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열두 번째 괴담 -
공포 영화 클리셰 (5)
엄마가 쓰는 화장대 서랍 안의 불 경들 사이에서 발견한 물건.
나는 그걸 꺼내서 손으로 쥐어 봤다.
재질은 일단 구슬 같은 느낌인데. 스페이드 모양이고 크기에 비해 묵 직하다.
몇 번 그걸 가만히 쥐었다 폈다 해 보다가, 알몸으로 대야에서 목욕 하고 있는 어린 시절 내 사진을 보고 있는 선아를 불렀다.
“선아야, 이거 봐.”
“응……?”
앨범을 덮고 무릎을 이용해 나에게 기어 오는 선아.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
“…어라.”
선아도 유심히 눈을 치켜뜨고 그걸 살펴보더니, 이내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놀란다.
“토템!”
“맞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달 전쯤, 괴담 동아리가 막 만들어지고 첫 CA 시간을 앞둔 점심 시간.
우리는 ‘행운의 여신’이라는 S급 능력 때문에 동시에 머리를 박고 잠 들었던 적이 있었다.
같은 순간에 의식을 잃어버린 우리는 함께 끊임없이 꿈속으로 빠져들었고.
그때 이게 꿈이라는 걸 처음 눈치 채게 해 줬던 게 바로 담임이 건네 줬던 이 토템이었다.
‘ 혹시······
시험 삼아 뾰족한 부분을 팽이 삼 아 바닥에 굴려 봤다.
잠시 무게를 따라 빙글빙글 돌아가던 스페이드 모양의 토템은 이내 중 심을 잃고 툭 쓰러졌다.
“쓰러지는 걸 보니 일단 꿈은 아니 네.”
“이게 왜……
“엄마가 다니는 절의 불경들 속에 같이 놓여져 있었어.” 그걸 몇 번 더 손으로 흔들어 보며 생각해 봤다.
‘현실에서도 있는 물건이었구나.’
하지만, 어디 쓰는 무슨 장신구이고 왜 이게 우리 집에 있는 걸까.
재질이라든가 분위기는 불교용품 같기는 한데, 이런 걸 일반 절에서 본 기억은 없다.
역시 경원이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어 녀석에게 보냈다.
그러자 곧바로 반응하는 경원이.
〈안경원 : 토템이네.〉
〈이준 : 어떻게 생각해?〉
나는 빠르게 키패드를 두드린다.
〈이준 : 부모님 방 화장대에서 찾았거든. 엄마 물건인 것 같은데.〉
〈안경원 : 현실에서도 진짜 있는 물건이었네.〉
〈이준 : 나도 놀랐어. 짐작 가는 거 있어?〉
〈안경원 : 있어.〉
“ 뭘까.”
“뭐지······
부모님 방 마룻바닥에 앉아 핸드폰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선아와 나.
곧 녀석에게 카톡이 다시 왔다.
〈안경원 : 조금 민감한 얘기일 것 같기는 한데. 혹시 너희 어머니 종교 가지고 계셔?〉
나는 그렇다는 답장을 보냈다.
〈이준 : 응. 절에 다니셔.〉
〈안경원 : 일반적인 절인 거 맞
아?〉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다시 그런 것 같다고 답장을 했다.
꽤 오래 다니신 절이기도 하고, 부 처님 오신 날에 나도 몇 번 따라가서 비빔밥을 얻어먹은 적이 있기 때 문이다.
〈이준 : 확실해. 이 근처에서는 유명하고 좀 오래된 절이야. 이상한 곳은 아냐.〉
〈안경원 : 그럼 절 쪽에서 준 건 아니겠네. 내일 CA시간 발표 때 말 하려고 했는데, 미리 간단히 설명하자면 학교 안에 퍼져 있는 수상한 종교. 공백교라는 도교 계열의 신흥 종교야.〉
“공백교?”
낯익은 단어.
전생에서는 몇 번 들어 봤지만, 이 번 생에서 듣는 건 처음이다.
‘교주가 대통령이 되면서 급부상하기는 했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아직 수면 위로 떠 오르기 전이니깐 선아에게 너는 들어 봤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그녀의 얼굴이 이미 새 하얗게 질려 있는 걸 눈치챘다.
〈안경원 : 자세한 건 내일 말해 줄 건데, 일단 걔네들이 설립한 명 상센터 같은 거에서 4 스페이드 모양의 문양을 간간이 넣는 것 같더라고.〉
“스페이드 문양……
나는 손에 들고 있는 묵직한 스페이드 모양의 토템을 쳐다봤다.
〈안경원 : 내가 볼 때는 걔네 종교의 심볼 같은 것 같아. 스페이드랑 공백을 뜻하는 스페이스, 발음이 비슷하잖아.〉
“···그렇네.”
그쪽에서 쓰는 종교적으로 상징하는 의미가 있는 물건인 걸까.
‘이게 왜 불교 신자인 우리 엄마한 테……
나는 토템을 손에서 몇 번 들었다 받았다 하며 살펴보다가,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 선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선아야. 뭐 짐작 가는 거 있어?”
“거기. 우리 부모님이 다니셨던 곳이라서……
파앗-
[인물 윤선아에 대한 이해도가 5 올랐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지금은? 아직 다니고 계셔?”
“아니, 두 분 다 돌아가셨어……
“···그렇구나.”
할머니랑 같이 살고 있다는 부분에서 짐작하고 있었던 내용이지만, 역시 두 분 다 돌아가신 거구나.
‘사이비 종교에 빠지신 것과 관련 이 있을까.’
나는 뭐라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 지 몰라서 손에 들고 있는 토템을 몇 번 가만히 흔들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좀 쉬었다 할까?”
«응.”
나를 따라 멍한 얼굴로 거실로 나오는 선아.
그렇게 우리는 같이 소파에 앉아 티브이에 전혀 집중하지 못한 채 각 자의 상념에 사로잡혔다.
‘선아한테 그런 일이 있었구나. 앞으로 교단이랑 부딪칠 때 뭐 어떤 식으로 다독여 주며 나아가야 하지?’
‘결국, 부모님 방에서는 토템, 이것 밖에 찾아낸 게 없구나. 엄마는 이 걸 어디서 얻은 거고 왜 화장대에 넣어 놓으신 거지?’
‘이 토템, 공백교가 지금 집 안에서 튀어나오는 귀신과 관련이 있는 걸까?’
그렇게 밥도 양껏 먹었고, 밤도 늦었다 보니 멍하니 소파에 기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나는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 * *
[2019년 5월 3일 금요일, 01:12]
[이준 - 2회차]
[괴담 포인트 : 102]
[인과율 : 17%]
“준아, 준아.”
“응……?”
눈을 뜨니 어두운 거실.
“방에 들어가서 자……
«응.”
선아가 이끄는 대로 비몽사몽 간에 어두운 내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풀썩 누웠다.
선아는 내 옆에서 빼꼼히 열린 방 문 틈으로 거실을 내다보며 무언가를 경계하는 눈치지만, 나는 졸음에 휩싸여 깨닫지 못하고 잠들고 말았다.
※공포 영화 클리셰 : 무언가 수상 한 걸 눈치채도 무시해 버림.※
[2019년 5월 3일 금요일, 02:44]
[이준 - 2회차]
[괴담 포인트 : 102]
[인과율 : 17%]
‘이게 아니지. 내가 여기서 잠 온 다고 그냥 자서 뭐 해. 선아랑 같이 사건은 해결하고 자야지.’
라고 생각하고 눈을 떠 보니 잠시 눈만 감은 줄 알았는데 이미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현재 시간은 새벽 2시 44분.
“.··선아야?”
문득 옆을 돌아봤지만 어두운 방 안에는 아무도 없다.
※공포 영화 클리셰 : 가만히 안 있고 일행들끼리 꼭 서로 흩어짐.※
‘···뭐야, 설마 자는 사이에 늦었다고 집에 갔나?’
여자애를 집에 초대해서 가정사까지 들어 놓고 먼저 자다니, 나도 너무 무심하기는 했다.
머리를 긁적이며 거실로 나가 불을 켜려 스위치를 눌렀지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딸깍- 딸깍-
“어? 왜 이래.”
※공포 영화 클리셰 : 불 안 켜짐. 으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신발장으로 가 보니 선아의 신발이 아직 있었다.
« 으” 내가 자는 새에 삐져서 먼저 나간 건 아니었다.
‘어디 있지?’
다시 내 방으로 돌아가 침대 위에 놓여 있던 핸드폰을 들고 후레쉬를 켰다.
핸드폰을 든 김에 카톡을 열어 봤지만 새로 온 메시지는 없었다.
‘…아니, 아니구나.’
새로 온 메시지가 없는 게 아니고 그사이에 경원이한테 톡이 몇 개 와 있었지만, 이미 읽은 메시지라서 알 림이 안 뜬 것뿐이었다.
‘선아가 읽었나?’
내가 잠결에 읽은 게 아니라면 핸 드폰을 만질 사람은 바로 옆의 선아 뿐.
잠든 내 손가락을 가져다 대서 지 문 잠금을 풀고 연락 기록을 살피는 선아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나 정말로 우리 부원들 말고는 연락하는 사람 없는데.’
그런 게 궁금했던 걸까.
파앗-
[인물 윤선아에 대한 이해도가 5 올랐습니다.]
다행히도 뭐 찔릴 만한 내용은 없었다. 연락하는 여사친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윤이한테 카톡 보냈다가 읽씹당 한 거 하나 빼고는……
일단은 집 안 어딘가에 있을 선아를 찾아보기로 했다.
“선아야, 선아야?”
어두운 집 안에서 후레쉬를 이리저 리 비춰 가며 둘러보는 나.
순간, 부모님 방 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선아야?”
반쯤 열려 있는 문으로 다가가는 순간.
나는 좀 더 그 소리를 자세히 듣 게 되었다.
사삭“* · · 사사삭그 · · 사사삭그 ·····.
뭔가가 굉장히 좁은 보폭으로 걷는 듯한 마루를 스치는 소리.
영화에서 보면 이런 수상한 소리를 듣고도 ‘서, 선아니? 선아야……?’ 하면서 다가가다가 끔살당하던데.
하지만 병신이 아니고서야 이건 딱 봐도 귀신이다.
바로 눈치채고 돌아서려는 나였지만, 순간 저 소리의 정체를 확인해 야겠다는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호기심에 휩싸여 버렸다.
※공포 영화 클리셰 : 누가 봐도 동료 아닌데 이름 부르며 다가감.※
사‘삭'· * · 사'시~삭 · · · 사사삭’ #
그렇게 선아의 이름을 부르며 문으로 다가가는 나.
“서, 선아니……? 선아야……?”
가슴 속에는 클리셰대로 따라 한다는 기묘한 흥분감까지 차 있었다.
끼이익-
[열지 마, 준아!!!!!!!!!! 들어오면 안 돼!!!!!!!] 순간, 방 안쪽에서 선아가 외치는 소리와 함께 뭔가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누군가 발을 굴리는 소란이 들려온다.
“서, 선아야!?”
귀신을 피해 방 안에 숨어 있던 선아가 내가 다가가자 자신을 희생 하려 하는 것이다!!
그렇게 판단하고 빠르게 문을 박차고 들어간 나는, 머리가 산발이 된 여자가 목을 쭉 빼 밀고 있는 형상과 마주했다.
[열지 마, 준아!!!!!!!!! 들어오면 안 돼!!!!!!!]
아래턱이 빠진 채 윗니만 보이는 그로테스크한 턱을 삐걱이며, 목이 긴 여자 귀신은 선아의 목소리를 흉 내 내더니 빠르게 발을 굴리며 소란을 낸다.
우당탕.
그렇게 미친 듯이 바닥에 발을 굴려대다 우뚝 멈춘 귀신은 다시 턱을 쩌억 벌린다.
[열지 마, 준아!!!!!!!!! 들어오면 안 돼!!!!!!!]
“준아, 도망가!!”
순간 내 뒤편, 완전히 반대 방향인 아빠 서재에서부터 문을 박차고 나 온 선아가 나를 잡아 내 방까지 끌 고갔다.
[열지 마, 준아!!!!!!!!! 들어오면 안 돼!!!!!!!]
귀신도 숨넘어가는 함성 소리를 내며 부모님 방에서부터 나를 잡으러 달려 나왔다.
쾅쾅쾅쾅쾅쾅쾅.
이내 방문 앞에 도착한 나.
하지만 방문은 잠겨 있었고, 내 주머니에는 어느새 열쇠가 들어 있었다.
그걸 들고 꺼내려던 찰나 열쇠가 손에서 미끄러졌고, 동시에 귀신이 선아를 붙잡아 한입 물었다.
떨어트린 열쇠는 어느새 열쇠 뭉치로 변해 있었고.
나는 허둥지둥하며 방문에 열쇠를 꽂아 넣었지만 모두 아귀가 맞지 않을 뿐이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모두 아귀가 맞지 않다가 다시 처음 열쇠를 돌리자 그제야 열리는 방 무
“선아야, 빨리……
돌아보니 이미 선아는 코 윗부분부터 얼굴이 뜯겨 사라져 있었고, 귀 신은 목이 너무 길어 천장에 옆통수를 밀어붙인 채 히죽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 미친……
덜덜 떠는 나에게, 귀신이 천장에 닿은 머리를 질질 끌면서 다가온다.
지익- 지이익-
걸음은 마치 옛날 조선 시대 기생의 걸음걸이처럼 좁은 보폭.
사삭'_ 사사삭'-
나는 덜덜 떨며 그 귀신에게 검지로 가리켰다.
“씨… X발아… 넌 다음에 마주치면, 나한테 뒤졌다……
[듕그 익의 달아문짜와로서 로사맛디 아니 할싸이 이런전챠로어 린바익 성이] 쩌어어어어어어어억-
턱을 바닥까지 닿을 기세로 쩌억 벌리고는 나에게 달려드는 귀신.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로 다음 시간대를 기약했다.
아악... 아아아악
곧 끔찍한 고통과 함께 상반신이 사라지는 듯한 괴로움 속에서 나는 의식을 잃어버렸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체크포인트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로딩중…….]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