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열두 번째 괴담 - 공포 영화 클리셰 (6)
[2019년 5월 3일 금요일, 01:17]
[이준 - 2회차]
[괴담 포인트 : 102]
[인과율 : 17%]
눈을 뜨니 내 방 침대.
옆을 보니 선아의 뒷모습이 보인다.
선아는 방 안에서 문틈으로 거실을 내다보고 있다.
“···선아야.”
“ 쉿.”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선아가 입 술에 손을 가져다 댄다.
선아의 눈길을 따라 거실로 귀를 기울여 보자, 저 멀리 부모님 방 쪽에서 누군가의 앓는 소리가 들려온다.
으으윽, 같기도 하고 끄으윽, 같기 도 한데, 여자가 힘없이 내뱉는 앓는 듯한 소리.
문틈으로 경계하듯 살피던 선아가 곧 조심스레 나에게 다가온다.
“준아, 여기 가만히 있어. 내가 확인해보고 올게……
“잠시만.”
문을 나서려는 선아의 팔을 붙잡는 나.
전 시간대에서 내가 자는 동안 선아는 혼자 저걸 확인하러 갔다가 걸려서 못 돌아오고 숨어 있었던 건 가.
“···우리 한 번 죽고 돌아온 참이야. 나가지 마.”
두 눈을 크게 뜨는 선아. 조심스레 나에게 얼굴을 맞대며 묻는다.
“···우리 어떻게 죽은 거야?”
“그냥, 들켜서 도망치다가… 개죽음 당했어.”
귀신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스레 선아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 인다.
“그냥 싸워서는 못 이겨. 일단 방 법을 찾아보자.”
“응.”
선아가 알겠다는 듯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그럼 거실 내다보면서 감시 하고 있어. 나는 방법 좀 고민해 볼 게.”
“알겠어……
선아가 다시 까치발로 가서는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며 귀신이 오는지 감시한다.
일단은 부모님 방 안에서 서성이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나는 재빨리 핸드폰을 열어 아까 확인하지 못했던 경원이의 카톡을 열어 봤다.
역시 선아가 그새 몰래 살펴봤는지 이미 읽힌 흔적이 있는 카톡창.
선아의 뒷모습을 살짝 한 번 살펴 봤지만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빠르게 경원이에게서 온 카톡을 확인했다.
〈안경원 : 부장, 속지 마. 윤선아가 귀신이야.〉
그런 건가.
다시 고개를 들어 선아를 살펴봤다.
문틈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작은 뒷모습.
나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한순간에 많은 선택지가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아빠 서재나 부모님 방의 창문이 베란다와 이어져 있는 것과는 다르게, 내 방의 창문은 바로 바깥이다.
여기서 떨어지면 바로 자살해서 시간을 돌아갈 수 있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차피 시간을 돌려 봤자 바로 조금 전이다.
지금의 체크 포인트는 아마 몇 분 전인 새벽 1시 17분.
일어나자마자 바로 선아가 문을 지 키고 있으니 도망칠 수도 없는 형국이다.
아니, 잠깐만. 이해가 안 돼.
선아가 왜 귀신이야?
처음 연락할 때부터 쭉 같이 있었는데, 어느 틈에?
그게 말이 돼?
나는 카톡을 마저 확인했다.
〈안경원 : 부장, 속지 마. 윤선아가 귀신이야.〉
〈안경원 :라는 경우도 조심해야 해. 공포 영화에서 알고 보니 진짜 범인은 지금껏 같이 도망치던 친구였다,라는 클리셰도 완전 많거든.〉 ※공포 영화 클리셰 : 동료가 꼭 놀래키는 장난 한 번씩 침.※
놀랐잖아, 이 새끼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나머지 카톡을 확인했다.
〈안경원 : 사실 나는 귀신 그 자체보다는, 부장이 사용한 클리셰 능력. 그게 더 신경 쓰여.〉
〈안경원 : 귀신이야 뭐 부장한테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고, 몇 번 죽다 보면 방법을 찾아내겠지만, 그 클리셰 능력은 조심해야 할 것 같아.〉
〈안경원 : 왜냐하면 공포 영화에서 클리셰란 건 보통 주인공에게 불리 한 것들이 많거든.〉
···불리한 것들이 많다고.
그게 무슨 소리지.
〈안경원 : 사망플래그나 주인공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들. 다른 장르의 영화보다 공포 영화에서 압도적으로 많다는 거지.〉
〈안경원 : 예를 들어, ‘내가 확인 해 보고 올 테니 넌 여기서 기다려.’ 같은 대사. 다른 장르에서는 평범한 대사일지라도 공포 영화에서 그 대사가 튀어나온다면 사망플래그야. 그 대사를 뱉은 등장인물은 반 드시 뒤에 죽어.〉
‘···그런 의미인 건가.’
방금 선아는 죽을 뻔한 거구나.
확실히 클리셰란 건 다른 영화에서 도 나왔던 장면들을 스리슬쩍 베껴서 공식처럼 되풀이하는 것.
청춘물에서의 클리셰라면 주인공은 결국 성장한다, 동료는 결국 화해한 다는 식의 내용들이 난무하겠지만.
귀신이 튀어나오는 공포 영화에서의 클리셰라면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해피엔딩보다 끝에 가서 결국 다 뒤지는 배드엔딩이 다른 장르에 비 해 훨씬 많고, 클리셰라는 것들도 주로 놀래키거나 긴박한 상황에 대한 내용들이 많은 것이다.
‘···젠장. 잘못 썼나.’
심지어 퇴치해서 상황 종료가 될 때까지는 취소도 못 한다.
나는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다음 카톡을 읽어 내려갔다.
〈안경원 : 내가 나름대로 정리해 본 공포 영화에서의 클리셰를 쭉 보내 줄 건데, 내 짐작대로 좋은 건 몇 개 없어.〉
〈안경원 : 나는 그 능력을 어떻게 이용해 먹으면 좋을지 전혀 감도 안 오니, 부장이 한번 살펴보며 참고해 봐. 있는 재료를 요리하는 건 부장 전문이잖아. 이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전부야.〉
그 아래로는 녀석이 정리해 준 공포 영화의 클리셰들이 도표처럼 쭉 나열돼 있었다.
“ 으음
※공포 영화 클리셰※
1. 공포 영화 클리셰 : 사건 당일 날 무슨 이유로든 간에 집에 혼자 남겨짐.
2. 공포 영화 클리셰 : 꼭 도망갈 때 열쇠 한 번에 안 꽂힘.
3. 공포 영화 클리셰 : 처음의 놀 래키는 장면은 알고 보니 별거 아 님.
4. 공포 영화 클리셰 : 극초반, 사건을 암시하는 불길한 물건을 발견 함.
5. 공포 영화 클리셰 : 무언가 수 상한 걸 눈치채지만 처음에는 무시 해 버림.
6. 공포 영화 클리셰 : 같이 있으면 문제없을 텐데 꼭 일행들끼리 서로 흩어짐.
7. 공포 영화 클리셰 : 불 안 켜 짐.
8. 공포 영화 클리셰 : 동료가 꼭 놀래키는 장난 한 번씩 침.
9. …….
10. …….
‘시발… 뭐 도움이 될 만한 게 없
네……
그나마 딱 하나 괜찮아 보이는 건.
[26. 한바탕 혼쭐난 후 퇴마사나 무당을 불러서 엑소시즘, 혹은 굿을 해서 힘겹게 퇴치함.]
이거 하나뿐이다.
‘···퇴마사나 무당?’
이런 한밤중에 그런 걸 어디 가서 불러와.
시간이 새벽 1 시인데…….
‘···장화은 선생님의 집안이 무당 집안이라고 했었지……? 그걸로 어떻게든 엮어 볼 수는……
생각하다가 금세 고개를 저었다.
한밤중, 집 안.
시간도 공간도 제한돼 있기에 쓸 수 있는 요소들이 너무 한정적이다.
어떻게든 이리저리 있는 재료들을 연결시켜 보려 했지만, 도저히 이놈의 클리셰를 좋은 방향으로 쓰는 건 답이 없는 문제였다.
‘안 돼. 못 써먹어.’
나는 과감하게 휴대폰을 껐다.
녀석의 말대로 귀신이 튀어나오는 공포 영화에서의 클리셰는 대부분 안 좋은 사건들을 암시하는 것뿐.
어쩔 수 없다고, 우리끼리 해결해 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려던 순간.
선아가 뒤돌아보며 속삭였다.
“준아, 숨어! 문 열고 나왔어!”
재빨리 옷장 문을 열고 옷들 사이로 몸을 숨기는 나.
선아 역시 내 방 침대 밑으로 후 다닥 기어들어가서 숨는다.
소리가 날까 봐 방문은 미처 잠그 지 못한 상태.
어둡고 좁은 옷장 안에서 무릎을 세우고 웅크려 있으니, 곧 거실에서부터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난다.
삭'· · · 人 F삭· · · 삭으 · · 사사삭· · · · · 으 굉장히 좁은 보폭으로 걸어오는 누 군가 마룻바닥을 스치는 소리.
나는 옷장 어둠 속에서 털끝 하나 도 움직이지 못한 채로 긴장하여 뻣 뻣하게 굳어 있다.
곧 귀신이 방 안까지 들어와서 서성인다.
삭'· · · 人 J☆삭9 9 · 삭그 · · 人 J☆삭 으
“아… 아아아"… 끅… 끄윽
숨넘어갈 듯한 신음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는 귀신.
그 소리는 저 위에서부터 들려온다.
천장에 머리를 박고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아… 아아아... 끄으윽… 꺼억 삭- 사삭- 사사삭- 삭-
내 방 책상에서 잠시 멈춰 있는가 싶더니, 곧 소리가 천천히 다시 방 문 쪽으로 이동한다.
다시 나가는 듯하다.
空♬쿵!!!!! ♬』1)짝!!!!!♬ 〉〉 쿵!!!!!! )♬ 짝!!!!!! ♬ )♬
순간, 미친 듯이 최대 음량으로 울려 퍼지는 내 주머니 속의 휴대폰!
손대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스피커 폰으로 켜지더니 엄마가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준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밥은 먹었니!!!!!!!!!!!!!!!!!!!!!!!!!!! !!!!!!!!!!!!!!!!!!!!!!!!!!!!!!!!!!!!!! 아 아아아아아악!⑴!!!! 엄마는 장례식 장에 있어서!!!!! 늦을 것 같구나아 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악! ⑴⑴ ]
※공포 영화 클리셰 : 숨어 있을 때 갑자기 전화 울리고 다급하게 끄려고 해도 눈치 없이 계속 말 걸어 옴.※ “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악
!!!!!!!!!!!!!!!!!!!!!!!!!!!!!!!!!!!!!!!”
순식간에 소리를 듣고 괴성을 지르며 옷장으로 달려오는 귀신!
쿵!!!! 쾅!!!! 쿵!!! 쾅!!!!!
순간 선아가 침대 밑에서부터 기어 나오며 소리 지른다.
“준아! 도망가!”
“ 갸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귀신을 밀치고 거실로 뛰쳐나가는 선아.
귀신도 이내 껑충 뒤돌아서서는 선아를 잡으러 방향을 바꿔 달려 나간다.
쿵! 쾅… 우당탕, 우르르르…….
[갸아아아악.......]
저 멀리 베란다 쪽으로 멀어지는 둘의 소리.
선아가 다급하게 베란다로 도망치며 다시 창문으로, 그리고 부모님 방으로 이동하는 등 어떻게든 따돌리고 있나 보다.
틈 사이로 지켜보던 나도 급히 옷 장 문을 열고 나와 일단 일어서 봤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이 안 떠오른다.
‘씨, X발… 어떻게 하지……
지금 상황에서 그나마 수상한 물건이라고는 부모님 방 화장대에 있던 그 ‘4’ 모양의 토템뿐.
잘은 모르겠지만 그거라도 한번 부 수거나 버려 볼까.
그렇게 판단하고 급히 거실로 나온 나는 재빨리 상황을 살폈다.
쿠당탕! 쾅쾅
“갸아아아악-”
선아가 부모님 방문을 열고 튀어나 왔고, 귀신이 그 뒤를 쫓아 달려 나오다가 거실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우뚝 섰다.
“여기다, 바보야아아!”
선아가 식탁 의자를 들고 귀신 쪽으로 휙 던진다.
그걸 퍽, 맞고 주춤한 귀신은 이내 내게서 눈을 돌리고 선아에게로 다시 달려든다.
“갸아아악-”
“하악, 하아……
다시 급하게 반대쪽 주방 베란다로 도망가는 선아.
그곳은 아빠 서재와 이어져 있는 창문이 있다.
다시 한 바퀴 돌아서 귀신을 따돌 릴 생각인가 보다.
‘지금이다……!’
나는 귀신이 선아를 잡으러 주방 베란다로 쫓아간 사이, 재빨리 부모 님 방으로 들어가 화장대의 서랍을 연다.
그리고 아까의 그 스페이드 모양의 토템을 꺼내 들었다.
“이, 이걸로 어떻게든……!”
사이비 종교에서 뿌리는 저주받은 물건이라 부수면 해결된다는 흐름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일단 있는 힘 껏 화장대 모서리에 퍽퍽 내려쳐 봤다.
“헉,허억. 좀, 진짜……
하지만 토템은 단단한 옥 같은 재 질이라 흠집조차 안 간다.
그리고 아빠 서재에서 귀신을 한 차례 따돌린 선아가 숨을 몰아쉬며 이쪽으로 달려온다.
“주, 준아……!”
“선아야!”
[갸아아아아아악-]
그 뒤에서 손을 쭉 뻗은 채 천장에 머리를 끌며 달려오는 귀신.
나는 이제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토템을 귀신에게 있는 힘껏 던졌다.
“으아아아아! 제발 먹혀라!!”
휘익-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