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동아리-123화 (123/130)

123 화

열세 번째 괴담 - 꾸물꾸물 (4)

강서구 낙동강 변 마늘밭.

그곳에서 잠시 기다리자 곧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했다.

약, 한 시간 정도를 여기서 밥 먹고 핸드폰을 만지며 앉아 있었는데 일단 지나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신중을 기하기 위해 좀 더 어두워 지길 기다리자 곧 해가 저물었다.

‘7시 조금 지났는데도 엄청 어둡 네.’

주위에 가로등이 하나도 없어서 그런 걸까.

해는 이미 수평선 너머로 저물었고, 하늘에 약간 남은 붉은빛을 빼면 주위는 완전히 암흑이었다.

‘시작하자.’

나는 가방에서 접이식 삽을 꺼내서 현금이 묻혀 있는 위치 위에서 자세를 잡았다.

‘후우, 후우.’

그리고 푹, 푹 기계적인 몸짓으로 흙덩이를 퍼서 옆에 쌓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드디어 시작한다.

□X TL

=『, =『·

“후우, 후우.”

살면서 삽질을 해 보는 건 지금이 처음이지만, ‘그냥 이렇게 하면 될 것 같다’라는 이미지대로 푹푹 흙을 열심히 파내 봤다.

그렇게 10분쯤 무릎 정도 높이까지 파헤쳤을 때.

“하아, 하아... 응?”

깡_

삽이 단단한 무언가에 콱, 하고 부 딪쳤다.

서둘러 그 주위를 손으로 쓸어 보자 아니나 다를까, 항아리의 뚜껑 같은 게 보인다.

‘이거다.’

그 주위만 빠르게 흙을 파헤쳐서 뚜껑을 열어 봤다.

묻혀 있는 항아리 안에는 검은 비 닐봉지가 겹겹이 쌓여 있었고, 그걸 다시 손으로 뜯어 보자 5만 원권 지폐 다발이 묶여 있는 돈다발들이 보였다.

노란색의 5만 원권 지폐 다발.

밭에 감추인 보화.

지폐 표면의 코팅된 글씨가 약한 빛을 반사하는 게, 마치 황금빛을 뿜어내는 듯하다.

나는 서둘러 배낭의 지퍼를 열고는 두서없이 돈다발을 쑤셔 넣기 시작 했다.

“하아, 하아.”

흥분된다.

X발, 다 내 거야.

아무한테도 안 줘.

‘아니, 아무한테도 안 주는 건 아니고. 동아리 활동에는 회비로 써야 지.’

그래도 남는 거로는 겸사겸사 나 사고 싶은 것도 좀 사고.

“하아, 하아!”

빠르게, 더 빠르게 쑤셔 담는다.

지금 당장 이 돈다발을 내 가방에 챙겨 넣지 않으면 큰일이 터질 것처 럼.

“X발, X발……

홀린 듯 기계 같은 움직임으로 돈 다발을 가방에 챙겨 넣는다.

“후우, 후우.”

항아리에 있던 돈들을 절반쯤 쑤셔 넣자 어느새 배낭이 다 찼다.

‘여기까지.’

욕심부릴 것 없이 빠르게 챙길 것 만 챙기고 후퇴한다.

나는 뚜껑을 닫고 그 위에 흙을 덮기 시작했다.

팍, 파악-

아까보다는 조금 진정된 속도로.

그렇게 흙을 다 덮고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쿵쾅쿵쾅.

언제부터 이렇게 가슴이 뛰고 있었는지,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돈을 퍼담는 데 열중하느라 이렇게까지 흥분했는지 알지 못했다.

“하아, 하아.”

어두운 마늘밭 위에 서서 주위를 한 번 둘러본다.

허허벌판의 암흑.

아무도 없다.

아무한테도 안 들켰다.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여기는 감시 카메라도, 그 어떤 보안 장치도 주위에 없다.

잠시 기다려 본다.

어깨를 당겨 오는 묵직한 돈의 무게.

지폐가 지갑에 들어 있을 때는 한 없이 가벼워 보였는데, 이렇게 뭉쳐 있으니 상당히 무겁다.

마치 두꺼운 교과서를 한계까지 쑤셔 넣은 느낌.

‘10억쯤이겠지.’

나는 10억 원을 들고 있고, 주위는 조용하다.

가슴은 쿵쾅쿵쾅 뛰는데 아무도 알 지 못한다.

그게 순간 덜컥 겁이 났다.

‘···끝?’

이렇게 끝?

작업에 들어간 지 30분도 안 됐고, 손전등 같은 건 쓸 필요도 없었다.

어두운 마늘밭 위에서 도끼눈을 뜨고 주위를 경계해 본다.

‘아무도 없어?’

막 논밭 위에서 갑자기 쿠네쿠네 귀신같은 거 안 튀어나오나?

저기 처음부터 신경 쓰였던 기와집에서 정신병자가 손에 그라목손 들고 안 뛰쳐나오나?

하지만 가방을 둘러메고 떠날 준비를 마친 순간까지도 그런 일은 벌어 지지 않았다.

‘···X발.’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단어 하나.

‘큰일 났다.’

왜 아무 일도 없지.

X된 거 같은데.

한 번은 프로그래머 사촌 형에게 코딩에 얽힌 비화를 들은 적이 있다.

동료 직원 한 명이 열심히 코딩하며 프로그램을 짜다가, 갑자기 절규 하며 쓰러졌다는 것이다.

이유는 버그 하나 없이 작동이 너무 잘돼서.

‘작동이 잘되면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게 왜 울 일이에요?’

‘생각해 봐. 에러가 떠서 작동이 안 되는 것보다 되는데 왜 되는지 이유를 모르는 게 더 무서운 거야.’

‘···그래요?’

‘네가 직접 자동차를 조립해서 타고 다닌다고 치자. 근데 낑낑대며 조립하고 나니 원래 들어가야 하는 양보다 부품이 많이 남네? 근데 자동차는 잘 굴러가. 그럼 그거 타고 다닐 거야?’

나는 지금 X됐다.

거금 10억 원을 가방에 챙겨 넣었는데 아무 일도 없다.

‘X발, X발.’

바로 달음박질쳐서 마늘밭을 뛰쳐 나갔다.

반쯤 왔을 때 놓고 온 햄버거 포장지가 생각이 나서 다시 돌아가서 챙겼다.

“허억, 허억.”

최대한, 최대한 빨리 여기를 벗어 나자.

아무 일도 없다고?

‘그럴 리 없지.’

지난 두 달간의 고생에서 깨달았다.

보통 이런 경우는 정말로 모든 게 괜찮아서 아무 일도 없는 게 아닌, 내가 모르는.

통수가 얼얼해지는 함정에 엮여 버린 경우인 쪽이 훨씬 가능성 높다.

나는 쓰레기나 발자국 같은 내가 남긴 모든 흔적을 빠르게 정리한 후 그곳을 벗어났다.

왔던 대로 좁은 시멘트 길을 따라 다급하게 걸어 큰 도로로 나온 후, 마주 오는 마을버스를 탔다.

“어서 오세요.”

느긋하게 인사하는 버스 기사를 째려보며 교통카드를 찍었다.

‘내 돈은 아무도 못 뺏어가.’

여차하면 바로 내릴 생각으로 자리 가 널널함에도 앉지 않고 출입문에 섰다.

창가 쪽 아줌마 한 분이 심심한지 물끄러미 나를 본다.

‘뭘 봐.’

시한폭탄이라도 안고 가듯 날이 선 기분.

누군가 살짝 터치하면 바로 도망갈 수 있게 온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 상태다.

[이번 정류장은 하단, 하단역입니다.]

버스에서 내려서 바로 지하철로 갈 아탔다.

여기선 서 있는 게 더 눈에 띄어서 좌석에 앉았지만 그래도 가방은 내려놓지 않았다.

드르륵-

갑자기 옆 칸에서 장애인 흉내를 내는 구걸꾼이 절뚝거리며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승객 여러분… 저한 테는 7살난 딸이 있는데 백혈병을

“돈 없어요.”

차갑게 대답 후 나는 재빨리 옆 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날이 선 채 주위를 경계하며 30분쯤 앉아 있자 부산역에 도착했다.

도둑이, 강도가, 귀신이, 괴물이 쫓아올세라 내리자마자 지상으로 올라 가 후다닥 기차역으로 들어갔다.

“서울역 가는 KTX 열차 하나요.”

“59,800원입니다.”

지갑을 꺼내려다 문득 돈이 부족한 걸 깨달았다.

“잠시만요.”

돌아서서 성큼성큼 사람들을 지나 쳐 화장실로 걸어갔다.

그리고 대변기 칸 안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가방에서 5만 원권 몇 장을 꺼내 지갑에 넣었다.

문을 열고 나와 다시 직원에게로 걸어가 표를 샀다.

“여기요.”

“네~ 여기 있습니다.”

“아, 죄송한데 한 장 더 살게요. 바로 옆자리로요.”

“네, 잠시만요.”

누군가 옆에 앉으면 가는 내내 신경 쓰이겠지.

그렇게 승차권 두 장을 들고 계단을 내려가 선로에 섰다.

마침 바로 들어오는 KTX 기차.

문이 열리자마자 안으로 들어섰고, 서둘러 내 자리를 찾아서 좌석에 앉는다.

표를 두 장 샀기에 옆자리는 비어 있지만, 굳이 가방을 좌석 밑 다리 사이로 감췄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해 보니 이제 저녁 8시 반.

서울에 도착하면 11시 조금 넘긴 시간일 거다.

‘ 빠르다.’

빠르게 다 끝냈다.

점심때 집에서 출발했었으니 돌아 가면 정확히 반나절 만에 해치운 셈.

이제 남은 건 이대로 기차가 서울까지 도착하기만을 얌전히 기다리는 것뿐.

푸쉬익-

곧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기차의 문이 닫히고, KTX는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이내 속도가 붙자 빠르게 스쳐 지 나가는 바깥의 풍경.

‘잘 있어라, 부산.’

나는 그제야 마음을 조금 놓았다.

게: #: #:

“후우우……

어느덧 부산을 지나쳐 울산마저 벗 어나 이젠 완전히 건물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산중을 하염없이 달리는 밤 기차.

승객들도 다들 자는지 조용하다.

괜히 나 혼자 긴장하고 있었던 걸 까.

‘일이 너무 잘 풀려서?’

피식, 하고 자조 섞인 웃음을 내뱉었다.

‘이제 그렇게 안 살아도 되는 건 데.’

막 긴장에 떨면서 무슨 일 터지는 거 아닌가 안절부절못하며 그렇게 안 살아도 된다.

‘나한테는 죽어도 시간이 돌아가는 완전 개사기 능력이 있잖아.’

그냥 이거 믿고 좀 더 대범하게 살아도 되는 거 아닐까?

‘애초에 이런 치트 같은 능력을 가 지고 쫌생이처럼 빌빌대는 게 이상 한 거겠지.’

10억을 한 번에 챙겨 오는 수준의 대담한 능력의 활용!

‘앞으로는 좀 이렇게 대범하게, 훅 훅 치고 나가 보자.’ 그동안 사건이 굉장히 많이 일어났던 것 같지만.

사실 돌이켜 보면, 정작 중요한 마왕을 무찌르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갈피도 잡지 못한 상황.

‘기껏해야 교단과 기업이 수상해 보인다는 것만 알아낸 게 다지.’

지금부터는 죽기밖에 더하겠냐는 각오로, 이렇게 팍팍 진도를 나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 후후······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준 병신아, 큰일 나기는 뭐가 큰일 났다는 거야. 아무 일도 없구 만.’

아무 일도 없구만. 아무 일도 없구 만. 아무 일도 없구만…….

‘그래, 이거지!’

이게 맞는 거지!

마왕이 또 어느 타이밍에 훅 치고 들어올지는 몰라도, 까짓거 한 번 당해 준 후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될 일이다.

앞으로 한 시간만 있으면 기차는 서울에 도착할 거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우리의 보화를 숨 길 것이다.

‘그 누구도 손댈 수 없고 오로지 나만이 관리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아무도 못 훔쳐 가며, 아무도 눈독 못 들이는 나만의 금고.

그건 학교 동아리방에 있다.

나는 서울역에서 내리자마자 학교로 택시를 타고 이동할 계획이다.

‘지금 시간이면 수위가 있겠네.’

일반적으로 고등학교는 낮, 밤 교대 근무로 경비를 2인 1조로 돌린다.

한 명은 낮 시간에 근무하는 배움터 지킴이라고도 불리는 학교 보안 관.

‘입학식 때 입구 막으며 개지랄했던 양반이지.’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야간에 근무 하는 수위 아저씨.

이쪽은 있다는 것만 알고 아직 얼굴은 본 적 없다.

‘나는 아직 야자를 안 하다 보니 늦게까지 학교에 있을 일이 없었으 니깐.’

엄밀히 따지자면 두 분은 하는 일도 처우도 조금 다르기는 한데, 우리는 그냥 뭉뚱그려서 경비 아저씨라고 부르고 있다.

‘지금은 밤이니깐 야간에 근무하는 수위 아저씨가 지키고 계실 테고.’

물론, 이 돈 가방을 든 채 대놓고 정문의 경비실을 지나칠 생각은 없다.

그 경비들도 공백교와 한패일지 모르니 노출은 최대한 피할 생각.

‘전에 웃는 여자가 매점 옆 담벼락을 넘어 안으로 들어왔었지.’

귀신이 애용한 루트라면, 나도 사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그때 안 들킨 걸로 보아 그쪽은 CCTV 같은 게 없는 모양.

따라하면 충분히 안 들키고 학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만약 들켜도 뭐, 내 학교에 내가 가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문제 되는 건 없다.

그렇게 5층 동아리방으로 잠입하는 데 성공하면, 나는 동아리의 레벨을 올려서 공간 확장 기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것이다.

‘그걸 위해서 아직 포인트를 엄한 데 쓰지 않고 아껴 두고 있었지.’

처음에는 포인트를 괴담 수집력에 투자할까 생각했지만, 문득 마늘밭 사건이 떠오르며 지금의 아이디어에 더 우선순위를 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동아리방을 업그레이 드하는 이유는-’

“실례하겠습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통로를 걸 어오던 단정한 미모의 승무원 누나 가 나를 부른다.

“표 검사 중이라서 그런데, 잠시 기차표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아아, 네네.”

나는 허둥지둥 주머니에서 기차표를 꺼내 승무원 누나에게 건네 드렸다.

연한 핑크색 매니큐어를 바른 손가 락으로 부드럽게 받아 드는 승무원.

이내 손에 든 기계 단말기와 내 기차표를 번갈아 확인하더니, 조금 곤란하다는 듯 눈썹을 일자로 좁히신다.

“죄송한데, 이 자리는 다른 승객분 자리인데……

“아… 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나에게 승무원 누나가 미안하다는 듯 원래도 큰 눈을 강아지처럼 뜬다.

“저희 쪽 직원이 실수로 표를 중복으로 발권해 드렸나 봐요. 어떡하죠‘?”

“아, 그런……

“죄송한데 저기 다른 자리로 안내 해 드려도 괜찮으실까요?”

“네네, 상관없어요.”

“ 이쪽으로……

단정하고 정돈된 몸짓으로 자기를 따라오라는 듯 손짓하는 승무원.

나는 돈다발이 든 가방을 품에 안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돈을 뺏으려는 건 아니겠지?’

겨우 마음이 진정돼 가던 찰나였는 데, 다시 살며시 피어오르는 불안감.

남자들을 설레게 하는 선망의 대상, 풀메이크업 유니폼을 입은 쪽머 리의 예쁜 승무원 누나도 지금은 내 돈을 훔쳐 가려는 의심의 대상에 불 과할 뿐이었다.

‘아냐, 너무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자.’

이 누님이 언제 어떻게 나를 봤다고 돈을 뺏으려 들겠는가.

그런 걸 의식하면 지나치게 수상해 보일 뿐이다.

‘지금 돈 가방을 안고 있는 자세도 그래. 대놓고 엄청 중요한 물건이라는 인상을 풍기잖아.’

나는 누가 낚아챌까 봐 경계하며 품에 안고 있던 돈 가방을 살며시 내리고, 한 손으로 좀 더 자연스러운 자세로 바꿔 들었다.

그러면서도 눈동자는 빠르게 객실 구석구석을 살피며, 승무원 누나의 실크 유니폼을 쫓아 따라간다.

이윽고 칸을 벗어나 객차와 객차 사이의 중간 통로에 들어선 우리.

승무원 누나가 예쁜 미소를 지으며 여자 화장실의 문을 연다.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괴담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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