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 메인스토리
어둠이 물러가고 아침의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의 야산.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새벽 안개가 잔뜩 끼어
마치 산이 구름에 잠겨 있는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런 야산의 정상, 안개를 해치고 나가면 뜬금없이 오두막 한채가 나타난다.
미묘하게 산과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오두막은 아직 새벽임에도 불이 켜져 인기척이 느껴졌다.
후르륵.
후륵.
오두막 안에는 두명의 남녀가 오두막 한가운데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차분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흠. 좋군."
둘중 중년의 나이를 넘어 노년으로 가고 있는 외모의 남성이 입을 열었다.
"차향이 좋은데 어디꺼지?"
남성의 질문에 마찬가지로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여성이 차분한 얼굴로 대답했다.
"차향은 지랄. 슈퍼에서 파는 현미 녹차다. 병신아."
물론 대답이 차분하다고 한적은 없다.
"50개들이 삼천원인데, 하나 사다 줘? 네 허리 안 좋은 거 아니까 내가 배려해줄게."
"이 할망구가?! 내 허리가 누가 안 좋데?! 나 아직 쌩쌩해!"
"쌩쌩은 개뿔. 너 서기는 하냐?"
"이, 이!!!"
여성의 독설에 남성의 얼굴이 시뻘게지면 여성에게 소리치려는 순간.
벌컥!
"아이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두막 안의 남여보다 조금은 젊어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오두막의 입구를 힘차게 열고 들어왔다.
"넌 우리 중 가장 젊은 게 매번 늦는다."
"늙으면 아침잠이 없어진다는 데 저는 왜 이렇게 아침잠이 많은지. 하하."
여성의 잔소리를 능숙하게 웃으며 넘긴 중년 남성은 테이블의 남은 하나의 의자에 착석했다.
"자. 다 모였으니 시작하시죠."
"흥. 가장 늦게 온 주제에 당당하기는."
"이번에 늦은 건 다음에 벌충할 테니 한 번만 봐주십쇼. 하하."
"하여간 나이를 똥구멍을 처먹어서 그런가. 애새끼 같기는. 저러니까 아들이 그꼴나지."
쾅!
콰직
여성의 말에 결국 참지 못한 노년의 남성이 분노에 차 테이블을 내려치자 두꺼운 원목 테이블이 순식간에 쪼개져 버렸다.
"이년이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왜. 찔리냐?"
결국 보다 못한 중년남성이 중재에 나섰다.
"자자. 이번엔 천유가주님이 심하셨습니다. 안 그래도 심기가 안좋으실 텐데 천유가주님까지 그러시면 안 되죠."
"개뿔."
중년남성은 여성에게 말을 마치고 남성에게 고개를 돌려 달랬다.
"그리고 천유가주님 독설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환현가주님도 좀 참으세요."
"흥!"
그렇다.
바로 이곳에 모인 삼인이 대한민국의 이능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가문.
대한민국을 떠받치는 세개의 기둥.
한국 삼주 가문의 가주들이었다.
지금 이 오두막은 가주들끼리 회동이 필요할 때 모이는 곳으로 오로지 삼주의 가주들만 아는 비밀스러운 장소였다.
중년남성의 만류에 소강상태에 들어간 후에야 본론을 꺼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왜 모였는데."
첫번째 기둥. 천유가문의 가주 유시윤이 이번 모임의 주최자이자 두 번째 기둥인 일성가의 가주 성수언에게 물었다.
"왜, 그 있지 않습니까. 요새 활개치는 애들."
"아. 그 파불라 어쩌고 하는 애들?"
파불라 엑시티움.
특이하게 흑마술사를 수장으로 두고있는 곳으로 최근 들어 한국에서 신흥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능집단.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 순식간에 몇 가지 사건을 해결하며 파불라 익시티움은 주목을 이끌고 있었다.
"그런데 걔네가 왜?"
하지만 한국 삼주가 관심을 끌정도인가? 라고 묻는다면 그렇진 않았다.
수많은 집단이 생겼다가 스러지는 이능사회에선 주목 좀 받는다고 일일이 삼주 가문이 나서면
일손이 남아돌지 않을 것이다.
즉 이 모임으로 주제를 끌어왔다는 것은 삼주가 주목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
"파불라 엑시티움. 음, 너무 기니까 파불라라고 하겠습니다. 이 파불라라는 녀석들이 처음 나타났을 때 기억나십니까?"
"그런 피래미들 어떻게 일일이 기억해?"
세번째 기둥, 환현가문의 가주인 현창식이 띠껍게 말했지만 성수언은 미소를 잃지 않고 말을 이었다.
"파불로가 처음 이름을 알린 계기는 흑탑의 테러를 막아내면서였습니다."
세계적인 테러단체 흑탑의 손길은 대한민국 또한 피해 갈 수 없었다.
영토가 좁고 인구대비 이능력자도 많은 편이었기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어서 피해가 적었을 뿐.
그리고 만약 피해가 있다면 사고처럼 보이게 현장을 꾸며 일반인들에겐 숨겨왔다.
"그게 뭐 특별한 거라고."
"네. 뭐 흑탑의 테러야 늘 일어나는 일이니까 특별할 일은 없죠. 그런데 그 테러를 막은 후 조금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흑탑의 테러범은 그 자리에서 즉시 사살된다.
실제로 파불로도 흑탑의 테러를 막은 다음 삼주가문이 주관하는 이능협회에 테러범을 사살했다고 보고했다.
"그런데 흑마술사를 사살한 게 아니라 살려뒀더군요."
"뭐? 그럼 협회에 거짓 보고를 했단 말이야?"
대한민국에서 이능집단으로서 활동하려면 이능협회에 등록하는 것은 필수.
그리고 협회에 등록하려면 협회의 소집령과 빌런 및 마수와 관련된 정보의 보고 의무에 대해 동의해야 된다.
즉 협회와의 계약을 어겼다는 이야기이다.
"네. 아무래도 그런 것 같더군요."
"그럼 당장 끌고 와서 징계를...!"
"아. 잠깐 진정해주세요. 본론은 그게 아니니까."
성수언은 분노하는 현창식을 진정시키고 다시 본론을 말한다.
"그런데 참 특이한 게 그 테러범 흑마술사가 파불라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듯합니다."
"응? 뭔소리야. 걔네들 금제 걸려있잖아."
평범한 빌런은 특수교도소로 수감되지만 흑탑의 테러범이 보통 현장에서 즉각 사살되는 이유가 바로 이 금제 때문이다
흑마력을 사용한 흑탑 특유의 금제를 받게 되면 행동을 강제할 수 있어 평범한 사람도 자폭 테러범이 되어버린다.
흑탑의 모든 소속원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즉각 사살하지 않으면 언제 자폭할지 알 수 없기에 흑탑의 테러는 사살이 기본 방침으로 되어있다.
그나마 다행인점이라면 금제를 걸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흑마력 사용자로 한정된다는 점.
"조금 조사해본 결과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여기까지 설명을 듣자 다른 두사람도 성수언이 말하려는 바를 쉽게 알수 있었다.
"설마...풀었다는 거야? 금제를?"
흑마력 특유의 성질때문에 지금까지 풀 수 없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금제.
그래서 흑탑의 소속이 아닌 흑마술사를 고용해 몇번이고 해주 하려는 시도를 해보았지만 성공한 사례는 제로이다.
그런데 흑마술사가 테러를 끝내고도 아직까지 살아남은 것은 물론 흑탑에 복귀하지 않고 활동을 하고 있다.
이말은 즉 어떠한 집단에서도 해주하지 못했던 금제를 파불라 측에서 풀어냈다는 뜻.
그리고.
"흑탑이 움직이겠군."
흑탑에서 테러에 이용하는 자신들의 핵심기술이 풀렸다는 것을 알게되면 흑탑이 직접 움직일 것이다.
아니, 테러뿐만이 아니다. 어찌보면 흑탑이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꾸준히 지금의 성세를 유지하는 이유도 이 금제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걸어들어오든 강제로 납치하든 금제만 걸면 안정적으로 세력을 늘릴 수 있으니까.
어떻게 해서든 금제를 푸는 방법을 없애려 들겠지.
"쯧. 안그래도 요즘 마수가 늘어나는 통에 정신 없구만. 귀찮게 되었어."
최근들어 이유모를 마수의 폭증으로 협회가 한창 바빠진 중이다. 이런와중 흑탑까지 난리치면 일손이 부족해질 것은 뻔하디 뻔한 일.
"그래서 제가 직접 만나보려 합니다."
"뭐? 네가 직접 움직이겠다고?"
"야야. 격 떨어져. 하지마."
성수언의 말에 웬일인지 다른 두 가주가 합심해서 말린다.
삼주가문이 괜히 삼주가문이겠나.
대한민국의 이능사회가 질서 있게 돌아가도록 떠받치고 수호하기에 기둥이다.
그러니 삼주가문은 절대 편향적이어선 안되고 모든 협회소속원들을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
물론 사람이란게 이성적인 동물은 아니라 완전히 공평하게 대할 수는 없지만, 겉으로라도 그렇게 보여야 된다.
"그러다 뒷말 나오면 그거 수습하는데 골깨진다."
그렇기에 삼주의 가주들은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해결할 일이 있더라도 직접 움직이지 않고 대리인이나 소가주를 보내는 게 보통이다.
몰래 움직이고 싶어도 삼주의 가주정도 되는 위치면 알게 모르게 늘 감시의 시선이 따라다니기 때문에 그러기도 쉽지 않다.
"걱정들 마세요. 다 방법이 있습니다."
성수언의 호언장담에 유시언과 현창식은 더 이상 말릴 수 없었다
만약 성수언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번쯤 만나보는 게 맞다는 건 둘다 알고 있었으니까.
"정보는 만나고 나서 곧바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해산이네."
"이제 장소 좀 바꾸자. 모일 때마다 이게 뭔 지랄이야."
"까마득한 윗대부터 사용하던 장소인데 어쩌자고."
"그러니까 이제 바꿀 때가 된 거지."
"여기 설치된 보안이랑 은폐, 이동 마법진이 한두푼인줄 알아? 재설치 비용 네가 낼래?"
"씨발. 뭔 말을 못하겠네."
"알면 좀 닥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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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돌아올 생각이냐.]
"때가 되면 알아서 돌아가겠습니다."
[너도 알겠지만, 마수의 증가로 일손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다.]
"그래서 한국의 상황도 주기적으로 보고 하지 않습니까."
[확실히 타국의 상황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긴 하다만....]
"한국엔 지부가 따로 없으니 제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후우. 일단 알겠다. 그래도 보고는 빼먹지 말고 하도록.]
"네. 마스터."
뚝.
"영감탱이. 평생 안 그러 더니 극성이네."
저벅저벅.
벌컥.
"죄송합니다. 갑자기 아버지에게 전화가 와서."
레이첼이 문을 열고 들어간 방에는 누리와 실렌 그리고 사영이 테이블에 둘러 앉아 있었다.
그중 비어있는 의자에 자연스럽게 앉는 레이첼.
"아니. 마스터 나이트의 전화라면 받아야지. 그럼 다시 시작할까? 실렌."
누리 또한 이 상황이 익숙한듯 회의를 진행했다.
"음. 역시 일성가에선 눈치챈 것 같음."
"그러면 다른 두 가문들도 알게 됐겠군."
"따로 만나는 정황은 포착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 보는 것이 타당함."
실렌의 말을 옆에 앉아 있던 사영이 받았다.
"얼마전 새벽, 삼가주들의 자택에서 같은 시간대에 활동이 시작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우연일 경우는?"
"몇달간 지켜본 결과 삼가주의 생활패턴이 겹친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몇달간 다른 패턴을 가지고 생활하던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같은 행동을 했다? 그것도 삼가주가?
절대 우연일리 없었다.
"그러면 슬슬 이쪽으로 찾아오겠군. 레이첼. 영국쪽은 어떻지?"
누리의 질문에 레이첼은 당연하다는 듯이 방금 전 아버지에게 들었던 정보를 누리에게 말했다.
"폭증하는 마수로 매우 바쁜듯 보입니다."
"....드디어 시작인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확정된 것은 없고 알고 있던 미래마저 꼬일대로 꼬여버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놓치지 않는다.
탐욕스럽게 전부 가져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