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속 중간보스에 빙의했다-34화 (35/60)

EP.34 삼주

현창식은 거인화를 사용할 때마다 매우 기분이 좋았다.

능력이 능력인지라 평소에 잘 사용하지 못하지만 사용만 하면 마치 신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세상의 꼭대기에 있는 것 같은 우월감.

뭐든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전능감.

어릴때 줄지어가던 개미를 짓밟을 때처럼 사람들을 짓밟을 때면 세상 그 누구도 이기지 못할 상대가 없다는 생각마저 들곤 한다.

실제로 자신이 거인화를 쓰고나서 패배한 적은 전무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전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거인화를 썼으니 자신이 반드시 승리한다고 생각하였으나.

"{꿰뚫고 회전하라.}"

카가가각!

{끄아아아악!!!}

눈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그저 비명을 지르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프다.아프다.아프다.아프다.

눈알이 통째로 갈려나가는 감각.

아무리 자신이라도, 아니 이 세상 그 누구라도 참을 수 없을 것이라 자신한다.

도대체 왜?

왜 거인화까지 쓴 자신이 고통받고 있는 거지?

저녀석은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길래 내가 이렇게까지 무력하게 당하는 거지?

고통 속에서도 도저히 의문이 사라지질 않았다.

"자. 눈은 끝났고, 다음이 혀였지?"

그리고 이 고통은 한동안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거인의 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의문이 든 누리.

"이정도까지 했는데 원래대로 안 돌아가는 거 보면 풀고 싶어도 못 푸는 건가?"

이렇게까지 고통받았으면 권능을 풀고 원상태로 돌아갈 만한데 사지가 잘리고 눈이 파인채로 거인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현창식.

사실 누리의 예상대로 현창식은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권능 {거인화}는 거인의 환영에 오러를 때려 박아 물리력을 행사하는 기술로 그만큼 오러의 밀집도가 높은 나머지 현창식 스스로의 의지로도 오러를 흩어내지 못한다.

다른 때라면 있으나 마나 한 페널티 이겠지만, 오늘은 사정이 달랐다.

{꺼어어억!!!}

사지가 잘리고 눈알이 갈리며 혀가 뽑히고 있는 와중에도 권능이 풀리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감각까지 공유되는 권능이기에 가감 없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고통.

"솔직히 어떻게 굴복시킬지 좀 고민이긴 했는데 이렇게 좋은 수단을 사용 해줄 줄이야."

고문이란건 의외로 어렵다.

상대에게 고통을 주되 죽지 않아야 하지만.

상해를 가하지 않으면 고통을 줄 수 없다.

그러니 최대한 치명적인 부위는 피하며 고통이 극대화되는 곳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상대에게 아무리 치명상을 입히면서도 죽이지 않을 수 있는 신체라니.

"게다가 크기까지 크니 작업하기 한결 편하네."

결국 혀까지 뽑고 나서 십분 정도 지났을까.

스르륵.

사지가 잘린 거인의 몸이 점점 줄어들더니 원래의 몸으로 돌아왔다.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자 자신의 몸을 더듬기 시작하는 현창식.

더듬더듬.

"....하아."

자신의 몸이 온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누리를 두려움이 깃든 눈으로 바라본다.

현창식의 두 눈에 깃든 공포를 확인하고 일이 자신의 생각대로 되었음을 확신한 누리.

"....너는 도대체 누구지?"

'역시나.'

언제나와 같이 정체를 묻는 질문에 속으로 잠시 딴생각을 하다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아까 일성가주님이 말했잖아? 동맹이라고."

"나 보고 그 말을 믿으란 거냐."

"당신이 믿든 말든 상관없어. 솔직히 그냥 죽일까 생각 중이거든."

누리는 입가에 비웃음 머금고 말했다.

"지 아들 죽인 놈한테 상처 하나 못 입힐 정도로 약해빠졌는데 굳이 살려둘 필요 있을까?"

"이 새끼가...!!!"

누리의 도발에 다시금 현창식의 눈에 분노가 차오르려 했지만

쿵!

그의 발치에 꽂히는 어둠으로 이루어진 창에 분노가 가시고 가라앉았던 공포가 다시 차오른다.

"병신."

"크으으."

여지껏 겪어보지 못했던 굴욕에 침음성을 흘리렸지만, 더 이상 분노는 솟아오르지 않고 그저 두려움만이 느껴질 뿐.

현창식은 완전히 굴복했다.

"푸흐흐흐흐."

그런 그의 모습을 보니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웃음.

잠시간 웃음을 멈추지 못하던 누리는 웃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설득'을 해볼까?

"그래도 아직 쓸모가 있으니 죽이긴 아깝고."

스윽. 톡. 톡.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낸 후 동영상 하나를 틀어 현창식의 앞에 둔다.

"...뭐냐."

"한번 봐봐."

수상쩍은 눈길로 스마트폰을 바라보던 그는 동영상을 재생했다.

[.......]

동영상에 나오는 것은 의자에 묶여있는 한명의 사람.

[.....아]

[..아...버지...]

[사...살려...주세요...아버지.]

"강식이....?"

분명 자신의 둘째 아들 강식의 얼굴과 목소리다.

"어때?"

"어...어떻게...."

스윽.

스마트폰을 거둔 누리는 현창식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어떻게 한지는 알 것 없고. 네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파악은 됐겠지?"

모를리 없다.

자신도 이 자리에 오기까지 몇 번이고 사용했던 방법이니까.

"....잘....부탁드립니다."

"그래. 잘해봅시다. 환현가주님. 그래야 아들이랑 얼굴도 보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지."

"....네."

공포로 굴복시키고 아들의 목숨으로 협박하여 설득한다.

이제 현창식은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무조건 내 말을 따르겠지.

물론

'살아있다고 한 적은 없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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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르륵.

심연을 거두자 다시 드러나는 오두막의 전경.

"이건....."

그제서야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챈 현창식.

부서진 집기들은 그대로였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오두막 내부.

분명 자신이 거인화까지 썼건만 오두막은 부서진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이는 구축한 영역은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현창식의 거인화마저 수용했기 때문이었지만 자신을 바라보며 어느새 오두막으로 다시 들어온 성수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누리는 대답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설득이 성공했나 보군."

"아시겠습니까?"

"저렇게 겁먹은 눈을 하고 있는데 모르면 바보지."

언제나 거만한 눈으로 모든 사람을 내려다보던 현창식이 지금은 겁먹은 개새끼마냥 눈동자 속에 공포와 절망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건 예상을 뛰어넘었군."

자신이 봤던 누리의 힘이라면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현창식의 모습을 보니 이건 찍어 누른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굴복한 것으로 보였다.

"어떻게 한 거지?"

"그건 개인적인 비밀로 해두죠."

"안타깝군."

누리의 모든 행동을 관찰하고 싶었지만 아쉬운 것은 자신이니 어쩔 수 없지.

"그럼 이제 천유가주님만 설득하면 되는 건가?"

"네. 일단은."

삼주 가문을 전부 내 편으로 만들어두면 이능사회에서나 재계에서나 한국의 절반이 내 편으로 돌아섰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이지만

문제는 남은 하나의 가문.

삼주의 첫번째 기둥. 천유가.

대한민국. 아니,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가문이자 이능집단.

그 기원조차 불분명한 한반도의 수호자.

"천유가주님은 환현가주님처럼 만만치 않을 걸세."

특히 지금의 천유가주인 유시윤은 90년도의 사회에서 여성의 몸으로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가주의 자리를 차지한 입지적인 인물로,

세계적인 수준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의 강자이기도 하다.

그로인해 웬만한 남자보다도 배포가 크고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누구보다 뛰어나다.

여기에 따라올 자가 없는 검술실력이 받쳐주니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철옹성을 만들어내 30년 넘게 한국 최강의 자리를 당당히 지키고 있었다.

"흐음. 확실히 그렇긴 하겠죠."

성수언의 말을 들어보면 다행히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래도 긴장을 놓지 않는다.

솔직히 나에게 이 이상의 큰 그림은 무리였다.

애초에 평생을 평범하게 살았는데 몇 년간 힘 좀 얻었다고 노련한 식견 따위 생길 리 없지 않은가.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최대한 실수를 줄일 수밖에.

"일단 자리를 마련해주시면 제가 설득해보겠습니다."

우선 만나보자.

만나고 이야기해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겠지.

설정을 고려하는 건 직접 마주한 다음에 할 일이다.

'아예 설정을 배제할 수는 없으니.'

어디서 숨은 설정과 설정 오류들이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그렇게 성수언과의 이야기를 끝마치고 나서야 허망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현창식에게 다가갔다.

"환현가주님."

"......"

"환현가주님정도 되시는 분이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처신하리라 믿습니다."

은은하게 미소 지으며 하는 누리의 말에 현창식은 가타부타 말없이 고개를 숙일 뿐.

'그래. 그렇게 고민하고 고민해라.'

인간이란 망각의 동물.

지금 당장은 방금의 고통과 협박 때문에 고민해도 움직이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은 잊혀져 갈 테고, 고민할 수록 다시 분노가 차올라 누리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 발광할 것이다.

현강식의 존재가 그 시기를 조금 늦춰 주겠지만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 하겠지.

어쩌면 현강식을 포기하고 현강태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강식에게 집착하든, 현강식을 포기하든

'전부 내 손아귀 안이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과연 현창식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때가 매우 기다려지는 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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