원들은 지금 이 상황을 모르는 상태다.
야밤에 남녀 둘이서 한집에 있다는 게 부원들에게 좀 오해의 소지가 있기도 하고.
학교가 배경이 아니라 집에서 나타 나는 귀신이다 보니, 개인적으로 조용히 처리하고 싶은 마음도 있기 때 문이다.
“다 먹었어?”
« 응
손을 털며 일어서는 선아.
“손 씻고 올게……
“많이 남겼네.”
나도 치즈 시즈닝이 묻은 닭 다리 하나를 집어 들고 뜯어 본다.
‘맛있네.’
치킨을 사줬으니 귀신을 퇴치할 때까지 선아는 오늘 나랑 여기 함께 있어 줘야 한다.
잠시 후, 밤 10시쯤.
집 안의 불을 다 켜 놓고, 거실의 티브이도 켜 놓은 상태에서 우리는 부모님 방을 뒤지는 중이다.
선아는 장롱, 나는 옷 수납장을 뒤 적이는 중인데, 아무래도 여기는 엄마 물건이 더 많다 보니 대부분이 옷이나 화장품 같은 거다.
“준아, 이건 뭐야……?” 선아가 장롱 밑에서 상자 하나를 들고 나에게 온다.
가족 앨범인데 상자가 수상해 보였나 보다.
“아, 그거. 우리 가족 옛날 앨범이야.”
“우와, 봐도 돼‘?”
“응. 얼마든지.”
곧 바닥에 펼쳐 놓고 앨범을 뒤적이는 선아.
나도 슬쩍 살펴보니,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김은정이랑 찍은 사진들 투성이였는데 지금은 평범한 내 옛 날 사진뿐이다.
“준아, 이거! 아하하……
엄마가 주방 찬장 위에 숨겨 둔 어린이 영양제 노마골드, 텐텐을 효 자손으로 하나씩 골라내 집어 먹는 어린 시절의 내 사진을 보고 선아가 마구 웃는다.
“어릴 때부터 잔머리 많이 굴렸구 나……
“뭐… 그런 거지, 뭐······
그… 다 그렇지, 뭐.
나는 머쓱한 마음에 머리를 긁적이며 화장대의 서랍을 다시 뒤져 봤다.
그리고 엄마가 다니는 절의 불경들
사이로 뭔가 이상한 걸 발견하고 순 간 흠칫했다.
“…어라? 이게 왜 여기 있지?”
※공포 영화 클리셰 : 극 초반, 사건을 암시하는 불길한 물건을 발견 함.※
♣◆♣♤◆◆◆◆♤◆♣♣◆♤◆◆
◆◆
해석: 우주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