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동아리-126화 (126/130)

126화

열세 번째 괴담 - 꾸물꾸물 (7)

[2019년 5월 4일 토요일, 22:03]

[이준 - 2회차]

[괴담 포인트 : 195]

[인과율 : 19%]

“실례하겠습니다.”

막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드니, 단 정한 미모의 승무원 누나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표 검사 중이라서 그런데, 잠시 기차표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멍하니 승무원의 얼굴을 보던 나.

나는 천천히 주머니에서 기차표를 꺼내 건네주었다.

연한 핑크색 매니큐어를 바른 손가 락으로 부드럽게 받아 드는 승무원.

이내 손에 든 기계 단말기와 내 기차표를 번갈아 확인하더니, 조금 곤란하다는 듯 눈썹을 일자로 좁히신다.

“죄송한데 이 자리는 다른 승객분

자리인데

“저희 쪽 직원이 실수로 표를 중복 으로 발권해 드렸나 봐요. 죄송한데 저기 다른 자리로 안내해 드려도 괜 찮으실까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슥, 일어서 자 자기를 따라오라는 듯 손짓하는 승무원.

“이쪽으로……

따라가는 대신 자리에 선 채로 객실 내를 천천히 둘러본다.

창밖으로는 어두운 산만 보이는 밤 기차.

주황색 조명 아래 조용한 객실 내의 승객들은 저마다 졸거나 잡지를 읽는 등 소리 없이 앉아 있다.

“고객님?”

내가 따라오지 않자 다시 나를 부 르는 승무원.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잠시만요.”

천천히 방금 전의 일을 생각해 본다.

괴담에 의해 미쳐 난동을 부렸던 기억들.

“ 이쪽으로-”

“급한 전화 하나만 하고 갈게요.”

“아, 네……

머뭇거리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 이는 승무원.

나는 핸드폰을 꺼내 경원이에게 전 화를 걸었다.

짧은 신호음이 울리고.

[여보세요? 부장?]

“어, 경원아. 자는데 깨운 건 아니 지?”

[아니, 컴퓨터하고 있었다. 왜?]

“쿠네쿠네 괴담에 엮였거든.”

흠칫하고 숨을 들이켜는 경원이.

동시에 내 앞의 승무원도 표정이 굳는다.

“이야기의 가장 원형이 되는 버전이랑 관련 자료 같은 거. 바로 요약해서 카톡으로 보내 줘.”

[아, 알겠어. 다른 건-]

“그거면 돼. 최대한 빨리 부탁할 게.”

띡_

대답을 듣기도 전에 통화를 끊었다.

물론 내가 인터넷으로 찾아봐도 되지만, 일분일초가 아까운 상황.

괴담의 지식적인 부분은 경원이에게 맡기고,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기로 했다.

바로 이 기차 안을 탐색하는 것.

‘지금 내 앞의 이 승무원도 단순한 감염자에 불과해.’

지금 내가 있는 객실은 12호차. 그 리고 이 KTX는 대략 18호차까지 있다.

감염이 시작된 게 여기보다 뒤의 객실이란 걸 상정한다면, 이번 시간 대에서의 목표는 이 기차의 제일 뒷 자리까지 도달해서 감염의 근원지를 조사하는 것.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돈 가방을 의자 위에 내려놓았다.

다들 괴담에 씌였을 뿐, 내 돈을 노리러 온 건 아니었다.

여기서는 빈손으로 활동하는 게 인파를 뚫는 데 용이할 것이다.

“저기요, 고객님!”

그대로 통로를 막고 있는 승무원의 어깨를 밀치고 복도로 나아가자 그녀가 내 팔을 붙잡는다.

“어디 가세요! 고객님!”

“뒤에 좀 확인할 게 있어서요.”

나는 강하게 뿌리치고 나아갔다.

그대로 성큼성큼 걸어서 다음 객실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13 호차]

웅성웅성

‘젠장……

전 시간대처럼 격렬하게는 아니지만, 역시 기차의 뒷부분에서는 이미 감염이 조용하게 진행 중이었다.

같이 탄 친구의 눈앞에서 최면을 걸 듯 손가락을 마구 구불거리는 여학생부터, 바로 내 눈앞 좌석에서 열렬하게 키스 중인 커플들.

입안에서는 서로의 혀가 격렬하게 꾸물거리는 중일 것이다.

그래도 몇몇은 정상인지 조용히 핸 드폰을 만지거나 하는 승객들이 보 인다.

‘기본적으로는 조용하게… 은밀하 게 감염시키려는 건가.’

승무원이 나를 화장실로 끌고 갔던 것처럼.

전 시간에도 내가 돈을 뿌렸던 것 만 아니라면, 감염이 전파되는 시간 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을 것이다.

나는 발작을 일으키듯 몇몇 꿈틀거 리는 승객들을 최대한 보지 않고 지 나쳐 다음 객실로 향했다.

[14호차] 이곳은 상황이 좀 더 심각했다.

사람 몇몇이 서로 마구 엉켜서 조 용히 키득거리는가 하면, 보지 않으 려고 눈을 돌리는 승객들을 감염자 들이 설득하는 중이었다.

“여보, 이것 좀 보라니깐요? 엄청 이상하지 않아요?”

“그만둬, 좀. 보고 있으니 머리 아프다고 했잖아.”

내가 돈을 사용해서 모두의 이목을 끌어모았던 것과는 반대로, 마구잡 이로 이루어지는 이곳의 전염에 이 상한 걸 느낀 승객들이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시선을 피하거나 하는 경 우도 많았다.

여기저기서 조용한 소란이 일고 있었고, 몇몇 정상인 사람들은 왜 이 리 수군대냐며 불평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곳도 성큼성큼 지나쳐서 다음 객실로 향했다.

[15 호차]

13, 14호차가 아직은 은밀하게 감 염이 전파되는 중이었다면, 15호차 부터는 상황이 심각했다.

“자, 다들 여길 보는 겁니다.”

“우와아… 우와아앗......

벌거벗은 중년의 아저씨 몇 명이 마구 사람들의 시선을 끌며 스트립 댄스를 추고 있었고, 승객들은 황홀 하다는 표정으로 그것을 정신없이 보고 있었다.

‘ 젠장.’

나는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묵 묵히 빠른 걸음으로 나체의 아저씨 들을 밀치며 다음 통로로 향했다.

[16 호차]

“발가락부터 무릎, 골반에서 어깨 관절까지. 하나하나 뒤틀리는 게 되게 기분 좋지 않아?”

“이익… 이, 이이익……

드디어.

여기서부터는 정상인은 거의 없이 서서히 광란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어때? 이 세상에서 꾸물거리는 게 최고지?”

“어억, 억… 억, 우왓.”

사람 네 명이 바닥에 쓰러진 채로 얽히고설켜 뼈가 꺾일 때까지 서로의 관절을 비틀어 주는가 하면.

겨드랑이에 손가락을 넣고 구불거 려 주는 엄마의 손길에, 황홀경을 주체하지 못하고 마구 몸을 비비 꼬는 소년도 있었다.

‘ 젠장.’

통로를 가로막고 있는 바닥의 네 남녀를 건너뛰어 지나간다.

O TZ rz O = I三

—I——r=『. —I~〒=『•

관절을 돌리고 꺾어 꽈배기의 형상 이 된 남성은 오히려 침을 흘리며 기쁜 얼굴.

그대로 묵묵히 바닥만을 보며 성큼 성큼 걷던 찰나, 초등학생쯤 돼 보 이는 남자애 한 명이 당당한 미소를 지으며 불쑥 내 앞을 막아선다.

“형, 내가 보고 있으면 기분 좋아 지는 거 보여 줄까? 막 어지럽고,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데.”

“비켜, X발!”

“아악서”

바로 팔꿈치로 밀치고 달려가는 나.

그대로 통로 문을 열고 다음 호차로 들어간다.

[17 호차]

그곳은 더했다.

어떻게든 시선을 끌어서 꾸물거리는 몸짓을 보게 하기 위해 마구 옷을 벗어 던지는 사람들.

몇몇은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제압 한 채 앞에서 골반을 들이밀며 춤을 추고 있었다.

‘이 다음 호차가 아마도 이 열차의 제일 마지막……

거기서 뭔가 힌트라도 찾을 수 있 다면 좋을 텐데.

다시 성큼성큼 바닥만 보며 지나가 려던 찰나.

“어이, 학생.”

옆에서 누군가 덥석 내 손을 잡는다.

“미안한데 이 할애비 꾸물거리는 것 좀 잠시 봐 주겠나……? 내가 힘이 없어서이……

마치 무거우니 짐을 들어 달라는 듯한 어조의 말투.

나는 곧바로 뿌리치고 달려 나갔지만, 바로 양옆의 좌석에서 누군가 다리 네 개를 쭉 뻗어서 내 허리를 강하게 움켜잡는다.

“잡았다!”

내 양옆에서 킬킬거리며 웃는 짧은 바지의 대학생 누나 두 명.

매끈한 다리 네 개가 순식간에 허벅지를 휘감고, 배꼽을 누르고, 목과 어깨를 감아 움직이지 못하게 엮는다.

그대로 왼편의 좀 더 짓궂은 표정을 짓는 쪽의 여자가 왼쪽 다리를 쭉 뻗고는 눈앞에서 마구 발가락을 꿈틀거린다.

“이거 좀 볼래? 누나 발가락 엄청 이상하게 움직이지 않아?”

“X발, 이거 놔……!”

“응? 빨리. 이게 네가 평생 찾아 헤맨 거야.”

발꿈치로는 내 뺨을 꾸욱 미는 채로, 눈앞에서 발가락을 요염하게 꿈틀대는 여성.

다른 쪽에서 강하게 내 가슴을 졸라맨 누나가 웃기다는 듯 마구 깔깔 거린다.

“그거 잘 봐, 그 안에 인생의 진리가 담겨 있으니깐!”

입술을 꾸욱 눌러 오는 발바닥.

풍기는 아찔한 냄새.

그리고 눈앞에서 사람을 속일 듯 현란하게 움직이는 발가락.

순간 그 꿈틀거리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황홀경 속으로 다시 한번 푹 빠지며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유혹을 이겨 낸 나는 곧바로 두 눈을 내리깔고 시스템의 메인 메뉴를 열었다.

‘상태창. 메인 메뉴.’

파앗-

여인의 발바닥 밑에서 작게 떠오르는 상태창.

« 메인화면〉〉

[2019년 5월 4일 토요일, 22: 16]

[이준 — 2회 차]

[괴담 포인트 : 195]

[인과율 : 19%]

상태창

동아리관리

통계

설정

“어때? 어때?”

마구 꺄하핫 웃으면서 발가락을 과 시하는 여성.

“보라고, 보라고오〜!”

눈가를 마구 고운 발로 꾹꾹 누른다.

나는 다리에 휘감겨 휘청거리면서 도 묵묵히 4번, 설정을 고갯짓으로 클릭했다.

‘4번. 설정.’

파앗-

〈〈설정〉〉

[그래픽 옵션]

[오디오 옵션]

[컨트롤 옵션]

아마도 앞으로 더 갈수록 이런 꾸 물거림의 홀림은 더 심해질 터.

예전에 한 번 써먹었던, 이럴 때 아주 좋은 방법이 하나 있다.

‘그래픽 옵션.’

나는 그래픽 옵션을 열고 화면의 해상도를 끝까지 낮추어 버렸다.

사아악-

순식간에 블러가 낀 듯 흐릿해지는 눈앞의 시야.

마치 시력이 엄청나게 안 좋은 사 람이 안경을 벗은 듯한 느낌이다.

“빨리, 어떤 기분이야? 막 어지럽 지 않아?”

“•••치워요.”

드디어 시야가 확보된 나는 눈을 뜬 채로, 나를 강하게 졸라매고 있는 두 여성의 다리를 잡았다.

“꺄아악.”

그대로 발을 하나하나 낑낑대며 풀어 버리고, 허리를 비틀며 속박에서 벗어난 나는 다시 성큼성큼 앞으로 전진한다.

확실히 이 상태에서는 꾸물거리는 사람들의 움직임도 그저 빛이 뿌옇 게 번진 것으로밖에는 안 보였다.

괴담 속에서도 홀린 남자는 망원경 으로 확실하게 봤다고 적혀 있었다.

반대로 주인공은 멀리서 흐릿하게 만 봤기에 걸리지 않았고.

‘딱 시야 구분만 될 정도로 흐릿하 게 화면의 해상도를 낮추면 문제없다.’

나는 앞에서 서로의 목을 꺾어 주며 교성을 지르는 남녀를 지나쳐 다음 객실로 향했다.

‘드디어 이 열차의 마지막 객실.’

[18 호차]

“와하하… 와하하하하••••••

“미쳤어! 왜 이런 걸 지금까지 몰 랐을까!”

“더 꾸물거려 줘! 제발! 제발 더 꾸물거려 줘! 멈추지 마!”

“아아아아아아악! 나 정신이 어디로 가는 것 같아! 뭔가 깨달아 버릴 것만 같아! 그거 계속해! 그거 계속 해!”

“꾸물꾸물〜 꾸물꾸물꾸물〜”

이 열차의 마지막 객실, 18호차는 완전히 광란의 도가니였다.

‘역시 여기다.’

제정신인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것 같고, 사람들의 광기도 가장 심하다.

꾸물거리는 미친 바이러스는 이곳에서부터 시작된 게 분명하다.

나는 객실 내부로 들어서기 전, 잠 시 통로의 화장실로 들어가 시야를 원상 복구시킨 뒤 휴대폰으로 경원이가 보낸 카톡을 확인했다.

〈안경원 : 부장, 일단은 대충 요약 해 봤는데 이 중에 도움이 될 만한 게 있었으면 좋겠다!〉

쿠네쿠네 (〈 怒〈h)

일본에서 건너온 괴담이다.

‘꾸불꾸불, 꾸물꾸물’이라는 뜻으로 시골의 논밭에서 주로 출몰한다고 한다.

주로 밭의 저 멀리에서 구불대는 흰 형체로 일컬어지는데, 사람이 어떻게 묘사할 수 없을 정도로 기묘한 움직임을 보인다고 한다. 그 움직임에 호기심을 느끼고 저게 뭔가 싶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곧 그 정체를 깨닫게 되고 미쳐 버린다 고 한다.

쿠네쿠네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과 정은 인지하는 즉시 이루어지므로, 시골에서 이러한 꾸불거리는 흰 형 체를 본다면 바로 눈을 돌리고 무시 한 채 가던 길을 가는 것이 좋다.

- 시야에 들어온 것만으로는 피해 가 없음. 그 정체를 완전히 인식하 고 이해해야만 미쳐 버림.

- 이야기의 버전마다 희다는 표현 도 있고, 까맣다는 표현도 있는데 공통된 점은 마구 꾸물거리는 기묘 한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

- 출현 장소는 주로 논밭이기는 한데, 이야기에 따라 바다에서 보았 다는 얘기도 있고 도시의 옥상에서 보았다는 버전도 있음.

- 결말은 항상 한번 인식하고 이 해해 버리면 다시는 정상으로 돌아 올 수 없다는 내용.

* * *

‘대충 이 정도인가……

좁은 KTX 화장실에 앉아서 가만 히 상황을 정리해 본다.

‘이야기대로라면 쿠네쿠네를 보면 미쳐 버리는데… 그게 어디에 출몰 했냐가 의문이야. 여긴 논밭이 아니 고 달리는 기차 안이니깐.’

괴담에서는 논밭이나 바다에서 출 현한다고 적혀 있다.

‘혹시 창밖으로 본 건가……?’

창밖의 밤 풍경을 내다보던 승객들 이 우연히 쿠네쿠네를 보고 미쳐 버 려서 전파하고 다니는 거라고 생각 해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곧 고개를 저었다.

‘창밖은 아냐.’

만약 창밖에서부터 쿠네쿠네가 출

몰한 거였다면 기차 안의 감염은 동 시다발적으로 일어났어야 한다.

18호차의 승객이든 1호차의 승객 이든 위치와 상관없이 밤 풍경을 내 다보던 승객들은 모두 영향을 받았 어야 하는 건데, 지금 기차 안을 역주행하며 살펴본 바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객실을 실제로 다니며 본 바로는 갈수록 전염의 농도가 짙어지는 게, 최초의 감염지는 확실히 여기, 18호 차 객실이야.’

그 말은, 쿠네쿠네는 KTX 기차 제일 마지막 18호차 객실에서 출몰 했다는 뜻.

‘ 어째서……?’

너무 뜬금없었다.

이야기대로 어디 멀리서 어렴풋이 등장하는 것도 아닌.

‘갑자기 내가 탄 기차 제일 마지막에서 나타났다고 ?’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럽다.

아무리 마왕이 전지전능하다 해도, 지금까지는 최소한 원본이 되는 괴담의 장소와 맞아야만 괴담이 출몰 했던 것이다.

‘일단은 부딪쳐 보며 알아내 보는 수밖에.’

당장 떠오르는 방법은 모체를 파괴 하는 것.

정신을 타고 감염되는 괴담의 경우에는 포린세스 때 한 번 상대한 적 이 있다.

그때도 감염의 최초 근원인 모체를 찾아서 해결했던 기억이 있었다.

무엇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든 간에 여기는 달리는 기차 안, 밀폐된 공 간.

놈은 분명 여기 18호차에 아직 있을 것이다.

‘문제는 방금 문을 열고 언뜻 객실 안을 살펴본 바로는 특별히 수상한 게 없었다는 점인데…… 물론, 해상도가 낮아 시야가 흐릿 해서 장담은 못 하겠지만.

또 사람들은 광기에 차서 꾸물대며 춤을 추고 있었지만.

‘그래도 인간이 아닌 다른 형체 같은 건 일단 보이지 않았어.’

하지만 이 안에 있는 게 확실하다 면, 내가 보지 못하게 구석에 숨어 있는 경우도 가정할 수 있다.

‘어떻게… 어떻게 찾아낸다.’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저 안에는 열댓 명도 넘는 사람들 이 온통 미쳐서 광기를 퍼트리는 중.

사람이 미치면 힘이 세지는 모양인 지, 나는 방금 여대생 누나 두 명의 조르기에서도 겨우 탈출했다.

수상한 걸 하나하나 확인하겠다고 객실 안을 헤집고 다니다가는 바로 제압당해서 이상한 짓을 당할 게 분 명하다.

‘아무리 시야를 차단했다고 하더라 도... 직접 접촉해서 몸을 문지른다 든가 하면 또 홀릴지도 몰라.’

어떻게 찾아내지, 어떻게.

똑똑똑.

순간 누군가 화장실 문을 노크한다.

[고객님? 안에 계세요?]

4 젠장••••••

아까 그 승무원 누나다.

[빨리 나오세요. 안 그러면 사람 부를 거예요.]

[저한테 당할래요, 아니면 배 나온 아저씨한테 당할래요? 빨리 나와 요.]

이대로 사람들을 문 앞으로 불러온 다면 상황이 어려워진다.

나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시야의 해상도를 낮추고 바로 문을 박차고 나섰다.

‘ 이판사판이다!’ 쾅—!

“꺄악……!”

문에 쾅 부딪혀서는 주춤하며 뒤로 물러서는 승무원.

나는 그대로 감염지의 근원, 마지 막 객실을 향해 돌진했다.

타탓-!

“잡아! 전부 저 사람 잡으세요!”

뒤에서 소리를 꽥 지르는 승무원.

승객들이 저마다 황홀경에 잠겨서 춤을 추다 말고 일제히 나를 돌아본다.

‘젠장! 어디지! 어디야……

재빨리 고개를 훑어봤지만 안 그래도 시야가 흐릿한 상황.

바닥과 천장, 좌석과 사람들 정도만 대충 구분되는 상황이라 뭔가를 자세히 살펴볼 수 없었다.

“잡아! 잡아서 잔뜩 꾸물거려 줘 요!”

“꺄하하핫.”

앙칼지게 외치는 승무원의 목소리 에 승객들이 의자를 넘어서 나에게 달려오려는 찰나.

나는 통로 입구 쪽에 비치돼 있는 소화기를 낚아챈다.

“이거나 먹어, X발!”

그대로 잡아당겨서는 호스를 열고 사람들에게 분사한다.

촤아아아악-!

“우우욱! 뭐야!”

“꺄아아악.”

눈을 가리며 마구 물러서는 사람 들.

나는 소화기를 마구 분사하며 사람 들을 밀치고 앞으로 돌진한다.

파악- 팍.

“큭……! 잡아! 잡아!” “방금 내 앞을 지나쳤어! 저기!” 그리고 객실의 끝에 도달하자마자 즉시 눈의 해상도를 높여 주위를 관찰했다.

객실 안은 흩날리는 소화제의 분말로 인해 1미터 앞도 구분이 힘든 상황.

지금이라면 눈을 부릅뜨고 닥치는 대로 수색이 가능하다.

“뭐야, 안 보여! 너, 너구나! 잡았 다!”

“나 아니야, 이 사람아! 이 꿈틀거 리는 것 좀 보라고!”

“아아, 이 꿈틀거림은 확실히 깨달 으신 분이군요! 실례했습니다!”

“어디 있죠? 빨리 찾아내서 같이 꾸물거려 줘요!”

“나 때는 말이야, 꾸물거리라면 군 소리 없이 바로 꾸물거렸는데 요즘 것들은 뻣뻣해 가지고 으잉… 쯧쯧 쯔 ” 才、•

안개 낀 객실 안에서 마구 뒤엉키며 헤매는 사람들.

나는 제일 뒷좌석부터 손으로 더듬 거리며 갔고, 뭔가 잡히는 대로 집 어서 눈앞에 가져와 살펴봤다.

신문, 소설책, 잡지, 누군가의 휴대 폰

‘이건 아냐. 이것도 아니고…… 부딪치는 사람들을 마구 밀치며 절 반쯤 수색한 찰나.

나는 창가 쪽 좌석 시트 위에 무 언가 수상한 게 놓여 있는 걸 발견 했다.

‘ 벌레••••••?’

손가락 하나 정도 크기쯤 되는 검 은색 벌레.

그게 의자 시트 위에서 팔다리를 꿈틀대며 발버둥 치고 있었다.

‘이게… 뭐지? 이런 벌레가 있나?’

장수풍뎅이처럼 등껍질이 딱딱해 보이는 곤충.

머리는 없었고 검은색 보석 같은 굉장히 단단해 보이는 몸체만 있다.

그 보석 같은 몸체에 다리만 6개 튀어나와 있는 게 다였다.

그리고 벌레의 다리에 박혀 있는 분홍색 압정 하나.

?’

그 압정이 벌레의 다리를 관통해서 의자 시트까지 꽂혀 있는 덕분에, 벌레는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몸부림 쳐도 그곳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 꿈틀거리는 벌레의 발버둥을 보 고 있으니 점차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게 느껴졌다.

‘이, 이건가?’

일단은 죽이고 봐야겠다.

다른 좌석에서 잡지 하나를 들고 와서 내려치려고 팔을 드는 찰나.

“잡았다〜”

승무원 누나가 내 겨드랑이에 손가 락을 집어넣고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푸하, 푸하하하!”

“꾸물꾸물꾸물꾸물〜 꼼지락 꼼지 락 꼼지락 꼼지락〜!”

민감한 겨드랑이를 파고드는 분홍 색 매니큐어의 손톱.

유연하면서도 힘 있게 내 겨드랑이를 긁으며 내려간다.

“이렇게, 이렇게. 간질간질간질.”

“아학, 푸하학… 크하학.”

“어때요, 뭔가 느껴지나요?”

겨드랑이에서 꾸물대는 손가락을 참지 못해 몸을 잔뜩 웅크리며 비틀 대다가, 얼떨결에 휘청대며 벌레가 있는 자리에 풀썩 앉고 말았다.

푸직-!

‘씨, X발.’

엉덩이에 느껴지는 무언가 꼬물대는 끔찍한 감촉.

나는 다시 나를 간지럽히러 오는 승무원의 구불거리는 손가락을 탁, 쳐내고는 두 눈을 딱 감고 다시 한 번 엉덩방아를 찧었다.

콱-!

푸직- ‘으으으, X발!’

온몸에 소름이 돋는 끔찍한 꼬물거림.

‘안 죽어? 안 죽어?’

“이렇게, 꾸불꾸불. 꾸불꾸불. 간지럽죠?”

목덜미를 파고드는 승무원의 꾸물 거리는 손가락에 나도 모르게 킬킬 대며 온몸을 비틀다가, 다시 눈을 꾹 감고는 마지막으로 힘차게 엉덩 이를 내려찍었다.

푸직-!

‘으으으-!’

그제야 눈앞에 떠오르는 알림창.

[A급 괴담 - 쿠네쿠네 괴담과 마 주쳐서 살아남았습니다.]

“후우, 후우, 후우, 후우.”

털썩.

소화기의 분말로 뿌옇던 객실 안은 어느덧 가루가 천천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

정신없이 구불거리던 사람들은 탈 진했는지 다 같이 한순간에 풀썩, 제자리에 힘없이 쓰러진다.

“어, 어라? 아아, 아……

내 앞의 승무원 누나도 나를 간지 럽히던 손길을 거두고 어지러운지 머리를 부여잡고는, 내 옆 좌석에 풀썩 무너진다.

“아이고, 뭐… 무슨……

“아아악... 내 다리......

저마다 끙끙대며 앓는 신음 소리.

나는 길게 한숨을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후우우우우우……

엉덩이에 느껴지는 벌레를 짓뭉갠 끔찍했던 감촉.

온몸에 돋은 소름을 진정시키며 그 걸 닦아 내려 뒤돌아보았지만.

그곳에 벌레 같은 건 없었다.

부서진 구슬 같은 물체뿐.

쪼개지고 갈라진, 검은색 옥 재질의 장식품.

나는 그걸 천천히 끼워 맞춰 본다.

그러자 완성되는 원래의 문양.

내가 벌레라고 생각하고 깔아뭉갰던 것은 검은색 스페이드 모양의 토템이었다.

나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들을 마 저 확인했다.

[A급 괴담 - 쿠네쿠네 괴담과 마 주쳐서 살아남았습니다.]

[괴담 포인트를 40 획득하였습니다.]

[당신은 놀라운 기지를 발휘하여 쿠네쿠네의 모체를 파괴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괴담 포인트를 200 획득하였습니다.]

[함께한 부원들 한 명당 10%의 보 너스 포인트를 얻습니다.]

[참여한 부원 (1명): 인하윤]

[총 획득한 포인트 240에 대해서 10%의 보너스 포인트 24를 추가 획득합니다.]

[현재 괴담 포인트 : 195 + 240 +24]

뾰로롱〜》

[현재 괴담 포인트 : 459]

인하윤.

나는 손에 든 공백교의 토템을 허망하게 바라보다가, 통로 바로 옆 좌석에서 머리를 감싸고 있는 부부를 돌아보며 물었다.

“저기요, 이 자리에 누가 앉아 있었죠?”

“으, 으응……? 그, 그 자리?”

“네. 여기 이 자리요.”

“그, 글쎄……

머리를 싸매는 중년의 부부.

“어떤 여학생 한 명이 앉아 있었던 것 같은데……

“어디로 갔나요?”

“보, 보자… 아이고, 머리야

괴담에 엮여 있던 영향인지 이마를 부여잡는 부부.

“그러니깐… 전 정거장에서 내렸던 것 같은데……

나는 고개를 돌려 토템이 짓뭉개 진, 하윤이가 앉아 있던 좌석을 바 라보았다.

창밖으로는 어두운 산자락의 풍경 만이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갈 뿐이었

다.

덜컹- 덜컹-

괴담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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