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동아리-121화 (121/130)

121 화

열세 번째 괴담 - 꾸물꾸물 (2)

[2019년 5월 5일 일요일, 21:14]

[이준 - 2회차]

[괴담 포인트 : 195]

[인과율 : 19%]

[속보입니다. 부산 강서구의 한 마늘밭에서 20억 원이 넘는 돈다발이 무더기로 나왔습니다. 인근 도로의 복구 작업을 하던 포크레인 기사가 근처의 흙을 파다 발견하게 되었는 데요. 영화 같은 얘기, 김현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굴착기가 마늘밭을 뒤엎자 검정색 비닐 포대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어, 찢어져, 조심히! 조심히 들어 올려! 돈 들었어, 안 들었어?”]

[포대 안에서 나온 건 5만 원권 묶음 200개. 무려 10억 원입니다. 저 녁 6시 무렵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천 제곱미터의 마늘밭을 뒤져 찾아낸 현금만 현재 27억 원입니다.]

그날, 어린이날 저녁.

나는 가족들과의 외식을 마친 뒤 줄곧 집에 앉아 티브이 뉴스만 확인 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다림 끝에 저녁 이 되자 티비에서 마늘밭에 묻힌 현금을 발견했다는 뉴스가 속보로 흘 러나왔다.

‘내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군.’

과거로 돌아갈 걸 상정하고 사는 사람은 없었기에 정확한 위치 같은 건 까먹고 있었지만, 어린이날이라는 특수한 날짜 때문에 오늘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며 확률을 속인 사기꾼 범죄자가 밭에 감추어 놓은 보화.

먼저 빼내 훔쳐 가도 사회적으로 아무 기록도 남지 않으며, 뒤탈 없고 피해 보는 사람도 없는 완전히 은밀한 거금.

‘피해자라고 해 봐야 불법 도박을 하던 똑같은 범죄자들. 돈을 뺏겼다는 인식조차 못 하고 있을 거야. 게임에 져서 잃었다고만 여기고 있겠지.’ 복권 당첨의 경우에는 형사님이나 화은쌤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받는다고 해도, 결국엔 거금이 남의 수중에 있고 돈을 쓸 때 항상 한 다리 거쳐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는데.

이 마늘밭에 묻힌 돈이라면 안심이다.

내 기억으로는 내일까지 경찰은 저 마늘밭을 수색해서 총 110억 원에 달하는 현금 뭉치를 발견해 낸다.

‘그리고 그 돈은 모조리 국고로 환 수되고.’

♬다함게 포! 린! 세! 스! ♬

空안경원

문득 전화가 걸려오길래 확인해 보니 경원이였다.

띡_

“여보세요?”

[부장! 뉴스 봤어? 저게 부장이 말 했던 그 눈먼 돈 맞지?]

조금 흥분된 듯한 어조의 녀석.

[어떻게 된 거야? 잘 가져온 거 맞 아?]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뉴스를 정독해서 위치를 제대로 확인한 후에, 시간을 되돌려서 가지러 갈 생각이었으니깐.

[부장! 부장?]

대답이 없는 나를 부르던 녀석이 뭔가를 눈치챘는지 순간 멈칫한다.

[···이제부터 가지러 갈 생각이구 나. 확인했으니깐.]

나는 두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맞아.”

[…….]

이럴까 봐 녀석들한테는 제대로 말 해 두지 않았다.

그냥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언질 만 뒀을 뿐.

왜냐하면 시간을 되돌릴 걸 미리 통보한다면, 지금부터 너희가 보낼 이틀은 기억에서 사라질 아무 의미 없는 순간이라는 걸 못 박는 것과

마찬가지니깐.

시한부 인생의 선고.

지금 경원이는 어떤 마음일까.

앞으로 20분 후면 지금의 자신이 잊혀져 버린다.

[···조심히 다녀와, 부장.]

“그래.”

어딘가 주저하는, 갑자기 텐션이 가라앉은 목소리.

하지만 걱정하는 마음은 진짜인 듯 하다.

[나중에 나한테 꼭 말해 주고.]

“···괜찮겠어?”

너가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돌아갔었다는 것까지 다 말해 줘도 괜찮겠냐는 질문이다.

그런 걸 계속 설명해서 인지시켜 줘 봤자 지금의 자신에 대한 혼란만 올 뿐.

나는 될 수 있으면 부원들이 최대 한 그 부분을 깊게 생각하지 않고 일상을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모두가 70년쯤 후에는 자신이 반 드시 늙어 죽을 거란 걸 매 순간 되새기며 살아가지 않듯이, 인생에 서는 웬만하면 무시하며 살아가는 게 마음 편한 주제도 있는 것이다.

[···괜찮아. 말해 줘도 돼. 슬슬 익숙해져야지.]

덤덤해 보이려는 경원이의 말투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모두가 익숙해져야지.]

“고마워.”

[그래…….]

잠시 할 말을 찾던 경원이가 곧 정보를 쏟아낸다.

[5만 원권 지폐 한 장의 무게는 약 1g이야. 그걸로 계산해 보면… 부장 이 얼마나 힘이 센지는 몰라도, 한 번에 가방에 넣어서 들고 다닐 수 있는 금액은 한 10억 원 정도 될 거야.]

10억 원이면 5만 원권 2만 장, 약 20kg 정도의 무게다.

물론, 굉장히 큰 가방을 사서 더 쑤셔 넣고 다니려면 가능은 하겠지만.

내가 대한민국 땅의 완전 끝과 끝을 횡단하는 입장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눈에 띄는 짓을 할 필요는 없다.

가방에 5만 원 지폐 20kg 정도, 10억 원이면 3년을 학생들이 동아리 활동 하는 데는 차고 넘칠 것이다.

[물론, 그건 한 번에 들고 올 수 있는 양일 뿐이고. 마늘밭 현장에서 부장이 다른 땅에다가 경찰도 찾지 못하게 감춰 놓으면 나중에 다시 부 산에 들러서 더 가지고 올 수는 있어.]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거야.”

위험하다.

아무래도 이 돈은 뒤에 범죄 조직이 얽혀 있는 검은 돈이다 보니.

[···역시 그렇지?]

«응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10억 원이면 우리가 3년 동안 펑 펑 쓰며 생활해도 남을 액수야.” 동아리 회비로 무려 10억 원.

어딜 가서 무슨 활동을 하든 마음 대로 펑펑 꺼내 쓰면 된다.

“그 이상은 가져갈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돼. 어디서 어떤 변수가 끼어들지 모르니깐.”

이미 지금으로서도 충분히 위험을 감수하는 상황이다.

마늘밭 근처에 주민들이 누가 살고, 몰래 빼 와도 괜찮은 위치인지 도 직접 가서 둘러보는 수밖에 없다.

[...안 들킬 자신 있어?]

“그 근처는 마을버스만 30분 간격으로 하나 다니는 완전 시골이야. 마늘밭에 묻어 둔 현금의 주인은 현재 다른 사건으로 감옥에 있는 상황이고.”

미래에서는 각종 드라마, 웹툰의 소재로 쓰이기도 할 만큼 유명한 사건이라 나도 대충은 안다.

“이것저것 점검해 봤어. 안 들킬 자신 있어.”

[그래… 부장이 살펴봤으면 문제없겠지. 그럼 가져온 돈은 어디다 보관할 셈이야?]

“비밀.”

[참나…….]

피식 웃는 경원이.

[나 어차피 지금 들어도 잊어먹을 텐데.]

“···그래도. 너도 아는 장소이기는 한데, 왜 거기 숨기는지 이것저것 설명하려면 좀 복잡한 부분이거든.”

[알겠어, 그럼.]

궁금하지만 체념한 듯한 경원이의 목소리.

[부장이 부디 안전한 방법을 생각 해 뒀길 바랄게.]

« 응 ”

[정말로 조심히 다녀와.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나 어제 하루 종일 집에 있었거든. 전화하면 바로 받을걸.]

“알겠어, 필요하면 연락할게.”

[그래, 건투를 빈다.]

“땡큐.”

전화를 끊고 인터넷을 켜서 뉴스 기사를 보며 다시 한번 지도와 위치를 확인한다.

“부산시 강서구……

일단 부산으로는 돼 있는데, 완전 변두리인 게 오히려 김해라고 보는 게 맞을 듯싶다.

도로 복구 작업을 했다는 곳은 낙 동강을 끼고 있는 낙동남로라는 도 로.

“근처에는 녹산중학교, 녹명초등학교……

사진으로 보기에는 진짜 완전 허허 벌판인데 이런 시골 같은 곳에 학교 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지도를 보며 부산, 김해 사이의 강 서구라는 생소한 지명과 난생처음 보는 도로의 이름들을 천천히 살펴 보며 어느 루트로 어떻게 가는 것이 좋을지 살펴봤다.

그리고 뉴스 기사의 영상과 사진을 다시 비교해 보며 마늘밭의 지형과 돈이 묻힌 장소를 확인했다.

‘의외로 거리뷰가 있네.’ 이런 구석구석까지 거리뷰를 깔아 놓는 한국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는 지도의 거리뷰 기능을 이용하여 근처를 둘러보았다.

한쪽에는 강. 그리고 다른 쪽에는 완전히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의 밭이 펼쳐져 있지만, 저 멀리 목표로 하는 마늘밭이 어느 즘에 있다는 게 대충은 짐작이 간다.

‘저쯤이겠네.’

근처에 가건물 몇 개가 보였다.

사진 안에서 불이 켜져 있는걸 보니 안 쓰는 건물은 아닌 듯싶다.

‘애초에 이 좁은 대한민국에 사람 이 살지 않는 곳은 없지.’

그래도 진짜 사람 사는 건물이라기 보다는, 다 창고나 공장 같아 보이는 가건물들.

굳이 신경 쓰이는 걸 꼽자면, 마늘 밭 근처에 다 쓰러져 가는 기와집 하나다.

저 기와집에 사람이 사는지는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 알 것이다.

“후우.”

나는 컴퓨터를 끄고 간단히 외투를 걸쳤다.

5월 5일, 오늘 저녁 6시 무렵 포크 레인 기사가 신고했다는 걸 감안하면…….

‘체크포인트는 어제, 또는 그저께면 딱 맞겠군.’

일단 죽어 봐야 어느 시점에서 살아날지 알 것이다.

나는 거실을 지나쳐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신었다.

“어디 가냐, 준아?”

아버지께서 거실 소파에서 러닝 차 림으로 빼꼼히 뒤돌아보신다.

“잠시 산책 좀 하고 오려고요. 아까 뷔페에서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서.”

“그래. 어린이날 선물 안 사 줬다고 가출하는 건 아니지?”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가출은 아니고, 가볍게 자살 한번 하러 가는 것뿐이다.

“갔다 올게요.”

“그래, 정 선물 갖고 싶으면 말하고.”

현관문을 열며 웃었다.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어린이날 선물 정도는 스스로 준비 해야지.

종류는 현금, 액수는 10억 원 정도 로.

[올라갑니다.]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에서 내린 후, 비상문을 열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름 모를 기계들이 웅웅거리며 돌아가는 어두운 옥상을 가로질러 난 간 앞에 서 본다.

눈에 확 펼쳐지는 우리 아파트 단 지의 저녁.

어두운 가운데, 각 가정에서 저녁을 마무리하며 내뿜는 불빛들이 보인다.

어떤 가족은 빙 둘러앉아 티브이를 보는가 하면, 어떤 집에서는 혼자 게임을 하는 학생도 보인다.

밑을 내려다보자 산책을 하는 사람 들과 어슬렁거리시는 경비 아저씨들이 보이고.

“후우.”

왠지 기분이 센티해진다.

뛰어내리기 전 옥상을 슥 둘러본다.

‘예전에 저 자리쯤에 하윤이가 있었는데.’

사이코패스 테스트 때, 달빛을 받으며 흑발을 흩날리던 하윤이.

현실에 있을 수 없을 법한 이상한 아름다움이 눈에 생생하다.

걔는 진짜 뭐 하는 애일까.

‘어차피 돌아갈 거, 반응이나 봐야 겠다.’

나는 핸드폰을 열어서 하윤이에게 카톡을 하나 보냈다.

〈이준 : 나 지금 자살해서 시간 돌아갈 거다.〉

카톡~♬

〈인하윤 : 응〉

한결같네.

‘그래도 읽씹 안 한 게 어디야.’ 나는 핸드폰을 집어넣고는 후욱, 후욱하고 가슴을 두드렸다.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하면 된다!

그대로 눈을 질끈 감고는 다다다 달려가 휙, 난간을 타고 넘는다.

으으... 으으으윽 r

휘이이이이이익- 지탱할 것 없이 몸이 허공에 붕 떴고, 너무 무서워서 팔다리를 잔뜩 웅크렸다.

그리고 저 아래로 끝없이 떨어지는 감각.

“O}아악... o}o}아악 I”

휘이이이이이익-

귀에 따가울 정도로 바람 소리가 스쳐 가고, 가슴이 철렁 끝없이 내려앉는 감각이 너무 쬐여 온다.

언제끝나언제 끝나.

추락사하기 전 심장마비로 먼저 죽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X발, 떨어지는 동안 아아아악, 미칠 것 같다.

그렇게 이 순간이 끝나기만을 간절히 버티다가 이윽고 어마어마한 충 격과 함께 시야가 팍 끊긴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체크포인트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로딩중…….]

* * *

“준아~ 나와서 좀 도울래?”

방 침대에서 엎드려 핸드폰으로 괴담들을 읽고 있으니 어머니가 부르

신다.

나는 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상태창을 외쳤다.

“상태창.”

파앗-

[2019년 5월 4일 토요일, 11:23]

[이준 - 2회차]

[괴담 포인트 : 195]

[인과율 : 19%]

‘토요일 오전 11시 23분. 하루 전으로 돌아왔다.’

마늘밭의 현금이 포크레인 기사에 의해 발견되는 건 내일 저녁 무렵.

지금 준비해서 기차를 탄다면 오늘 저녁까지는 부산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금을 캐서 밤 동 안 다시 돌아오면 시간은 충분하다.

“준아~ 와서 좀 도우라니깐~”

부모님 방에서 청소를 하고 계시는 엄마가 다시 나를 부르신다.

나는 재빨리 외출용으로 옷을 갈아 입고 집을 나선다.

“엄마, 저 죄송한데 지금 급히 친 구들이 불러서요.”

“으휴, 그래. 가 봐.” 강도가 쳐들어오는 험한 일을 겪은 뒤라 크게 나무라지는 않으시는 부 모님.

나는 빠른 걸음으로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신림역까지 걸어가서 지하철을 탔다.

괴담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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