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각성
교회의 내부에서 갑작스레 터져 나온 빛의 폭풍은 범위를 점차 늘려가며 교회 전체를 집어삼키기 시작했고
콰가가가가각!!!
파아앗!!!
끝내 교회 부지 전체를 집어삼키고 나서야 한차례 강렬한 빛을 내뿜고는 사라졌다.
......
빛이 사라지고 남은 것이라곤 거대한 원형의 크레이터뿐.
......
풀한포기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스윽.
이러한 난리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결계덕분에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고 도시는 조용했다.
....스으윽.
그저 바람 스치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온다.
스으으윽.
그 바람 소리가 이질적이게 변하기 시작한 것은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바람이 한곳에 모이듯 크레이터 중심부를 향해 불기 시작하며 일어나는 흙먼지.
스으으윽.
바람소리와 함께 무언가 스치는 소리.
콰득콰득.
무언가 뭉개지고 압축되는 소리.
"....푸흐."
그 사이에서 튀어나온 숨소리.
그와 동시에 주변의 모든 소리가 멎었다.
바람소리, 풀 스치는 소리, 벌레 소리까지 마치 이 공간 자체가 멈춘 것 처럼.
"그래. 이렇게 다루는 거구나."
멈춰진 바람에 가라앉는 흙먼지 사이로 하나의 인영이 나타났다.
"...원작이 진행될 때까지 5년."
흙먼지를 해치며 나온 나는 곧바로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아무리 자신이 공략해본 게임이라고 해도 스토리이전의 내용을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즉 원작의 시점까진 한정된 정보만으로 버텨야 되는 상황.
원작이 시작된다고 해도 걱정거리는 충분히 넘쳐난다.
특히 이 세상에 주인공, 즉 '플레이어'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있다면 충돌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부활아이템이 나타나는 시점은 원작이 시작되고 반년 후."
부활아이템은 얻고 싶다고 바로 얻을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기에 때를 기다려야 한다.
"준비할 게 많겠네."
그렇게 한창 계획을 세우던 나는 뭔가 허전한 느낌에 시선을 밑으로 내리고 가장 먼저 할 일을 정했다.
"...그전에 옷부터 좀 구하고."
벌거벗고 있는 몸을 보고는 깊은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설마 옷은 재생이 안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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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로마의 한 평범한 가정집.
그 집 지하실은 어둠에 휩싸인 채 하나의 테이블과 다섯 개의 의자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바람 한점조차 들지 않는 완벽한 어둠을 유지하던 지하실에 이변이 생 긴것은 하늘의 달이 머리 꼭대기를 막 지나가던 시점이었다.
화륵.
"그래서 오늘 왜 모인 건데?"
분명 방금 전까지 아무도 앉아있지 않은 의자였건만 테이블의 촛불이 켜지는 순간 네 개의 의자가 채워졌다.
네명의 인물 중 가장 작은 키를 가진 인물이 묻자 곧바로 비꼬는 듯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멍청하기는. 그걸 알면 여기에 모일 이유가 있겠니?"
"뭐? 이 걸레 년이 뒤지고 싶냐?"
"하여간 입 더러운 건 여전하네. 키가 작아서 그런가?"
"캬악! 이 개년이 지금 한판 해보자는 거지!"
결국 화를 참지 못한 키가 작은 인물이 일어서려는 순간.
"그만."
네명의 인물중 가장 큰덩치의 인물에게서 묵직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포코. 너도 이제 서른이다. 언제까지 어린애처럼 굴 거냐."
"하지만...."
"로즈. 너도 그만 도발해라."
"네네~"
그렇게 다시금 찾아온 정적.
하지만 포코라고 불린 인물이 조용함을 참을수 없었던 건지 몸을 조금씩 움찔거리다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려는 순간.
훅!
테이블 중앙에서 위태롭게 타들어 가던 촛불이 한차례 꺼질 듯이 흔들렸고 그에 따라 지하실의 그림자가 춤을 추듯이 난잡하게 흔들렸다.
"다들 모였군."
이내 촛불의 빛이 안정을 되찾았을 땐 남아있던 하나의 의자가 마저 채워져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단장."
"그래. 오랜만이군. 오르소."
오르소라 불린 커다란 덩치의 인물이 미소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가려 할 때 참지 못한 포코가 말을 끊고 물었다.
"단장. 오늘은 왜 모인거야? 다섯 명 전부 모인건 연말 회의 빼고는 거의 2년 만이잖아."
"포코!"
오르소는 예의 없이 구는 포코에세 한마디 하려 했지만 괜찮다 손짓하는 단장의 제스쳐에 입을 다물었다.
"성격 급한 건 여전하구나 포코."
"헤헤."
"그럼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단장이라 불리는 인물은 진지한 음성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축성탄이 사용되었다."
"축성탄? 흑탑 장로라도 발견한 거야?"
축성탄은 절대적인 위력을 가지고 있지만 양산이 힘들어 베테랑중의 베테랑, 특급의 구마사제에게만 지급되는 전술무기.
그렇기에 흑마술사들의 집합체인 흑탑중에서도 장로급 이상을 발견했을 경우만 사용하도록 주의하는 무기이다.
"알 수없다."
"응? 보고가 들어왔을 거 아니야."
축성탄의 사용 시 반드시 교황청 또는 십자구마회의 본부에 직통으로 보고하게 되어있다.
"아니. 보고는 안 들어왔다. 사용되었다는 사실도 축성탄의 소멸로 알게 되었을 뿐."
전술무기인만큼 위험하기에 축성탄은 그 사용 여부와 위치를 곧바로 본부에서 알수 있게 술식이 짜여져있다.
"....자폭한겁니까."
"정보부에선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
"....아멘."
오르소가 단장의 말을 듣고 성호를 그으며 기도하자 다른 인물들도 같이 묵념하며 희생한 사제를 위해 기도했다.
잠시간의 기도가 끝이나고 다시금 이어지는 질문.
"위치는?"
"한국의 서울. 결계가 작동되고 있던 교회다."
"알 수 없다는 건 무슨의미야?"
로즈라 불린 여성의 질문에 단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말 그대로다. 알수없어. 사용된 이유도, 대상도, 결과도."
"그게 말이 돼? 아무리 자폭이더라도 주변에 흔적이 남아있을 거 아니야. 거기다 한국의 서울이라며. 그곳은 치안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곳 아니야?"
"그래. 그래서 더욱 의문이다."
아무리 축성탄이 사용되었다 하더라도 결국 사용하는 것은 인간.
사용한 사제와 적까지 포함하면 적어도 두명의 인간이 그 장소에 있었다는 말인데 흔적이 없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조사 당시까지도 결계가 작동하고 있었기에 외부인의 출입은 있을 수 없었다.
즉.
"축성탄을 맞고도 살아남아 교회의 정보부가 어떠한 정보도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흔적을 지우고 유유히 사라졌다. 라고밖에는 판단이 안 되는군."
"......"
"......"
"......"
그말에 질문을 하던 인원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추기경급의 사제만이 제작할 수 있고 한번 제작한 사제는 1년의 시간 동안 정양해야 할정도로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축성탄.
흑마술사를 상대로 맞추기가 힘들 뿐 맞추기만 한다면 흑탑의 장로는 일거에 소멸, 탑주라도 치명상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는 무기다.
그렇다고 십자구마회에도 몇 없는 특급의 구마사제가 자폭을 감행하고도 축성탄을 빗맞혔다고 판단할 수 없는 노릇.
"일단 교황청은 신원미상의 적을 1급으로 판단했다."
교황청은 적성대상을 5등급부터 1등급, 재해, 멸망까지 일곱 등급으로 나눈다.
말그대로 세계를 멸망시킬만한 적을 뜻하며 역사적으로도 두 번밖에 없었던 멸망등급.
최소 도시단위가 몰살당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국가단위에 위기가 닥칠 수 있는 재해등급.
그 바로 아래 등급인 1급. 교황청의 전투부대가 실질적으로 상대하게 되는 가장 높은 등급의 적이 바로 1급이었다.
"1급이면 우리중 하나가 가야겠네?"
1급의 적을 상대할 때 가장 우선되는 원칙 중 하나가 최소 부단장급의 전력을 파견하는 것.
"그래. 그러니 이번엔 로즈 네가..."
"....제가 가겠습니다."
그때 여태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인물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실렌? 네가?"
옆에 앉아있던 로즈를 포함한 부단장들과 단장이 실렌이라 불린 인물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이 아는 실렌이란 인물은 지극히 수동적인 인물로 십자구마회에 입단하고 부단장의 자리에 올라올때까지 단 한 번도 자기주장을 펼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음. 물론 실렌의 실력이라면 걱정되지 않지만...."
하지만 이런 수동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단독 작전수행능력 하나로 부단장의 자리까지 올라온 입지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실제로 지금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고 있는 단장도 실렌이 조금이라도 능동적이었다면 자신의 후계자로 낙점했을 거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좋아."
이내 결정했는지 단장은 실렌에게 명령을 내렸다.
"한국지부 파견은 실렌이 간다. 단 백업으로 포코도 같이."
꿈틀.
"에~?"
포코가 불만가득한 소리를 내뱉고 실렌도 마음에 안 드는지 눈가를 꿈틀거렸지만 단장은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정체가 확실한 적이라면 모를까 이번 적은 신원미상. 1급도 수뇌부에서 임시로 붙인 것이니 둘이 같이 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다."
불만은 듣지 않겠다는 듯 명령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 단서도 없으니 장기임무가 될 가능성을 고려하고 준비를 철저히 할 수 있도록. 이상."
화륵.
단장이 나타났을 때처럼 바람 한점 없는 공간에서 촛불이 춤을 추었고 촛불이 진정했을 땐 단장의 인영이 사라져있었다.
"아아~. 말도 안 돼. 이 지루한 년이랑 같은 임무라니."
"포코."
"뭐 어때. 어차피 실렌은 신경도 안 쓰는데."
실제로 실렌은 포코의 말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생각에 빠져있었다.
'이번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