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동아리-118화 (118/130)

118화

막간 - 공백교와 클로버기업 (1)

“먼저는 우리가 저번 주부터 어떤 사건을 겪었는지 쭉 정리해 볼게요.”

나는 화이트보드에 날짜별로 사건 들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달 정도 괴담이 찾아오지 않아서 빈둥거리며 놀았던 날을 제외한 4월의 막바지 중간고사부터.

4월 23일 화요일 - 중간고사 시험 문제 괴담 (장소 : 학교 교실 + 과학실 + 동아리방)

4월 26일 금요일 - 구석놀이 괴담 (장소 : 학교 동아리방)

4월 27일 토요일 - 마이크래프트 괴담 (장소 : 레온 PC방)

5월 1일 수요일 - 김은정 괴담 (장소: 신림동 일대 + 서울역)

5월 2일 목요일 - 사람이 죽었던 집 괴담 (장소: 우리 집)

“사람이 죽었던 집‘?”

경원이가 물었다.

“부장 집에서 옛날에 사람 죽었어?”

“···좀 많이 옛날에. 우리 집이 옛 날에는 산이었다네.”

“참나……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 경원이.

“그런 식으로 치면 사람 안 죽은 공간이 어디 있다고……

“내 말이.”

당하는 입장에서는 황당했지만, 또 그렇게 아주 개연성 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귀신이 자주 나오는 건물이 옛날에는 공동묘지였다더라, 하는 괴담도 세상에는 빈번히 있는 것이다.

그게 바로 마왕이 보내는 괴담의 성가신 부분이었다.

아주 작은 단초라도 불길한 상상으로 이어질 만한 건 무엇이든지 엮어 내서 실체화시켜 버린다.

‘그리고 그건 이상하게도 마왕의 대척점에 있는 시스템의 능력, 그것 과도 분명히 닮았어.’

어젯밤에 진저리 나도록 헤맸던 시스템의 클리셰 능력.

그것 또한 아주 작은 상황이라도 단번에 엮어내서 현실을 바꾸고는 했었다.

마왕과 시스템, 어떤 관련이 있는 지는 모르겠으나 이 둘은 이상하게 도 같은 방식으로 힘을 발휘한다.

현실을 조작하고 인식을 뒤바꾸는 방식으로 말이다.

‘어쩌면 본질은 같은 존재일지도.’

그런 의문을 뒤로하고 나는 각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계속했다.

“이번에는 각 사건들에 얽힌 괴담들의 배후에 누가 연관돼 있는지 꼬 리표를 붙여 볼게.”

먼저 저주받은 중간고사.

4월 23일 화요일 - 중간고사 시험 문제 괴담 (장소 : 학교 교실 + 과학실 + 동아리방) “이건 말할 것도 없이 시작부터 끝까지 학교 안의 세력들이 벌인 일이야. 마왕과는 전혀 상관없지.”

고개를 끄덕이는 부원들.

“다음은 구석놀이 괴담.”

4월 26일 금요일 - 구석놀이 괴담 (장소 : 학교 동아리방)

“이건 마왕이 보낸 거다.”

이번에도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부원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덕훈이가 힐끔 바닥을 내려다보는 게, 지금 우리 밑에 마왕이 묻혀 있다는 사실이 신경 쓰이나 보다.

“다음은 마이크래프트 괴담.”

4월 27일 토요일 - 마이크래프트 괴담 (장소 : 레온 PC방)

“이건 존재 자체는 클로버 기업에서 만들어 놓은 것이지만, 그게 있다는 정보를 수집해온 건 시스템과 경원이. 그 외에도 게임을 하자마자 우리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들고 상황을 계속해서 꼬이게 만든 건, 마왕이 영향력을 발휘한 게 아닐까 싶어.”

“동감한다.”

경원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불법 버전을 하는 누구나 다 그런 현상을 겪었다면 세계는 난리 가 났겠지.”

“맞아. 이미 벌어지고 있던 괴현상 이었지만, 그래도 실제 게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건 낮은 확률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그걸 마왕이 힘을 발휘해 우리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걸로 미루어 보아 마왕이라는 존재는 학교 밑에 묻혀 있지만, 인지를 초월하여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다 알고 능력까지 발휘할 수 있다.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는 종교 속 전지전능한 신처럼.

“다음은 김은정 괴담.”

실제 이름은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친구였던가, 그런 괴담이었지만 이 게 직관적이어서 그렇게 부르고 있다.

5월 1일 수요일 - 김은정 괴담 (장소: 신림동 일대 + 서울역)

“이것도 은정이의 죽음 자체는 학교를 휩쓰는 이상한 세력의 탓이야. 하지만 그걸 6년이나 지나서 현실로 불러내 써먹은 건 마왕이 한 짓.”

그 증거로 은정이를 대안학교로 내 몰았던 그 상담 선생은, 우리가 찾아갔을 때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사실 하나.”

나는 검지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다.

“이상하지만 마왕과 나머지는 한편 이 아니라는 것.”

꿀꺽.

긴장한 표정으로 부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학교 밑에 묻혀 있는 마왕.

교직원 사이에 퍼진 은밀한 종교.

미친 기술력을 지닌 초국가적 대기 업.

이 셋은 서로 같은 편이 아니다.

나는 여기까지 하고 슬슬 내 차례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렇게 각 사건들을 살펴본 바, 우리 말고도 이 세상에는 괴담을 아는 조직이 두 군데 더 있다는 걸 알게 됐어. 그리고 그 두 조직의 프로필에 대해서 경원이가 지금부터 프리젠테이션을 해 줄 거야.”

경원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한 자료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럼 박수로 모시겠습니다.”

짝짝짝짝.

박수치는 부원들을 향해 뭐 그런 걸 다 하냐는 듯 민망하게 웃으며 경원이가 앞으로 나선다.

“멋있다, X발~!”

휘익 휘파람을 부는 진희.

“됐어.”

툭 내뱉은 경원이가 자석으로 준비 해 온 자료들을 쭈뼛쭈뼛하며 화이 트보드에 나란히 붙인다.

[마왕]

[공백교(空 白 敎)]

[클로버 기 업 (Clover Corporation)]

“우리를 둘러싼 괴담과 얽힌 세 존 재. 마왕, 공백교 그리고 클로버 기 업이야.”

경원이가 헛기침을 하며 발표를 준 비한다.

“먼저는 마왕.”

[마왕]

“사실 이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어. 역사랑 다 뒤져 봤는 데, 신림동 일대에 무슨 괴수가 출 현했다는 기록이나 그런 것도 없고, 신경 쓰이는 특이한 사건도 없었어.”

매직펜의 뒷부분을 교편처럼 사용 해서 마왕이라는 글자를 탁탁 두드리는 경원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이 정체불명의 거대 괴수가 3년 뒤 졸업 식 때 부활한다는 점. 그리고 지금은 학교 밑에 묻혀 있다는 것밖에는 몰라.”

“땅 파보면 어떻냐능……

덕훈이가 의견을 얘기한다.

“부활 전인 지금, 잠들어 있을 때 땅 파서 처치하면……

“안에 다이너마이트 같은 거 넣어 가지고……

황당한 얘기였지만 그래도 경원이는 헛기침 후 대답해 줬다.

“보통 하수관 상수관이 지하 4미터까지 묻혀 있거든? 거기까지 파는 것도 엄청 시끄러운 공사야. 이 학교 밑에도 당연히 그런 공사가 있었던 적이 있을 텐데, 아무도 발견 못 한 거 보니 그거보다는 훨씬 더 깊 이 묻혀 있을 거라고 생각돼.”

“그, 그렇냐능……

덕훈이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좋은 아이디어였다고 응원해 줬다.

“한번 시도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아. 물론, 주위 이목이 신경 쓰이니 당장은 못 하고.”

“정말······?”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를 보는 부원 들.

“방학 때 학교가 좀 비어 있을 때, 확인만 해 보고, 시간을 되돌린다는 각오로 파헤쳐 보는 거지.”

돈을 구해서 중장비와 인부를 고용 해서 막무가내로 운동장을 헤집어 본다거나 하는.

“불법인 데다 이목도 너무 많이 끌 다 보니 뒷감당이 안 돼서 당장 해 볼 방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언제 한번 시간을 되돌린다는 가정하에 확인은 해 보고 넘어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재밌겠다……

선아가 수줍게 작은 목소리로 동조 해 줬다.

곧 그 주제에 대한 분위기가 정리 된 것 같자 경원이가 헛기침 후 다음 글자를 가리킨다.

[공백교(空 白 敎)]

“‘빌 공’에 ‘흰 백’자를 써.”

한자를 가리키며 풀이해 주는 녀석.

“우리 학교에 얽혀 있는 비밀스런 세력들. 놈들의 정체야.” 알고 있었던 부원들도, 모르고 있었던 부원들도 긴장한 표정을 짓는다.

“어떻게 알아냈냐면, 이진희의 초등학교 상담 선생님. 그 사람이 김 은정을 보낸 대안학교가 사실은 굉 장히 수상한 곳이라고 했잖아. 거기 서부터 출발해서 자료를 조사해 보니……

종이 몇 개를 더 자석으로 붙이는 경원이.

“그 대안학교의 재단과 여기 우리 낙성고의 재단. 서로 같은 곳이야.”

“ 역시……

침음을 삼키는 부원들.

우리가 지금 다니는 학교, 낙성고는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로 어떤 재 단에게 지원을 받아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그 재단이 김은정의 대안학교와 같은 곳.

“재단의 이름 자체는 무슨 명상센터 이런 식으로 적당히 이름 붙여져 있는데 당연히 위장인 거고. 그 배 후에 누가 있는지 알아보니 재단 관계자들이 싹 다 이쪽 종교인들이더라고.”

탁탁, 공백교라는 단어를 펜으로 치는 경원이.

“그리고 내가 이렇게 바로 알아낼 수 있었던 건… 생각보다 얘네가 딱히 숨길 마음이 없는 것 같았어. 그 냥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게 돼 있더라.”

“ 흐음······

학교의 교직원들 사이로 퍼져 있는 정체불명의 종교.

당연히 꽁꽁 싸매서 비밀에 묻혀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양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체였다는 말인가.

“홈페이지도 있어. 들어가 봐.”

핸드폰을 꺼내서 단톡방에 링크를 걸어 주는 경원이.

〈안경원 : spademind.com〉

선생님이 ‘단톡방?’ 하며 기웃대길래 나는 재빨리 선생님을 톡방에 초대해 드렸다.

“방금 만든 거예요.”

“그래?”

곧 화면에 떠오르는 공백교의 홈페이지.

공백교(空 白 敎)

마음을 비움으로써 얻을 수 있는 행복.

“자기 자신을 완전히 비워 낸 공백의 상태에 도달하면 신께서 오시는 것만이 남습니다.”

- 태상(太上)-

태상.

교주의 이름이다.

그리고, 이자는 2년 뒤 갑자기 대통령에 당선된다.

‘…하긴.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서 거의 국교가 되다시피 공백교가 퍼져 나가니깐, 굳이 음지에서 비밀로 숨길 필요가 없다는 건가.’

그런 거라면 지금 시점에서 공백교 가 자신을 숨기지 않고 멀쩡히 양지에서 활동하는 게 이해가 간다.

무려 교주라는 사람이 차후 대통령까지 노리는 야심가니깐.

진정으로 무서운 건, 그렇게 드러 내 놓고 활동하는데도, 괴담이라든 가 하는 음습한 비밀들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신도들의 내부 결속력이다.

“여기 적혀 있는 태상(太上)은 교주의 이름인데, 부장의 회귀 전 시간대에서 인태상이라는 이름으로 대통령을 했다길래 풀네임으로 검색해 봤지만… 아직까지는 인터넷상 어디에도 딱히 별다른 검색 결과가 안 나와. 이상한 무협지 인물 같은 거 만 뜨고.”

나는 슬쩍 하윤이를 쳐다보았다.

‘인’ 씨.

흔한 성은 아니다.

하윤이는 무표정으로 속눈썹을 내 리깔고는, 핸드폰 화면을 보며 스크 롤을 내리고 있을 뿐이었다.

“공백교, 얘네는 만들어진 지 40년 도 안 된 신흥 종교이기는 한데, 일단 사회 인식을 봤을 때 사이비는 아냐. 물론, 우리 입장에서는 선생들이 괴담도 이용하고 사람도 죽여 대는 꼴을 보았으니 사이비인 게 당연 하겠지만, 겉으로는 되게 멀쩡한 명상 단체야. 봉사도 많이 하고.”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건가.

하지만 선아의 부모님이 이 종교에 빠졌다가 목숨까지 잃으셨다고 들었다.

겉으로 명상을 하든 뭘 하든, 대안 학교 건도 그렇고 절대로 평범한 종교 단체는 아니다.

“일반인들에게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다 해도 그냥 도교 계열이기에 괜히 수상쩍어 보이는 그런 거? 그거 빼고는 없어. 애초에 세력이 정말 작아. 전국에 다 합쳐도 신도 수가 1만 명이 좀 안 될걸.”

“신도 수 1만 명이 적은 거야? 엄 청 많아 보이는데.”

1만 명이면, 한 명이 나한테 100 원씩만 줘도 100만 원인데.

경원이가 혀를 찬다.

“종교치고는 엄청 적은 숫자지. 대한민국의 기독교 인구가 천만 명이 훨씬 넘고, 불교 인구가 약 사백만 명. 그외 조금이라도 이름 들어 본 종교는 한국 안에서 거의 10만 명은 우습게 넘어가는 판국이니깐.”

그런 곳들에 비하면 공백교는 굉장히 세력도 작고, 이름도 거의 안 알려진.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 없는 단체라는 거구나.

‘하지만 그럴 리 없지.’

나는 조만간 형사님을 뵙게 되면 이 종교에 대해서 철저히 한번 파달라고 부탁을 드려 보기로 마음먹었다.

“공백교에 대해서 지금 알 수 있는 건 대충 이 정도. 얘네가 무슨 목적으로 이 학교를 지었는지는 몰라도, 하필이면 마왕이 묻힌 곳 위잖아. 분명히 수상쩍은 비밀이 숨어 있을 거야. 자, 그럼 다음은 클로버 기 업.”

경원이가 다음 글자를 가리킨다.

[클로버 기 업 (Clover Corporation)]

이 기업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다.

아니, 전 세계를 통틀어도 갓난아 기 빼고는 이 회사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구촌을 주름잡는 전무후무한 넘버원 다국적 기업.

미친 기술력을 통해 그야말로 나라를 하나로 묶는 중인, 젊은 천재가 이끌어 가는 초국가적인 기업이니 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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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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