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속 중간보스에 빙의했다-18화 (19/60)

EP.18 복수

"미끼를 물었습니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좋아. 시작해."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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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시니가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고?"

"네. 보고된 바에 의하면 다시 의뢰를 받기 시작했답니다."

"하."

너무 화가 나면 오히려 웃음이 나나다고 했던가.

비서의 보고를 받던 본부장은 실소를 감출 수 없었다.

"어지간히 얕보였나 보군. 이 현강식이가 말이야."

한국 재계서열 3위이자 한국의 이능사회를 떠받치는 세 개의 기둥.

삼주 중 세 번째 기둥. 환현가.

그런 높디높은 환연가의 유력한 소가주 후보 중 하나인 현강식.

표면적인 사회에서도, 이능력자들의 사회에도

재력으로나, 권력으로나, 그리고 무력으로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이 바로 그였다.

"감히 나를 말이지."

빠드득.

어조는 평탄하였으나 그의 손아귀에 가루가 된 의자의 손잡이가 현강식의 심경을 대변해줬다.

자신의 의뢰를 받아놓고 잠적한 어둑시니가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즉.

"완전 개무시하겠다 이건가?"

의뢰를 실패한 주제에 환현가에 일언반구도 없이 활동을 재개했다는 사실은 환현가를 대놓고 무시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솔직히 말씀드려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청부조직에게 신뢰가 깨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들 스스로 알고 있을 텐데 말입니다."

어둑시니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은 어려울 것 없다.

그저 환현가측에서 이번 일에 대해 몇 마디만 흘리면 어둑시니의 신뢰도가 땅에 추락할 것이고 자연히 의뢰가 끊길 것이다.

의뢰가 끊긴 청부조직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의도 따윈 상관없어. 감히 환현의 행사를 무시했으니 우리는 대가를 치르게 해주면 돼."

"그럼 정보를 퍼트리겠습니다."

"아니. 일단 기다려. 겨우 그거론 모자라지."

하지만 현강식은 겨우 조직을 무너뜨리는 정도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이것은 환현에 대한 도전이나 마찬가지다.

"그동안 너무 조용히 있긴 했지."

철저히 부수고 무너트려 짓밟아 본보기를 보인다.

"가문차원에서 움직이려면 가주님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유력한 소가주 후보라도 결국은 후보일 뿐.

정식 소가주가 아니기에 정식으로 가문의 이름을 걸고 행동하려면 가주의 허락이 필요하다.

"쯧. 빨리 그 새끼를 치워버리던가 해야지."

자신과 소가주의 자리를 다투는 그놈.

그놈만 없다면 자신이 소가주가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리고 만약 이사실이 새어나가면 퀸즈가드에서 움직일 겁니다."

만약 한가연을 죽이라고 의뢰한 주체가 환현이란 것을 알면 분명 퀸즈가드에서 항의가 들어올 것이다.

환현가문이 아무리 한국의 기둥이라 불리며 대단한 위세를 가졌어도 전 세계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퀸즈가드에 비해선 끗발이 딸리는 게 사실이었다.

"상관없어."

그럼에도 현강식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곧 있으면 '연구'가 완성된다."

'연구'만 완성되면 소가주가 되는 것은 물론 퀸즈가드를 제치고 세계정상의 자리에 설 수 있다.

고지식한 놈들답게 기사들은 정식으로 움직이는데도 한세월이다.

그때쯤이면 이미 연구가 완성된 후가 되겠지.

"크리스마스의 '약속'준비는 잘 되고 있겠지?"

그러니 지금은 연구가 발표된 이후를 위한 인맥관리가 무엇보다 최우선이다.

"네. 차질없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좋아. 그럼 아버지와 약속을 잡도록."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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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고 빨갛게 물들었던 낙엽이 지고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아 가을이 가고 겨울이 시작됨을 알리는 계절.

예상보다 일찍 찾아온 추위에 초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두꺼운 겉옷으로 꽁꽁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추위에도 길거리의 사람들 표정이 좋아 보이는 이유는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여기가 데이트 명소라 커플천지이기 때문이지."

"....시발."

하나의 뼈 때리는 말에 가연은 나지막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여간 오빠가 이런 입에 걸래 문 모습을 봐야 되는데."

"이년이 진짜? 한번 해보자는 거니?"

가연이 노려보며 말해도 하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딴청을 피웠다.

"난 진실만 말했을 뿐인데?"

"네년만 아니면 오빠하고 진작에 진도 나갔어."

가연이 퇴원하고 두 달이 넘게 지났다.

퇴원날 누리가 흑마력을 익히고 싶냐고 했던 물음에 가연은 배우고 싶다, 라고 대답했다.

사실 누리도 자신이 말해놓고도 걱정되는 건 매한가지였지만 그녀가 원하니 누리가 거절할 수 없는 일.

하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안 그래도 레이첼때문에 자주 시간도 못내는구만."

바로 레이첼.

레이첼을 피해 다니는 누리의 사정상 레이첼이 자리를 비울 때만 누리와 만나 배우는 중인데다가,

"빌어먹을 년. 친구 연애사업에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훼방만 놓고. 씨."

그럴때마다 귀신같이 눈치채서 따라오는 하나덕분에 가연은 누리오빠와 좋은 분위기를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우리 오빠만 아니면 도와준다니까?"

"지랄."

친구의 개소리를 무시하고 손목시계를 들어 시간을 확인한다.

"레이첼씨가 올 때가 됐는데."

오늘은 하나의 수능이 끝난 축하기념 겸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기로 한 날이다.

원래는 누리도 불렀으나 바쁜 일이 있다고 빠져 여자 셋이 모이기로 했다.

"아. 저기 오시네."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었지만 한눈에 레이첼이란것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웅성웅성.

"와. 미쳤다."

"무슨 모델인가?"

거리의 모든 시선이 레이첼에게 쏠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딱히 복장이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청바지에 셔츠, 외투로 검정 더블코트에 평범한 운동화까지.

복장 자체는 평범 그 자체였지만 옷걸이가 너무 압도적이라 패션쇼를 보는듯했다.

"야. 미쳤냐?"

"어디 보냐?"

"눈깔아라."

의도치 않게 몇몇 커플에게 불화를 만들어버리고 말았지만 레이첼은 주변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가연과 하나에게 인사했다.

"하나씨, 가연양.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약속시간보다 빨리오셨는데요."

"레이첼씨 진짜 예뻐요!"

"두분 앞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전혀 칭찬 같지 않군요."

"에이. 레이첼씨 또 빈말하신다."

그런 둘의 반응에 레이첼은 익숙한 듯 쓴웃음만 짓고 별말 하지 않았다.

얼마전에 눈치챈 사실이지만 이 둘은 자신의 외모에 대한 평가가 심히 박했다.

실제로 자신이 오기 전까지 거리의 사람들의 시선은 둘에게 향해있었으니까.

하지만 여중 여고를 나온 하나와 병때문에 학교조차 제대로 나오지 못한 가연은 남자의 시선에 대한 눈치가 매우 모자랐다.

속으로 걱정스러운 한숨을 내쉬는 레이첼.

'후우. 같이 다니면서 직접 알려주는 수밖에 없겠군.'

"그럼 가실까요."

쇼핑몰에 가서 거부하는 레이첼에게 억지로 옷을 입히며 쇼핑하고,

유명한 디저트카페에 가서 먹지도 않고 사진만 주구장창 찍으며,

맛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건배!"

마지막으로 칵테일바에서 건배를 하고 수다를 떤다.

그렇게 보기도 좋고 맛있기까지 한 칵테일에 점점 취해갈 무렵.

웅성웅성웅성.

주변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뭐지?"

셋은 소란스러운 주변을 둘러보고는 다른 손님들의 시선이 전부 한곳으로 향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속보입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해있는 곳은 바의 벽에 걸려있는 티비.

티비화면에서는 뉴스 속보하나가 송출되고 있었다.

[현재 서울 인근의 청량산에서 거대한 폭발이 관측되었다고 속보가 들어왔습니다.]

[아직 정확한 정황이 밝혀지지 않았으면 그 폭발의 규모가 위례동에서도 관측될 정도로 거대해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한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청량산에는 폭발이 일어날 만한 시설이 없고 폭발의 규모도 절대 사고로 일어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라고 전했습니다.]

"뭐야. 그럼 누가 폭탄이라도 터트렸다는 거야?"

"설마 테러?"

"에이. 설마 한국에 무슨 테러야."

"그럼 뭔데?"

설마하고 있긴 했지만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일말의 불안감을 엿볼 수 있었다.

청량산은 서울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

만약 저 폭발이 테러가 맞다면 서울도 위험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진짜 테러일까?"

"설마 아니겠지."

가연과 하나 또한 불안하긴 마찬가지.

"레이첼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금이라도 불안을 풀어보기 위해 가장 연장자인 레이첼에게 질문을 던지는 하나.

"......"

하지만 레이첼은 하나의 질문을 듣지 못했는지 굳은 표정을 한채 뉴스에서 반복하고 있는 폭발장면을 보고 있었다.

"레이첼씨?"

"....먼저 가봐야겠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덜컹.

"레이첼씨?!"

타다닥.

가연의 부름을 무시하고 레이첼은 밖으로 뛰쳐나갔다.

'마법이었어.'

등산로에서도 한참 벗어난 산 중턱에서의 폭발.

일반인들의 눈으로 보기엔 그냥 폭발로 보이겠지만 레이첼에겐 똑똑히 보였다.

흣날리는 연기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마법의 잔향.

'폭발의 규모로 보아 최소 마법진을 사용한 고위마법사 이상.'

머릿속으로 지금 한국에 있을만한 고위마법사가 몇몇 스쳐지나갔지만

'...그림자.'

어째서인지 저 폭발이 그때 그 그림자와 연관 있을 거란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복잡해지는 머릿속에 레이첼은 타고있는 바이크의 속도를 높이며 현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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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시각.

강남의 한 마천루.

입구부터 경비가 삼엄한 이 건물은 오로지 허락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비밀스러운 장소였다.

둥! 둥! 둥!

건물내부의 한 공간에선 강렬한 음악이 내부를 울리며 분위기를 달구고 있었다.

둥! 둥! 둥!

그리고 분위기에 취한 것인지 음악에 취한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에 취한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주변은 신경도 쓰지 않은채 노골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스윽, 스윽.

추릅. 쭙. 쭈릅.

서로 몸을 비벼대며 더듬고, 키스하고, 그러다 짝지어서 혹은 무리를 이뤄 넉넉히 준비되어있는 개인 공간으로 사라진다.

"정말 본부장님 수완이 대단하십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그런 분위기와 사람들을 중심에서 주도하고 있는 현강식.

"요즘 분위기도 안 좋아서 거래 자체가 없는데 어떻게 구하시는 건지."

"후후. '물건'은 언제든 저한테 말씀하시면 구해 드리겠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본부장님. 하하."

그렇게 한창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을 때 현강식의 비서가 다급한 얼굴로 현강식을 찾았다.

"본부장님."

"왜?"

"연구소에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뭐?!"

덜컹!

현강식이 의자를 밀치고 일어나며 소리치자 주변의 시선이 몰렸지만, 그에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갑자기 연구소에서 폭발이라니.

"그게 무슨 개소리야?"

"아무래도 습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개소리....!!!"

결국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잿덜이를 집어 던지려는 찰나.

쾅!

"동작 그만!"

닫혀있던 입구가 거칠게 열리며 우르르 몰려들어오는 일단의 사람들.

그중 선두에 서 있던 중년의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걸걸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마약범죄수사대에서 나왔습니다! 여러분을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현행범으로 체포하겠습니다!"

꺄아악!

야 내가 누군 줄 알아!

가만있어!

경찰들은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체포하기 시작했고 중년의 남자는 그런 난리 통의 사이를 지나 현강식의 앞으로 다가갔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지체 높은 현강식본부장님 아니십니까?"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지?"

"뭐하는 짓이긴요. 저는 제일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너희 자신 있냐?"

현강식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듯이 말했지만, 중년의 남자는 능글거리는 미소를 지우지 않고 대답했다.

"뭐. 자신있는건 모르겠고 증거가 좀 많긴 하네."

주변에는 수상해보이는 유리병과 주사기가 널려있었다.

"아. 혹시라도 '힘'은 쓸 생각 마쇼. 당신네 가주에게도 이미 보고가 들어갔으니까."

"....어떤새끼야. 강태. 그 새끼냐?"

현강태. 자신관 소가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환현가의 첫째.

"글쎄? 클클."

철컥.

남성은 강식의 물음에도 비웃음을 날리며 수갑을 채워 끌고 갔다.

그리고 강식이 체포됨과 동시에 사건 현장을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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