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속 중간보스에 빙의했다-6화 (7/60)

EP.6 어둑시니

오러, 마나, 차크라, 에테르, 포스, 영력, 신성력 등등.

저마다 부르는 이름도 다르고 사용법도 다르지만 이능자가 자연상태의 에너지를 다루는 대표적인 방법을 다음의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기(오러), 마력(마나), 신성력, 흑마력.

에너지를 정제하여 신체 전체에 축적하여 신체와 무기를 강화하는 오러.

순수상태의 에너지를 머리, 즉 뇌에 쌓아 자연의 에너지와 공명시켜 이적을 일으키는 마나.

신에대한 믿음과 함께 에너지를 심장에 받아들여 몸을 보호하고 악을 정화하며 타인을 치료하는 신성력.

마지막으로 흑마력.

죽은자를 일으키고 생명을 저주하며 죽음을 흩뿌리기는 힘.

모든이들에게 배척받는 만악의 근원.

"이건 교회쪽의 일방적인 주장이고 내생각은 조금 달라."

게임의 설정에서 읽었던 것과 달리 직접 느껴본 흑마력은 사악하지도 저주받지도 않았다.

그저 그 어떤 힘보다 자유로울 뿐.

"오러처럼 신체를 강화할 수도 있고 마력처럼 자연의 에너지와 공명시킬 수도 있지."

법칙에 얽매이지 않고 사용자가 원하는 '이상'을 표출해주는 힘.

"그렇기에 강하고, 그렇기에 위험한 힘."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스스로를 망치는 것으로도 모자라 주변을 파멸로 이끈다.

배척 받는 것 또한 이 때문이겠지.

"뭐.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자신의 생각을 한참 펼쳐놓던 누리는 자신의 말을 듣고 있던 유일한 청자에게 의견을 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해?"

크기는 사람 몸통정도일까. 누리의 발치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시뻘건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ㄲ.....ㅡㅇㅓㄱ......"

하지만 돌아온것 은 완성되지 못한 비명소리뿐.

"이런 성대가 망가져 버렸나? 대화는 해야 되니까 어쩔 수 없지."

그리말한 누리의 손에는 어느새 고급스러워 보이는 유리병 하나가 들려있었다.

뽕!

쪼르륵.

병의 뚜껑을 따고 내용물을 붓자 조금씩 모양이 바뀌어가는 그것.

아니. 모양이 바뀌는 게 아닌 원래의 모습을 찾아간다고 말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었다.

그이유는.

".......죽ㅇ...."

원모습을 갖춰가는 물체는 바로 8호였으니까.

".....제ㅂ....죽ㅇ..."

팔다리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고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통은 원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 말 그대로 파괴되어 있었다.

포션의 힘으로 성대가 회복되었음에도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지만.

"......제발....죽여ㅈ...."

8호는 얼마 되지 않는 포션의 힘을 빌어 필사적으로 죽음을 구걸한다.

고통스럽고 고통스럽고 고통스럽다.

피부가 벗겨지고 혈관이 터져나가며 근육이 저며졌다.

눈알이 파이고 혀고 뽑히며 손발가락이 뭉개졌다.

"꺼...어억...."

하지만 이런 고통들도 8호의 내부에서 폭주하는 흑마력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으니.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중 가장 고통스럽다는 작열통이 이러할까.

마치 온몸이 끊임없이 부서지는 듯한 이 고통은 도저히 말로 설명할 길이 없었다.

더욱이 절망스러운 것은 몸이 진작에 한계에 달했음에도 죽지 않는다는 사실.

죽음이 기약되지 않는 고통은 고문에 대한 훈련을 받은 8호의 정신조차 망가트렸고

"...다....말했....죽여...."

결국 모든 정보를 토해낸 후 구걸하게 만들었다. 죽음이라는 희망을.

"푸흐흐. 사실 딱히 정보가 필요한 건 아니었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 모습이 썩 만족스러웠던 누리는 그의 마지막 희망마저 짓밟았다.

어둑시니는 원작의 시점까지 서브퀘스트로 존재하던 조직.

힘을 각성한 이후 기억력도 같이 좋아져 게임의 공략을 전부 기억해낼 수 있었기에 8호의 정보는 확인과정에 불과했다.

"......왜....."

"왜긴왜야. 내 유일한 희망을 부수려 했으니 너도 똑같이 당해봐야지."

내 동생 하나. 내 유일한 안식처. 내 유일한 행복.

감히 하나밖에 남지 않은 나의 가족을 건드린 대가는 매우 크다.

그저 고통을 주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희망이라는 이름의 장작을 집어넣는다.

"내가 한번 잃어봐서 아는데 희망이 큰 만큼 절망도 커지더라고."

희망이라는 장작은 절망이라는 불꽃을 더욱 화려하게 피워내는 법이니까.

"뭐. 흑마력도 만능은 아니니 언젠가 죽긴 할 거야. 그때까지 잘 즐겨보라고. 흐흐"

"우어어어어."

그렇게 8호의 신음인지 절규인지 모를 소리를 뒤로한 채 안가를 빠져나온다.

"어둑시니의 위치가.....오늘안에 끝내려면 빨리 움직여야겠네."

동생에게 빨리 돌아가겠다 약속했으니 지체할 시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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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인근의 한 야산.

가장가까운 마을이 차로 1시간 이상 걸릴 정도로 오지에 있어 사람의 흔적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곳.

그렇기에 오히려 사람이 숨기엔 가장 적당한 장소이기도 하다.

"연락 두절?"

청부살인조직인 어둑시니 또한 이런 지리적이점으로 인해 먼과거부터 이곳을 본거지로 사용했다.

"네. 수령님."

그런 어둑시니의 수령인 어둑시니는 직속비서이자 어둑시니 최고의 실력자인 1호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8호가 받은 의뢰는 일반 의뢰 아니었나?"

"네. 한국대 병원에 입원 중인 한윤기업 사장의 외동딸을 처리하는 임무로 이능자와 연관 점은 없습니다."

"마지막 보고는?"

"오늘 새벽 임무실행보고가 마지막이었습니다만 확인해본 결과 목표는 제거되지 않았고 의무보고시간도 십분전에 지났습니다."

"마도구는."

"자폭마도구 또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조직원의 심장에 이식되어있는 자폭마도구는 혹시모를 배신을 방지하기 위해 수령인 어둑시니와 1호 또한 발동 및 사용 여부를 알 수 있게 설계되어있었다.

"한자릿수가 일반의뢰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 연락 두절이라....."

암살의뢰를 받다 보면 실패하는 경우도 종종 있고 그 와중 목숨을 잃는 경우도 분명 있다.

하지만 한자릿수 조직원은 다르다.

어둑시니 내에서 한자릿수가 가지는 의미는 절대 가볍지 않다.

한자릿수는 그저 이능을 다룰 줄 안다고 달수 있는 것이 아닌 자리.

자신의 이능을 능숙하게 다뤄야 되는 것은 물론 충분한 경험을 쌓고 실력을 증명해야 겨우 한자릿수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있다.

그야말로 정예 중의 정예인 한자릿수.

그런 한자릿수 조직원이 임무를 실패한 것도 모자라 연락이 두절되었다.

생각할수 있는 경우는 두 가지.

임무를 내팽개치고 탈주했을 경우.

이는 자신의 목숨줄이 조직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제외.

다른 하나는 자폭장치를 쓸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제압당해 의식을 잃은 경우.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어둑시니는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8호의 자폭마도구를 발동시키고 지금 대기 중인 한자릿수를 전부 모아라."

"네. 알겠습니다."

어둑시니의 굳은 표정을 본 1호는 반문 없이 바로 명령을 수행하려 했지만.

쿠궁!

왜애애앵.

그들의 대처는 이미 한발 늦어 있었다.

갑작스런 폭발음과 직후 울리는 싸이렌에 1호는 곧바로 경비실에 연결했다.

"무슨 일이냐!"

[입구에서 폭발확인! 초소와 입구경비들과 연락이 두절 되었습니다!]

"즉시 대비태세로 전환하고 전투원들 전부 소집해라!"

[네!]

"쯧. 한발 늦었나."

1호의 지시를 옆에서 듣고 있던 어둑시니는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의 위치를 들켰다는 것 자체만으로 지금 상황의 심각함을 인지한 것이다.

그옆을 따라붙으며 현인원현황을 보고하는 1호.

"한자릿수는 저를 제외하고 다섯, 두자릿수 서른, 세자릿수는 백명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한자릿수가 다섯이나 있어서 다행이군. A8지점에서 상대한다."

"네."

A8지점은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해 만들어 놓은 함정지대. 숲의 한가운데 있고 여러 기관들이 깔려있어 암살자가 싸우기엔 최고의 지형이다.

한국에서 가장 큰 조직중 하나답게 어둑시니가 지령을 내린 지 채 3분도 지나지 않아 모든 준비를 마친 조직원들.

얼마지나지 않아 유인을 위해 갔던 조직원들이 돌아오고 이내 습격자로 예상되는 인물이 .

슥.

어둑시니는 준비를 위한 수신호를 보낸 후 앞으로 나섰다.

더벅머리에 추리닝상의와 청바지를 입고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외모의 남자.

지극히 평범하디 평범한 인상에 숫자도 하나였지만 어둑시니는 방심하지 않았다.

이능사회는 숫자의 유리함이 통용되지 않는 곳이니까.

"여기까지 온 걸 봐선 우리는 자기소개를 안해도 될 것 같고. 넌 누구지?"

"....다 모였나. 대부분이 오러. 흑마력도 몇명. 얼추 백 명 조금 넘는군."

남자는 어둑시니의 말을 무시한 채 주변을 둘러보며 혼잣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너희에게 별 악감정은 없어. 너희들이 암살을 하던 범죄를 저지르건 내 알 바 아니니까. 내가 딱히 정의의 사도인 것도 아니고 나도 남말할 처지는 아니니까."

스윽.

"그런데 너희가 살아있으면 어떤식으로든 내 주변이 시끄러워질 게 뻔하니까 어쩔 수가 없네. 동생 친구가 죽는 걸 지켜보기만 하는 것도 좀 그렇고."

남자가 오른팔을 앞으로 뻗는 행동을 하고 있었지만 어둑시니는 가만히 지켜만보고 있었다.

말이란 곧 정보.

지금은 적이 어떠한 정보를 흘릴지 모르니 일단 떠들도록 내버려둔다.

물론 자신감이 생각의 저변에 깔려있기에 행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적이 아무리 강해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실력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

하지만

"그러니까 너희는 편히 보내줄게."

쿠구구궁.

그의 자신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대기가 떨린다.

'아니. 대기가 아니라....'

자신의 부하들중에서도 다루는 인원이 있었기에 꽤나 익숙한 힘.

흑마력. 자연상태로 존재하는 흑마력이 날뛰고 있었다.

"쳐라!"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어둑시니가 명령을 내렸지만,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후웅.

떨리던 흑마력이 내밀어져 있던 남자의 손에 순식간에 빨려들어갔고.

{Lullaby(럴러바이).}

이스트헌터스토리 중간보스, 죽은자들의 왕 1페이즈 입장패턴. 즉사기. 럴러바이(자장가).

화려한 효과도 강력한 파괴력도 없었다.

그저 조용하고 차분히.

털썩.

풀숲을 뛰쳐나오던 조직원, 나무에서 뛰어내리던 조직원, 땅밑에서 튀어나오던 조직원

털썩.털썩.털썩.

모두에게

털썩.털썩.털썩.털썩.털썩.털썩.

죽음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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