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열두 번째 괴담 -
공포 영화 클리셰 (10)
4일 전, 월요일 오후 동아리방.
이준과 부원들이 마이크래프트 괴담을 해결하며 얻은 포인트의 정산을 마치고 해산하려던 찰나, 동아리의 담당 선생인 화은이 자신의 학생을 붙잡는다.
“혹시 선아도 지금 가야 하니?”
“저요……?”
“뭐 일정 있는 거야?”
“아뇨, 없어요……
“그럼 선생님이랑 잠시 얘기 좀 할 까?”
선아는 조심스레 부장인 이준의 눈 치를 보지만, 그는 괜찮다는 듯 눈 썹을 들어 올린다.
잠시 머뭇거리다 선생님에게 대답 하는 선아.
“네……
“좋아. 그럼 남자들은 빨리 퇴장 해.”
“갑자기 무슨 얘기요? 궁금한데 우리도 가르쳐 주시면 안 돼요?”
궁금해서 물어 오는 남학생들에게 화은은 어디서 챙겨온 건지 회초리를 꺼내서는 탕탕 책상을 두드린다.
“여자만의 얘기야! 남자들은 빨리 사라지도록!”
“예이예이, 알겠습니다~”
가방과 신주머니, 포인트로 얻은 전리품을 들고 느릿느릿 나서는 이 준과 덕훈.
나가는 그들을 향해서 선아는 조그 맣게 인사한다.
“준아, 안녕. 내일 봐……
“응. 나중에 연락할게.”
탁 _
문이 닫히고, 해 질 녘 동아리방에 화은과 둘이 남게 된 선아.
무슨 얘기를 하시려고 그러시나 눈 치를 보지만, 화은은 소파에 앉아 턱을 괸 채 빙그레 웃고만 있을 뿐이다.
어색함을 참지 못한 선아가 슬쩍 시선을 돌리려던 찰나, 화은의 입술 이 열린다.
“너 준이 좋아하지?”
“네······?” 순식간에 달아오르는 선아의 얼굴.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서둘
러 고개를 젓는다.
“아, 아니에요……! 왜 그런 말씀 을”
“아니긴 뭐가. 선아 너만 빼고 다 알걸.”
화끈 달아오른 얼굴로 어쩔 줄 모르는 선아를 화은이 여유롭게 지켜 본다.
“어떻게 생각해?”
갑작스레 날아오는 질문에 시선을 숙인 채 머뭇거리는 선아.
“어, 어떤 걸……
“너랑 준이. 어떻게 생각해?” 갑자기 왜 이 시점에서 이런 걸 물으시는 걸까.
레벨이 오르며 멘토가 찾아온다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선아는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을 떠 올리며 쭈뼛하게 대답했다.
“···그냥, 친구······
“어떤 친구?”
여유로운 태도로 빙그레 웃으며 선아를 쳐다보는 화은.
선아는 잠시 머뭇거린 후 대답했다.
“대단한... 친구......?” “준이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선아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었다.
제일 처음 이준이 괴담에 휘말릴 때부터 줄곧 함께해 온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이준에 대한 첫인상은 자신처럼 빈 틈이 많아 보이는 남학생이었다.
처음 입학식 때 눈앞의 장화은 선생님에게 아픈 척 거짓말을 하고 교실에 앉아 있었을 때.
그리고 갑자기 자신을 불러내 담벼 락 앞에서 망을 보게 할 때.
그때만 해도 뺀질거리는 어수선한 아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래서 장점 없는 자신의 모습과도 동질감을 느껴 편하게만 생각하고 있던 그녀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준은 자기만의 친 구에서 벗어나, 동아리를 만들겠다고 사람을 불러 모으기 시작하더니, 한 명씩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시작 한 것이다.
처음에는 무시하고 깔보던 안경원 도 어느 순간 부장인 이준을 거의 존경하다시피 따르게 됐고.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던 프라이드 높은 자신의 짝꿍인 하윤도 어느 순간부터 이준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게다가 중간고사가 끝나고 알게 된 숨겨져 있던 이준의 진실.
3년을 회귀하고 되돌아와서 세계의 멸망을 막으려고 싸우는 그는…….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여고생일 뿐인 윤선아 자신에게, 이제는 너무나 먼 사람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선생님이 한 가지 제안을 해도 될 까?”
눈치를 보며 고개를 드는 선아.
“어떤······
“선생님이랑 같이 발성 연습 안 해
볼래?”
“발성... 연습요......?”
«응 하
.
여유 만만한 미소를 띠며 선아를 유심히 쳐다보는 화은.
선아는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슬쩍 고개를 돌린다.
“그런 걸 왜……
“알잖아. 왠지.”
“발음 교정도 같이.”
조금 의기소침해진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키는 선아.
스스로가 못났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그녀였지만, 그래도 누군가 자신의 결점을 지적하는 건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었다.
“혹시 기분 나빴어도 오해는 하지 마. 선생님은 네가 마음에 들어서 도와주고 싶어서 그래.”
“제가요……?”
«응 ”
소파에서 일어나 천천히 선아에게로 다가가는 화은.
선아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선생님이 살짝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맞춰 준다.
“해 보자, 선아야. 선생님은 네가 잘됐으면 좋겠어.” “왜요······?”
살짝 새침해진 표정으로 볼을 부풀리는 선아.
“왜 제가 잘됐으면 좋겠는데요 “그야 선생님이니깐.”
진지한 표정으로 눈앞의 조그마한 여학생을 바라보는 화은.
“뒤처지고 느린 학생이 있으면, 달려가서 이끌어 주고 싶은 게 선생님의 마음이야.”
“이런 말 했다고 네가 어디 모자란 학생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지는 말고. 선생님이 무슨 말 하려는 건지 알지?”
결국, 선아는 방어 기제로부터 올 라온 심술을 조금 풀고 고개를 끄덕 인다.
“…네. 알아요……
“그럼 같이 해 보자.”
천천히 선아의 두 손을 잡아 주는 화은.
“선생님 특수아동 지도사 자격증이 랑 이것저것 배운 게 많거든. 믿어 도 돼.”
“이 말 했다고 또 네가 특수아동이라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지는 말고.”
그 말에 선아는 결국 풉, 하고 웃고 만다.
“그런 거 아니에요, 진짜……
“아니야? 아니야? 응?”
화은이 선아의 손을 흔들며 같이 웃어 준다.
조금 풀린 분위기에 다시 평소의 농담조 말투로 돌아가는 그녀.
“선생님은 네가 하윤이보다 더 잘 됐으면 좋겠어. 개인적으로 걔 맘에 안 들어.” “왜요……?”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선아.
그러자 화은이 손으로 부채질하며 너스레 떨 듯 말한다.
“애면 좀 애다운 어리숙한 맛이 있어야지, 걔는 나이도 어린 게 벌써부터 이상한 거나 배워 가지고는. 걔 그렇게 친절하고 예의 바른 거 일부러 선 긋는 거야. 자기 기준 밑의 사람들은 딱 관심 가지지 말라고. 딱 보면 알아.”
우와.
선아는 속으로 놀라고 말았다.
자신의 짝꿍 하윤에게서 느껴지던 사람을 대하는 알 수 없는 자세.
겉으론 친절하다 보니 뭐라 콕 찝어 이상하다고 표현하기 어려웠는 데, 동아리의 담당 선생이신 장화은 선생님은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계 셨던 것이다.
“···저두요.”
선아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치?”
캬하핫 웃으며 선아의 손을 마주 잡는 화은.
“근데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돼? 선생이 학생 뒷담 하는 것 같잖아.”
“네. 말 안 할게요……
“오늘부터 들어가는 특훈도 절대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돼! 알겠지?”
“왜요······?”
궁금한 듯 묻는 선아에게 화은은 쾌활하게 웃으며 대답해 준다.
“원래 이런 자기계발은 하고 있다고 떠벌리고 다니면 괜히 눈치받는 거야. 조용히 혼자 갈고닦다 보면 어느 순간 친구들이 먼저 말 걸어
오는 거지. ‘어라, 선아야. 너 어딘 가 달라진 것 같다?”’
“푸훕……
목소리를 깔고 이준의 음성을 흉내 내는 성대모사에 선아는 웃고 말았다.
“‘우리 선아 목소리가 이렇게 예뻤었나?’ 이렇게 말야.”
“아하하… 그만해요……
동아리방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석 양이, 손을 맞잡은 선아와 화은의 모습을 황금빛으로 비춘다.
[2019년 5월 3일 금요일, 06:23]
[이준 - 2회차]
[괴담 포인트 : 195]
[인과율 : 19%]
나는 잠든 선아를 들어 내 방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춥지 않게 이불을 덮어 주었다.
쌕쌕거리며 아기새 같은 평온한 표정으로 잠든 선아.
나는 선아가 커터칼로 벤 어깨의 상처를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한 번 따끔하게 찔린 상태에서 약간 베인 정도라 상처가 그렇게 깊지는 않았다.
나는 인터넷에서 커터칼에 베였을 때 대처법 같은 걸 검색해서 읽어 본 뒤, 화장실로 가서 어깨의 상처를 샤워기의 흐르는 물에 흘려 씻었다.
그리고 거실로 가서 티브이 옆 수 납장에서 구급상자를 꺼내 간단히 처치했다.
‘파상풍 주사 같은 거 맞으러 가야 하나?’
갸웃거리다 일단 밴드를 붙여서 마무리한 후, 옷을 갈아입고 방바닥에 앉아 선아가 누운 침대로 등을 기대 본다.
침대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는 선아.
“…해 떴네.”
어느새 시멘트 벽이 사라지고 원래의 창문으로 변해 있었고, 푸르스름하게 들어오는 채광.
‘결국, 밤을 지새웠구나.’
나는 하얗게 불태웠다는 감각과 함 께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오늘 학교는 어떡하지……
왠지 지금 자면 제시간에 못 일어 날 기분인데.
분명히 지각할 걸 알지만, 일단 눈을 감고 기대 본다.
학교 같은 사소한 걸 신경 쓰기에는 너무 어마어마한 밤이었다.
괴담 자체는 옛날에 사람이 죽었던 장소에서 나오는 귀신,이라는 케이 스로 흔해 빠진 놈이었지만.
클리셰 발현 능력.
그것 때문에 안 해도 될 고생을 너무 많이 하고 말았다.
‘이건 당분간은 묵혀 둬야겠어.’
쓸모가 없는 건 아니었다, 확실히 A급 능력답게 현실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으니깐.
하지만 도무지 상황이 어디로 튈지 짐작이 안 되는, 내가 함부로 컨트 롤할 수 없는 미친 능력이다.
이런 걸 한 번만 더 썼다가는 기가 다 빨려 죽고 말 거다.
‘5교시 CA 시간은 어떡하지.’
오늘 경원이가 지금까지 사건들로 정리한 클로버 기업과 공백교의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날인데.
그때까지는 안 늦게 일어나야 하는 데.
몇 시간 뒤, 아침 9시쯤 됐을까.
엄마의 호들갑 소리에 놀라 눈을 떠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하신 부모 님이 나를 흔들고 계셨다.
나는 집 안이 난장판인 건 강도가 와서 그렇다고 했고, 경찰이 왔었지만 믿어 주지 않아서 친구(선아)를 불러 밤을 지샜다고 대충 둘러댔다.
“당신네들 경찰 맞습니까!! 제정신 이에요? 아니, 뻔히 집 현관 앞에 서서 강도가 있는 것까지 다 확인하고 눈앞에서 그냥 갔다고!! 정말 미 친 거 아닙니까!!”
[죄, 죄송합니다… 저희도 왜 그랬는지 잘…….]
아버지는 분노하셔서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셨고, 어머니는 학교에 대신 전화를 걸어 주셨다.
사정을 말해 놨다고 오늘은 집에서 쉬어도 된다고 얘기해 주셨지만, 나는 손사래를 치며 점심까지만 쉬고 5교시 CA시간에는 가겠다고 대답했다.
부산에서 상을 당했다던 먼 친척은 증조부의 9촌 손자 사돈의 8촌쯤 되는 사람으로, 우리와는 전혀 상관 없는 사람이었다.
도착하니 식장에서도 왜 왔냐는 분 위기였고, 부모님도 돌이켜 보니 왜 간 건지 몰라서 간단히 할 것만 하고 바로 올라오셨다고 했다.
밤새 전화를 한 것에 대해서는 다 행히 기억하고 계셨는데, 단순히 안 자고 게임하고 있을까 봐 걱정돼서 연락한 정도로만 기억하고 계셨다.
#: * *
정오쯤 되자 선아가 눈을 떴고, 우리 부모님을 마주하고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엄마가 차려 주는 식사를 함께 먹었다.
“선아라고 했니? 준이랑 입학식 때부터 친하게 지냈다고? 허허, 녀석... 개학 첫날부터… 이 아빠는 군대 갔다 와서도 여자한테 말도 먼저 못 거는 쑥맹이었는데……
“선아야, 음식은 입에 좀 맞니? 할머니가 아프시면 혼자 차려 먹느라 고생이겠네. 자주 놀러 와. 항상 반 찬이 남거든, 우리 집은.”
“네, 감사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과한 관심 속에서 선아는 쭈뼛쭈뼛 밥을 먹었고, 우리는 점심이 지날 때쯤 느긋하게 집에서 출발했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늘 걷던 등굣 길에 사람이 하나도 안 보이는 게 왠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기 부
평소라면 학교에 있었을 시간대에 이렇게 밖에 나와 있으니 왠지 모든 게 낯설게만 느껴졌다.
“몸은 괜찮아?”
말없이 도로변을 걷던 중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응? 어, 어… 응……
다른 생각을 하던 중이었는지 어영 부영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선아.
나는 다친 쪽 어깨를 슥 밀며 장 난을 쳐 봤지만, 선아가 별 반응이 없어서 그냥 말없이 따라 걸었다.
선아는 어제 저녁에 우리 집에 오느라 사복 차림이었기에, 나는 낡은 아파트 근처에서 그녀가 교복으로 갈아입고 오는 걸 기다렸다.
곧 CA시간에 참석하기 위해 함께 운동장을 걷는 우리.
공을 차던 축구부 중 몇몇 학생들이 이제야 등교하는, 그것도 남녀 한 쌍으로 같이 오는 우리를 호기심 어린 눈길로 쳐다봤다.
말없이 본관에 도착해서 신발을 벗고, 계단을 올라 5층 동아리방 앞에 도착한 우리.
안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없이도 뭔가 열띠게 토론 중 인가 보다.
드르륵-
문을 열자 테이블에 빙 둘러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던 부원들의 시선 이 우리 쪽으로 쏠리더니, 경원이가 제일 먼저 일어서며 반응해 줬다.
“부장! 내가 전화 엄청 했는데!”
“어어, 미안. 좀 자고 있었어.”
이어서 나를 보며 턱을 치켜드는 덕훈이.
“오이오이, 강도가 들었다고 담임 이 말해 주던데. 잘 무찌르고 온 건 가.”
“아아, 사실은 괴담이었어. 잘 해결 됐어.”
“사스가, 방심할 수 없는 남자 다……
남자 두 명을 지나쳐 가방을 내려 놓으니 장화은 선생님과 진희가 선아를 반겨 준다.
“괜찮아? 다친 데는 없니?”
“네……
“오올~ 둘이 하룻밤 같이 보내고 온 거야?”
“야, 이진희! 선생님 앞에서 그런 말 쓸래!”
그리고 물끄러미 나를 보며 미소 짓는 흰 피부의 하윤이.
“고생했어, 준아.”
“그래, 고마워.”
대답하며 모두를 둘러본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래서, 어디까지 하고 있었어?”
“사실 그냥 놀고 있었다, 부장.”
안경을 치켜세우며 대답하는 경원이.
“맥도리아의 햄버거가 갈수록 크기가 작아지는 이유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어.”
“그래? 어떻게 결론이 났어?”
“외국계 사장이 물러나고 새로 부 임한 한국인 사장 때문인 걸로 막 마무리되려던 찰나야.”
“정말로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천천히 모두를 둘러보았다.
“스포를 좀 하자면, 그 사장은 내 년 1월에 갑자기 사퇴하고 롯데날드 가 업계를 순식간에 치고 올라가.”
“경악할 노릇이네.”
진희가 킬킬대며 웃는다.
“이직을 고려해야겠는걸.”
부원들이 나를 위해 비워 둔 상석에 앉자, 내게로 모두의 시선이 모인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점심의 햇살이 우리 7명을 비추고.
나는 잠시 분위기를 잡은 후 입을 열었다.
“그럼 5월 첫째 주 괴담 동아리의 CA 시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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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타임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