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속 중간보스에 빙의했다-33화 (34/60)

EP.33 삼주

환현가주 현창식은 본인의 성격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남이 피해를 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지만 나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은 절대 용서할 수없고

지는 것은 죽기보다도 싫어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를 따낸다.

하지만 자신의 이런 성격을 싫어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자신의 이러한 성격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주었으니까.

방해하는 것을 걷어내고 경쟁자를 쳐내며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전부 부숴버렸다.

그렇게 도달한 환현가주라는 만인지상의 자리.

그런 현창식에게도 살다 보니 자신에게 인간적인 감정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이 있었다.

바로 노년에 얻은 자식들.

강태, 강식.

형제들을 가차 없이 쳐낼때 자신에겐 가족애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나 어째서인지 자식들은 달랐다.

'이런 게 부성애란 걸까.'

자신 나름의 사랑을 쏟아가며 키운 아들들이 장성한 모습을 보면 뿌듯하기 그지없었다.

둘째가 사고를 자주 치기는 했지만, 원래 높은 자리에 앉아있다 보면 잡음은 끊이지 않는 법.

대신 둘째는 첫째보다 무에 대한 재능이 더 높았으니 자잘한 사고따위 상관없었다.

둘의 성장을 바라보며 슬슬 후계자를 정할 시기가 다가오자 현창식은 둘에게 그룹의 많은 권한을 주면서 일부로 경쟁을 붙이며 싸우게 만들었다.

'나 또한 그렇게 배우고 자라왔으니까.'

그래서 강해질 수 있었으니까.

물론 자신처럼 죽이는 일까지는 없게 통제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둘째가 큰 사고를 쳐버렸다.

인체실험 연구소. 자신도 모르게 인원을 써가며 비밀 연구소를 만든 것이다.

그말을 들은 창식은 눈쌀을 찌푸리면서도 한편으론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그룹의 권한을 많이 줬다지만 자신의 눈을 피해 이 정도로 큰일을 벌이다니.

'남자가 야망이 있으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

피해자따위 알바 아니다. 어차피 사형수나 하층민들로 썼다는데 상관없지 않은가.

평소 머리가 잘 돌아가고 대외 이미지가 좋은 첫째에게 해결을 맡겼으니 금방 조용해질 터.

적당히 돈 쥐여주고 사과한 다음 덮어버리면 금세 잊혀질 것이다.

'그때 둘째를 빼내면 되겠지.'

그렇게 앞으로의 일정을 짜고 있으려니 갑자기 영국의 퀸즈가드에서 공식적으로 항의가 들어왔다.

'퀸즈가드에서 직통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뭐?'

둘째가 퀸즈가드의 수장이 진행하는 일을 암살자를 고용해 방해하려 했으니 엄벌을 받지 않게 된다면 매우 유감스러울 거라는 항의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퀸즈가드의 유감은 단순히 유감을 끝나지 않을 것이 자명.

말만 유감이었지 협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와동시에 얼마 전 잡힌 강식과의 약속이 떠올랐다.

'분명 어둑시니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 있다고 했지.'

강식이 놈의 비서를 추궁하니 결국 전부 털어놓은 진실.

이는 환현가로서는 인체실험보다 더욱 큰 사건이었다.

자신이 덮어주질 못할 정도로.

심지어 다음날 둘째가 탈옥하여 그대로 행방불명 되었다.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흔적조차 못 찾는 상황.

그나마 그 능력으로 죽진 않았을 것이라는 위안을 얻으며 마음을 삭히고 있었다.

그런데.

"뭐?"

어느 날 일성가주 성수언이가 새로운 동맹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자신을 초대했다.

"늙어서 귓구녕이 처막혔나?"

어떤면에서는 자신보다 더 인간 같지 않은 성수언이가 동맹이라니.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궁금해 참을 수 없어 그의 초대를 받아들였다.

"아님 현실도피 뭐 그런 건가?"

물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만발의 준비를 마친 채로 향한 삼가주 회의를 위한 통나무집.

그곳에서 만난 것은 성수언이 동맹이라고 소개하는 더벅머리가 인상적인 평범한 청년.

"이번엔 귀 열고 똑바로 들어."

이건 무슨 농담인가 싶어 성수언에게 입을 열려는 순간 들려온 청년의 목소리.

"네 아들 현강식, 내가 죽였다고."

툭.

그러면서 던진 반지 하나.

"....."

둘째가 성인이 되던 날 자신이 선물했던 아티팩트.

".....이."

모양으로보다 느껴지는 에너지로 보나 자신이 선물한 아티팩트가 확실하다.

"이 개새끼가아아아!!!!"

콰장창!!

----

'누가 부자 아니랄까 봐 소리치는 것도 똑같네.'

현창식이 던진 나무의자를 막아내며 누리는 생각했다.

사실 현창식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은 진작부터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냐는 개소리는 하지 않겠다.

겨우 현강식 하나 잡았다고 분이 풀릴 일은 없으니까.

설정의 제약에서 벗어나겠다 결심한 후 환현가 전체를 무너트릴까도 했지만 환현가는 이용 가치가 있다.

목표가 없다면 내 좆대로 살겠지만, 나에겐 명확한 목표가 있기에.

1. 부모님을 살려내고

2. 이 세상의 멸망을 막는다.

설정의 제약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부모님을 살려내는 것만이 목표였지만 설정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된 이상 세상의 멸망, 즉 배드엔딩을 막는 것에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고, 주인공이 있다 해도 해피엔딩이 될지 배드엔딩이 될지 모른다.

뭐 하나 확정할 수 없는 상황.

설정오류가 있는 게임의 주인공을 믿고 있을 바에 차라리 내가 막고 말지.

그렇기에 살려둘 필요성이 있는 환현가와 현창식.

현강태가 환현가를 장악할 수 있으면 현창식은 필요없지만 그러기에는 현강태에게 모자란 감이 있다.

현강태가 환현가를 완전히 장악하려면 아직 현창식의 도움이 필요하겠지.

물론

'분풀이는 좀 해야겠지만.'

성수언에게 들은바에 의하면 현창식은 성정이 포악하며 자존심이 강하고 이기적이며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고 자랑스러워하며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리 또한 좋다.

그럼에도 부성애는 있는 것인지 아들들을 상당히 아낀다.

자. 그럼 여기서 문제.

그런 그에게 가장 큰 굴욕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곰곰히 생각하다 누리가 내린 결론.

콰광!

아들을 아끼고 자존심이 강한 현창식이 아들을 죽인 범인에게 힘으로 굴복당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죽인다. 사지를 뜯고, 눈깔을 파내고, 혀를 뽑고,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서 죽인다."

잘살고 있을 거라 생각한 아들이 죽었기 때문일까.

두눈에서 살기를 줄기줄기 흘리며 전력을 다해 공격하는 현창식.

콰과광!!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환권 공격세 허깨비.

현창식의 주먹이 분열하더니 순식간에 누리의 전면이 주먹으로 가득 채워진다.

모든 주먹 하나하나가 오러가 실린 진짜.

주먹의 파도가 누리에게 닿기 직전 온몸에 어둠을 두르는 누리.

김누리 오리지널. {암린갑}

콰과과과과광!!!!

현창식 또한 괜히 마스터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터져나가는 충격파에 오두막 내부의 가구들이 같이 터져나간다.

정작 공격을 직격으로 받고 있는 누리는 가구는 터져나가지만, 오두막 자체는 멀쩡하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얼마나 마법을 떡칠해 둔 거야?"

마스터의 공격에도 버티다니. 이 정도면 진짜 요새나 마찬가지이다.

그런 누리의 감탄에 무시당했다고 느꼈는지 결국 권능까지 끌어내는 현창식.

"그래. 그렇게 당당할 정도로 실력이 있으니 내 앞에 찾아왔겠지."

쿠구구궁.

그간의 공격에도 꿈쩍하지 않던 오두막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본 누리는 재빨리 심연을 펼쳤고

세계구축. {Abyss(어비스).}

그와 동시에

권능 {거인화}

현창식의 몸이 거대하게 변하였다.

쿵. 쿵.

한번 발을 구를 때마다 땅이 흔들린고.

후웅.

조금의 움직임에도 바람이 갈라진다.

{후후후. 이제 후회가 되나?}

어지간히 기분이 좋은지 방금 전까지 분노를 넘어 격노를 내비치던 현창식의 얼굴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하. 정말 자기 성격에 딱 어울리는 권능이네."

마스터의 막대한 오러를 환영에 실어 물리력을 가진 거인의 몸을 만들어내는 권능.

딱봐도 현창식의 강한 선민의식에서 출발한 권능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높은 곳에서 사람을 개미처럼 내려다보고 자신의 손짓하나에 모든게 쓸려나간다.

마치 신이 된 기분이겠지.

{그럼 죽어라.}

찢어 죽이겠다는 말은 벌써 잊었는지 단숨에 죽일 태세로 주먹을 내리찍는다.

비기 환현합권 유성우.

거인의 주먹이 흑색으로 물들더니 이내 분열까지 한다.

그야말로 마스터라는 말에 어울리는 공격.

확실히 저 공격은 아무리 누리라도 맞으면 타격이 있겠지만,

너무 기분 좋은 나머지 주변이 어둠으로 둘러싸였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걸까.

"그럼 일단 권능부터 벗겨볼까. {꿰뚫어라}"

누리가 힘을 담아 '명령'을 내린 순간.

쾅!쾅!쾅!쾅!

어둠이 왕의 명령을 받든다.

심연에서 수많은 어둠의 창이 솟아나와 모든 주먹을 꿰뚫어 소멸시켰다.

{끄아아아악!}

물론 그중에 있던 현창식의 주먹 또한 꿰뚫렸고.

"호오. 감각이 연동되는 건가. 생각보다 섬세한 기술이군. {베어라}"

감탄하면서도 명령을 멈추지 않는다.

서걱.

{끄아아악!}

이번엔 어둠으로 이루어진 칼날이 심연에서 튀어나오더니 현창식의 왼쪽 어깨를 베고 지나간다.

쿵. 스르르.

떨어진다 싶더니 이내 연기처럼 사라지는 거대한 왼팔.

"{베어라}{베어라}{베어라}."

서걱.서걱.서걱.

쿵.쿵.쿵.

순식간에 거인의 사지를 날려 버린다.

쾅!

결국 사지가 사라진 채 땅에 추락하는 거인의 몸통.

{끄으으윽.}

어느새 거인의 눈에는 분노와 자만이 사라지고 공포가 가득 차올라 있었다.

"자. 사지 다음에는 눈깔이었던가?"

어차피 오러로 이루어진 몸. 눈 좀 뽑아도 상관없겠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