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2 삼주
대학에 들어가면 하나와 마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약속.
사실 스리슬쩍 넘어갈까도 했지만 하나가 귀신같이 눈치채고 재촉을 하였고 누리는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어둑시니에 속해있던 마법사 하나를 붙여주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그녀는 마력을 쌓는 일에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지만 어째서인지 도통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다.
도저히 이유를 알 길이 없어서 결국 붙여준 마법사는 포기한 상황.
그렇다고 누리가 직접 가르치기엔 무리가 있었다.
천재는 범인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누리는 이 말이 무슨 소리인지 가연에게 흑마술을 가르치면서 깨달았다.
그에게 흑마술이란 당연한 것이다. 사람이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처럼.
남들은 어렵게 수식 짜가며 행하는 마력의 재구성을 흑마력이 알아서 해주니 머리 쓸 필요가 없다.
그러니 이론 또한 알고만 있고 가르치지를 못하는 상황.
가연도 겨우겨우 가르치고 있는 상황에 흑마술과 차이가 있는 마법을 가르치기에는 요원하다.
다행히 하나가 대학생활이 바빠 별말은 안하고 있지만 얼마 전 슬쩍 운을 띄워보니 포기하지 않은 듯싶다.
그렇게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와중 구하게 된 마법선생.
"성수언이라고 하네."
나들이를 마치고 가연이를 마중한 후 하나에게 소개시켜줄 사람이 있다며 집이 아닌 임시본부로 향한 누리.
"....김하나라고 합니다."
앞뒤다 짜른 심플한 소개에 하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누리에게 눈짓을 보냈다.
"오늘부터 너에게 마법을 가르쳐 주실 거야."
"잘부탁하네."
누리의 말에 하나는 눈앞에 서있는 성수언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검정색 정장, 깔끔하게 뒤로 넘긴 올백 머리,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나이로 보이는 외모.
한눈에 딱 신사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단정한 남자였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일성가문.
자세히 알진 못하지만, 저번에 레이첼에게 지나가듯이 들은 적 있었다.
한국에서 가장 큰 이능집단중 하나라고.
안그래도 하나 또한 불안하던 참이다.
어떻게든 이능을 배워 오빠의 일에 간섭하려 했지만, 재능이 없는 것인지 마법을 사용할 수 없던 그녀.
'이씨. 오러 배우겠다고 하면 안 된다고 할까봐 마법 배우겠다고 한건데.'
근접 전투로 직접 싸워야 하는 오러는 오빠가 죽어도 안된다고 할 걸 뻔히 알기에 마법을 배우겠다고 했던 건데 자신의 재능이 장애물이 될 줄이야.
'머리 써야 된다고 하길래 쉬울 줄 알았더니.'
나름 머리 쓰는 것은 자신이 있었기에 어려움은 없을 줄 알았다.
실제로 마력 재구성 수식은 하나의 머리로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안 움직이는 거야?'
정작 재구성 되야 할 마력이 움직이지를 않는다.
외부에서 체내로 받아들일 땐 그렇게 말을 잘 듣던 마력이 체내에 들어오고 나선 꿈쩍하지를 않았다.
처음 오빠가 붙여줬던 마법사는 마력 통제에 대한 재능이 떨어져 그런다고 추측하긴 했지만 이마저도 확실치 않은 상황.
지금까지 배운 걸 버리고 몰래 오러로 갈아타 볼까 하고 생각하던 와중 오빠가 새로운 마법선생을 데리고 왔다.
이 사람은 대마법사라니까 전에 가르치던 마법사와는 뭔가 다르겠지.
"그래 마력의 재구성이 안 된다고?"
"네. 마력을 쌓는 것 까지는 성공했는데 재구성이 안 돼서요."
"흠. 그거 특이하군. 마력을 쌓는 것에 성공했으면 아무리 재능이 없어도 초보적인 재구성 정도는 될 터인데."
외부의 에너지를 끌어다 쌓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마력에 대한 지배력이 있다는 뜻.
그런데도 마력의 재구성이 불가능하다?
"잠깐 손목 좀 줘보겠나."
"네."
하나의 손목을 잡고 눈을 감은 채 집중하는 수언.
차 한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흐으음...."
눈을 뜬 수언은 뭔가 알 수 없는 신음을 내뱉는다.
"뭐가 잘못된 겁니까?"
그런 수언의 반응에 누리는 괜히 불안해져 조급하게 물었다.
"잘못됐다기보다는.....이걸 뭐라고 해야 될까."
잠시간 말을 멈추고 생각을 정리한 수언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마력이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는 느낌이랄까."
"스스로...말입니까?"
"그래. 마력의 재구성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마력의 통제가 되지 않는데 신체 내부에선 마력이 정상적으로 흐르고 있어."
마법사는 흔히 써클링이라 부르는, 마력을 신체 전체에 회전시켜 흡입력을 만드는 행위로 마력을 모으는 효율을 높인다.
하지만 써클링 또한 마법사 스스로 마력을 통제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
그런데 어째서인지 마력을 통제하지 못하는 하나의 마력이 스스로 회전하고 있었다.
"마력이 없거나 적으면 흡입력이 모자라서 보통 스승이 도와주는데 꼭 그 경우를 보고 있는 것 같군."
"그럼....하나의 마력을 타인이 통제하고 있다는 겁니까?"
신체의 마력을 타인에게 조종당하다니.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당장 하나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매우 심각한 일이었다.
그렇게 누리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고 있으려니 그의 생각을 정정해주는 수언.
"아니. 타인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네."
"네? 방금 마력이 알아서 움직이고 있다고...."
"그래. 방금 말했지 않는가. 마력이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고 있다고."
다른 인간이 조종하고 있다면 대마법사인 자신이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애초에 그런 일은 불가능하기도 하고."
타인의 신체 내부에 있는 마력을 원격으로 조종한다?
인간에겐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 할 수 있다.
"자네 정도 되는 존재라면 몰라도."
예언속에 나오는 신에 가까운 존재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
그 말을 들은 누리는 더욱 얼굴을 굳혔다.
확실히 수언의 말대로 흑마력에 한에서는 누리에게 가능한 일이었다.
"아아. 그렇게 심각한 표정 지을 거 없네. 그저 하나양의 본능이 마력을 돌리고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오러유저처럼 말이야."
실제로 마법사들과 달리 특유의 연공법으로 정제한 오러를 본능적으로 끊임없이 흐르게 하는 오러 사용자들.
"어쩌면 하나양에게 마법보단 오러의 재능이 있는 거일지도 모르고."
"그러면 저는 마법을 익히지 못하는 건가요?"
그들의 대화를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하나는 걱정스레 묻는다.
저봐라. 오러에 대한 재능이라고 하니 표정부터 바뀌는 오빠의 얼굴.
저 표정을 보아하니 오러는 절대 허락 안해줄 거다.
"솔직히 지금 당장은 뭐라고 확신할 수 없지만 떠오르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네."
"정말요?!"
"그래. 물론 어느 정도 실험이 필요하겠지만."
"휴우. 다행이다."
"글쎄. 과연 다행일까."
"네?"
수언의 불길한 말에 하나가 되물었다.
"정도가 아닌 사도는 언제나 힘든 법이지. 거기에 내 예상이 맞다면 아마 가시밭길이 될 거야."
말을 잠시 끊은 수언은 하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정말 마법을 익히고 싶은가?"
"....네."
더 이상 혼자 안전한 곳에 숨어 있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오빠가 언제 돌아오나 걱정만 하면서 불안에 떨고 싶지 않다.
그러니 힘이 필요하다.
"좋아."
그런 하나의 결연한 눈빛이 마음에 든 수언은 결심했다.
"중간에 도망은 못 칠 거다. 제자야."
그녀를 제자로 받아들이기로.
"네! 스승님!"
----
"죽여줘....."
하나가 수언의 제자로 들어간 지 며칠 뒤.
소파에 널브러진 그녀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많이 힘드냐?"
그런 하나를 누리가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쯧쯧. 그러게 왜 굳이 힘든 길을 간다고 사서 고생을...."
"야. 조용히 해라..."
약한 도발에도 야 소리가 나오는 걸 보니 어지간히 힘든가 보다.
"힘들면 그만둬. 난 언제든 찬성이니까."
"안 그만둬..."
누리의 유혹에도 꾿꾿히 버티는 하나.
"...그래도 오빠가 좀 안 힘들게 해달라고 부탁하면..."
"...진짜 힘들긴 힘들구나. 네가 그런 약한 소리를 다 하고."
"그러니까 오빠가 말 좀 해줘."
물론 자신이 말하면 성수언은 부탁을 들어주겠지만.
"네가 선택한 길이잖아? 악으로 깡으로 버티렴. 그런 난 볼일이 있어서 이만."
"오빠? 오빠! 야! 야이 나쁜놈아!"
뒤에서 들려오는 외침을 무시한 채 집을 빠져나간 누리는 생각했다.
잘하면 금방 그만둘 수 있을지도.
띠리릭.
그렇게 집을 빠져나가며 도망치는 누리를 허망하게 지켜보던 하나는 뻔히 보이는 오빠의 생각에 이를 갈았다.
"절대 그만안둬."
----
그렇게 누리의 의도와는 달리 분에 찬 하나가 배웠던 것을 악에 받쳐 복습하고 있을 때.
누리는
콰장창!
날아오는 의자를 막아내고 있었다.
"어이쿠. 왜 이렇게 화가 나셨습니까. 환현가주님."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성수언이 마법으로 날아오는 파편을 막아내며 환현가주를 진정시켜 보이려 했지만.
"일단 좀 진정하시죠."
"뭐. 진정? 지금 내 아들을 죽인 범인하고 동맹을 맺으라는 개소리를 해놓고 진정?"
하지만 환현가주는 온몸에서 노을빛 오러를 줄기줄기 뿜어내며 더욱 분노했다.
"성수언이. 네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이 녀석을 죽이고 물을 테니 거기 가만히 있어."
"....환현가주님. 제가 아무리 당신에게 존대한다 해도 제가 당신의 밑이 아닙니다만."
"일성가주님."
현창식의 막말에 성수언도 분노하려 했지만 그런 그를 오히려 말리는 누리.
"잠시 저분과 둘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러지."
잠시간 누리의 눈을 바라보던 성수언은 분노를 감추고 순순히 몸을 돌렸다.
왜냐하면
'....오늘 환현가주님은 무사하지 못하겠군.'
누리의 눈에서 타오르는 분노의 편린을 엿봤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