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속 중간보스에 빙의했다-5화 (6/60)

EP.5 어둑시니

누구보다 큰사람이 되라고 지어 주셨다는, 세상이란 뜻의 이름 '누리'.

"....진짜....누리오빠야?"

더벅머리에 후줄근한 추리닝과 청바지.

저 궤멸적인 페션센스로 보나

자신을 보며 미소 짓고 있는 얼굴을 보나

자신의 오빠가 분명하건만 왜 이렇게 낯설어 보일까.

"그래. 진짜 오빠님이시다. 이 말 안 듣는 동생년아."

"오빠가 어떻게....."

"뭐. 그건 조금 있다 차차 이야기하고."

하나를 보며 짓고 있던 따뜻한 미소는 침입자에게로 시선을 돌렸을 땐 완전히 사라져있었다.

"우선 이것부터 처리해야지."

아니. 사라진 것은 미소 뿐만이 아니었다.

완전한 무표정. 그의 얼굴에는 어떠한 감정의 편린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미친....'

그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 있던 8호의 등에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8호는 정예조직원이란 것을 증명하듯 공격이 막힌 직후 방해자의 급소로 비어있는 왼팔을 날렸지만 그의 눈이 8호에게 향한 순간

'흑마력이....'

끊이지 않고 몸속을 순환하던 흑마력이 완전히 움직임을 멈췄다.

'아니.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니야.'

움찔. 움찔.

어떻게든 강제로 움직이려 할때마다 몸속의 흑마력이 움직임에 제동을 건다.

'흑마력이 오히려 내 움직임을 방해한다.'

지난 세월 동안 자신의 수족이, 갑옷이, 그리고 가장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주었던 흑마력이 자신을 적대하고 있다.

머릿속은 경종을 울려대고 등에선 식은땀이 흐른다.

하지만 공포와 긴장을 억지로 억누르며 곧바로 적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강자라고 해도 관찰하고 분석해서 틈을 찾아내면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다.

'원인은?'

8호의 시선이 의문의 남자에게 잡혀있는 자신의 팔로 향했다.

효과는 흑마력 또는 마력의 장악. 발동방식은 접촉.

겉으로봐선 마도구로 보이는 것은 없으나 눈앞의 남자에겐 딱히 마력이 느껴지진 않으니 마도구쪽으로 무게추를 올린다.

아니. 애초에 이딴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인간이 가질 수 있을 리 없다.

'최소 유물급 아티팩트.'

하지만 아티팩트라면, 연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고대에서부터 내려오는 유물급 아티팩트라면 인간이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자신의 감각을 속이고 공격을 막아낸 것 또한 마도구의 효과일 가능성이 높겠지.

'다수의 아티팩트와 마도구를 소유하고 있는 무능력자.....보단 능력을 숨겨주는 마도구를 소유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군.'

여기까지 분석을 끝낸 8호는 겉모습으론 더이상 얻어낼 게 없다고 판단한 그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입만큼 움직였기에 질문을 하였다.

"도대체....당신은 누구지?"

"그건 오히려 내가 궁금하다만, 넌 뭔데 내 동생을 노린거지?"

"....아티팩트를 차고 있는 쪽이 당신의 동생이라면 오해다. 내 목표는 다른 쪽이야."

"히익!"

8호의 말에 놀란 가연이 작게 비명을 지르자 누리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분명 이름이...가연이었지?"

"네? 네."

"혹시 뭐 예상 가는 거 있어? 누구한테 원한 살만 한일이라던지. 살인이나 약탈 같은 거."

"아, 아니요! 저, 전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서 누구하고 싸워본 적도 없어요!"

그의 말에 기겁하듯이 말하는 가연의 말에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는 누리.

그런 오빠의 행태에 하나가 한마디 거든다.

"오빠. 얘 진짜 몇 년 동안 병원에서만 생활했고 얘네 부모님도 두 분 다 착하신 분이야."

"그래? 흠. 착하다고 원한 사지 않는 건 아니지만."

누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침입자에게 눈길을 돌렸다.

"뭐. 조금 있다가 '이거' 처리하면서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

마치 인간이 아닌 물건을 보는 듯한 누리의 무감정한 눈에 불길함을 느낀 8호는 황급히 말을 이었지만.

"자, 잠깐. 지금이라도 풀어주면 아무 일 없이 ㄴ......"

"개소리는 개한테 하시고 잠깐 자라."

갑자기 몰려오는 강렬한 졸음을 거부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우선 침입자를 처리하고 나서야 그는 하나와 가연의 안부를 물었다.

"둘 다 괜찮아?"

"으응....저기 오빠...."

"잠깐만. 궁금한 건 이따 전부 말해줄 테니까 일단 뒷수습부터 하자."

"어?"

"저 경호원부터 치료해야 할 거 아니야."

"아! 아저씨!"

옆에서 눈치만 보고 있던 가연이 그제서야 쓰러졌던 경호원이 생각났는지 쓰러져있는 경호원에게 달려간다.

"경추가 골절되긴 했어도 신경도 멀쩡하고 즉사하진 않았으니 괜찮아."

"아. 아. 다행이다."

털썩.

그의 말을 듣고 안심이 됐는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는 가연.

"방음결계는 풀어뒀으니까 의사든 간호사든 부를 수 있을거야. 침입자는 적당히 도망갔다고 둘러대고. 난 이거 처리하고 올게."

침입자를 어깨에 들쳐메고 나가려고 하자 하나는 문뜩 드는 불안감에 오빠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금방....올거지?"

"....후후. 그래. 금방 돌아올 테니까 걱정 마."

슥. 슥.

낮게 웃으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오빠의 손길에 마음이 안정되어 옷소매를 놓아주자 침입자와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너희 오빠 도대체 뭐하는 분이니?"

"....."

그장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가연이 물었으나 하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이제껏 누구보다 오빠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방금 전 오빠의 모습은 너무 낯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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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겨우 정신 차린 하나와 가연이 뒷수습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무렵.

어느 공간에 도착한 누리는 어깨에 메고 있던 남자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커...헉."

바닥과 부딪힘과 동시에 잠에서 깨어났는지 충격에 숨을 몰아쉬는 검정색의 남자.

너무 세게 던졌나 싶었지만 죽지만 않으면 딱히 상관없으니 신경을 끄고 어느 탐정만화의 범인처럼 생긴 암살자를 자세히 살펴봤다.

"진짜 보면 볼수록 똑같네. 어떻게 이렇게 빈틈없이 싼 거지?"

정말 단한치의 빈틈도 없이 감싸져 있는 검은 천에 신기해하며 아직 정신 못 차리는 암살자의 입속에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푹.

"읍!읍!"

"가만히 좀 있어봐....아. 찾았다."

뿌득!

".....!!"

꺼내든 그의 손가락에 들려있는 것은 피범벅이 되었는 어금니 하나.

"오. 그래도 암살자라고 고문훈련은 받았나 봐? 소리 한번 안 지르네."

어금니는 임플란트로 되어있었는데 좀더 자세히 살피면 무언가 장치가 되어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하여간 이런 클리셰는 절대 안 변한다니까."

임플란트의 이빨부분과 나사 부분을 뚝 하고 부러뜨리자 그 안에서 캡슐로 된 알약 하나가 튀어나왔다.

예상컨대 독약이겠지

"아 참고로 네 심장에 붙어있던 것도 정지시켜놨으니까 헛수고하지 마."

"....!"

그말에 이빨이 뽑혔을 때보다 더욱 크게 눈을 뜨며 경악하는 암살자.

하긴. 그의 입장이 이해 안가는 것은 아니다.

외과적수술로 신체 내부, 심장 바로 옆에 심어둔 자폭용 마도구.

대마법사 급이 아니고서야, 아니 아무리 대마법사급이라해도 타인, 그것도 오러사용자의 신체내부를 함부로 간섭할 수는 없다.

"네가 믿는 게 그거였겠지."

특히 오러는 대기중의 에너지를 정제해 신체내부에 쌓아 다루는 힘.

그렇기에 마법사처럼 신체 외부의 에너지를 사용할 수 없지만 신체 내부의 지배력은 마법사보다 훨씬 뛰어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흑마력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침입자는 흑마력 사용자.

흑마력은 어둠에 속한 힘. 그리고 모든 어둠은 누리에게 충성한다.

"하여간 변태 같은 새끼들. 누가 암살자 아니랄까 봐 지랄 맞게 철저해요."

오러의 지배력을 이용한 이중 자살장치.

웬만한 암흑가의 조직은 꿈도 못 꾸는 고급기술이다.

"이 정도 기술을 사용할 수 있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암흑가 조직이....조선족의 흑서회, 동남아의 하이에나, 그리고 어둑시니."

하이에나라기엔 조용하고 흑서회라기엔 세련됐다.

그렇다면 어둑시니일 가능성이 높지만 국외의 조직일 가능성 또한 제외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어디지?"

"...큭큭."

누리의 질문에 침묵을 유지하던 8호는 갑자기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심장의 마도구는 아까의 마력장악으로 처리 한 건가. 어지간히 대단하신 아티팩트를 들고 있군."

"아티팩트?"

"유물급 아티팩트. 그중에서도 희귀하다는 마력장악. 거기에 아티팩트를 제외한 다수의 마도구. 뒷배가 어지간히 크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겠지."

'결박도 없고 오러도 움직인다. 역시 발동조건은 신체 접촉이었나 보군.'

8호는 시간을 끌기 위해 입으로 연신 떠들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깨어난 직후부터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상태는 무기가 없어진 것을 빼면 몸에 가해진 제약은 전무.

'무기만 없으면 얼마든지 제압할자신이 있다는건가.'

그 자만심이 너의 목을 조르리라.

"어떤 조직인지는 모르겠으나 임무를 방해한 이상 전쟁이다."

"그래서?"

"하! 암살자와의 전쟁이 어떤의미인지 전혀 모르고 있나보군."

암살자는 전쟁또한 암살로 행한다.

"너희가 밥을 먹고 있을 때, 잠을 자고 있을 때, 볼일을 보고 있을 때. 우리의 칼날이 항상 너희의 목을 향할 것이다."

몸을 낮추고 숨을 죽인 채 눈을 감고 귀를 닫고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린다.

"시간이 지나 긴장이 풀리고 틈이 들어났을 때 우리의 칼날이 너의 목을 벨 것이다."

암살자의 전쟁은 끈질기고 지독하다.

"너희의 친구, 가족, 동료 하나도 빠짐없이 우리의 칼날이 향할 것이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하지만 끊질기고 지독하게 적을 격멸한다.

"동생의 이름이 하나라고 했던가."

움찔.

그어떤 말에도 반응이 없던 남자가 동생을 언급하자 움찔거리는 것을 본 8호는 썩 유쾌해져 웃음이 새어나왔다.

"큭큭큭. 우선 그년부터 죽여주지. 아주 천천히 잔인하게."

'자 어서 분노해라. 분노에 몸을 맡기고 나를 죽이기 위해 움직여라. 그 순간이 너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재밌네."

하지만 그에게서 나온 반응은 분노가 아닌 오히려 더욱 차분해진 듯한 목소리.

"피할 수 없는 현실에 머리가 돌아버리기라도 했나 보지? 동생을 살리고 싶으면 당장 나를 풀어ㄹ....."

"시끄러우니까 닥쳐봐."

"??!!!!"

누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8호의 입이 접착제로 붙은 것 마냥 떨어지지 않는다.

'뭐지? 접촉으로 발동하는 게 아니었나?'

누리가 닥치라고 하자마자 그의 흑마력이 다시금 자신의 행동을 방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고작 방해수준이 아니다.

"뭔가 아주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흑마력이 마구잡이로 날뛴다.

뿌득뿌득.

"끄으으읍!!"

온몸이 찢어나가는 듯한 격통에 참지 못하고 온몸을 뒤틀던 8호는 누리의 눈을 마주친 순간 자신이 자신의 분석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암살조직이든 뭐든, 너희가 나하고 치르는 건 전쟁이 아니야."

그의 눈동자 안에서 조용히 타오르고 있는 소름끼칠 정도의 분노.

겨우 아티팩트의 장악효과 따위가 아니라,

흑마력이 누리의 감정에 동조하여 스스로 분노를 내뿜고 있던 것이다.

"일방적인 학살이지."

콰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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