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 메인스토리
3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만약 누군가 나에게 지난 3년이 어떤 시간이었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인재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아무리 지금 당장 교회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어도 교회의 위험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게다가 교회뿐만이 아니라 곧 시작되는 메인스토리에도 대비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대항할 힘을 키워야 했고,
스스로의 힘을 키움과 동시에 사영의 어둑시니를 기초로해서 새로운 집단을 창설했다.
하지만 어둑시니는 누리에 의해 반파되었고, 새로 인원을 뽑자니 아무나 포함시킬 수 없기에 인력을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는 상황.
교회와의 싸움에서도 활약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좋고,
내부의 일을 발설하지 않을 정도로 입이 무거우며,
어느정도 스스로 결정이 가능할 정도로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말그대로 지덕체를 모두 소유한 인재가 필요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럿을.
사실 흑탑자체를 지배할까도 생각했지만 설정에 틈이 있는 걸 안 이상 모든 흑탑원들이 자신에게 복종할지는 알 수 없다.
특히 탑주와 부탑주, 그리고 장로들.
과연 게임에서조차 죽은자들의 왕을 따르지 않았던, 그 아귀같은 인간들이 내가 나타났다고 모든 걸 포기하고 순순히 복종할까?
누리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고심에 고심을 하다 생각해낸 것이 바로 흑탑 그 자체가 아닌 흑탑의 테러.
누리가 흑마술사로서 활동을 해도 교회는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흑탑은?
만약 교회가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흑탑이 독자적으로 누리를 노릴 가능성이 있다.
"아니, 가능성이 아니라 십중팔구는 그렇겠지."
심지어 흑탑은 테러라는 유용한 수단이 있었다.
물론 흑마술사의 테러 따위야 누리에겐 하나마나 한 것이다.
그렇다면 테러와 인재는 무슨 상관이냐.
바로 테러에 이용당한 흑마술사. 흑탑의 금제에 당해 버림패로 쓰여진 그 흑마술사를 영입하는 것이다.
흑마력을 이용한 금제따위야 죽은자들의 왕에겐 있으나 마나.
금제를 풀어 살려주며 압도적인 힘까지 보여주면 없던 충성심도 절로 생겨날 테고,
테러에 이용될 정도로 흑마술을 익혔으니 즉시 전력으로 쓸 수도 있다.
거기에 흑탑에 대한 복수심까지 있으니 망설임 또한 없겠지.
"....괜찮은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괜찮은 계획.
그즉시 누리는 실렌과 사영을 통해 은밀하게 한국의 흑마술사에 대한 소문을 흘리며 미끼를 뿌렸고
얼마지나지 않아,
콰광!!!
흑탑은 제대로 낚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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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시내의 한 건물 옥상.
검은 로브를 머리끝까지 눌러쓴 한명의 사람이 옥상 난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정체는 바로 흑탑에서 파견한 흑마술사 도훈.
오늘 그는 흑탑의 지령을 받아 이곳에 테러를 일으키러 왔다.
".....젠장."
하지만 그가 미치광이 테러리스트이냐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다.
"빌어먹을 금제."
금제의 효과는 단순했다.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고통이 가해지고 그대로 시간이 지나면 몸의 통제권을 상실하게 된다.
지난 흑탑의 테러범들이 잡히려고만 하면 미쳐 날뛰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
"씨발. 그동안 잠잠하다가 왜 이제와서...."
일반적으로 흑탑의 테러는 테러 목표가 있는 국가의 출신을 사용한다.
자국의 사정을 잘 알기에 테러를 좀 더 효과적으로 일으킬 수 있을 거라는 판단.
그동안 테러에도 별다른 효과를 못봐 타겟삼지 않았던 한국을 어째서인지 다시 테러의 목표로 잡았다.
이로인해 몇 없는 한국인 흑탑원 중 한명인 도훈이 지령을 받은 것이다.
"후우우우."
도훈은 자꾸 가라앉으려는 기분을 붙잡고 마음을 굳혔다.
"살고 싶어."
살고싶다.
나쁜짓이란 거 안다.
만약 지금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나 혼자 죽고 아무도 다치지 않겠지.
하지만 나도 죽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어쭙잖게 변명은 하지 않겠어."
테러로 이용된 흑탑원은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생환자가 없는 것은 아니니,
살아남기 위해 더욱 확실히 지령을 수행한다.
사라락.
우우웅.
도훈이 흑마력을 끌어올리자 미리 준비해뒀던 마법진이 공명하며 흑마력의 재구성을 돕기 시작한다.
스윽.
손으론 수인을 맺어 의지의 부상을 돕고,
"깊고 깊은 어둠이여...."
영창을 맺어 부상한 의지를 증폭시킨다.
"....모든 것을 끝맺어라."
약간의 시간이 지나 영창을 모두 끝마친 후 도훈의 손에서 합쳐지기만을 기다리는 재구성된 마력과 증폭된 의지.
"{Dark Burn(다크 번).}"
화륵.
목표물 근처의 허공에 생겨난 검디검은 불꽃이 맹렬하게 불타오른다.
화륵. 화르륵!
그렇게 검은 불꽃이 꿈틀거리며 터져나가려는 순간.
화르륵! 화륵. 화륵.
불꽃이 다시 진정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왜이래?!"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한 도훈은 어떻게든 마법을 다시 조정하려 했지만
픽.
불꽃은 맥없는 소리를 내며 꺼져버렸다.
"이게....무슨...."
한번 사출된 마법이 꺼져버린다니.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에 도훈이 넋을 놓고 있으려니,
덜컥.
몸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 마냥 신체가 정지해버렸다.
"일단 먼저 사과할게. 이렇게 안 하면 소리부터 지르더라고."
저벅저벅.
말소리와 함께 들리는 뒤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
도훈은 경악하며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 노력했지만 몸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내 저항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이대로 죽는 건가.'
그렇게 살고 싶어 나쁜짓임을 앎에도 용서조차 빌지 않았건만,
'그래. 차라리 잘됐어.'
스스로 죽기에는 용기가 모자라니 남이 죽여준다 할 때 죽는 게 나을지도.
타인을 죽여서라도 살아가고 싶음을 포기하고 나서야 마음이 편해진다.
'진작에 포기할걸.'
남의 생명을 빼앗으면서까지 살아남아 무슨 영광을 누리겠다고.
스르륵.
도훈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가 모든 것을 내려놓자 그의 주변으로 흑마력이 조금씩 모여들고 있었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
짝짝짝.
모든걸 내려놓고 죽음을 기다리던 와중 갑자기 들려오는 박수소리에 화들짝 놀란 도훈.
'안죽었.....네?'
여전히 몸은 움직이지 않지만, 아직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문을 느낄 무렵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나도 예상 못 했는데. 아무튼 축하해."
"......"
"아! 성대는 풀었으니 말은 할 수 있을 거야."
"....무엇을 축하한다는 거지?"
그의 말대로 입과 성대가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물었다.
"아. 내가 마력을 묶어놔서 모르겠구나. 너 지금 중위마법사 됐어."
"....뭐?"
너무 뜬금없는 남자의 말에 도훈은 멍청하게 되물었다.
갑자기 중위 마법사라니.
수뇌부에 조금이라도 쓸모를 증명하여 소모품으로 사용되지 않기 위해 피를 토하며 노력해도 닿지 못한 중위 마법사라니.
"풀어줄 테니까 확인해봐."
움찔.
남자가 말을 끝내자 실제로 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해 곧바로 신체 내부의 흑마력을 확인해봤다.
'진짜....경지가 올랐다.'
내부의 흑마력이 한층 더 웅혼해지고 흑마력의 수발이 수월해졌다.
이젠 마법진의 도움 없이 흑마력의 재구성을 시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신은 대체....."
도훈이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 서 있는 평범한 인상의 남성.
얼굴이 조금 잘생겼다는 것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평범하디 평범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방금 겪었던 일 덕분일까. 아니면 한단계 상승한 경지 덕분일까.
'뭔가....'
그의 주변에 휩싸여 있는 어둠이 마치 남자와 하나인 것처럼 느껴졌다.
"당신은....누구십니까."
갑자기 나타난 남자와 상승한 경지, 연관짓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사실에 남자가 절로 나오는 존댓말로 물었다.
하지만 이는 도훈의 착각이었으니 그의 경지가 상승한 것은 순전히 그가 생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면서 모든 것을 비움으로 인해 발생한 경지의 상승이었다.
"...후우. 하기 싫어도 해야겠지."
중얼.
이러한 도훈의 착각을 눈치채지 못한 남자는 자신의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이요."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쪽팔려서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모든 어둠의 지배자이니."
하지만 어쩌겠는가 실렌과 사영이 첫인상이 위엄있어야 머릿속에 단단히 박힌다는데.
"나는 죽은자들의 왕이다."
심지어 믿었던 레이첼까지 동의해서 영역:어비스를 이용한 딥다크한 연출과 이 오글거리는 대사를 매번 하는 중이다.
"죽은자들의...왕."
흑마술사이기에 예언에 대해서 모를리 없었고 주변을 꿈틀거리는 어둠까지 더해져 도훈은 남자의 말을 의심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너의 구원자이기도 하지."
스윽.
내밀어지는 남자의 손.
그 손을 멍하니 바라보는 도훈.
털썩.
이내 주저앉듯이 무릎 꿇은 도훈이 남자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왕을....뵙습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누리는 속으로 생각했다.
'효과가 직빵이라 안한다고 할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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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벅저벅.
"역시 그때 동의한 것은 잘한 일이었군요."
"나에겐 재앙이었지만."
"위엄은 기사에게도 중요한 덕목입니다. 언제나 당당하고 올곧게 행동하면 평소에도 위엄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평소에도 그럴 바에야 죽고 말지."
"어차피 죽지도 못하시지 않습니까."
".....너 원래 그런 성격이었던가?"
"네. 전 원래이랬습니다."
복도를 나란히 걸으며 대화를 주고받는 누리와 레이첼.
둘이 걷고 있는 이곳은 파불라 엑시티움의 임시본부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다.
현재 사영은 조직의 일로, 실렌은 교회의 동향을 살피러 잠시 나가고 건물에 남아있는 사람은 누리와 레이첼뿐.
철컥.
이내 어느 큰 문앞에 도착한 두 사람.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자 나타난 장소는 커다란 원형의 공간이었다.
"이제 이것도 슬슬 그만하면 안 될까."
"한번 입에 담은 말을 어기는 것은 기사로서 수치입니다."
"난 기사가 아닌데...."
"안됩니다."
그녀의 단호한 거절에 누리는 한숨을 내쉬며 레이첼과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 그녀와 마주 섰다.
스릉.
"갑니다."
쾅!
검을 뽑아든 레이첼이 순식간에 누리를 향해 쇄도하며 검을 휘둘렀다.
카각!
누리는 어둠을 이용해 그녀의 검격을 막아내며 몇년전 과거를 회상했다.
'저와 싸워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