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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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빙의, 회귀
"아 회귀는 아닌가."
노트에 적었던 회귀라는 글자 위에 줄을 찍 긋는다.
툭. 툭. 툭.
노트위를 펜으로 두들기며 한참을 멍하니 생각하던 그는 한마디 툭 내뱉는다.
"흐음... 도대체 뭘까."
아무리 고심해 봐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음?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냐고?
뭐 별건 아니다.
평범하게 교통사고를 당했고 평범하게 처음 보는 몸으로 깨어나 평범하게 살아가던 도중, 문뜩 내게 일어난 일이 어떤것인지 궁금해졌을 뿐.
정말 사소한 일이었다.
다행히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의 나는 상당한 소설 빠라서 경우의 수를 좁힐 수 있었다.
"환생인가, 빙의인가."
일단 회귀는 확실히 아니기에 제외할 수 있지만 남은 둘 중 하나를 고르기에는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깨어난시기는 이 몸이 열 살이 되는 해.
깨어난 장소는 지극히 평범한 현대에 대한민국 서울.
환생이라기엔 깨어난 시기가 열 살이 넘어가는 시점이었기에 모호하고,
"역시 빙의인가?"
미묘하게 다른 단체나 인물의 이름.
마치 작가가 논란을 피하기 위해 현실에 있는 것을 조금씩 변형시켜 작품에 적용시킨 것처럼 보였기에 빙의 쪽에 추가 쏠린다.
사각사각.
노트에 이것저것을 적다가 문득 나는 선을 찍찍 긋고 볼펜을 던져 버렸다.
찍찍.
툭.
"이제 와서 이게 뭐 하는 짓이람."
내일이면 벌써 이 몸에서 깨어난 지 십 년째 되는 날. 이제 와서 이런생각 해봤자 시간 낭비라는 것을 깨달았다.
"십 년째라고 꼴에 감성에 젖은 건가."
새로운 몸으로 깨어난 지 어느새 10년.
처음엔 실망도 했다.
소설빠였던 나로서는 기왕 환생인지 빙의인지 모를 것을 했는데 아무 능력도 사건도 없이 평범한 삶만 지속되었으니까.
하지만 살아가다 보니 이 삶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지."
이곳에 와서야 알게 된 가족이라는 기쁨.
고아였던 나에게 부모님이 생기고 예쁜 동생도 생겼다.
풍족하다곤 할 순 없지만 모자라지 않은 가정환경 속에서 평범하게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아들~. 나와서 밥 먹어~."
"네~!"
그렇게 십 년이 지난 지금 특별한 능력도, 소설 같은 사건도 전부 필요 없다.
남이 보기엔 지극히 평범한 삶이겠지만 나에겐 이 평범함이 꿈만 같은 일이었기에.
"에엑! 이게 뭐야!"
방문을 열고 나가려 하자 들려오는 익숙한 하이톤의 짜증 어린 목소리.
목소의 주인공은 여동생인 김하나. 나의 하나뿐인 소중한 여동생이다.
"뭐가 또 이년아."
"아니. 저녁 반찬 상태가 왜 이러냐고! 생선회에 생낙지, 육회, 이건 뭐야, 생간!?"
"내일 오빠 생일이니까 오빠가 좋아하는 것들로 차렸지. 그리고 너도 생선회는 좋아하잖아? "
"아 오빠 생일은 내일인데 뭔 상관이야!"
....소중하다고 했지 싸가지가 있다고는 안 했다.
"하여간 일생에 도움이 안 돼요. 도움이."
좀 감성에 빠져 보려는데 초를 치는 동생년. 결국 참지 못하고 방을 나서며 한마디 한다.
철컥.
"네 나이가 몇 개인데 아직도 반찬 투정이냐? 철 좀 들어라 철 좀."
"뭐래. 지는 그제 술 마시다가 업혀 들어온 주제에."
"뭐? 지는? 이년이!"
"그만! 아빠 곧 오실 거니까 둘 다 그만 싸우고 앉아."
"쳇."
동생년이 혀를 차는 것을 보고 다시금 화가 올라오려 했지만, 필사적으로 내리 누르며 자리에 앉는다.
"후우."
전에 살던 삶까지 합치면 내 나이가 삼십이 훌쩍 넘는데 저년이랑만 싸우면 화를 주체할 수가 없어.
"내일 가족 여행이 겹쳐서 오늘 미리 하는 거니까, 네가 좀 참아."
"눼~."
"에휴. 저 싸가지."
"뭐!!"
"엄마가 그만하라 했다."
어머니의 강제진화에 겨우 싸움이 끝난 직후 아버지가 퇴근하셨다.
"아직 안 먹고 있었어? 먼저들 먹고 있지 그랬어."
"아니예요. 저희도 방금 앉았어요. 배고프죠? 빨리 옷만 갈아입고 나와요."
"알았어. 금방 나올게."
그렇게 시작된 저녁 식사.
"예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아들 입맛 참 특이하단 말이야."
첫 젓가락부터 생간을 집어먹는 나를 보며 말을 하는 아버지.
이상하게 이 몸으로 깨어난 이후부터 익힌 것보단 날것이 맜있게 느껴졌다.
전생에서는 생간은커녕 생선회도 잘못 먹었는데 말이지.
이것도 빙의의 부작용이려나.
"특이한 게 아니라 괴상한 거야. 아빠."
혹시나했는데 역시나 태클을 걸어오는 동생년.
"저번에 스테이크 먹을 때도 그래. 뭐? 블루레어? 차라리 생고기를 뜯어 먹지 그래."
"그게 어른의 취향이란 거다. 동생아."
"어른은 개뿔. 사람이 덜돼서 익혀먹을 줄 모르는 거지."
"큼큼. 그러고 보니 선물을 트렁크에 놓고 왔네."
우리의 말싸움이 시작되려는 것을 눈치챈 어머니가 화를 내려 하자 아버지가 한발 빠르게 화제를 전환한다.
"괜찮아요. 아버지. 어차피 생일도 내일이잖아요."
"그래. 내일 생일 축하하면서 한꺼번에 하자. 자자. 밥 식겠다. 어서 먹자고."
"내일 숙소 예약은 제대로 확인했죠?"
"아까 퇴근하면서 전화해봤어. 당신은 케이크 사놨지?"
"당연하죠. 아까 하나랑 같이 가서 생크림으로 큼지막한 놈으로다가...."
"난 생크림보단 초코가 좋은데..."
"초코는 네 생일에 사줄 테니까...."
나는 잠시 먹는 것을 멈추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평범하게 일상을 이야기하며 화기애애하게 식사하는 가족의 식탁.
전생의 나로서는 절대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 풍경을 보며 나는 다시금 감상에 빠져...
"왜 비 맞은 개새끼 같은 표정을 하고 있어?"
....이년이 진짜.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던 저녁이 지나가고 이튿날 아침.
우리 가족은 계획대로 여행을 떠났다.
도착하자마자 유명맛집에서 점심을 즐긴 후,
인근 관광지를 구경하고,
커다란 나무들로 빽빽이 들어찬 산책로를 천천히 걸으며
마지막엔 다 같이 가족사진을 찍었다.
한 장은 큰 액자에 담았고 작게 네장을 추가로 뽑아 가족들의 지갑 속 한켠을 장식했다.
모두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사진 속의 가족들.
부모님이 기독교임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다니지 않는 나였지만,
마음속으로 신에게 빌었다.
이제 와서 내게 일어난 일이 무엇이든 상관없어질 정도로 너무 행복하니까.
한순간의 꿈이 아닐까, 눈을 감았다 뜨면 고아였던 때로 돌아가지는 않을까, 하고 두려워질 정도로 행복하기에
제발 이 행복이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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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르륵. 화르륵.
무언가 타는 소리.
끼기긱.
금속이 뒤틀리는 소리.
콜록. 콜록.
누군가의 기침 소리.
온갖 부산스러운 소리에 조금씩 수면 위로 부상하는 의식.
'뭐.....지.....'
'분명....숙소로....아니...저녁을...'
몽롱한 의식 속에 생각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씨발."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욕지거리.
"...됐네."
'뭐...라고....'
"....만더 사고 치.... 죽인다 .....데."
주변의 잡음에 제대로 들리지 않는 말소리. 어떻게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띄운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보이는 것은 어디선가 피어오르는 매캐한 연기.
점점 선명해지는 시야 속, 연기의 근원이 종이짝처럼 찌그러져 있는 아버지의 차라는 것을 깨닫고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선명히 떠올랐다.
'아. 사고.'
관광을 끝내고 예약해 둔 숙소로 가는 길.
커브길에서 빠른 속도로 나타난 빨간 스포츠카.
충돌을 막기 위해 아버지는 급하게 핸들을 꺾었지만 결국 부딪치고만 차.
쾅.
그직후 끊긴 기억.
'가족들은?'
분명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전부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다.
그러니 가족들은 무사할....
"어?"
그때 완전히 돌아온 시야 한구석에 보이는 붉은색.
'피?'
검은색의 아스팔트 도로임에도 선명한 붉은빛을 내뿜는 혈액은 자기 영역을 점차 넓혀가고 있었다.
'아아....'
그리고 그 혈액은
'아아아아.....'
뒤집힌 채 반파된 아버지의 차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안...돼...."
어떻게 얻은 가족인데.
"안..돼.."
어떻게 얻은 행복인데.
"안 돼안 돼안 돼."
스윽. 스윽.
온몸에 격통이 몰아쳤지만 무시했다.
팔다리가 부러졌는지 움직이지 않았지만 무시했다.
어깨와 몸통, 얼굴까지 써가며
어머니, 아버지, 하나, 가족들을 향해 기어간다.
"안돼안돼안돼."
그래. 아직 괜찮다. 살아만, 살아만 계신다면 빨리 구급차를 부르면 된다.
손은 움직이지 않지만, 운전석에는 아버지의 핸드폰이 고정되어 있을 테니 음성인식으로 119에 전화하면 된다.
그러면, 그러면 살릴 수 있다.
"어서어서어서."
절실한 마음에 초인적인 힘이 나온 걸까.
어느새 눈앞에 보이는 깨져나간 운전석의 창문.
"있다!"
다행히 핸드폰은 거치대에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그 사실에 기뻐하며 차 내부로 기어들어가려고 했을 때.
"뭐야? 안 뒤진 놈이 있었네?"
들려온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고 내가 느낀 감정은 당황이 아닌 기쁨이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도움을 청해 구급차를 빨리 부를 수 있다면,
아니 우선 응급처치라도 할 수 있다면 부모님이 살 수 있는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
"제..제발...저희 가족좀...."
내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이곳이 인적이 드문 도로라는 것.
저벅저벅.
이 사고 현장에는 우리 가족 말고 있을 만한 사람은 한 명뿐이라는 것.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고개를 돌린순간
'어?'
시야를 가득 메운 검은색구두와
퍽!
머리에서 느껴지는 충격.
"씨발. 걍 뒤질 것이지. 사람 귀찮게."
털썩.
"근데 신호는 씨발 왜 이렇게 안 잡히는...아 드디어 잡혔네. 어 난데. 여기 사람 좀 보내봐. 아니. 아버지한텐 보고하지 말고 처리반 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