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 메인스토리
"마나의 맹세를 해주셔야 겠습니다."
마나의 맹세.
자신의 뇌에 에너지를 쌓는 마법사만의 고유 기술로 마법과 자기암시를 사용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지금까지 쌓아온 마력이 전부 흩어져버리는 금제를 거는 기술이다.
효과가 효과인 만큼 마법사들도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안이기에 맹세에 대해선 마법사가 아닌 사람이 꺼내지 않는 것이 철칙.
하지만.
"당연히 그래야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누리가 먼저 맹세에대해서 말을 꺼냈음에도 성수언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받아들였다.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선 어떤 조건이든 상관없다.
아니. 오히려 마나의 맹세를 함으로써 더욱 확고히 누리를 지켜볼 수 있게 된다.
우우웅.
마음이 들뜬 성수언은 누리의 말도 듣지 않고 마력을 일으킨다.
일으킨 마력에 의지를 섞어 외부로 발산하는 것이 아닌 마력이 담겨있는 머리에 집중하고 자기암시를 행한다.
"{나 성수언은 이 자리에서 맹세하노니.
김누리가 걷는 길의 끝을 볼 때까지 그의 옆에서 최선을 다해 도움을 약속한다.
이 약속을 어길 경우 지난 나의 세월이 무너질 것이다.}"
빠르다. 너무 빠르다.
어지간히 마음이 급했는지 혼자 쑥쑥 진행한다.
원래 이런 금제의 종류는 말이 모호할수록 지켜야 될 것이 더욱 광범위해지는 법이다.
그런데 그가 맹세한 '최선을 다한 도움'.
즉 이제부터 일성가주 성수언은 본인이 스스로 최선이라 생각하는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
누리가 만족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이.
"자. 이제 무엇을 할까."
맹세를 끝마치고 눈을 빛내며 의욕적으로 묻는 수언의 모습에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고 있던 누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제가 나쁜 마음이라도 먹으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상관없네. 자네가 무엇을 하든 나는 그 끝을 보기로 마음먹었으니."
불꽃을 향해 날아가는 나방과 같이 불꽃과 같은 지식욕에 잡아먹힌 성수언.
"이미 해버린 맹세를 무를 수도 없으니 이제 저도 믿음을 드려야겠죠."
"응? 또 무언가 알려줄 것이 있나?"
아직 무언가 남아있다는 듯한 누리의 말에 수언은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예언 말입니다."
"응? 예언이야 자네가 나타나는 것으로 이루어진 것 아닌가?"
"네. 예언은 저의 출현을 나타내고 있죠. 제가 나타남으로써 예언이 맞다는 것이 증명되었고요."
그렇다면 예언의 마지막 줄.
'멸망의 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왕이 강림하리다.'
"이 멸망의 때 또한 맞는 말이지 않겠습니까?"
"멸망....말인가."
갑작스레 나온 묵직한 단어에 성수언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확실히 자네의 존재로 예언이 맞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
단순한 추론이다.
멸망의 때에 왕이 강림한다고 하였으니 왕이 강림한 지금이 멸망의 때이다.
"하지만 멸망이 시작되면 왕이 강림한다는 건지, 아니면 왕이 강림하여 멸망을 이룬다는 건지 알 수 없지 않나?"
죽은자들의 왕, 본인을 눈앞에 두고도 거침없이 말하는 수언의 모습에 누리는 실소지었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문득 그의 생각이 궁금해져 질문하는 누리.
"만약 제가 세상을 멸망시킨다는 예언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과연 그는 어떤 대답을 할까.
"그럼 다행이군."
"다행이라니요?"
"자네가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을 테니 멸망은 오지 않겠지."
단언하는 그의 말에 누리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 그리 확십니까?"
"그야 당연하지 않나. 내가 아는한 가장 신에 가까운 자네이지만 인간 이길 원하고 있지. 자신의 운명조차 거부하려 드는데 그런 자네가 그깟 예언 따위 따를 리가 없지 않은가."
"...후후후."
그의 대답에 어쩐지 기분이 좋아진 누리는 낮게 웃음을 흘렸다.
"안타깝게도 예언의 내용 후자가 아닌 전자입니다."
멸망의 때가 시작되면 죽은자들의 왕이 강림한다.
즉 멸망의 때가 시작되었다.
"허어. 그러면 자네는 어찌하고 싶은겐가."
"인간답게 하고자 합니다."
"인간답게?"
"네. 인간답게 전력으로 저항해 봐야죠."
인간은 자유를 추구하는 생물.
행동할 자유. 살아갈 자유. 그리고 나아갈 자유.
그렇기에 자유를 침해당하면 인간은 저항한다.
자신의 자유를 되찾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저항할 수 있기에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길 원하는 누리의 저항을 위한 첫 번째 걸음.
"다른 삼주의 가주들을 설득하는데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우선 한국을 먹는다.
"다른 가주님들 말인가."
"네. 일단 삼주가문 모두를 제 동맹으로 만들겠습니다."
한국게임이기에 메인스토리의 주 무대 또한 한국.
나중엔 온갖 세력이 난립하게 되니 먼저 한국을 선점해둬야 무엇을 해도 하기가 편해지겠지.
"흐음. 내가 도와준다 해도 가능할지 모르겠군."
하지만 성수언과 달리 천유, 환현 가문의 가주들은 순순히 넘어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일성가주가 예상보다 훨씬 쉽게 넘어왔을 뿐.
누리는 원래 오늘 상황이 심각해지면 전투까지 일어날 수 있다고 예상하였다.
"설득은 제가 할 테니 일성가주님은 옆에서 도와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천유가주는 모르겠지만 환현가주는 충분히 설득할 자신이 있다.
환현가주까지 설득하면 천유가주는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
'역시 인맥이 중요한 법.'
"아. 그리고 부탁 하나 할 게 있습니다만."
"굳이 부탁이라고 할 거 없네. 나는 자네의 말이라면 뭐든 따라야 하니."
"아뇨. 이건 일보다는 개인적인 부탁에 가까워서 그렇습니다."
"부탁이 뭐길래 그러는 건가?"
일성가주는 대한민국 최고의 마법사.
"혹시 사람 하나 가르쳐주실 수 있습니까."
즉 한국에 성수언보다 좋은 마법 선생은 없다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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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가을이 지나가고 가을의 쌀쌀함이 겨울의 추위로 바뀌어가는 계절.
하지만 한창인 대학생들의 패션 욕구는 낮아져 가는 기온도 막지 못했고,
한국대의 캠퍼스에는 갖가지 패션을 뽐내며 돌아다니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웅성웅성.
그런 한국대 경영학과의 한 강의실에도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한껏 멋을 부린 채로 곧 시작할 강의를 기다리고 있었고.
경영학과 2학년 김철수 또한 방금 전 막 강의실에 도착한 상태였다.
"헬로."
강의실에 들어가자마자 먼저 자리 잡고 있던 동기에게 인사하는 철수.
덜컹.
"왔냐."
민수 또한 언제 나와 같이 옆자리에 앉는 철수의 인사를 받아준다.
"야. 근데 오늘따라 강의실에 사람이 많아 보인ㄷ.....이 새낀 또 왜 풀 세팅이야?"
강의실을 한바퀴 둘러보며 말하던 철수는 민수를 보고는 순간 말문을 잃고 말았다.
겨울에 접어들고 있음에도 검정색 싱글코트 안엔 얇은 셔츠 한 장밖에 걸치지 않았고
다림선이 선명한 슬랙스 바지 아래로는 구두와 캐쥬얼한 신발 사이에서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검정색 로퍼까지 신고 왔다.
"얼씨구. 탈모 온다고 쳐다도 안보던 왁스까지 발랐네. 어디 소개팅 나가냐?"
"너 진짜 몰라?"
"내가 뭘 모르는데. 아니. 애초에 저번 주까지 교수님 출장 때문에 온라인 강의했는데 뭘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쯧쯧. 정보화 시대에 그렇게 정보가 느려서야 어떡하냐."
"지랄 말고 그놈의 정보나 말해봐."
민수는 주변을 살펴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철수에게 말했다.
"이 강의에 우리 과 여신 두 명이 동시에 듣잖아."
"여신?"
"그래! 그래서 지금 강의 듣는 사람 말고도 도강하러 온 사람들 때문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고."
"....미친. 그냥 여자 보러 도강까지 한다고?"
철수는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다.
겨우 좀 예쁜 여자 한번 보러 도강까지 감행한다니.
"그러다 교수님한테 걸리면 어쩌려고."
한 두명이면 모를까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도강한다면 걸리지 않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이 강의 교수님이 대천사로 유명하잖냐. 다들 알고 온 거지. 오히려 학생들이 열정 넘친다고 좋아하시지 않을까?"
"도대체 얼마나 예쁘길래 그래?"
"몰라 나도 본적없어. 그런데 소문엔 완전 넘사벽이라던데?"
"미친놈. 본적도 없는데 그렇게 풀 세팅을 하고오냐."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지랄. 너 말고 다 아는 듯."
웅성웅성.
그렇게 민수와 철수가 티격태격하고 있으려니 복도 밖에서 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야. 오나보다."
"아. 치지마. 미친놈아."
틱틱대면서도 슬쩍 강의실의 출입문을 바라보는 철수.
덜컹.
저벅저벅.
강의실의 뒷문으로 들어오는 두명의 여자를 보자 철수는
멍.
미친놈이라 욕하던 민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저 앞도적인 외모를 무어라 설명해야될까.
그저 예쁘다는 단어보단 아름답다는 단어가 더 어울릴 것 같은 외모.
철수는 관심없는 척 하던 것도 잊고 입을 벌린채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철수 뿐만이 아니다.
옆자리의 민수를 포함한 강의실에 다른 남자들 모두가 철수와 같은 상황.
"......"
어느새 웅성거리던 소음은 소근거림으로 바뀌어 있었고 남녀 할 것 없이 그녀들을 힐끔거린다.
선망, 질투, 경외, 음심 등등. 여러가지 감정이 섞인 시선들이 둘을 향했지만 정작 그 당사자들은
"집에 가고 싶다~."
"갑자기 뭐라는 거야."
"하나야. 우리 강의 째고 놀러 갈까?"
"이년 또 쿨타임 돌았네. 지랄말고 자리에나 앉으시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