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속 중간보스에 빙의했다-17화 (18/60)

EP.17 치료

"드디어 퇴원이다!!!"

웬 여자 한 명이 기쁜 듯이 소리치고 있었다.

심지어 장소는 대학병원 입구. 수많은 사람이 돌아다니는 입구에서 소리를 치니 당연히 시선이 모였지만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미친년."

그리고 그런 여자 옆에서 부끄러운지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있는 여자.

"그렇게 좋니?"

하나는 소리치는 여자. 가연에게 물었다.

"그럼 좋지 안 좋겠니? 병원에서 나온게 무려 3년 만이야. 3년."

병원을 마지막으로 나갔던 날은 몰래 병원 밖으로 나갔다가 거리에서 쓰러진 날이 마지막.

그때 부모님의 눈물을 본 가연은 병원 밖으로 나가는 것을 완전히 포기했었다.

스읍. 하아.

"그리웠어. 이 매연과 미세먼지 가득한 도시의 냄새."

가연은 병원을 나서자마자 숨을 들이키며 감상을 표현했고 이런 그녀의 꼴값을 옆에서 지켜보던 하나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지랄한다."

"지랄이든 뭐든 나만 행복하면 돼. 후후후"

하지만 해방감을 느끼고 있는 지금의 가연에겐 무슨 말을 하든 통하지 않았다.

"휴우. 마음대로 해라."

결국 그녀를 말리는것을 포기한 하나는 이번엔 화제전환을 시도했다.

"그런데 병원에서 순순히 퇴원시켜줬네. 저번에 보니까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하던데."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내렸던 환자가 갑자기 병이 낫다 못해 신체가 건강해져 퇴원하겠다고 통보해왔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병원에선 경악하며 어떻게든 가연의 몸을 검사해보고 싶었지만 가연의 부모가 허락할 리 없었다.

"지들이 어쩔거야 내가 싫다는데."

다른 환자들을 내걸며 애원도 해보고 재발의 가능성을 말하며 협박도 했지만 이미 병의 원인을 알고 있었고,

올리버에게 이능에 대해 일반인들에게 발설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기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대가도 받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올리버씨를 배신할 순 없지."

사실 정말 이상이 없는지 병원검사를 받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검사를 하다가 어떤사실이 들어날지 모른다.

대가를 지급하려하자 '대가는 당신들의 미소로 충분하다'며 오히려 사고를 막지 못했다고 사과까지 한 올리버씨를 배신할 순 없었다.

"그럼 올리버씨는 바로 귀국하신 거야?"

"응. 엄마아빠가 대접하겠다는 것도 거절하시고 바로 비행기 타러 가시더라고."

몇차례의 확인 끝에 가연이 완전히 회복했다는 것을 확신한 올리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그럼. 레이첼도 돌아간 거야? 인사도 못했는데."

가연의 병실에 매일 찾아왔던 하나는 레이첼과 나름 친분을 쌓았기에 작별인사도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아. 레이첼은...."

부릉.

그때 가연과 하나앞에 정차하는 자동차 한 대.

철컥.

"어? 레이첼씨?"

"안녕하십니까. 하나씨."

운전석에서 문을 열고 내린 사람은 돌아간줄 알았던 레이첼이었다.

"올리버씨랑 같이 안 가신 거에요?"

"응. 임무 때문에 한동안 한국에 머무르신대."

가연의 대답에 하나는 기뻐했다.

병원에 있는 2년 동안 대부분의 친구와 연락이 끊긴 그녀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마음이 꽤 잘 맞는 레이첼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와! 잘됐다. 앞으로 잘 지내봐요. 레이첼씨."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잠시 말을 머뭇거리던 레이첼은 가연에게 고개를 숙이며 갑자기 사과를 한다.

"죄송합니다."

"네? 뭐가요?"

"그림자가 병실에 난입했을 때 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임무는 핑계였다.

가연이 모조엘릭서를 마셨던 날 정체불명의 그림자가 침입했을 때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그거야 가연이 부모님을 지키려고...."

하나가 레이첼의 항변을 해주었지만 레이첼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때 가연의 부모를 지키려 했다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와 싸웠어야 됐다.

만약 그림자가 가연의 부모마저 노렸다면 아버지조차 저항하지 못한 힘을 자신이 어떻게 막겠는가.

"기습을 해서라도 가연양과 두 분을 먼저 대피시켜야 했습니다."

그때 그림자는 가연에게만 관심을 주고 자신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어쩌면 기습에 성공해서 틈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가연의 부모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전 그냥 겁이 났던 겁니다. 아버지조차 제대로 저항조차 못하고 제압당해버리는 압도적인 힘에."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대에게 지레 겁을 먹고, 스스로 변명하며, 어쩌면 있었을지도 모를 기회조차 차버렸다.

"더 빨리 사죄드렸어야 되는데 너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같이 돌아가자는 아버지의 말에 반대하고 이곳에 남기를 자원했다.

명분도 있었다. 치료 도중 난입했던 정체불명의 그림자.

올리버를 순식간에 제압할 정도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정체를 알수 없는 존재.

먼 타국이더라도 그 정도의 강자는 일단 조사해두는 것이 맞다.

기사로서의 명예가 걸린 일이기에 올리버도 거절할 수 없었다.

"저는 정말 괜찮은데...."

"사실 저 스스로도 용서가 안됩니다."

스스로 명예로운 기사를 자처하는 주제에 겁을 먹고 싸움에서 도망치다니.

퀸즈가드로서 아니, 그 이전에 기사로서 수치이다.

"가연양의 옆을 지키면서 그림자의 정체를 추적하려고 합니다."

그림자를 찾아내 도전하여 명예를 회복한다.

가연의 부모인 한웅과 하연은 미안해하면서도 내심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가연이 퇴원했으니 더 오랜 시간 딸과 같이 시간을 보낼거지만 자신들은 기업을 이끌고 있는 입장.

레이첼처럼 든든한 호위가 옆에 있으면 그들도 안심하고 사업을 이어나갈 수 있다.

"그러니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네....."

그런 레이첼을 보며 가연과 하나는 겉으로 대답하면서도 속으로는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냐하면 둘은 벌써 그림자의 정체를 알고 있었으니까.

-----

가연이 모조엘릭서를 사용한날 저녁.

레이첼이 올리버를 마중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고 가연의 부모님이 잠시 집으로 돌아갔을때 하나는 가연의 연락을 받고 병실에 찾아왔다.

"아저씨, 아줌마랑은 얘기 많이 했어?"

"응. 몇 년 치 얘기를 한꺼번에 한 것 같에."

가연의 부모도 올리버를 마중하려 했지만, 딸과 시간을 보내라며 마중을 거절했다.

그래서 방금 전까지 밀린 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정리할 것이 있어 집으로 돌아간 상황.

"하여간 오빠는 귀찮게 이 시간에 부르라는 거야. 그냥 전화로 말하면 될 것이지."

겨우 전화를 받은 오빠는 가연이 혼자 있을 때 가연의 병실로 가서 자신을 부르라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럼 오빠부른다?"

"아. 잠깐."

하나의 말에 가연은 잠시 거울을 보며 자신의 상태를 정돈하고 나서야 하나에게 말했다.

"응. 됐어."

"....."

이제는 자신의 눈길도 신경쓰지 않는 그 모습에 하나는 차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가연은 모른척을 하며 하나를 재촉했다.

"뭐해. 빨리 오빠 안 부르고."

"....쯧."

뚜르르. 뚜르르.

"응. 오빠. 지금 오면 돼. 응. 응."

뚝.

하나가 전화를 끊자마자 병실의 구석에 진 그림자 속에서 누리가 솟아나듯이 나타났다.

"오..."

"오빠! 오랜만이에요."

먼저 선수를 치고 오빠에게 말을 걸자 뒤통수에서 무시무시한 눈길이 느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간다.

"아 아까 봤으니까 오랜만은 아닌가?"

"응? 아까?"

"네. 아까."

가연의 눈에 서려 있는 확신을 느낀 누리는 부정하지 않고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하나가 말해줬니?"

"그냥 뭐랄까...."

스윽.

잠시 말을 멈춘 그녀는 그의 손을 잡더니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려놓고는 쓰다듬듯이 움직였다.

"음. 딱 이런 느낌이었달까요?"

"풉. 뭐야 그게."

"헤헤."

그녀의 실없는 말에 누리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둘 사이에 흐르는 달달한 분위기.

그리고 그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한명.

"....오빠 시간 없다며."

뒤에서 들려온 하나의 목소리에 누리는 어째서인지 등 뒤로 소름이 돋았다.

"어, 어 맞다. 가연이한테 사과할게 있어."

"네? 저요?"

누리는 가연에게 모조엘릭서가 폭주한 이유를 말해주었다.

자신이 설치한 마법진, 그로인한 흑마력의 잔향, 잔향과 동조해 폭주한 모조엘릭서.

"미안하다. 네가 고통받은 건 나 때문이야."

꾸벅.

누리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자 가연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에요! 결국 구해주신 건 오빠잖아요."

애초에 그가 이 병원에 없었다면 저번 습격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테고 결국 오늘 치료받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제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해주셨잖아요. 오히려 제가 감사드릴 일이죠."

겨우 잠깐 아픈 거 가지고 생명의 은인 원망할 리 없었다.

"전 괜찮아요."

"아직 한 가지 더 문제가 있어."

괜찮다 이야기하는 가연의 말에도 누리는 고개를 저었다.

"모조엘릭서에 섞인 흑마력. 그게 네 신체에 변화를 줬어."

"변화요?"

사실 이 사실을 두고 그녀에게 말할지 말지 고민했었다.

신체가 흑마력에 적응을 했을뿐, 흑마력이 담겨있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회에 걸릴 일은 없었다.

모른 채로 살아도 문제는 없겠지만.....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깐."

가연은 아니라고 하지만 분명한 내 잘못으로 일어난 일.

나에겐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 그녀가 결정 내리는 데로 받아 드릴뿐.

"그러니까 제 몸이 흑마력이란거에 적응했고 교회라는 곳은 흑마력을 사용하는 흑마술사를 적대한다는 거죠?"

흑마력과 흑마술사, 그리고 교회와의 관계를 전부 이야기해줬다.

"맞아. 그래도 흑마력이 쌓이진 않았으니 교회엔 들킬 일은 없을 거야. 혹시 걱정되면 내가 아티팩트를 구해줄게."

"몸에 이상은 없는 거죠?"

"으음. 이상이라기보단 오히려 몸이 강화됐다고 해야 되나."

흑마력을 타고나지 않은 사람이 대량의 흑마력을 억지로 신체에 받아들이면 이상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가연이 받아들인 것은 모조엘릭서에 섞인 흑마력.

모조엘릭서의 효능이 가연의 신체가 흑마력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신체를 재구성하면서 전반적인 신체능력이 강화되었다.

아마 누리가 조금만 더 늦게 나타났더라도 흑마력이 가연의 내부에 완전히 자리 잡았을 것이다.

"일반적인 마력을 쌓지 못한다는 것 빼곤 문제없을 거야."

물론 이건 나의 생각일 뿐. 미래는 알 수 없는 법이다.

만약 그녀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내가 책임질게."

"뭐?!"

"채, 책임이요?"

앞뒤에서 들려오는 경악에 찬 목소리.

응? 앞뒤?

"....가연이는 그렇다 치고 너는 왜 놀라?"

"책임이라니 무슨 소리야!"

탈탈탈.

누리의 말에도 하나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지 누리의 멱살을 잡고 탈탈 털어댔다.

"아! 어지러워 이년아! 당연히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져야지!"

"아, 아. 그 책임?"

"....쳇."

옆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지만 하나의 목소리에 묻혀 알 수 없었다.

"마력을 못 쌓는다는 건 저는 그....이능이란걸 못쓴다는 건가요?"

"정확히 말하자면 일반적인 마력을 못쓸 뿐, 흑마력은 사용할 수 있어. 물론 추천은 안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흑마력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흑탑때문에 흑마력사용자의 이미지 시궁창에 박혀있고 교회에게 적대 받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실렌에 의해 흑마술사들의 집단인 흑탑과 교회가 협력하는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건 수뇌부의 이야기일 뿐.

구성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랫계층은 모른 채 희생당하고 있다.

"만약 배우고 싶다면 알려줄게."

하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기왕 알려줄 거 확실히 알려주는 게 낫겠지.

"저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