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 복수
오러든 마나든 신성력이든 흑마력이든,
이능을 익히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능이다.
물론 흑마력을 제외하곤 필사적으로 노력하면 익히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으나 재능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
아무리 노력해도 재능없는 자는 재능있는 자를 따라가지 못한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개소리.
이말을 한 사람은 분명 진짜 천재를 만나보지 못한 게 분명하다.
재능 없는 사람이 죽을둥살둥 한걸음 나아갈 때 천재는 놀면서 다섯 걸음 나아가고,
재능 없는 사람이 피를 토하며 두 걸음 나아갈때 천재는 약간의 노력만으로 열 걸음을 나아간다.
천재의 재능은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인 절망감을 심어준다.
하지만,
만약 재능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능에 재능이 없는 일반인들이 몇 가지 조치만으로 이능을 수월하게 다룰 수 있게 된다면.
이능군단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의문에서 시작한 것이 청량산 연구소.
물론 처음엔 실패의 연속이었다.
이능을 익히지 못한 생물에게 이능을 억지로 주입하면 신체를 파괴하며 엄청난 고통을 줄 뿐, 이능이 몸속에 정착하지 못했다.
포기하지 않고 이런저런 방법을 바꿔가며 실험하기를 연 단위가 넘어갈쯤 해결의 실마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났다.
바로 실패한 실험체들.
실패한 원인을 관찰하기 위해 죽이지 않고 방치했던 실험체중에 이능에 적응한 개체가 생겨난 것이다.
"하...하지만 그 이유를 아, 아직 알아내지 모, 못했고...끄으윽 저, 정신도 온전치 못해서...."
"그래서 실험체의 개체 수를 늘려 속력을 높이려 했다?"
"네, 네! 그렇습니다."
원래는 지방의 교도소장에게 뇌물을 먹여 사형수를 빼돌렸지만, 성과를 보자 몸이 달아 참지 못한 현강식이 실험체를 늘리라고 지시했다.
"그, 그래서 뒷골목 조직에 돈을 주고 의뢰를....으아아악!!"
꾸욱.
누리는 발에 지그시 힘을 줬다.
"사, 살려주십시오오오오! 제바아아아아악!!"
발 밑에 머리가 깔려 있는 남자는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고통에 애원했다.
"너는 어땠지? 저들이 살려달라 할 때 살려줬나?"
"저도 어쩔수 없이이이이이!!!"
"그래?"
꾸욱.
콰직!
"그럼 나도 어쩔 수 없지."
토마토처럼 터져나가는 남자의 머리.
때마침 상태를 체크하러왔던 연구원 한명을 심문한 누리는 일의 전말이 어떻게된 건지 대강 알 수 있었다.
누리는 발바닥에 묻은 살점과 피를 바닥에 문지르며 고민했다.
"....마인? 아니면 각성약인가?"
아직 결과물이 나오진 않았지만 이제 성과가 나오는 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만약 지금 자신이 이곳에 찾아오지 않고 원래의 스토리대로 흘러갔다면 이 연구의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지 생각해보았다.
예상되는 게임 속 요소는 마인 또는 각성약.
사람이 오염된 에너지를 품게 되어 이성을 잃은 괴물, 마인.
실패 확률이 크지만 성공만 한다면 일반인을 순식간에 이능력자로 만들어주는 각성약.
"어쩌면 둘 다일지도."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아니, 앞으로도 알 수 없게되었다.
이곳은 사라질 테니까.
"스토리가 좀 꼬이겠지만....."
아니. 좀 많이 꼬이겠지만, 어차피 둘다 주인공이 미래에 해결하는 요소니까 미리 없앤다고 최종보스 공략에 큰 차질은 없겠지.
방금전 연구원에게 알아낸 바로는 격리시설 바깥에 있는 피해자는 실험이 진행중인 세명.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세 명이 한곳에 모여있다는 점이다.
"일단 여기부터 해결하고."
쿵.
누리가 의지를 담아 발을 구르자 흑마력이 일을 하기 시작한다.
철컹.철컹.철컹.철컹.철컹.철컹.
퍼져나간 흑마력이 격리시설의 모든 문을 열어젖혔다.
"으아아아악!!"
"끄아아아악!!"
"꺄아아악!!"
기절해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깨어있는 사람들은 빠짐없이 비명을 내뱉고 있다.
비명소리가 가득 차기 시작하며 복도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흐음. 잘되려나 모르겠네."
하지만 이런 아비규환 속에서도 누리는 아무렇지 않은 듯 집중하기 시작한다.
지금 사용할것은 즉사기인 럴러바이의 응용.
럴러바이는 생명력을 담는 코어의 활동을 정지시켜 즉사시키는 기술이지만,
여기서 정지시키는 타겟을 코어를 제외한 몸속의 마력을 바꾼다.
성공한다면 저들의 몸속에서 날뛰는 마력을 잠재울 수 있겠지만, 까닥 잘못했다간 피해자들을 몰살시킬 수도 있으니 집중에 집중을 더한다.
혹시 몰라 평소엔 생략하던 영창까지 짧게나마 외운다.
"인생은 한바탕 봄 꿈."
김누리 오리지널.
"{일장춘몽}"
후웅.
누리의 의지대로 재구성된 흑마력이 퍼져 나갔다.
털썩.털썩.털썩.털썩.털썩.
그러자 비명이 순식간에 그치고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 왔다.
"후우."
숨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다행히 예상대로 작동한듯싶다.
쉬지않고 다음 마법을 사용한다.
"{portal(포털).}"
포털을 열고 들어가지 않고 기다리자 반대편에서 미리 대기하던 사영과 그의 수하들이 나타나 무릎을 꿇었다.
"주인님."
"여기 수습하고, 아직 셋이 남았으니 사영 너는 대기하고 있도록."
"네. 주인님."
"아. 혹시 들키면 그냥 죽여도 돼."
"알겠습니다."
남아있던 어둑시니의 조직원들은 이미 힘으로 복종시킨지 오래.
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수습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연구원에게 알아낸 연구실로 이동한다.
-----
"1번 앰플 반응 없습니다."
"2번 앰플도 반응 없습니다."
연구원들의 보고를 받던 연구소장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심했다.
첫성공 사례를 발견한지 반년.
그뒤로 몇가지 성공 사례가 또 나타나긴 했지만, 그 원인을 아직 확정 짓지 못했다.
처음엔 고통이 성공의 열쇠인줄 알았다.
모든 실험체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은 고통 뿐 이었으니까.
"흐음....고통은 역시 아닌건가."
하지만 여러 약물을 사용하여 실험체에게 다양한 고통을 느끼게 했음에도 이렇다할 성과가 없었다.
"3번은?"
혹시몰라 성공 실험체로도 실험해 보았지만, 결과는 역시나 실패.
유일한 희망은 혹시몰라 고통이 아닌 다른 부분에 집중한 3번 실험체.
"반응이....있습니다."
"...후우. 정도는?"
순간 소리를 지를뻔한 것을 겨우 억누르고 차분히 묻는다.
"약 5퍼센트, 마력의 활동량이 상승했습니다."
"하! 세달동안 헛짓거리만 했군."
실험체들이 전부 비명만 질러대는 통에 당연히 이능 안착 조건이 고통이라 생각했건만 시간낭비만 해버렸다.
"실마리를 봤으니 낭비한 시간을 벌충해야겠지."
안그러면 연구소의 주인에게 잿덜이를 맞을지도 모른다.
"3번 실험체의 실험 강도를 올리고 1, 2번 실험체도 같은 실험을 진행하도록."
"실험체의 스트레스 수치가 이미 한계를 넘었는데 진행합니까?"
"그래. 오히려 필요한 일이다. 3번으로 어느 정도 수치의 스트레스까지 수용할수 있는지 알아보고 1, 2번을 실험하는데 적용한다."
"네.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연구원들은 문에 3이라고 써붙여진 실험실로 들어갔다.
실험실은 형태는 단순했다.
백색으로 둘러 싸여있는 커다란 방을 둘로 나누는 투명한 유리 하나.
유리의 반대편엔 산발의 여자가 온몸에 전선을 붙인 채로 무릎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들어와."
한 연구원이 말하자 밖에서 대기하던 연구원이 잠들어있는 어린아이 한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움찔.
그러자 연구원들이 실험준비를 하는데도 아무 반응없던 여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
스윽. 스윽.
고개를 들어 아이를 본 여자는 신음인지 탄성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유리벽으로 기어온다.
텅. 텅. 텅.
유리벽을 치며 어떻게든 아이에게 다가가려 하는 여자.
"3번 실험체. 실험 재개. 강도는 두 단계 높여서 4단계로."
3개월간 헤맨 연구원들이 겨우 찾아낸 이능의 안착 조건.
치직. 치지직. 치지지지직!!
"끄으으윽!!"
육체적 고통이 아닌 정신적인 고통.
"아아아아아아아아악!!!"
눈앞에서 자신의 아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 슬픔.
쿵!쿵!쿵!쿵!쿵!쿵!쿵!
아무것도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절망.
콰광!!콰광!!콰광!!콰광!!
그리고 모든 걸 부숴버리고 싶은 분노.
"마력 활동 10프로 상승!"
부정적인 감정이 이능을 안착시키는 조건이었다.
------
'왜?왜?왜?왜?'
어째서 자신의 아들이 고통받고 있는 건가.
눈앞에서 아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왜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 하는가.
'차라리, 차라리 나를....'
차라리 자신이 대신 고통받으면 좋을 텐데.
'도대체 왜....'
뭣모르고 젊은 나이에 임신한 아들.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임신이었지만 처음 태동을 느꼈을 때 느꼈던 감정.
모성애를 처음 느낀 그녀는 주변의 반대에도 아이를 출산하겠다고 결심했다.
가난한 형편에도 아들을 위해 악착같이 일했다.
아무리 몸이 힘들고 기절할 것 같아도 아들의 미소한번이면 모든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왜?'
우리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누가, 누가 좀.'
"도와줘."
애원하고 애원하고 애원해도
그녀의 말에 손을 뻗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눈앞의 연구원들은 그녀가 드디어 말을 했다며 아들을 더욱 괴롭힐 뿐.
"제발 누구라도....."
그렇게 더욱 깊은 절망이 그녀를 감싸며 나락으로 이끌려는 순간.
콰광!
그녀에게 희망이 내려왔다.
갑작스레 들려온 폭음과 진동.
"뭐, 뭐야!"
"폭발?!"
연구원들이 소란을 떨며 연구실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철컥.
문이 열리며 누군가 연구실로 들어왔다.
"누구냐!"
들어온것은 한 명의 남자.
연구원들은 처음 보는 얼굴에 당황하며 테이저건을 겨눴다.
스윽.
연구실을 한 바퀴 둘러보는 사내.
타앙!타앙!
아무말 없는 사내에게 연구원들이 테이저건을 발사했다.
치지지지직!
개조된 것인지 일반적인 테이저건보다 훨씬 강한 전류를 방출하며 스파크가 작렬했지만 정작 남자는 미동도하지 않았다.
"짜릿하네."
"이, 이게 무슨."
연구원들은 당황하였지만 남자는 일절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내가 딱히 정의롭다고 생각하지 않아. 아마 내 이득이 안된다면 난 이곳을 알고도 무시했겠지."
"그런데 말이야. 사람이란 게 간접적으로 듣는 거랑 직접 보는 거랑은 또 다르거든."
"지금부터 하는 일 또한 내가 정의로워서 하는 게 아니야. 그냥 내 변덕이 너희가 짜증 나서, 죽이고 싶어서 하는 거지."
"그러니까 잘 버텨봐. 내 짜증이 풀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