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속 중간보스에 빙의했다-2화 (3/60)

EP.2 각성

"....쿨럭."

철퍽.

터져 나오는 기침과 함께 피가 한 움큼 터져 나온다.

이미 내장이 상할 대로 상했다는 증거.

단 한 번.

단 한 번의 주먹질로 자신의 신성력이 뚫리고 회생 불가능할 정도의 내상을 입었다.

"...어떻게."

하지만 머릿속에 드는 강렬한 의문에 부상의 고통조차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입을 여는 강목사.

"어떻게...살아있는 거지? 아니....살아 있긴 한 건가?"

그의 떨리는 시선 끝에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가만히 서 있었다.

아니. 과연 그것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김군."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몸에 두 개나 구멍이 뚫려있으니...살아있는 건 아니겠죠?"

온몸을 적시고 있는 붉은 피와

오른쪽 머리에 하나, 심장에 하나. 이제 와선 피조차 흐르지 않는 두 개의 구멍.

스스로도 움직이는 것에 의문을 느끼고 있는 차이었다.

"아무리 흑마력을 가졌어도 결국 본체는 인간이기 마련이거늘....아아. 주님이시여."

어지간히 충격을 받으셨는지 주는 부르짖고 있었지만 나 또한 그와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기에 답해줄 수 없었다.

이몸으로 깨어난지 십 년. 아무 일도 없이 일상을 보낸것이 무려 십 년이다.

"왜..."

당연히 게임 속도, 소설 속도 아닌, 원래 세계와 같은 평범한 세계라 판단하고 살아왔건만.

"왜 이제 와서..."

처음으로 느껴본 가족과의 행복에,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는 충족감에 아무 불만 없이 살고 있었건만.

어째서.

"....설마....아니 그건.... 하지만......"

그때 주님을 부르짖던 강목사가 무언가를 상기한 듯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온 한단어.

".....'죽은자들의 왕'?"

그 단어가 강목사의 입에서 흘러나온 순간 나는 강렬한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분명....어디선가 들어본.....'

"죽은자들의 왕이 뭐죠?"

방금 전까지 느끼고있던 절망감도 뒤로한 채 기시감을 참지 못하고 질문이 튀어나왔다.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던 그는 의자를 부여잡고 일어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쿨럭. 흑마술사들 사이에서 떠도는, 쿨럭. 한가지 예언이 있습니다."

수백년도 더 된, 그저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기원조차 알 수 없는 예언.

'산자들이여, 경배하라.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죽은자들이여, 경배하라. 그대들의 왕을.'

'모든 어둠은 왕에게 무릎 꿇을지니.'

'멸망의 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왕이 강림하리다.'

누가 예언했는지,

그 시기가 언제인지,

모든 것이 불분명하건만 예언은 수백년 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마치 저주처럼."

수많은 흑마술사를 때려잡는 십자구마회가 이 예언을 모를 리 없었고,

과거 예언을 처음 접한 교황청 수뇌부는 이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예언 외에 알아낸 것은 전무.

"쿨럭...그저 예언의 문구로 생각해낸 몇 가지 추측을 내놓았을 뿐이었죠."

저벅저벅.

움직일때마다 기침이 나오며 피가 터져 나왔지만 강목사는 굴하지 않고 움직였다.

"....."

분명 수상한 움직임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멍하니 서 있기만 하는 그.

강목사도 그가 저러는 이유를 모르지만 틈을 놓치지 않고 느린 걸음으로나마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어느새 교회의 가장 앞쪽의 의자까지 도달한 강목사.

"그중 가장 신빙성이 있다고, 쿨럭. 판단되는 추측이 딱 하나."

털썩.

"후우."

기다란 교회의자의 끝 부분까지 걸어가서야 그곳에 앉은 강목사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왕이라는 존재의 불멸성. 쿨럭."

그저 하나 추측이었지만 교황청은 이 추측만으로도 심각성을 느끼고 당시의 모든 구마사제에게 공문을 내렸고,

시간이 지나서도 구마사제를 교육시킬 때 흑마술사의 예언을 반드시 교육시킨다.

"....그래서 제가 그 '왕'이라는건가요?"

"글쎄요. 저 또한 확신할 수 없습니다."

예언속의 왕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강목사가 모르는 고위 언데드일수도 있고 경험해보지 못한 흑마술의 일종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수십 년동안 구마사제로서 활동했던 자신의 감이 강렬하게 말하고 있었다.

'김군이 '왕'이다.'

그리고

'당장 눈앞의 존재를 없에라'

라고

평소의 강목사였다면 자신이 당한 시점에서 교황청의 보고를 최우선으로 생각했겠지만

계속해서 경종을 울려 데는 그의 감으로 인해 강박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교회내부에 그를 없앨 가능성이 있는 물건이 존재한다.

'축성탄'

자신의 편집증적인 준비성 덕분에 지금 앉아있는 의자 밑에 숨겨진 무기의 이름.

추기경급의 사제가 전심전력을 다해야만 만들 수 있는 이 무기는 축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신성력과 물리력을 동시에 행사하여 범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주께바치는 무기이다.

'어떻게 내 신성력을 뚫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물리력이 있는 축성탄이라면 가능하다.'

구마사제중에서도 베테랑에게만 지급되는 이 무기라면 설령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물리력만으로 왕을 없애는데 충분할것이다.

'내가 희생하면 미래의 재앙을 없앨수 있다.'

강목사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는 어느새 김군을 왕이라고 확정 짓고 있었다.

그렇게 강목사가 거룩한 희생정신에 휩싸여 폭탄의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있을 때.

"....푸흐흐흐."

갑자기 들려온 웃음소리.

강목사는 갑작스레 들려온 웃음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돌렸고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크흐흡. 그래. 왜 생각을 못했을까. 크흐흐흐"

그곳에는 김군이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한쪽만 남은 눈에서 흐르고 있는 피눈물과는 반대로 분명한 환희를 그리고 있는 입가.

그모습이 어찌나 기괴한지 방금 전까지 거룩함으로 가득 차 있던 강목사조차도 순간 섬뜩함을 느꼈을 정도.

그 섬뜩함 강목사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부르고 말았다.

"김군?"

"아! 네. 강목사님. 죄송합니다. 후후. 너무 기뻐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네요. 후후후."

"....무엇이 그리 기쁜지 물어봐도 될까요?"

반사적으로 질문을 하긴 했지만 잠금장치를 해제하기 위해 시간을 끌어야 하니 필요한 일이었다고 스스로에게 변명하며 김군의 말에 집중했다.

"네! 그럼요! 강목사님은 자격이 있습니다. "

방금 전까지 자살하기 전의 사람마냥 우울한 표정이었다면 지금은 마치 다른 사람인 것 마냥 밝은 목소리와 과장된 몸짓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분명 저는 이 세계가 평범한 세계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게임도 소설도 판타지도 무협도 SF도 아닌, 자신이 살던 2021년의 한국과 다를 바 없는 세계.

"하지만 제가 한가지 간과한 게 있더군요."

"바로 현대판타지."

"물론 평범한 현대판타지라면 제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지만, 만약 이면 세계의 설정이라면?"

평범한 세상 속에 비밀에 둘러싸인 능력자들의 사회가 있다는 설정의 이면세계.

현대와 똑같은 배경의 이면세계, 그 안에서도 원작보다 십 년이 넘는 과거라면.

"그런 설정 안에서 한낱 엑스트라가 '아! 이 세계는 이능이 판치는 특별한 세계구나!'하고 깨달을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아마 거의 제로에 가깝지 않을까.

그렇기에 나 또한 십년의 세월 동안 눈치채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랬어야겠지만...

"제가 한낱 엑스트라가 아닌 점이 문제였다랄까요."

이면세계, 흑마술사, 구마사제, 강목사가 사용하던 하얀 기운, 아마 예상컨데 신성력이겠지.

마지막으로 강목사가 언급한 예언과 나를 지칭한 죽은자들의 왕.

이 모든 것들에 부합하는 것이 전생에 딱하나 있었다.

"이스트헌터스토리."

전생에 플레이해봤던 수많은 게임 중 하나.

본작의 배경은 현대 헌터물이지만 메인스토리 이전 과거설정으로 이면세계의 설정 또한 가지고 있는 게임.

"저는 게임 속의 중간보스로 빙의 했던 거죠. 그것도 스토리가 시작되기 15년전의 중간보스로."

이스트헌터스토리의 제작사가 내세우던 두개의 특징중 하나가 캐릭터의 스토리.

모든 엔피시의 스토리가 따로 있을정도로 스토리에 진심인 게임이었는데

유독 빈약한 설정의 몬스터가 딱 하나 있었다.

바로 중간보스, 죽은자들의 왕.

이 중간보스의 설정으로 유저들 사이에서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었기에 나 또한 기억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가족을 잃은 충격과 슬픔에 각성했다, 라는 단 한줄."

이사실을 깨달은 직후 처음 든 감정은 후회.

부모님의 말을 듣고 교회에 한 번이라도 왔다면 좀 더 빨리 각성하고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

"하지만 한가지 설정을 더 기억해내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트헌터스토리의 제작사가 내세우던 다른 하나의 특징. 바로 하드코어한 난이도.

엄청난 전투 난이도와 중간 세이브가 없는 건 기본이고 영입한 동료가 죽어도 통상적으로 부활시킬 방도가 없었다.

이러한 난이도 덕분에 한동안 인터넷방송에서 피지컬 측정기로 유행했을 정도.

"제작사도 아예 부활이 없다는 점에는 양심에 찔렸던 걸까요. 딱 세 개뿐이지만, 부활 아이템을 마련해뒀더군요."

그렇다면, 이곳이 내가 아는 이스트헌터스토리라면 부활아이템 또한 실제로 존재할 테고,

"부모님도 다시 살릴 수 있겠죠."

가족도, 행복도 다시 되찾을수 있다.

다시 고독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그 사실이 나에게 참을수 없는 환희를 가져왔다.

이곳이 게임이라 해도 모든 시스템이 구현되어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나는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 만으로도 만족했다.

가능성이 0인 것과 아닌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니까.

"강목사님께 감사할수 밖에 없습니다. 가능성이 0이아닌것을 알려주셨으니까."

나는 다시 강목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 강목사님이 뭘 하든 기다려 드리죠."

"...알고계셨습니까."

"워낙 행동이 수상하셔서 말이죠."

"...제가 마음이 급하긴 했나 보군요. 이런 기본적인 실수를 하다니."

강목사는 순순히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실제로 현역 때 일하던 것과 비교하자면 초보 때도 하지 않던 조급함을 보이고 있었으니.

하지만 알고 있음에도 조급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기다려주시겠다니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눈앞의 부정한 존재를 지워야 한다.

머리를 관통당해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지만 자신의 행동을 망설일 이유는 되지 않는다.

"이해합니다. 강목사님은 지금 절 없애고 싶은 마음이 들끓고 있겠죠."

죽은자들의 왕은 신성력에 상극인 존재.

게임속 '죽은자들의 왕'의 특성 중 하나가 바로 신성면역과 성직자 직군 혼란효과.

성직자 직군을 가진 엔피시는 죽은자들의 왕을 마주하면 혼란에 빠져 무조건 공격모션을 취하게 된다.

아마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머릿속엔 어떻게든 나를 죽이려는 생각으로만 가득차 있겠지.

아까전 주먹 한 방으로 강목사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찰칵.

"후우."

실제로 남은 잠금장치를 빠르게 풀어낸 강목사는 의자에서 새하얀 구체를 꺼내 들고 나서야 겨우 조급함을 없앨수 있었다.

"미안합니다. 김군."

입으로는 미안함을 표하면서도 그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안의 구체에 힘을 줬다.

빠직.

구체가 깨짐과 동시에 새어나오기 시작하는 새하얀 빛들.

"....축성탄?"

순간 그 물건의 정체를 알아낸 나는 입에 그이름을 담았고 이를 들은 강목사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떻게...."

하지만 그 질문에 대답해주기엔 이미 늦은 상황.

콰가가가각!!

순간 구체에서 흘러나온 빛이 폭풍치기 시작하며 주변의 모든 것을 소멸시키기 시작했다.

교회의 의자, 단상, 조명, 장식, 십자가, 심지어 강목사와 김군까지.

'아아. 신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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