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열두 번째 괴담 -
공포 영화 클리셰 (8)
쿵쿵쿵쿵쿵쿵-
[갸아아아아아아아악-] 철컥.
[갸아아아…….]
[…….]
[……?] 나는 문의 잠금을 풀었다.
밖에서 문을 부수려고 두드리던 귀 신이 순간 멈칫한다.
키득, 키득.
문밖에서부터 웃기 시작하는 귀신.
끼이익-
문고리가 돌아가고, 머리가 산발인 귀신이 히죽거리며 고개를 들이민다.
키득, 키득.
혹시 내가 포기했다고 생각하는 건 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 쉽새끼야!!” [……!?]
방문을 열다 말고 흠칫하는 귀신.
나는 그대로 놈에게 팔다리를 크게 펼쳐 보였다.
“왜냐하면 이건 공포 영화가 아니라 에로 영화기 때문이다!!”
[……!]
그렇게 외치며 달려나갈 준비를 하는 나는 완전히 알몸의 상태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⑴! ”
덜렁덜렁-
[잠시만요.]
갑자기 공손해진 귀신이 뒤로 물러 서며 두 손을 앞으로 뻗는다.
[진정하세요, 선생님.]
“닥쳐, X바아아알!!!”
다다다다-
전력 질주로 놈에게 달려가는 나!
그대로 당황하는 귀신과 충돌해서 엎어지고 거실 바닥을 구른다.
[우욱……!]
우당탕-
엎어지고 투닥거리며 서로 마룻바 닥을 구른다.
[자, 잠시만……!]
“이 새끼, 성불해! 성불하라고, 빨 리!”
엎치락뒤치락하며 서로 투닥거리는 귀신과 나.
곧 힘에서 이겨 우위를 차지한 귀 신이 배에 올라타서는, 버둥거리는 내 다리를 누르고 손목을 붙잡는다.
[갑자기 뭐예요, 이게! 옷을 다 벗어 던지고는!]
“더, 더워서… 너무 뜨거워서……
[네? 덥기는 뭐가 덥다는 거예요!
이렇게 추운데!]
나는 탁, 그녀의 손을 잡는다.
“널 향한 내 마음이… 너무 뜨거워서.”
[주, 준이 씨……』
천천히 붉어지는 귀신의 얼굴.
이내 고개를 휙 돌린다.
[···이러시면 안 돼요. 저, 귀신이란 말이에요…….]
“그게 뭐가 중요해! 그게 뭐가 중 요하냐고!”
[……!]
“내가... 널 이렇게 원하는데.”
숨겨왔던 나/의~ 〉
※로맨스 클리셰 : 남녀가 부딪혀서 쓰러지면 항상 묘한 포즈와 분위 기가 됨.※
깔고 누워 서로를 바라보는 남녀, 바닥에서 구르느라 거칠어져 있던 숨.
그리고 울려퍼지는 마성의 BGM.
혜이혜에에에에에에~;
이 순간, 클리셰는 이루어졌다.
“준이 씨……
“귀신아……
창백한 얼굴에 홍조를 띠며 내 이 름을 부르는 귀신.
어느새 귀신은 그냥 목이 길고 머리가 헝클어졌을 뿐인, 평범한 여성의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왜 말 못해. 입 없어? 소리 못 질 러? 이 남자가 내 남자다. 이 남자가 내 애인이다! 왜 말을 못하냐 고!”
“내가 이 꼴을 하고서 어떻게 그래
요! 나는 못생긴 귀신일 뿐인데
순간 울려 퍼지는 나의 핸드폰.
少다함께! 포! 린! 세! 스! 오이오 우~ 오오우예~♬
〈©엄마〉
PPL을 위해서 최신 인기곡이 울려 퍼지는 나의 클로버 핸드폰을 우리의 눈동자가 한참을 비춘다.
少여러분들 다함께! 포! 린! 세! 스! 오이오우~♬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상품의 브랜 드가 어필이 됐을 즈음, 귀신에게 깔려 누운 채 전화를 받는 나.
“···여보세요?”
[여보세요? 너 지금 여보세요, 라는 소리가 나와?]
빼액 소리를 지르는 엄마의 목소리.
“아, 엄마! 소리 좀 지르지 마! 이 새벽에 장례식장에 있다는 사람이 무슨 계속 전화를……
[너 귀신이랑 사귄다며! 내가 지금까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이 애미 속을 끝까지 뒤집어 놓을 작정이야?]
“엄마! 그런 거 아니라니깐! 나 정말로 귀신 씨 사랑한다고!”
[사랑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안 돼! 이 결혼 무효야!]
순간, 나를 깔고 앉아 있던 귀신이 탁 핸드폰을 낚아챘다.
“여보세요? 어머님. 말씀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니에요?”
[어머님~? 내가 왜 네 어머님이야!! 누구 맘대로 어머님이야 어머 님이!!]
“저도 300살이 넘게 살아왔고 승천한 것 빼고는 다 해 본 귀신이에 요! 그렇게 어디 가서 무시받고 살 입장은 아닌-”
[근데 이게 어디서 따박따박 말대 꾸야? 너희 집에서는 으~른 앞에 서 그러라고 가르치디!!]
“어머님!! 정말 너무하시네요!!”
[어디서 눈을 그렇게 똥~ 그랗게 뜨고 노려봐? 아이고, 여보! 얘 나 한테 대드는 것 좀 봐요. 세상에, 여보! 여보, 아이고… 아이고…….] 뒷목을 잡고 넘어가시는 듯한 어머니.
거기서 전화는 끊어진다.
띡_
멀뚱멀뚱 서로를 쳐다보는 귀신과 나.
갑자기 귀신이 벌떡 일어서서는 거실 구석의 에어컨으로 다가간다.
“나 당신 어머니랑 통화하니깐 갑 자기 열이 확 뻗쳐. 공기 청정 좀 할 겸 에어컨 좀 틀자.”
클로버 기업에서 만든 에어컨이다.
“요즘에 황사가 얼마나 심한데. 이렇게 에어컨 겸용 공기청정기 기능까지 있으니깐 딱 좋네.” 클로버 스탠드 무풍 에어컨 17형이고, 기본 설치비는 무료인 제품이다.
실내 환경을 감지하고 사용자 패턴을 학습하는 맞춤 케어가 가능하다.
“그렇지, 귀신아? 나도 동감해. 하이패스 방식을 적용한 회오리 바람으로 폭염에도 피부가 찬바람에 닿 지 않으면서도 쾌적한 시원함을 오래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아.”
제작 지원 : 클로버 전자
꾸쥬워마걸~♬
귀신의 머릿결이 에어컨 바람에 흩 날리고, 세상이 세피아 톤으로 물든다.
저 풍경을 다시 보기 위해선 여름 이 와야 되겠지.
여름까지는 살아 있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준아.”
그렇게 한창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클리셰 능력에 빠져 허우적대던 귀 신과 나.
문득 뒤돌아보니 내 방 문지방을 밟고 선아가 서 있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나는 허겁 지겁 허리를 일으켰다.
“선아야, 내가 나오지 말라고 했는 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선아의 머리가 헝클어진 채 눈을 가리고 있어 표정이 전혀 안 보인다.
“.·.선아야?”
“왜 그래?”
곧 에어컨을 PPL 하던 귀신이 슬 금슬금 다가와서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린다.
“저기, 선생님. 우리 일단 자리를 피하는 게 어떨까요.”
“어? 왜?”
“갑자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 서……
목을 배배 꼬으며 긴장된 표정으로 선아를 보는 귀신.
“일단 어디 다른 데 가서 얘기합시다. 지금 이게 대체 전부 뭔 일인 지.”
“어, 어어. 그럼 일단 그러자.”
나는 허둥지둥 일어섰고 그제야 깨 달았다.
※얀데레물 클리셰 : 다른 이성과 묘한 분위기에 있을 때 꼭 질투심 강한 여자 친구에게 발견됨.※
“준아, 거기서 왜 옷 벗고 그 여자 랑 뒹굴고 있었어……?”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눈을 덮어 표정이 보이지 않는 선아가 중얼거린다.
휩쓸려 버린 건가, 클리셰에.
‘이런 미친……
나는 재빨리 몸을 돌려 귀신의 얼굴에 펀치를 날렸다.
퍼억-
“컥……
귀신이 코를 잡으며 어이쿠, 하는 효과음을 내더니 목을 ‘S 자’로 구 부려서는 나에게 화를 낸다.
“갑자기 이게 무슨 짓입니까, 선생님!”
“네가 빨리 퇴치돼야 상황이 마무 리된다고! 일단 성불해 봐, 빨리!!”
“그렇다고 사람을 쳐요!!”
씩씩대며 어이가 없다는 듯 목을 구불거리는 귀신.
그 와중에도 선아는 천천히 나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준아, 너무해… 나는 너를 위해 목숨까지 바쳐 가며 항상 지켜 줬는 데.”
“오, 오해야. 기다려 봐.”
다급히 침을 삼키며 변명하려 해 보지만.
덜렁.
이런 차림으로는 무슨 말을 해도 에바다.
선아가 천천히 커터칼의 날을 세우며 다가온다.
타- 타- 타- 타- 타- 탁.
플라스틱이 튕기는 소리를 내며 완전히 드러난 커터칼의 칼날.
후다닥.
나는 고민할 것 없이 재빨리 아빠 서재로 달려갔다.
‘허억, 허억, 허억, 허억......
탕! 끼익-
그리고 문을 잠그려던 찰나.
“선생님, 저도 좀!!”
귀신이 허겁지겁 달려와서는 머리를 쑤욱 문틈으로 들이민다.
나는 무시한 채 문을 닫으려 했지만 귀신의 목이 걸려서 닫지 못했다.
쾅- 콰앙-
“이런 X발, 목 빼!!”
“아아악, 선생님, 선생님……
문을 쾅쾅 귀신의 목으로 밀어붙이자 녀석이 아파한다.
그 와중에도 뒤에서 커터칼로 벽을 지이익 긁으며 불길한 소리를 내면서 다가오는 선아.
지이이이이익-
“선생님, 제발……
“이런 썅
나는 할 수 없이 문을 열어젖혀 귀신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허둥지둥 방 안으로 들어오는 귀 신.
나는 재빨리 문을 잠구고 놈의 멱 살을 붙잡는다.
“너 뭔데, 갑자기. 응?”
“콜록, 콜록.”
“정체가 뭐야, X발. 왜 갑자기 말 도 잘하고 도망도 다니는데? 아까는 우리 죽이려고 개지랄 떨었잖아?”
“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버리고 가지만 마세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목을 꼬으며 덜덜 떠는 귀신.
나는 어이가 없어서 숨을 내뱉었다.
하긴, 나도 아까의 클리셰에 휘말렸을 때 분위기에 취해 이상한 대사를 내뱉었다.
그건 저 멀리서 계속 전화를 걸어 오는 엄마도 마찬가지고, 지금 문 앞의 이성을 잃어버린 선아도 마찬 가지일 거다.
괴담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력 이상으로, 내가 가진 시스템 능력도 이 세계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마왕과 시스템, 정반대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을 조작하는 둘의 방식은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준아, 왜 문 잠궜어……?” 문 앞에 선 채 나에게 말을 걸어 오는 선아.
“그냥 얘기하려고 그러는 거야. 할 말 있어서 그래……
“진정해, 선아야.”
나는 다급히 침을 삼키며 알몸 차 림으로 문 너머의 선아에게 말을 건 넨다.
“너 지금 클리셰 능력에 휘말려서 그런 거야. 포즈가 묘하긴 했지만 저건 귀신이잖아. 우리가 퇴치해야 할
“나 그런 거 신경 안 써.”
뭐지. 그럼 왜 쫓아오는 거지.
아, 카톡!
그러고 보니 아까 선아가 몰래 내 핸드폰을 훔쳐봤었다.
거기에 하윤이랑 카톡한 게 있어서 그러는 건가.
“하, 하윤이랑 카톡한 거 때문에 그러는 거지? 그, 근데 너도 내용 봤잖아. 그냥 물어볼 거 물어본 거야. 별거 아냐.”
“하윤이 좋아해……?”
“뭐?”
순간 흠칫한 나.
어두운 집 안에 선아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진다.
“거기서 하윤이 이름이 왜 튀어나 와……?”
“그, 그럼……
그럼 뭔데. 왜 쫓아오는 건데. X 발
“하윤이 좋아하는구나……
“아, 아냐. 오해야……
“거짓말.”
철컥.
선아가 잠겨 있는 문의 손잡이를 밖에서 돌린다.
“맨날 힐끔힐끔 쳐다보잖아. 다 알아.”
역시 여자들은 공부 머리와는 별개로 이런 쪽으로는 다들 눈치가 빠르다.
여자로서의 직감이랄까.
‘힐끔거리는 거 알고 있었구나 하지만 그건 나뿐만이 아니고, 우리 반의 모든 남자애가 다 힐끔거리는 중이다.
그냥 예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본능… 정말로 내가 하윤이를 좋아 하고, 사랑에 빠졌고 그런 건 절대 아니다.
“준이도 진짜, 그런 애가 뭐가 좋다고……
지이이이익-
커터칼로 조용히 방문을 긁어 내리는 선아.
“걔는 너 갖고 놀잖아… 자기 필요 할 때만 관심 보이고, 하고 싶을 때 만 대답해 주고. 카톡해도 읽씹하고……
“조, 좋아하는 거 아냐. 왜 그런 오해를……
“남자들은 왜 그래? 얼굴만 예쁘면 다야? 그런 이상한 애한테 정신 못 차려, 다들……
“인하윤 부럽다, 진짜.”
힘없는 선아의 목소리가 가느다랗 게 울려 퍼진다.
“집도 부자인데 얼굴도 예뻐서… 원하는 거 다 가지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고……
한탄이 섞인 듯한 어조.
선아의 이런 목소리는 처음 들어 본다.
“공부도 잘하고, 머리도 좋고, 얼굴 도 예쁘고, 부모님도 잘 만났고… 그런 애가 뭐가 부족해서 하필이면 우리 준이한테 달라붙고… 진짜 여우같아.”
“다른 잘생기고 멋있는 남자애들 천지인데 왜 하필 우리 준이인데, 왜, 왜, 왜.”
지익- 지익- 지익-
커터칼로 방문을 긁으며 감정이 점점 격양돼 가는 듯한 선아.
“왜 내 짝궁이 돼서, 왜 나만의 작은 괴담 동아리에 들어와서, 왜 나 만의 준이를 쫓아다니며 홀리는 거야, 왜, 왜. 뭐가 부족해서 그러는 건데. 정말로 이해가 안 돼… 난 이 해할 수가 없어… 그런 애들은 아마 나같이 못사는 애들한테서 하나씩 뺏어 가는 재미로 사는 것 같아. 너 도 그렇게 생각하지, 준아……?”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힐 끔 옆을 돌아보니 귀신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독순술로 입술을 읽어 보니 괜히 성질 건드리지 말고 빨리 그렇다고 동의해 주라는 내용이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
“정말······?”
“으음”
나도 횡설수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빨리 말을 했다.
“나, 나도 잘생기고 잘나가는 남자 애들 보면 그런 생각해. 우리 반의 반장훈. 키도 크고 운동도 잘하고 전교 1등이잖아. 그, 그런 애들 보면 나도 똑같이 선아 너처럼 느껴. 쟤는 진짜 잘났다, 인생에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겠다 하는 그런 기분……
“준이 너도 나랑 같다니, 기뻐… 역시 우리는 천생연분이야……
처... 천생연분
왜 갑자기 그런 단어가 튀어나오 지
귀신을 힐끔 돌아보니 자기 쳐다보 지 말라며 손을 휘젓는다.
“그럼 너는 이해해 줄 수 있지
……? 소중한 걸 뺏기고 싶지 않은 내 기분……
“그, 그럼~! 이해하지~! 이해하고 말고……
나는 보이지도 않는 문 너머의 선아에게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지~ 그, 그러니깐 옆에 있어 줄게, 선아야! 나 어디 도망 안 가, 알잖아! 세계가 멸망하는데 내가 괴담 동아리 말고 다른 어디에 있겠어!! 그러니깐 진정해, 우린 함 께니깐……
“더 가까이 있고 싶어, 불안해 “뭐, 뭐가 뭐가 불안한데, 제발…….
땅굴 파지 말라고…….
“뭐, 뭐가 그렇게 불안한데, 선아 야……? 응?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노력해 볼게. 말해 볼래 “다른 시간으로 도망갈까 봐, 그게 불안해……
아아아… 제발
또 이 얘기인가…….
방송국 옥상에서 한 번 들었던
“거기 있는 선아가 나랑 같은 선아라는 게 믿기지 않아… 경험한 것 도, 생각한 것도 다른 옛날이잖아. 나는 날마다 더 너를 좋아하는 마음이 커져 가고 있어, 준아… 이제 네 가 없는 내 생활은 상상도 할 수 없어. 그런 네가 과거로 돌아가 버려 지금의 내 기억이 사라진다면… 그 좋아하는 마음이 내게서 그만큼 없어지는 거잖아…… “준이를 좋아하지 않는 윤선아 같은 건 생각만 해도 너무 가슴 아파... 돌아가 버린 과거의 윤선아가 준이를 사랑하지 않는 선택을 할까 봐… 그래서 견딜 수 없어… 이건 내 보잘것없는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소중한 감정이란 말야
“그래서… 그래서……
···잘 이해는 안 되지만, 생각해 보면 그런 건가.
만약, 내가 부원이고 다른 누군가 가 시스템의 선택을 받은 부장이었다면.
그리고 그 녀석이 죽으면 시간이 돌아간다는 걸 매 순간 의식하면서 산다면…….
아마 나 역시도 지금 이 순간의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으로 이런저런 불안감을 느끼며 살게 되지 않을까. 언젠가 봤던 영화 중 10분마다 기억을 잃어버리는 남자의 얘기가 떠 오른다.
어떤 계기로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데, 갑자기 시간이 돌아가며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게 되고, 다시는 그 계기를 마주할 수 없을지 도 모른다.
다른 시간대에서는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새롭게 시작되는 시간대에서는 전혀 쳐다보지 않을 수 도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계기로 누군가를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는데, 갑자기 시간이 돌아가며 마음의 핀트가 안 맞아 버린다면.
새롭게 시작되는 시간대에서 나는 더 이상 그 사람을 전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삶을 살 수도 있는 것이다.
“준이 네가 다른 여자애를 좋아하는 건… 사실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어. 하지만, 만약에… 시간이 돌아 갔을 때 내가 다른 선택을 하게 될 까 봐 그게 너무 두려워… 지금의 이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거나 흐려진다면…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정말 너무 가슴이 아파… 울고만 싶어…… “···선아야.” “그래서 이제 네가 시간을 못 돌리 게 팔다리를 잘라서 우리 집 냉장고에 가둬 놓을 거야… 이제부터 준이 집은 우리 집 냉장고야……
제발.
제발…….
나는 벌거벗은 채 머리를 쥐어뜯었다.
왜 그렇게 되는 건데…….
왜 사고의 흐름이 그렇게 되는 거 냐고…….
제발…….
“선생님……
머리를 싸매고 있는 나를 귀신이 옆에서 안쓰럽다는 듯 쳐다본다.
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어 그런 귀 신의 목을 콱 졸랐다.
“다 너 때문이야, X발!!! 너만 지금 퇴치되면 상황 마무리된다고!!”
“꽤애액.”
귀신!
이놈만 퇴치하면 클리셰 능력도 풀리고, 나는 이 싸이코 스릴러 영화에서 탈출할 수 있다!
“죽어! 죽어!!”
“케엑... 진정하세요, 선생님… 우리 대화로 해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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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처음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