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속 중간보스에 빙의했다-15화 (16/60)

EP.15 치료

올리버 램파트.

자랑스러운 퀸즈가드의 수장이자 여왕에게 마스터 나이트라는 칭호를 수여 받은 명실상부한 영국의 최강자.

최강의 방패, 영국의 수호자, 걸어 다니는 요새, 푸른 성벽 등 수많은 별명을 지니고 있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또 명성에 비해 행동거지는 검소하기 그지없어서 모든 기사의 모범이자 우상으로 취급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그에게도 한 가지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것이 있었으니.

바로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

그 어떠한 편법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만 차근차근 쌓아온 세월의 역사.

기초부터 탄탄히 다져 쌓은 그의 실력은 철옹성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지금까지 그의 실력은 그의 믿음을 깬 적 없었고 앞으로도 깨질 일이 없을것이라 확신했지만

"아아악!"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의 확신이 깨지고 말았다.

"흐으읍!"

침대에 쓰러진 채 검은빛을 뿜어대며 비명을 지르는 가연과 그녀의 곁에서 푸른빛을 뿜으며 검은빛을 억제하는 올리버.

"크으윽. 어째서 흑마력이!"

올리버는 사력을 다하여 흑마력을 억누르면서도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흑마력이 모조엘릭서에 반응을?

흑마력은 다루기 까다롭기에 마력과 달리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않는 이상 다룰수 없는 힘.

모조엘릭서가 아무리 만능의 비약이더라도 흑마력과의 접점은 없었다.

그런데 왜?

"흐으윽!"

점점 힘이 빠져가는지 가연의 비명은 점차 줄어들어 신음소리로 바뀌어가는 것을 듣고 올리버는 안 그래도 좋지 않은 표정을 더욱 굳혔다.

"정신 차려야 하네!"

지금 가연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면 날뛰는 흑마력이 가연의 신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가연의 귀에는 올리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파. 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

난생 처음 겪는 고통.

온몸이 터져나갈 듯한 격통은 가연의 사고를 완전히 마비시켰다.

'엄마, 아빠.....'

결국 한계를 넘어선 고통으로 인해 희미해져 가는 가연의 의식.

'하나야.....'

희미해져 가는 사고속 스처가는 얼굴들.

'누리 오빠.....'

그리고 후회.

'이럴 줄 알았으면 연애나 해볼걸......'

'......'

'......'

'......'

'......?'

후회와 함께 죽음을 기다렸지만

'....어라?'

어째서인지 기다리던 죽음은 찾아오지 않고 오히려 의식이 또렷해진다.

그토록 죽을 것 같던 격통도 어느샌가 사라져있었고 시끄럽게 들려오던 부모님의 외침과 올리버씨의 말소리도 어느새 멈춰있었다.

힘이 빠져 눈조차 제대로 뜨기 힘들었지만 무슨 일인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억지로 눈을 떠본다.

'올리버씨?'

겨우 뜬 시야에 처음으로 보인 것은 자신의 곁에 서있던 올리버씨.

치료를 시작할 때부터 가장 가까이 서 있었기에 당연한 일이었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표정이 왜 저러시지?'

바로 그의 표정.

정말 사람이 맞나싶을 정도로 내내 한톨의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았던 올리버씨.

그랬던 그의 무표정이 깨진 채 얼굴만으로도 느껴지는 당혹스러움을 표출하고 있었다.

그의 뒤쪽에 서 있는 부모님 또한 마찬가지.

이내 부모님과 올리버씨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가연은 겨우겨우 고개를 돌렸고 그곳엔 처음 보는 인영이 서 있었다.

'....그림자?'

인영은 정말 그림자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덮여있는, 빨려들 것 같은 어둠.

얼굴부분마저 어둠으로 덮여있어 정말 그림자가 그대로 일어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뭔가 익숙한데.'

그림자의 체형이 뭔가 눈에 익다.

스윽.

그때 가연을 향해 손을 뻗어오는 그림자.

콰각.

그때 굳어있던 올리버가 인상을 찌푸린 채로 뻗어오던 그림자의 팔을 붙잡았다.

".....넌 누구냐."

나타난 방법도 시간도 알 수 없었다.

인식했을 땐 이미 저 존재가 저 자리에 서 있었다.

공간이동을 했다면 마력의 유동이 있었을 것이고 은신하고 있다 모습을 드러낸 것이면 시야에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저 존재는 말 그대로 올리버의 인식 속에서 '생겨났다'.

"....."

올리버의 물음에도 침묵하는 그림자.

"네놈...."

결국 올리버가 움직임을 취하려는 찰나.

사아악.

그림자의 어둠이 물들듯이 올리버의 몸으로 옮겨가 반항할 틈도 없이 올리버의 몸 전체를 감싸버렸다.

그렇게 순식간에 올리버를 제압한 그림자는 다시금 가연에게 손을 뻗는다.

"가연아!"

가연의 부모가 가연에게 뛰쳐나가려 했지만 레이첼이 그 앞을 막았다.

툭.

그틈에 그림자의 손이 가연의 머리에 닿았고,

쓰담쓰담.

천천히 쓰다듬었다.

".....오빠?"

왠지 익숙한 느낌에 가연은 반사적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툭.툭.

그런 그녀의 말에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머리를 살짝 두드려주고는 나타났을 때처럼 시야에서 지워지듯이 사라졌다.

"가연아!"

그 직후에서야 한웅과 하연은 자신의 딸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다.

쩍. 쩍저적.

그와동시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올리버를 가둔 어둠.

챙그랑!

마치 유리 깨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어둠이 완전히 깨져나가고 자유를 되찾은 올리버.

"....쯧."

속박을 깨트리자마자 자신을 가둔 존재부터 찾았지만, 정체불명의 그림자가 이미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고는 혀를 찼다.

"마스터. 괜찮으십니까."

"음. 괜찮다. 그 그림자는?"

"가연양의 머리에 손을 대고는 곧바로 사라졌습니다."

한웅과 하연이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가연을 살피고 있었지만 가연은 뭔가 정신이 나간 듯 멍하니 앉아있었다.

"가연양. 괜찮은가."

"네? 아! 네! 괜찮아요."

그녀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몸을 확인했지만, 딱히 이상이 있는 곳은 없었다.

"아깐 정말 죽을 것 같았는데...지금은 하나도 안 아파요."

아니. 아프지 않은 것 뿐이 아니라 기운이 넘친다.

살면서 처음 겪는 감각에 가연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 여보. 우리가연이가. 흐윽."

그런 가연의 모습을 보던 하연은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그런 하연의 어깨를 감싸 안는 한웅 또한 겨우 눈물을 참고 있었다.

다른사람이 보면 별거 아니겠지만,

평소 몸을 조금이라도 격하게 움직이면 휘청거리며 몸을 제대로 못 가누던 딸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중간에 사고가 있었던 듯 싶지만 결국 치료가 되었으니 과정은 상관없다.

"감사합니다. 올리버님. 정말 감사합니다."

"......괜찮네."

감사인사를 받은 올리버는 괜찮다 말했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은 듯 미간이 찌푸려져 있었지만 한웅은 아까의 사고 때문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하지만 한웅의 생각과 달리 올리버의 머릿속은 가연의 상태로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단순히 회복된 게 아니다.'

지금 가연은 단순히 코어만 회복된 수준이 아니다.

코어의 손상으로 인해 소모되었던 기력과 약화되었던 신체마저 전부 정상, 아니, 정상 그 이상으로 회복되었다.

모조엘릭서는 분명 뛰어난 영약이지만 코어의 회복과 동시에 몸의 상태를 정상으로 돌릴 수 있느냐, 라고 물어본다면 올리버는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흑마력....아니. 그 그림자.'

원인모를 흑마력이 섞여들어 폭주하던 모조엘릭서.

갑자기 나타난 그림자.

그림자가 나타남과 함께 진정된 흑마력.

가연의 비정상적인 회복.

어떤 연관 점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전부 연결되어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레이첼."

"......."

"레이첼!"

"네? 네!"

올리버의 부름에도 무언가 생각에 빠져있는지 그가 한 번 더 목소리를 높여 부르고 나서야 대답하는 레이첼.

그런 딸의 모습이 신경 쓰였지만 지금은 다른 일이 우선이기에 딸에게 명령을 내렸다.

"방음 마도구를 회수하고 밖에 있는 하나양을 부르도록."

"네. 마스터."

드르륵.

레이첼이 밖으로 나간 후 그는 기뻐하는 가연과 그녀의 부모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몇달전까지만 해도 모조 엘릭서를 타인에게 넘길 생각이 없었다.

퀸즈가드의 수장이된지 딱 20년이 되던 해에 여왕께 하사받은 모조엘릭서.

하지만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그는 이런 외물로 실력을 높이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수치라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모조 엘릭서 또한 사용하지 않고 보관만 하고 있었다.

문제는 모조엘릭서를 하사받은 자리는 공식적인 행사였다는 점.

수많은 이능집단들이 자신에게 거래를 제안해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왕께 하사받은 물건을 한낱 거래로 사용할 수 없는 노릇.

모든 제안을 오는 족족 거절하니 대부분의 집단들은 포기했지만 그럼에도 끈질기게 접촉해오는 곳이 있었다.

결국 참지 못한 올리버는 끈질기게 거래를 제안하는 집단에게 이렇게 선포했다.

'너희의 모든 것을 내놓아라. 그러면 모조엘릭서를 넘겨주겠다.'

당연히 이능사회의 기득권층이 겨우 영약하나 얻겠다고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리 없었으니 끈질기게 들어오던 거래요청은 이후 뚝 끊어졌다.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으나 나머지도 앞에선 그렇다고 대답하고 뒤로 재산을 빼돌리는 파렴치들 뿐.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지나고 딸이 성장하는 모습에 슬슬 은퇴를 생각할 무렵.

어디서 듣고 왔는지 이능력자도 아닌 일반인 부부가 자신에게 모조엘릭서를 청해왔다.

일반인이더라도 자신에게 접촉했다는 것은 사회의 기득권층이 분명할 것이기에 몇 년 전 했던 말을 똑같이 읊어줬다.

'너희의 모든 것을 내놓아라. 그러면 모조엘릭서를 넘겨주겠다.'

하지만 부부의 대답은 자신의 예상과 달랐으니.

'감사합니다!'

단 일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거래를 받아들인 것이다.

부부는 자신들의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바로 다음날 자신들의 재산목록을 정리해 올리버에게 건넸다.

그것을 본 올리버는 혹시 부부가 재산목록을 속인 게 아닌가 싶어 개인적으로 뒷조사를 했지만 나온 결과는 진실이라는 사실뿐.

현금 부터 시작해서, 부동산, 회사지분까지 단 하나도 빼놓지 않았다.

결국 올리버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어째서지.'

'딸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데 그깟 돈이 대수겠습니까.'

부부의 흔들림 없는 눈때문일까. 아님 자신도 딸이 있다는 공감대 때문일까.

올리번는 몇 년 째 방치하고 있던 모조엘릭서를 사용하겠다는 결심을 세웠다.

이런 결심의 결과로 인해 볼 수 있게 된 눈앞의 관경.

"우리딸. 지금까지 고생 많았지."

"고맙다. 고마워."

"엄마아빠. 흐윽."

서로 껴안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 가족을 보고 있으려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나쁘지 않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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